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8학군

에세이 2009. 12. 4. 18:04

홍정욱이 쓴 [7막 7장]을 가장 최근에 발견한 건 산호세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친구의 아버지 책상 위에 그 철지난 책이 고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이 자기 자랑과 치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 고백을 하자면 나는 그 책을 한국에서 유행이 되었던 당시, 꽤 재미나게 읽었다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그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서 소위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간략하게 묘사해 놓은 미국의 동부 문화와 서부 문화의 차이가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서울의 강북 문화와 강남 문화의 차이를 묘사해 놓은 책은 왜 없을까. 

'국민학교'때 까지 도봉산과 북한산을 매일 보면서 등하교를 하다가 중고등학교를 강남(의 변두리)에서 다니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집의 사정이 내가 강북의 국민학교를 다닐 때보다 강남의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더 어려웠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번도 내가 완전히 강남의 문화에 동화 되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강남의 문화라는 것이 뭐 별건 아니다. 갖가지 브랜드 명칭을 줄줄 읊조린다든지, 대략 십 몇 만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게스'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를 입고 '캘빈 클라인' 티셔츠를 입고 추워지면 그 위에 '더플 코트'를 입는 정도랄까)

아직도 기억나는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8학군'이라는 표현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온 다큐멘터리로 기억한다. 강북의 아이들과 강남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진행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서로 다른 운동장에 각각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운동장의 땅을 파서 뭔가를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메마른 운동장의 땅을 파야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 다큐멘터리는 친절하고 조곤조곤하고 간질간질한 음성해설이 없었고, 그저 그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집단의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험 결과는 예상 대로인데, 강북의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서 그 과제를 수행해내었다. 몇 명은 메마른 땅을 파기 쉽게 하려고 물을 떠왔고, 몇 명의 아이들은 또 뭔가 다른 일들을 했다. 강남의 아이들은 이기적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하나 둘 씩 운동장을 떠났다. 강남의 아이들이 떠나고 난 뒤 이런저런 도구들이 어지럽혀진 채로 남아 있던 풍경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을 무렵에 나는 왜 도봉산과 북한산이 보이는 집을 떠나 강을 건너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당시 어머니는 우리 집의 형편이 어려워져서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거나, 아님 당시 다니고 있던 흑석동에 있던 교회가 너무 멀기 때문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 둘 다 별 납득은 가질 않았던 설명이었다. 그리고 막상 다니던 교회는 이사를 간 뒤에 이름을 대면 바로 알 만한 소위 강남의 대형 교회로 옮겼으니까.

아마 '8학군'으로 가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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