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08.12.29 가족 사진 1
  2. 2008.12.26 경건함
  3. 2008.12.25 관계
  4. 2008.12.25 입술
  5. 2008.12.25 가족
  6. 2008.12.23 형 동생
  7. 2008.12.20 현실과 스크린 사이 : 성적 소수자의 경우
  8. 2008.12.12 미국 종교사를 읽고
  9. 2008.12.10
  10. 2008.12.10 =
  11. 2008.12.10 하루
  12. 2008.12.10 안다
  13. 2008.12.09 김이박 유학기, 일
  14. 2008.12.09 믿질 못하겠어
  15. 2008.12.08 아이브레인 iBrain

가족 사진

에세이 2008. 12. 29. 12:42
십 년 전에 찍은 가족 사진이 한 장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옷을 차려 입고 사진관으로 향했고, 아직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동생들은 교복을 입고, 난 어설픈 정장을 걸치고 부모님과 함께 사진관으로 나섰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 사진이다. 그냥 저냥 팔 년 동안 지갑 속에 넣고 다니다가 이 년 전에 그 사진을 좀 자세히 들여다 보다가 문득 조금 놀라면서 그 사진이 우리 가족의 관계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진의 구도가 우리 가족 그 자체를 말하고 있었다. 그 가족 사진은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 쯤에 어머니가 위치해 있고, 그 어머니의 둘레를 나와 동생들이 둘러 싸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왼 쪽에 홀로 계시다. 

그 구도는 사진관에서 일하는 사진사가 주문한 구도다. 물론 사진사는 가족 관계에 대한 어떤 직관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그날 입고 온 가족 구성원들의 옷 차림과 색깔을 고려해 가면서 전체 구도가 어떻게 하면 가장 보이기 좋게 나올까를 고민하면서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에 커트 코베인의 전기물을 읽는데 전기 작가가 코베인 가족의 사진을 통해서 그 가족 관계가 얼마나 위태롭고 파탄 일보 직전이었는지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는 사진의 왼쪽에 위치해 있고, 딸과 어머니는 사진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고, 마치 그 들 사이에는 어떤 선이 그어져 있는 것 처럼 찍혀 있다고 하는데, 그 사진의 구도는 그 가족 관계와 그대로 닮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금 십 년 전에 우리 가족 사진을 찍었던 사진사가 어쩌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 사이에 흐르고 있는 미묘한 공기를 포착하여 가족 사진 안에 담아 내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웨딩 촬영을 전문적으로 오랫 동안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부 화장 때부터 신랑신부 가족과 친지들의 단체 사진을 찍는 와중에 그 사람들은 어쩌면 신랑 신부가 혼수 때문에 싸웠는지 안 싸웠는지, 두 사람을 '독립 시키는 데' 필요한 재산은 어느 집안에서 더 많이 부담했는지, 아니, 더 나아가 두 사람은 앞으로 대략적으로 얼마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지 등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을까?






:

경건함

에세이 2008. 12. 26. 08:03

효도 차원에서 몇 년 만에 어머니와 교회를 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이전에 경건한 공간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조그만 교회였고, 그런데로 경건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안은 전혀 통일성이 없었고 이런 저런 선들로 어지러웠다.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설교가 있었고, 입교식과 세례식이 이어졌다. 이제 막 만 18살로 성인이 된 몇 명의 사람들이 기독교 교리를 받아 들이고, 앞으로 그 교리에 맞추어 살겠다고 선서를 하는 순간이다. 그 들을 바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순간 교차했다. 그런데, 순간 몇 명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똑딱이 디카들을 눌러 대었다. 기념촬영. 순간 저들의 손에 든 디카들을 뺏어서 벽에 던져 부수어 버리고 싶었다.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들이 훨씬 더 경건하고 종교적이다.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와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는 대단히 종교적이다. 패티 스미스는 무대 위로 신을 불러 온다. 한국 고유의 리듬이 아니라 일본의 리듬이니 어쩌니는 하지만, 사물놀이의 리듬은 대단히 종교적이다. 사방팔방 주위를 둘러 보아도 도무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으로만 이루어진 공간들이 훨씬 더 경건하고 종교적이다. 불교에 본격적으로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선불교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에 가는 것은, 왠지 좀 겉멋인 것 같다.

:

관계

2008. 12. 25. 20:17

걔?

아냐

친분은 없어
안면만 있어

:

입술

2008. 12. 25. 19:21

도톰한 
그녀의 입술

키스할 때
물어뜯기 좋다

:

가족

2008. 12. 25. 19:01

가족이란
말하자면
평생 탈퇴가 
불가능한
동아리 랄까

:

형 동생

2008. 12. 23. 15:23

남 동생 두 명을 둔
삼형제 중 장남이니까 이런 말 하는건데,

단언 컨데, 

형이니까 말하는 건데,
선배로써 너한테 말하는 건데,
 
식으로,
 
누군가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그 뒤는 귀담아 들을 필요 조차 없다.

대부분 개소리다. 

남 동생 두 명을 둔
삼형제 중 장남으로써 이런 말 하는거다.


:

현실과 스크린 사이 : 성적 소수자의 경우

에세이 2008. 12. 20. 21:16

한국에서는 성적 소수자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가 유행인가 보다. 멀쩡한 신윤복은 여장남자로 둔갑하여 동성애와 이성애를 넘나드는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야오이'물은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조만간 개봉할 유하 감독의 '쌍화점'은 고려 말 왕과 왕후와 호위무사간의 찐한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유 하 감독은 불현듯 과거로 돌아갔다.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하다.) 게이-레즈비언-트렌스 젠더-바이 섹슈얼.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한국에서 금기시 되지 않고, 드라마, 영화의 소재로 전면적으로 활용 된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성적 소수자들에 비례하여 한국 사회는 과연 그러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이 예전보다 개선이 된 것일까?

살아 오면서 주변에서 그러한 성적 소수자를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얼마 전 내가 몇 년 동안 알아 왔던 어떤 이가 성적 소수자라는 것을 알고 놀랬다. 그렇다면, '그 많던 '게이'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한국 땅에서 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르게 그러한 성적 소수자를 살아가면서 잘 마주칠 수 없는 까닭은 마치 한국 땅에서 길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잘 마주칠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할 지 모른다. 반대로, 미국 땅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도심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마주칠 수 있다. 왜? 미국에는 한국보다 장애인이 더 많아서?

이유는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부터, 공공 시설을 이용하는 것,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에 있어서 장애인들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무엇 보다 '정상인'들의 시선을 그 들이 어떻게 감내하고 다니는 지 나로써는 짐작조차 안 된다. 성적 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땅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처럼 한국 땅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다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어 있다는 것. 길거리에는 '정상인'들로 그득한데, 스크린과 브라운관에는 '비정상인'들로 넘쳐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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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종교사를 읽고

에세이 2008. 12. 12. 23:21

'미국종교사'라는 책이 있다. 번역서가 아닌 직접 저술한 책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알라딘의 책 소개를 그대로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역사와 정치를 살펴볼 때 종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시민종교’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은 그간 미국의 정치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미국의 정치나 여러 정책들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안되는 미국 종교사 통사이며, 한국 사람에 의한 탈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면서, 그 동안 역사 속에서 소외되어 왔던 소수자들에게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이 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주민, 여성, 이민자, 새로운 종교, 사회적 소수자 등의 종교적 경험이 이전까지의 어떤 미국 종교사 통사보다 더 균형 있게 언급되어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주를 줄이고 비교적 평이하게 기술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종교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의 글은 그 책을 읽고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던 글의 일부분이다. 딱히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있는 글도 아니고, 그냥 생각들이 듬성듬성 흩뿌려진 그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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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나는 항상 대한민국의 오천 년 역사를 자랑스러워 할 것을 고등 교육을 통해서 주입 받았으나, 실은 오천 년 전에 한반도에 거주 했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들, ‘한국인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미국선교사들일본인, 그리고 이승만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정희와 그가 추진했던 근대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 대한민국은 기껏해야 백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정체성을 만들어 왔을 뿐인데, 어쩌면 이러한 관점이 이백 년 동안 국가 정체성을 구축해 온 미국을 대한민국이 기를 쓰고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내 생각으론, 대한민국이 미국의 진정한 실체, 혹은 바람직한 면을 모방하고 있다기 보단, 그 풍문과 소문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저항문화이자 빈곤지역 흑인들의 정서를 담고있는 힙합을 우리 나라에 소개한 것이 주로 유학파였던 관계로 그 힙합 문화는 압구정이라는 부자 동네를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양키문화로 포장되었으며, 역시 블루스에서 태동하여, 자유롭고 분방한 흑인들의 리듬을 담고 있는 재즈 역시 고급 문화로 여겨져청담동에서 가장 열렬히 소비 되어 왔다. 또한 미국 중산층을 날카롭게 해부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 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창동의 영화처럼 매우 적나라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미국 교외의 전형적인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 바인데, 그 풍경은 일산과 분당의 외곽지역의 소위 전원 주택들이 열심히들 흉내 내고 있는 바다.

...(중략)

미국이 비록 남의 나라 역사이긴 하지만미국 현대사에 흥미를 느낀다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는 1960년대이다그 시기에 미국의 모순은 절정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미국이 베트남 전에 참전하면서반전 시위가 극렬하게 일었고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거센 반문화 운동히피 운동이 일어 났다또한 진보적인 것으로 유명한 버클리 주립 대학에서는 ‘Civil Right Movement’가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고또한 이 곳 샌프란시스코는 게이-레즈비언 인권 운동이 있었던 도시로 유명하고지금도 여전히 미국 내에서 게이-레즈비언의 비율이 가장 높다.

게다가 그 시기의 반문화 운동은 동양의 종교특히 인도의 힌두교와 일본에 의해 소개 된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어떻게 보면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동양과 서양이 보다 더 격렬하게 만나서 조우한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어쨌든 이 곳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아시안의 비율도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며시내 중심가에는 ‘Asian Art Museum’이 건재 하다.

히피와 동양 문화의 영향을 받은 반문화 운동은, 대한민국 보수 교회 내에서는소위 사탄의 음악, 문화로 정의 내려진 바 있는데, 그것의 여파로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음반들이 어머니에 의해서 쓰레기통에처박히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이 곳에서는 ‘Bible Belt’로 불리고 있는 미국 남부의 대단히 보수적인 개신교 그룹의 견해와 일맥 상통하는 바다. 물론, 가장 진보적이고, ‘뉴욕보다도 훨씬 더 ‘liberal’한 도시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들 자부하는 샌프란시스칸들에게 그러한 보수 개신교 그룹은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아마도 그 당시에 가장 아이러니칼한 상황은, 서구에서 규정한 -에이지라는 개념을 그대로 대한민국에 수입해서 그것을 다시 사탄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대체 누구의 눈으로, ‘상황들을보고 있는가

영화를 예로 들자면, 헐리우드 영화를 볼 때에도, 요즘 부쩍 커진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 시장을 의식 해서 인지, 아시아인,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배우들이 부쩍 출연하고, 우리 나라의 몇몇 유명 배우도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런 영화를 볼 때 간혹 내 스스로에게도 놀라는 것은, 백인, 주로, 앵글로 색슨족과 나란히 서 있는 동아시아인을 보고 있는데, 그 동아시아인이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다시 말해서, '타자'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러한 관점들이 내 안에도 주입되어 있다는 것에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략)  

저자의 책 '미국 종교사' 를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맨 앞의 유럽인들이 기독교를 들고 미 대륙에 진출하기 이전에 다양한 소위 원시적인종교들이 존재 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한 것과, 기독교가 그 다양성들을 파괴했다는 것, 그리고 그 종교들에 대한 간략한 묘사였다. 또한 종교또는 종교성이라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풍요로운 경험을 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정의 한다면, 과연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믿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과연 그 시절, 기계 문명 이전의 시기 보다 더욱 풍요로운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이것을 예술, 또는 예술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한다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예술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현대인들이 과연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통찰이 더욱 크고, 삶에 있어서더욱 많은 것을 누리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반문해보았는데, 명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시스템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지라, 그 시스템을 만들어 낸것이 결국엔 인간 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시스템은 인간을 억압하는데, ‘제도권안에서 존재하는 종교라는 것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아니라, 또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문해 본다.

언뜻 스치는 단상이긴 하지만, 21세기에는 어쩌면 각 종교 간에 드리워져있는 장막들, ‘말씀교리제도로써 갈려 있는 그 숱한 종교들의 경계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한 역사가가 20세기에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구세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라고 답한 것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종교를 택할지, 어떤 식으로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될지는 모르겠다. 인상 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종교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박상륭의 소설 혹은 잡설 '죽음의 한 연구'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 대한 묘사였다. 그 죽음이라는 것이 무슨 대단하고도 큰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건너는 것이 유달리 까다로웠던 미국 입국 심사대 보다 도 훨씬 더 부드럽게 훌쩍 지나가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읽은 지 오래 되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주인공이 마치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죽음이라는 활짝 열려 있는 문 앞에서 전혀 망설임 없이 그냥 걸어가던 속도로 훌쩍 지나가는 듯한느낌이라고 내 방식대로 다시 묘사를 할 수 있겠다.

 ...(하략)


:

2008. 12. 10. 21:27

선이 그어져 있는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넘을까
말까
넘을까
말까

그런데 
선은 누가 그었을까

:

=

2008. 12. 10. 21:25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의 아무 호프집의 메뉴판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의 아무 호프집의 내부 장식재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의 아무 호프집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
아무 유흥가

예수 믿으세요
도를 아십니까
얼마까지 알아 보셨어요
물 진짜 좋아요 잠깐 구경만 하고 가세요

:

하루

2008. 12. 10. 21:21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

안다

2008. 12. 10. 21:21

안다.

ㅇ ㅏ ㄴ ㄷ ㅏ.

ㅇ  ㅏ  ㄴ  ㄷ  ㅏ  .

ㅇ     ㅏ     ㄴ     ㄷ     ㅏ     . 

 .


:

김이박 유학기, 일

카테고리 없음 2008. 12. 9. 16:02

올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서 한국인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된 김이박의 친구 녀석은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미국에서 동양 남성의 지위에 대해 자학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흑인 여성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이박이 농담삼아, 그럼 흑인 여성과 사귀어야 겠군. 하니, 장난하냐. 라는 반응이다. 

김이박이 시간당  8불을 받아가며 불법 노동을 하고 있는 곳은 주로 흑인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곳이다. 이 가게에서 파는 건 '백인'이다. 꼬불꼬불한 머리를 가진 흑인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찰랑찰랑하고 윤기나는 '백인' 머리를 판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겉모습이 가장 친숙하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관찰하는 것과 사장 아줌마와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김이박의 낙이다. 

하루는 한 '고객님'이 들어 왔다. 김이박은 그녀에게 '백인' 머리 몇 개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아줌마는, 김이박에게 그 고객님에 대해서 심심하면 들어와서 물건을 구경하고 귀찮게 하는데 절대로 물건은 사지 않는다고 덧붙이셨다. 김이박은 그래서 그 고객님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격지심이 발동했는지, 그 흑인 여성은 오바마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오바마가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이고, 이제는 변화- CHANGE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HANGE, CHANGE.

김이박은 순간 오바마가 말한 CHANGE에 대해서 생각했다. 속이 공허한 말들, 캠페인성 구호 일 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그 속을 채워 넣기 좋다. 그리하여 공허한 말들은 널리널리 퍼져 나가고 널리널리 받아들여 진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도 긍정적인 의미도 아니다. 현상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계속)


:

믿질 못하겠어

2008. 12. 9. 12:45

믿질 못하겠어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어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어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어


:

아이브레인 iBrain

구라 2008. 12. 8. 13:34

생명공학과 IT가 발달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서기 2020년 맥월드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는 놀라운 신제품 아이브레인 iBrain 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 Apple사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 한다. 스티브 잡스는 키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드디어, 우리는 선악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모양이자, 애플사 로고 모양이기도 한 직경 2인치 정도의 작은 칩을 정수리 위에 간단한 과정을 통해서 이식을 하는 순간 사람들의 뇌는 인터넷과 자동적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뇌는 인터넷과 24시간 항상 접속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상태가 서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들이 잘 알려져 있다. 

먼저, 사실 확인적 대화 패턴, 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야, 그러니까 그 영화 말이야. 그 뚱뚱한 여배우하고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 말이야. 그 유치한 러브 스토리 영화 말이야. 커다란 배가 가라앉는 그 영화 말이야. 그 영화 제목이 뭐더라?' 라는 답에, '아, 그 영화 '인디아나 존스' 아니냐?' 라는 답이 달리면서, '아닌데, '인디아나 존스'는 확실히 아니야!' '아냐, 맞아.' 라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실 확인적 대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술을 마시고 나누게 되는 대화의 끄트머리는 대게, '아유, 네이버에 물어 봐.' 라는 식으로 마무리 되기 마련인데 집에 가서 그 취중 대화를 기억하고 네이버를 뒤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바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그 순간에 정보를 바로 바로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보 확인적 대화 패턴, 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한다. 

예를들어, '야, 너 어디있어?' , '그게 그러니까 논현동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그래서 언덕을 주욱 올라오다 보면 청포도길이 나오거든, 거기서 유턴을 해, 그런다음 첫 번째 신호등에서 다시 우회전을 한 다음에 오른 쪽으로 대략 백 미터쯤 오다 보면 경원빌딩이 나오거든? 거기 삼 층이야.' , 하지만 오 분 뒤에 다시 '야, 너 어디있어?' 라는 전화가 결려오면서 끝내 그 둘이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시간적, 자원적 낭비를 유발하는 정보 확인적 대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하자면 더 이상 길을 잃고 잘못된 곳을 해메다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일은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래 동화에서 잘 나오는 설정, 과거를 치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한 나그네가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가 (대체 과거를 치는 선비들이 한 둘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이미 검증된 길이 있을 것이고, 그 길 주변엔 주막과 묵을 곳과 장터가 발달을 했을 터인데 왜 혼자 이상한 곳을 헤매고 다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불빛 한 점을 발견하고 다가가니 왜 산중에 기와집 한 채가 있어 '이리 오너라.' 라고 점잖게 소리치니 왠 어여쁜 아낙네가 문을 열어 주는데 (그 아낙네는 물론 과부이고 깊은 산 중에서 어떤 식으로 홀로 먹고 사는진 알 순 없지만) 나그네는 다시금 점잖게 하루 밤 묵어가길 청하고 여인은 나그네를 사랑채에 들이는데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식의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설교적, 지적 허영심 분출적 대화 패턴, 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건 마치 레비-스트라우스가 말한 식인데? , '맞아, 그건 너무 프리텐셔스 pretentious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들이 헤겔이 말한 것 처럼 스노비즘을 보이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아.' , '이런, 그렇담 이건 완전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 걸?' 등등의 권위에 호소하고 현란한 단어가 섞여있는 고난이도 대화에 참여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거나,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 중인 반 고흐 그림을 보다가 동행한 서양미술사 전공자에게 반 고흐와 테오의 관계에 대해 물어 보았다가 느닷없이 인상파 강의를 듣는 식의 대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영한 사전과 위키페디아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면 더 이상 그것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못된 사실과 사건의 인용, 잘못된 수치의 인용, 잘못된 연도의 인용을 통한 갖가지 궤변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와 같이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점들이 바로 아이브레인 IBrain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혜택으로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만을 주고 받는 대화, 어디서 풍문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을 주고 받는 대화를 실현하는 진정한 소통의 참맛을 모두가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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