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과 홍상수

에세이 2009. 4. 21. 05:40


영화 감독 박찬욱.

박찬욱의 영화를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올드보이]를 가장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 영화는 내게 개인적으로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보통 영화를 볼 때 스크린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곤 하는데, [올드보이]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본 영화 중에서 내가 스크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본 영화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대 실망이었다.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내가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잘못 보았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그래도 그의 다음 영화가 여전히 궁금, 하다. 한국에서 그의 새 영화 [박쥐]가 개봉한다고 한다.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투자를 받은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모양인데, 예전에 어디선가 얼핏 접한 바로는 그의 새 영화가 헐리우드의 투자를 받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서 투자 금액을 다 채우지 못한 결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선택'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의 새 영화 [박쥐]가 궁금, 하다. 언제 어디서 보게 될 른지.


영화 감독 홍상수.

예전에 영화 감상 노트를 세 권 정도 작성한 적이 있다. 첫 째 권의 이름은 Dream, 둘 째 권의 이름은 Reality, 그리고 마지막 셋 째 권의 이름은 KINO[각주:1]였다. 제목이 유치한 까닭은 모두 스무 살 이전에 채웠던 노트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과 영화에 관한 정보, 그리고 영화에 관한 간략한 감상으로 한 쪽 씩을 채웠다. 영화에 대한 별 다섯 개 짜리 별점도 어줍잖게 매겼다.

들쭉날쭉 내 편견대로 재미삼아 매기던 영화에 대한 별점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처음 보고 나선 '?'로 매겼다. 참 묘한 영화고, 영화가 좋았다고도,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서른 살이 넘어서야 좀 이해가 가능할 것 같은 영화다, 라고 적었다. 

최근 작 [밤과 낮][각주:2]을 제외한 그의 모든 영화를, 적어도 세 네 번씩 반복해서 본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모든 인터뷰와, 그의 영화와 관련해서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영화 평론을 읽었던 것 같다. 아마 이창동을 제외하곤 한국의 유명 영화 감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일 것이다. 

이상하게 그의 영화에선 아무런 희망도 찾아 볼 수 없고, 인물들은 바닥의 끝을 드러 내며, 영화의 엔딩은 그야 말로 갑자기 불현듯 찾아 오는 데다가 아무런 결론도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모호하고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의 영화에 대해서 강한 적의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오히려 내가 혼란스러울 때 그의 영화를 보면서 도리어 위로를 받거나 머리가 맑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건 취향, 일 따름 이다. 아무튼, 보고 싶었던 [밤과 낮]도 아직 못 봤는데, 그의 새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개봉한다고 한다. 두 영화 다 언제 어디서 보게 될 른지 원.


평론가 정성일의 두 사람 비교. 

예전에 영화 평론가 정성일[각주:3],이 두 감독에 대한 을 쓴 적이 있다. 평론가 정성일은 2005년 7월에 [The DVD]라는 잡지에 기고된 이 글에서 박찬욱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 취향에서 풍겨 나오는 의문스러운 점에 관해서 논하고 난 뒤, 그 두 감독의 영화 취향에 한국 영화의 영향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나서 결국 그 들은 앞선 세대 한국 영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일종의 '아버지'가 없는 정신적 고아 신세라고 지적한 뒤, 그 결과 그들의 '한국 영화' 속에서도 정작 '한국'이 빠져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서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한국 영화 감독 들의 영화에 한국의 냄새가 나지 않는 다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나는 앞선 세대 한국 영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영화 감독이 그 둘 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영화를 만드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 감독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유현목 감독을 제일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감독, 하길종 감독을 제일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젋은 세대 감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영향, 이라는 것은 그냥 이것저것 보다가 받게 되는 것이지, '한국 영화사'의 맥락을 공부한 다음 일부러, 찾아 가면서 본 영화, 고전, 들은 사실 영향, 과는 별 관련이 없게 마련이다.)

조금 확장 해서 이야기하자면, 예전에 불었던 김기영 감독 재발견과 그에 대한 열풍도 영화 감독들이 '성장하면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미 장성한 뒤에 애타게 '아버지'를 찾아 해맨 결과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각주:4]

또한 평론가 정성일은 자신이 항상 되새김질 하던 프랑스 영화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의 그 유명한 말 -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 의 마지막 단계를 충실하게 실천 중이다. 어쩌면 그의 영화적 아버지도 결국 어느 '프랑스' 영화 감독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그가 만드는 영화 제목은 독일 작가 괴테의 소설 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다. (물론 그는 서른도 되기 전에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 했고, 그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하여간 좀 아이러니. 하다.)

하여간, 그의 글의 논조와는 별개로, 내 주목을 끈 부분이 한 군데 있다. 평론가 정성일의 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렇게 대담을 좋아하는 저널 중에서 어떤 저널도 홍상수와 박찬욱의 대담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 칸에 있었던 2004년 실제로 수많은 저널들이 두 사람의 대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뛰었다. 그러나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말뜻은 서로 상대를 만나기 싫다는 것이다...


애초에 하고 싶었던 말.

보통 서로에게 무심하거나 관심 없다라는 것을 넘어서 싫다, 까지 가려면 비슷한 면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겹치는 부분이 없는 사람들끼리는 싫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냥 무심하게 될 뿐이다. 두 감독의 경우, 모두 삶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부조리함[각주:5], 을 다룬 다는 점에서 두 감독은 대단히 닮아 있다. 

박찬욱의 영화들을 살펴 보면, 영화사에서 기획한 작품에 고용 되어 남북 정상 회담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만나 대박을 터트렸던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의 흥행 실패로 인해서 보다 더 흥행에 신경을 썼고 흥행에서도 성공한 [올드보이]와 같은 경우에는 물론 부조리함 뿐 만 아니라 비극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좀 더 자유롭게 만든 영화들,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는 보지 않아서 언급을 하지 못하겠다) [복수는 나의 것], [심판], [컷], [친절한 금자씨],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경우엔 부조리가 장면장면 그득그득하고 구조 상으로도 부조리극, 으로 분류 될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들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의 모든 작품이 한 마디로 말해서 부조리, 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공통된 냉소적인 정서와 부조리함, 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감독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박찬욱 감독의 경우엔 부자연스러운 상황과 부자연스러운 대사와 부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부조리함을 만들어 내는 반면, 홍상수 감독은 자연스러운[각주:6] 상황과 자연스러운 대사와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부조리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복수는 나의 것]에 등장하는 인물 들, [올드보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무늬의 벽지, [심판]의 상황 설정, [컷]의 (너무나도 인위적으로 서구적이어서 조금 역겨운) 미장센, [친절한 금자씨]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교실 단체 살인이라는 상황 설정과 금자씨라는 인물, 그리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모든 설정들, 이 그러하다. 또한 그의 영화들에 사용되는 대사들은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들이 아니라 좀 극적인 나머지 때로는 연극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한 마디로 많은 것이 부자연스럽다. 

그에 반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흔히 그의 영화들을 수식하는 '일상적인' 이라는 형용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일상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고, 별 다른 극적인 상황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상황들을 현미경을 가져다 대고 본 다음 그의 방식대로 재조립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감독의 차이가 형식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박찬욱의 영화들은 보다 더 장르적이고, 대단히 스타일리쉬하고, 영상 자체에서 오는 쾌락을 다루는 것에 매우 능숙하고, 비비 꼬더라도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르면서 극적인 구조를 포기하지는 않는 편이다. 반면 홍상수의 영화들은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도 없고, 화면은 대단히 사실적이며, 영상 자체에서 나오는 쾌락을 다루는 것에도 무심한 편이다. (심지어,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영화 [강원도의 힘] DVD에선 끊임없이 마이크가 등장한다.)

좀 잡스럽게 늘어 놓은 것 같은데, 이 생각들은 예전에 어떤 녀석, 이 나보고 어떻게 박찬욱과 홍상수의 영화를 둘 다 좋아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듣고 꾸준히 생각했던 것들이 뭉쳐져서 나왔다. 지금은 그 때와는 달리 점점 더 홍상수의 영화 들에 좀 더 애착이 간다. 어쨌든, 아무래도 그 두 감독의 신작, 을 보아야지만 이 모든 것들이 좀 더 확실해 질 것 같아 보인다. 


  1. 러시아어다. 키노라고 읽는다. 극장, 영화라는 뜻이다. 물론 95년에 창간 된 영화 잡지[KINO]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으로]
  2. 한국 DVD 시장의 붕괴로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본문으로]
  3. 솔직히 평론가 정성일이 쓴 많은 글들 중에서 현학적이면서 프랑스 철학 서적 번역체로 뒤범벅이 된 글들은 별로 읽을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씩은 너무 홀로 멀리 나아가서 혼자 만의 독백을 하기도 한다. 허나, 난 그가 영화에 대해서 매우 절실하고 치열하고 강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새 영화를 결국은 궁금해서라도 보게 될 것 같다.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는 김영진.
    [본문으로]
  4. 하지만, 그렇게 찾아 낸 '아버지'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하녀]는 대단히 세련된 '서구적인' 공간과 소도구를 통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보고 싶다면 여기, 덧붙이자면, 소위, '상업 영화' 감독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공간과 소도구를 통한 미장센을 잘 다루는 감독은 봉준호고, 소위, '예술 영화' 감독 중에선 홍상수, 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비극과 부조리극은 엄연히 다르다. 예컨데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아 마침내 모랫 바람이 이는 절벽 위에서 원수를 만나 싸우다 그만 원수의 칼끝에 맞아 장렬히 죽게 되면 그건 비극, 에 가깝다고 볼 수 있고, 마침내 모랫 바람이 이는 절벽 위에서 원수를 만나 싸우다가 원수의 칼을 쳐서 떨어 뜨리고 난 뒤 그의 목에 복수의 칼끝을 겨누자, 그 원수가 "사실은, 내가 니 아비다." 라고 말하면서 끝나게 되면 그건 부조리극, 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6. 그렇다고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자연스럽게' 찍는 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현장 관찰기에 따르면,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이 자존심을 상할 수도 있을 만치, 동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연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의 영화 속 상황들은 대단히 '부자연스럽게' 그의 의도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소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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