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인용과 링크 2009. 12. 4. 19:44

"...그러므로 세르반테스에게서 새로운 것은 기사적 생활태도를 반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 즉 이상적/낭만적 세계와 현실적/합리적 세계 중 그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세계상에 나타난 화해할 수 없는 이원론 곧 이념은 현실세계에서 실현될 수 없고 현실은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세르반테스)는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이상주의와 현실세계에 적응하는 분별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주인공 돈 키호테에 대한 그의 분열적 태도, 문학의 새로운 시기를 여는 그 태도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학에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구제자와 배신자 ,성자와 신성모독자가 구분되어 나타났으나 이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동시에 성자이자 바보가 되어 있는것이다. 유머에 대한 감각이 한 사물의 정반대되는 양면을 동시에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한 성격의 이중성에 대한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문학에서의 유머의 발견을 의미한다..."

p 196,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2권, 제2장: 매너리즘,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반성완 옮김, 1999.


"...The novelty in Cervantes's work was, therefore, not the ironic treatment of the chivalrous attitude to life, but the relativizing of the two worlds of romantic idealism and realistic rationalism. What was new the indissoluble dualism of his world-view, the idea of the impossibility of realizing the idea in the world of reality and of reducing reality to the idea..."

"...He(Cervantes) wavers between the justification of unworldly idealism and of worldly-wise common sense. From that arises his own conflicting attitude to his here, which ushers in a new age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Before Cervantes there had been only good and bad characters, deliverers and traitors, saints and blasphemers, in literature; here the hero is saint and fool in one and the same person. If a sense of humour is the ability to see two opposite sides of a thing at the same time, then the discovery of this double-sidedness of a character signifies the discovery of humour in the world of literature-of the kind of humour that was unknown before the age of mannerism..."

p 146~147, [The Social History of Art] Volume II: Mannerism, Arnold Houser, translated by Stanley Godman, 1951.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 '문화예술사'라는 수업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 네 권을 읽었다. (지금은 그 수업이 없어졌다) 몇 명씩 조를 짜서 한 꼭지씩을 맡아서 발표를 해야 했는데, 그 당시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맡았던 부분이 매너리즘이었다. 대학 수업을 자꾸 언급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희곡의 이해'라는 수업에선 희비극 꼭지를 맡았었다. 그러고 보면 관심사랄까, 방향이랄까는 항상 비슷했던 것 같다. 내친김에 생각나는 거 하날 더 언급하자면 박찬욱-봉준호-홍상수 영화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희비극'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책의 매너리즘 부분은 한 세 번쯤 읽은 것 같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한 번을 읽었는데, 고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읽었던 소설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책 읽는 행태를 돌이켜 볼 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책 네 권 전체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고 볼 순 없을 것이지만, 하우저의 책 네 권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면서 읽어 나갔기 때문에, 내용은 다 까먹었어도 그의 관점은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중고책 장터서 1불을 주고 영문판 [돈키호테]를 샀다.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왠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일단 제목은 읽어 두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마존을 뒤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고책 네권을 샀다. 몇 문단 정도 읽어 보고 종이 냄새도 잠깐 맡아 보았다. 3불 99전인 각각의 배송비가 책 네 권 각각의 값보다 '훨씬 많이' 나왔던 것은 당연지사. 

그러다 결국 1965년에 출판된 [Mannerism: The Crisis of the Renaissance and the Origin of Modern Art 매너리즘: 르네상스의 위기와 현대 예술의 기원]까지 사버렸다. 제목 때문이다. 특히 '...the Origin of Modern Art 현대 예술의 기원' 이라는 부분. 사 놓고 안 입는 옷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듯이 사 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책이 자꾸 날 끌어 당기니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1892년에 태어나 1978년에 죽었고, 영화사에서 일한 경력도 가지고 있는 아르놀트 하우저는 매너리즘을 현대 예술의 기원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덧 붙이자면, 당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다 읽고 난 뒤에 들었던 생각은 책의 제목이 [서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동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라는 것. 아니, 동-서양을 구분하자기 보다는 서로 관련이 있을 듯한 한/중/일 삼국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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