오렌지와 어륀쥐

에세이 2008/08/28 20:21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이미 대형 서점에선 처세술, 경영, 마케팅 서적의 득세, 그리고 대학가에선 취직을 준비하기 위한 공모전, 영어 열풍이 불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 기운이 정부 내에서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인수위. 영어 교육 강화에 대한 근거로 인수위원장이 제시한 것이 스스로 미국 본토에 가서 오렌지를 어뤤지로 발음하지 못해서 쥬스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뭐 근거라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유머스럽게 소개한 차원에 지나지 않은 것인데 언론에서 물고 늘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수위원장 입에서 영어 교육을 왜, 강화해야 하는지,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들은 바 없다. 그저 '어뤤지' 만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인수위원장 정도면 대한민국의 엘리트 계층, 상류계층이 아니고서는 맡을 수 없는 자리다. 그런 상류계층에 오른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지금 보다 훨씬 더 가난했던 시절에 미국 유학을 한 분들이 대부분이고, 꽤나 고생스러운 생활을 했을 것으로 사료 된다. (물론 그런 고생스러운 생활을 감내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들이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대접을 받을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도 클 것이다.) 문제는 그 대한민국의 최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까짓 오렌지 쥬스 하나 제대로 주문하지 못했다고 상처 받고 그걸 유머로 표출하는 현실. 바꿔 말해서 그렇게 미국과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최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을 본토, 로 영어를 쓰는 미국인을 원어민, 으로 영어로 된 책을 원서, 로 부르는 일 만큼이나 안쓰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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