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9.02.25 재미있던 별자리 여행
  2. 2009.02.24 김승옥
  3. 2009.02.20 낡고 오래된 책 한 권 2
  4. 2009.02.18 숫자 사이에 쉼표 찍기
  5. 2009.02.17 한국의 상징 잡설 1
  6. 2009.02.16 옷차림 1
  7. 2009.02.12 여행의 세 단계
  8. 2009.02.10 김이박 영화 감상기
  9. 2009.02.09 방송
  10. 2009.02.09 국제적 사고 2
  11. 2009.02.09 징글리쉬
  12. 2009.02.09 모방국가
  13. 2009.02.08 미국 물
  14. 2009.02.01 반찬 생각 2

재미있던 별자리 여행

에세이 2009. 2. 25. 23:11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집에 굴러 다니던 김영사에서 출간 된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과연 내가 즐겼는지 즐기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뒤를 이어 (아마도 강원도에서 열렸던) '재미있는 별자리 캠프'라는 곳에도 따라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캠프를 과연 내가 가고 싶다고 어머니를 졸라서 가게 되었는지, 집에 그 책이 굴러다닐 수 있도록 해 주신 어머니가 나를 보낸 것인지는 지금도 잘 알 수 없다. 아무튼 난 쌍안경을 하나 챙겨 들고 비교적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캠프에 따라 나섰는데 지금으로썬 딱 세 가지 기억이 남아 있다.

하나, 캠프 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오줌으로 가득 차 터질듯한 방광을 부여 잡으며 괴로워 했는데, 그 괴로움을 못이기고 제발, 빨리 캠프장에 도착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 당시 주일학교에 열심히 참석을 하며 성경 퀴즈 대회에까지 나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무드셀라라는 작자로, 구백 육십 구살까지 살았다, 고 성경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노아의 세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 들에 열심히 외운 답을 말해 금상도 받고 당시 다녔던 교회의 이름도 빛냈던 개신교인, 이었기 때문이다. - 그 꼴을 보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별 이상한 놈 보겠다는 얼굴로 쳐다 봤던 기억이 난다.  

두울, 당일 저녁엔 저 책의 저자와 유명한 조경철 박사가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뭔 얘기를 했는지는 지금으로썬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당시에 저 사람 들이 그렇게 별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모를 '어른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엣, 그 캠프는 KBS에서 동행 취재를 했었다. 아마도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라는 책이 당시에 히트를 쳤던 것 같고, 그래서 그 캠프도 취잿거리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의'가 끝나고 밤이 되고 드디어 별자리 관찰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몇 개의 망원경이 설치 되어 있었고 나처럼 쌍안경을 들고 온 사람들도 몇 몇 있었다. 안타깝게도 날은 흐려서 별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별자리 캠프'에 왔으니 별을 관찰하겠다고 열심히 하늘을 들여다 보았는데, 순간 쌍안경을 들고 하늘을 보고 있던 내 앞에서 환한 빛이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그 빛은 천사 가브리엘의 반짝이는 날개에서 나는 불빛이 아니라, ENG 카메라를 맨 카메라맨 옆에서 조수가 들고 있었던 강렬한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그러니까 밤에 별을 관찰하는 사람을 찍기 위해선 조명 불빛이 필요한 것인데, 그 조명 불빛이 쌍안경을 통해 들어 오는 통에 나는 순간적으로 천사의 강림을 느꼈다가, 이내 촬영을 하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별을 관찰하는 꿈 많은 소년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어느 아침 프로그램에서 난 쌍안경에 얼굴이 반 쯤 가려진 내 모습을 한 일 초 정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직까지는) TV 출연이다. 

:

김승옥

카테고리 없음 2009. 2. 24. 14:59

어느 게시판에서 그와 그의 신부 사진을 보고 그가 그의 신부에 대해 쓴 글을 읽었는데, 
그의 소설과 비슷한 냄새가 나서 좋았다.


[르네상스인 김승옥] 책 中. 김승옥과 그의 부인, 박혜욱.

"그 여자는 거의 완전무결할 정도의 에고이스트다. 동시에 그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변덕장이이다. 그 여자는 상식 이상도 이하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로 아주 작정한 사람 같다. 관습을 즐긴다. 이 여자의 문학에 대한 오해는 무지막지할 정도다.  문학이란 건전한 사람을 괜히 병들게 하는 것이며 문학인이란 괜히 술이나 마시고 바바리코트의 깃이나 세우고 다니는 사람들인 줄로 안다. 그러면서도 미에 대한 추구는 굉장하다. 하지만 그것도, 예를 들어 자기를 닮은 여자가 아니면 아무도 미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독선적인 데가 있다. 

겉으로는 꽤 상냥하고 부드러운 것 같은데 차디찬 자기가 안에 도사리고 있다. 타인은 항상 타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순히 상식적인 여자가 아니라 철저히 너무나 철저히 상식적인 걸 사랑하는 여자이다. 내 글재주로는 아무리 써도 그 여자의 오만불손을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리 만나보아도 그 여자에게 있어서의 나는 항상 타인이었다. 타인치고는 약점을 빤히 알고 있어서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타인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식의 여자를 상대하는 방법이라고는 다만 두 가지밖에 없는데 하나는 그여자를 싹 무시해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여자와 얼른 결혼해 버리는 것으로서 나의 경우엔 당연히 뒤의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여자를 통하여 구제되기를 바랐다는 얘기다....

밤만 되면 어린애처럼 자기 집에 가고 싶어 울먹울먹한다. 그래서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기 시작하면 아내를 웃길 말이나 재미있는 얘기를 준비해야 한다."


[뜬 세상 살기에], [햇볕과 먼지의 놀이터] 책 中.

:

낡고 오래된 책 한 권

카테고리 없음 2009. 2. 20. 16:22

오랜 만에 샌프란시스코 시립 도서관 중앙 건물에 들렀다. 이런 저런 자료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예전에 반 쯤 읽다가 만 책을 다시 제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님 웨일즈라는 미국 여성이, 김 산(본명 장지락)이라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혁명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지은 책 [Song of Ariran]이다. 

1941년에 처음 출간 되었는데, 지금 미국에선 절판 되었고, 아마존에서 구하려고 해도 양장본도 아닌 보급판 중고책을 92불이나 주어야 한다. 한국에선 1984년에 처음 출판되고 2005년에 재출간 되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작년이다. 

사서가 서고에서 찾아온, 먼지가 쌓여 있던 삭아 버린 오래된 양장본을 펼치니 대출카드가 보인다. 대출카드 상으론, 이 책이 처음으로 대출된 날짜는 1945년 8월 18일로 기록 되어 있다. 한국이 일본으로 부터 해방 된 지 불과 삼 일 뒤인데, 그 대출자가 그 사실을 알고 대출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은 1987년 9월 29일이다. 그 뒤로는 서고에서 쭈욱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나 보다. 

책을 휘리릭 넘기자 책 한 켠에 한자와 한글이 섞인 짧은 메모가 눈에 들어 온다. 

Chapter X(10)의 'From Tolstoy to Marx' 라는 부분이고 그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무엇을 바랬는지에 대한 간략한 서술이 담긴 73 쪽에 적혀 있던 메모다. 

'自由主義가 放任主義 이라는 見解."

문득 이 짧은 메모를 쓴 사람은 누군지 궁금해진다.


이 책의 맨 첫 페이지에는 'Song of Ariran 아리랑의 노래' 가 'Old Korean folksong of exile and prison and national humiliation 추방자와 감방과 국가적 수치에 대한 오래 된 한국 민요' 라는 부제를 달고 적혀 있다. 쉬운 영어로 적혀 있는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내가 알고 있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라는 '아리랑'과는 차이가 있다) 노래를 다 읽고 나니 슬프다, 가 아닌 비통하다, 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re are twelve hills of Ariran
And now I am crossing the last hill.

Many stars in the deep sky-
Many crimes in the life of ma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Ariran is the mountain of sorrow
And the path to Ariran has no returning.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Oh, twenty million countrymen-
      where are you now?
Alive are only three thousand li
      of mountains and rivers.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Now I am an exile crossing the Yalu[각주:1]River.
And the mountains and rivers of three thousand 
      li are also lost.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1. 압록강 [본문으로]
:

숫자 사이에 쉼표 찍기

짤막한 거 2009. 2. 18. 10:15
영어에선 one thousand, ten thousand, one hundred thousand, 그리고 one million. 
one million, ten million, one hundred million, 그리고 one billion. 

이렇게 동그라미 세 개를 기준으로 단위가 바뀐다. 따라서 쉼 표는 동그라미 세 개 당 하나씩 찍어 주는 것이 읽는 데 더 효과적이다.
10,000 ten thousand / 1,000,000 one million / 100,000,000 one hundred million

한국어에선 일, 십, 백, 천, 그리고 만. 
만, 십만, 백만, 천만 그리고 억. 

이렇게 동그라미 네 개를 기준으로 단위가 바뀐다. 따라서 쉼 표는 동그라미 네 개 당 하나씩 찍어 주는 것이 읽는 데 더 효과적이다.
1,0000  만 / 100,0000  백만 / 1,0000,0000 일억

동그라미 세 개 당 찍혀 있는 쉼표를 보면서 (한국어로) 동그라미 네 개씩 끊어 읽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

한국의 상징 잡설

에세이 2009. 2. 17. 19:05

한국산 인삼차 봉지를 보고 있으려니 그 조악한 디자인에서 왠지 소위 '동남아[각주:1]'라는 '형용사'를 사용해서 지칭할 때 느껴지는 그 느낌이 난다. 어쨌든 오랜 만에 인삼차 가루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자 처음엔 인삼 특유의 향이 나더니만 씁쓸한 뒷맛에서는 담배맛이 난다. 인삼차가 이렇게 그윽한 줄 전에는 잘 몰랐다. 마시고 있는 커피 봉지가 떨어지면 인삼차 상자를 하나 사야겠다. 자칫하면 중독될 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마셔 본 적도 없었던 복분자주를 사서 누구, 와 함께 마셨다. 한국산 술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누구, 는 복분자주를 좋아했다. '복분자주'에서 느껴지는 정력 어쩌구 저쩌구 하는 선입견이 없는 누구, 에게 그 술은 달콤하고 맛있는 산딸기로 만든 술이었을 따름이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 누구, 는 그 술병을 캘리포니아산 피노 느와르 와인 병과 나란히 진열해 놓았다. 

예전에 어깨죽지에 문신을 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주일 정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던 문신 디자인이 하회탈이다. 하회탈을 좀 캐주얼하게 변형하여 어깨에 새기면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릴 적 우리 집엔 하회탈이 걸려 있었는데, 난 그 하회탈을 바라 보면서 저게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아리송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아리송한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인생은 희비극'이라는 유치한 모토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곤 했다. 

한국 요리에 있어 특징이 있다면 고추장이 아닐까 싶다. 간장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고 된장은 '미소 수프' 라는 이름의 일본 음식이 이미 있다. 

  1. 이 형용사는 '뉴욕'이라는 반대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동남아와 뉴욕은 모두 고유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 되고 있다. [본문으로]
:

옷차림

카테고리 없음 2009. 2. 16. 18:22

영화 [낮술]이 3월이나 4월 쯤에 미국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관련된 뉴스를 찾아 보다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차림새가 몇 년 전 내 차림새와 완전히 똑같아서이다. 

예전에 이미 경험한 바는 있다. 싸이월드를 하고 있을 무렵,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어떤 아는 녀석의 싸이 홈피에서 보게 된, 유학을 준비하면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녀석의 차림새도 마찬가지였다. 

솔기가 군데 군데 뜯긴 빈티지풍 모자, 검은색 뿔테 안경, 그리고 살짝 기른 콧수염과 턱수염 등. 나는 내 나름대로 '개성'을 살린다고 했었지만, 단지 여기저기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배회하는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일종의 '유니폼[각주:1]'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저 영화, 재미있을 것 같다.


  1. 현재 검은색 뿔테 안경은 색깔이 갈색으로 바뀌었고, 수염은 똑같다. 모자는 인민군 스타일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

여행의 세 단계

구라 2009. 2. 12. 19:08

여행에도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그 중의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여행 책자에 소개 된 장소를 도는 관광지 답습 여행입니다너무나도 안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뻔하기 이를 데 없어 사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합니다. 이 여행 단계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여행지는 선진국일 경우가 많고, 가장 선호되는 곳은 아무래도 서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일 것입니다.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이 그냥 도시 한 군데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데, 그 도시 이름은 미국에 있는 라스베가스입니다. 그 도시에는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파리의 에펠탑,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이 모두 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잘만 각도를 맞추어 사진을 찍는다면 마치 세계 곳곳의 명소를 모두 다녀 온 듯한 효과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서 부연 설명 하자면,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찍는 사진들은 모두 자신이 어디어디에 갔다 왔다는 것을 증명 해주는 증명 사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지물 또는 건축물이고 사진을 보게 될 사람들이 그 지형지물 또는 건축물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펠탑이나 콜로세움과 같이 정확하게 그 장소에 해당하는 랜드 마크를 공략하는 것은 필수 적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여행이 이미 유행을 지난 듯이 보여 이쯤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는 '독특한' 여행기를 써내는 저자들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뭔가 주제를 잡고 여행을 떠나는 방법 입니다. 주요 목적은 잃어 버린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이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여행하는 법 자체 보다는 여행 에세이들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하고자 합니다

서점에 가서 진열된 여행 에세이들을 한 번 쭉 훑어 봅시다. 그 말랑 말랑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의 여행기 책자들 표지에서는 왠지 모를 커피 내음이 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아무 책이나 뽑아 들고 책장을 넘기게 되면 반드시 책의 속표지에는 저자의 사진과 저자의 간략한 소개가 나옵니다. 사진에서는 벌써 자유로운 여행자의 풍모가 반드시 풍겨 나오기 마련이고 이것저것 많이 시도를 해 보았던 울퉁불퉁한 인생사를 드러내는 저자에 대한 소개는 톡톡 튑니다. 예컨데,

"모모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이미 집을 나가 하룻 동안 거리를 쏘다닌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자율 학습을 빼 먹고 무작정 바다가 보고 싶어 부산 행 기차에 올랐다.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했지만, 철학 수업 보다는 기타를 더욱 사랑했다. 입대 직전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 하기 시작했다. 인디 밴드 기타리스트,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거쳐 현재 문화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아침 마다 주머니에 여권을 챙겨 넣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

정도면, 그럭저럭 무난한 소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론 사진입니다. 저자 사진들의 특징을 꼭 무 짜르듯이 나눌 순 없겠지만, 대략적으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적이면서 다소 철학적인 모양새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더 소탈하면서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적인 모양새를 강조하고자 할 때는 대부분 얼굴을 전부 보여주기 보다는 약간은 어두운 조명을 깔고 각도를 약간 달리 하여서 얼굴 윤곽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얼굴을 반 쯤 만 보여 주거나 얼굴에 뿔테 안경을 낀다든지하여 얼굴을 정면에선 보여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소탈한 자유분방함을 강조 하고 싶을 때는 대게 제 멋대로 자란 듯한 수염을 기르면서 다소 과감하게 정면을 보면서 소탈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들이 여행을 하면서 뽑아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발견할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느낌의 글 들입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데이트 중에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비시시 웃으면서 '기내식!'이라고 힘차게 대답했던 그녀." 

라든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여행을 떠나서 만나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너 자신이라고. 인천 공항을 떠나 이십 육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혹은, 

"조그마한 바스릴라1마을에서의 경험은 확실히 내 기존의 생각들을 조금씩 바꾸어 놓기에 충분 했다. 그 들은 작고 변변치 않아 보이는 것들 틈바구니에서도 소박한 웃음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 들의 일상을 잠시 엿 본 나는 그 마을을 나서며 내가 지금 껏 쫓아 왔던 가치들에 대해서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나에게 넉넉한 웃음을 보여준 마누에2가 부쩍 생각이 난다." 

정도의 글들을 한 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진과 함께 발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사진들은 첫 번째 단계의 여행에서 언급한 사진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유명한 것들을 포착하기 보다는 뚝뚝 묻어나오는 자유로움을 포착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단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여행지는 주로 쿠바, 인도, 몽골 사막, 칠레, 터키, 카오산 로드 등등이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야 말로 여행자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단계가 되겠습니다. 바로 그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의 단계입니다. 마치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 가는 방법이 되겠는데요. 사실 이렇게 계속 살아서야 먹고 사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므로 간략하게 자기가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서울을 여행하고 싶다면 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먼저 첫 번째 방법은 좀 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슬슬 집을 나서 집 앞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자기가 학교나 직장과 같이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버스나 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찬찬히 창 밖을 내다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리고 싶을 때 내립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버스 카드를 이용하면 버스 요금은 버스를 탄 횟수가 아니라 버스를 탄 거리에 따라 계산이 되므로 돈도 얼마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가보는 동네가 나오면 내려서 이곳 저곳 휘적거리면서 돌아다녀 보는 겁니다. 그러다 출출하면 밥을 먹게 되겠지요. 이런 식으로 하루 일정을 채운 후에 가능하면 평소에 자신이 자주 유흥을 즐기던 동네가 아닌 생판 낯선 동네에 있는 술집에 가서 홀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때 구천 몇 번이나 천 몇 번 과 같이 네 자리 숫자로 된 버스를 타서 서울 근교 일산이나 분당과 같은 곳으로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그 곳도 여행지에 넣어 포괄적으로 서울과 서울 근교 여행으로 범위를 넓힐 수도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방법은 휴일이나 주말보다는 주중에 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주말이나 휴일에 본격적으로 여행자 기분을 내보는 것입니다. 집에서 여행 베낭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서울시 안내 책자를 챙깁니다. 그리고 인천 공항으로 향합니다.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의 시각을 확인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맘에 들어 하는 곳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시각에 맞추어서 그 인파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리무진을 타고 서울로 향합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서울에 처음 온 관광객인 양 서울을 돌아다닙니다. 경복궁에도 가보고 남산 N 타워에도 올라가서 서울의 전경도 구경합니다. 내려 오는 길에 남산 한옥 마을도 들려 사진도 찍고 인사동에 들려서 전통 음식도 맛보고 한국의 전통이 담긴 중국산 기념품도 하나 사고 삼청동과 가회동을 돌아 보고 조그만 갤러리도 한 번 쓱 들어가 봅니다. 이렇게 비교적 정해진 코스를 다니다보면 서울을 관광하는 외국인도 만나 이야기도 더듬거리면서 주고 받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 제가 처음에는 정해진 관광지를 답습하는 여행을 피하라고 말했던가요? 

이상입니다

:

김이박 영화 감상기

김이박 이야기 2009. 2. 10. 19:35

김이박은 어느 유명한 영화제에 가서 어떤 유명한 영화를 봤는데 그 유명한 영화가 끝나자 한 유명한 감독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박은 방금 본 영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아 보여 용기를 내서 손을 번쩍 들고, 감독님, 주절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그래서 말인데요. 가나다라마바사는 아자차카타파하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게 맞나요? 

그러자 어떤 유명한 영화를 만든 한 유명한 감독님은 영화 관객과의 대화를 영화 스태프와의 대화로 착각했는지 버럭 성질을 내며 손에 쥔 마이크를 던지더니, 빌어먹을, 의미는 스스로들 찾으란 말이야! 안 그럼 아무 의미 없다고! 

그러나 김이박은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

방송

인용과 링크 2009. 2. 9. 22:26
- KBS.

'국민의 알 권리'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재야의 종소리 현장에 있었던 사운드와 화면 담당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와 있는 그대로의 화면을 채집하여 송출한다는 생방송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훼손되었다. 이건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수다. 역사에 남을 만한 프로그램이다. 


- MBC.

어떤 앵커의 마지막 멘트, '열공'. 뉴스 자막에 'ㅋㅋㅋ' 이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과연 인터넷 강국 답다.

2008년 MBC 400회 특집 100분 토론, 얼마나 '쇼'였냐면 보다가 순간 나경원 의원의 손짓이 섹시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모든 대화는 결국 노가리로 통한다. 노가리를 깔 수 밖에 없는 만남의 장이 너무 많다. 달리 예능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만에 잠깐 시청한 무릎팍 도사, 참 무서운 프로그램이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장기하, MBC 노조 파업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참 똑똑하다.

MBC가 소위 '좌파' 방송사인지, '우파' 방송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뉴스를 만들 때는 일단은 그냥 가장 기초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게 가장 어렵다. 


- 생각들 (문단 간의 연결 고리는 별로 없다)

대체 언론법 개정이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을 모르겠다. 언론들이 언론법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가 못 찾았겠지 싶다. 그런데 문득 소풍 나가서 자기를 세지 않아 한 명이 없어진 줄 아는 초등학교 1학년 반장이 생각난다. 

"MBC가 재벌/조중동 방송이 되면 '피디수첩' , '100분 토론'도 볼 수 없다." 에이, 설마 저렇게 주장했을려구. 난 여느 한국인들 처럼 한국어 문법 보다 되례 영어 문법이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 문장을 '미래 가정법'이라고 가정 하겠다. 그런데 저 '미래 가정법' 문장의 앞 뒤가 어떻게 연결 되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벌과 조중동을 매우 싫어하는데도 그러하다.

MBC 노조 파업은, 말하자면 현대 자동차 노조 파업하고 비슷한 거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하청 업체들(독립 프로덕션들)은 파업할 시간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기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멋지고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동시에 하청 업체들과의 계약을 합리적으로 작성하여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도 멋지고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아, 그건 노조 잘못이 아니던가?) 아무튼 간에, 국민, 공공, 공익은,,, 잘 모르겠다.

하청 업체(독립 프로덕션들)에는 물론 노조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케이블 업계에도 노조는 없을 것이다. 전문적인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을 네이버가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이유하고 일맥상통하다. 또한 방송 노동자들이 한 일주일에 육십 시간 정도만 일해도 (하청 업체 포함) 방송의 질이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기대를 잠시 해 본다. 방송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과 방송 노동자들이 육십 시간 일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순진한 기대인지 잘 모르겠다. 

공중파 방송의 막장 분위기가 내가 유튜브와 다음에서 위의 것들을 광고 시청 하지 않고 공짜로 볼 수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왠지 기업의 광고 담당자들은 공중파 보단 차라리 네이버에 광고를 더 많이 줄 것 같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다 US라는 불법 사이트도 계시다. '장물'들은 그만 훔쳐 봐야겠다.

미국놈들 중에 똑똑한 놈들은 참 똑똑하다. 방송사가 제작한 방송들을 방송사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대부분 '기술적으로' 광고를 시청할 수 밖에 없게 해 놓았다. 그리고 그 사이트 들은 북미 지역 이외에선 열리지 않는다. 당연하지, 북미 지역 이외의 시청자가 그 광고를 보았자 소용이 없으니까. 

어차피 방송을 거의 안 보는 편인데, 말이 너무 많았다. 

:

국제적 사고

짤막한 거 2009. 2. 9. 21:40
국제적 사고, 라는 것이 별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생각이 들거나, 어떤 말을 하게 되거나, 어떤 표현을 하게 될 때, 그 것들이 '한국 땅' 에서만 통용되는 것인가, 아닌가, 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휴,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맨날 야근하고 회식하고..." 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저 '사회생활'이라는 단어 앞에는 반드시 '한국'이라는 '고유 명사'가 추가 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적인 단어이긴 하다. 



:

징글리쉬

에세이 2009. 2. 9. 18:39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당시 잠시 고등학교 영어 교사직을 하신 적이 있었고, 그 반대 급부로 집에는 출판사에서 홍보차 보내 준 각종 어린이용 영어 교재가 쌓여 갔다. 당시 그 영어 교재들을 믿기지 않게도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은 듣기를 강요한 어머니에 의해 조작된 기억일 확률도 조금은 있다.) 그래서 믿기지 않게도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장 기대가 되던 교과 과목은 영어였다. 영어, English. 그런데 중1때 영어 선생님이, 그러니까 내 생애 첫 영어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생각난다. 

"영어는 영어로는 잉글리쉬 English 라고 하지. 그런데 말야. 이게 나중엔 잉글리쉬 English가 아니라 징글리쉬가 될 거야. 징글징글하게 너희들을 평생동안 따라다닐 거야." 

징글징글하다 하여, 징글리쉬. 그것은 '콩글리쉬[각주:1]'와 함께 과연 '진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관문에는 영어가 점수로 변해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튼 당시 이 청천벽력과도 같고 저주와도 같은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는 중학교 시절에 영어'공부'를 완전히 손을 놓고 등한시했다. 또한 분명히 내가 어릴 적에 '배웠던' 영어는 꽤 흥미진진한 것이었는데, 중학교 시절에 만난 영어는 [성문 종합 영어]의 옷을 입고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내게 오형식과 관계대명사와 투-부정사와 전치사를 읊어 댔다. 영어는 언제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었고 '학문'의 일종 이었다. 동시에 단어장과 숙어장이 나를 반겼다. 물론 그 와중에 영어 공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등등의 책들은 언제나 서점에 진을 치고 있었고 대학생이 되고 나선 나도 물론 그런 책들의 저자들에게 돌아가며 인세를 보태 주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 자기 얼굴 보다 세 배는 더 큰 귀를 가지고 활짝 웃고 계시던 어느 토익 영어 전문 강사님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새삼 돌아가신 분에 대한 명복을 빈다. 이제서 고백하자면, 그 학원에 한 달 다닌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짝사랑 했던 여자를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느 샌가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은 바뀐 듯 하다. 문법과 단어와 해석이 아닌 실질적인 말하기와 듣기와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국제화 시대, 혹은 세계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어, 영어, English를 강조하는 외침이 징글징글하게 한국 땅에서 언젠가 부터 메아리치고 있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인과관계가 거꾸로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국제화' 시대와 '세계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영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국제화'되고, '세계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와 학원에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ESL 영어 강사들, 대학교의 영어 수업을 위해서 고용되고 있는 영어권 국가 출신 교수들, 그들이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별 인기 없던 한국 땅을 자꾸만 '국제적'이고 '세계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농촌에 베트남과 필리핀 출신 여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과 함께 말이다. 

아무튼 영어 산업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 중에 하나고 당분간 불황을 모르는 산업이 될 듯하고, 미국 경제가 엉망이 되어갈 수록 동아시아 -서서히 영어 열풍이 꺼져가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한국- 에는 점점 더 영어 강사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 현상 안에는 사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들어 있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의 일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중국을 배경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얼마 전에 나왔는데,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목은 Mad About English. 어서 보고 싶다.


  1. 언제 어디선가 읽었던 기사가 기억이 난다. 그 기사는 그 많은 중국 인구가 서서히 영어를 배우게 되어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 보다 더 많아지게 되면, 영어를 제2의 언어로 배우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보다 더 많아지게 되면, 그때는 과연 어떻게 될까, 를 다루고 있는 기사였다. 그때는 콩글리쉬, 칭글리쉬, 재패니쉬가 더 이상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액센트 또한 더 이상 '표준'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예측 기사였다. [본문으로]
:

모방국가

인용과 링크 2009. 2. 9. 16:44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들렀던 대형서점은 영어원서들로 빼곡했지만 정작 말레이시아와 관련한 인문학이나 사회학 서적이 없었다.저는 이 부분에서 무척 공감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정체성이 없이 식민시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우울함이 생기는 군요.

제가 다루는 분야인 법학에서도 이런 근본문제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근대화 (현대화도 아닌)에 많은 문제점을 해결 못하고 있으며 법을 다루는 주체들 조차도 적용기준에 대해서 외국의 기준을 의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선진국이라면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걸맞게 발전한 자신들만의 법적체계와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모방국가에서는 자신들의 가진 법률시스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외국의 유사한 이론을 흉내낼 뿐입니다.

가장 흉내를 잘내는 모방국가는 역시 일본이구요. 하지만 그기까지만 갈 수 있을 뿐 더 이상은 안되는 것이 일본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본을 흉내내기도 바쁜 법률모방국가이죠. 법률모방국가의 특징은 참여자를 모두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문서화된 '논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률가들의 법적 결정을 읽어보면 '이는 신의성실에 반하므로...' 또는 '이는 적정 형량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등의 일반원리를 구체화시켜서 설득해야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냥 일반원리를 최종적 논증으로 제시하고 끝내버리는 일이 흔하게 이루어지죠. 아무도 설득되지 않고 결과를 승복하지 않는 불만시민들만 늘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의 법학은 영어원서나 독일어원서가 서점에 들어찬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에 맞는 이론이나 체계가 없이 원서를 번역해서 짜집기한 정도에 그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전공도 별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원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군요...

자주 들르는 한 문화비평가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다.


인문학이나 사회학이나 뒤에 달린 고고한 '배울 '에 주눅들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야기의 좋고 나쁨은 '도덕'과는 무관하다.)그 이야기들은 자신을 이해하게 해주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없으면 사람은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과 무관한 사회에서 '물 건너온' 이야기를 더 많이 아는 사람은 헷갈리게 된다.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이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

미국 물

에세이 2009. 2. 8. 01:42

"미국 물 좀 먹었구나?"

빈정거리듯 던지는 저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저 소리를 듣게 된다면 왠지 좀 슬퍼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음부터 녀석들이 대화 중에 불필요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지 안 섞어 쓰는지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이 곳에 온지 한 달 도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다호 (맨 처음엔 아이다, 라는 호수 이름인 줄 알았다.) 주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 한 녀석이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왔고, 어느 중국 음식점에 같이 갔었다. 음식 두 개를 주문하고, 같이 나누어 먹게 되었는데, 나는 그저 무심코 중간에 놓여진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공용' 수저를 이용해서 내 그릇에 담았고, 다시 '내' 수저를 사용해서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 녀석이 그 광경을 다소 짜증스럽게 바라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내색은 안 했지만, 그 순간 나보다 일 년 반은 더 미국에 살았던 녀석의 머릿 속에는 아마 저 말이 떠오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친구 녀석은 졸업을 하고 일자리를 구하는데 실패하고 작년 겨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 갔다. 막 판에 전화 통화를 하다가 꼭 시민권 가진 여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이 곳에 정착을 하라는 자신의 아쉬움이 담긴 말을 하고 돌아갔는데, 그 뒤로 그 친구와는 연락이 점차 뜸해지고 있다. 조만간 연락 한 번 해야지 싶기도 하다.)

내가 하는 많은 생각들, 행동들은 미국,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샌프란시스코, 에 살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국에 있을 때 부터 하던 생각들, 행동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 내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이제 일 년 하고도 칠 개월 남짓 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가 예전부터 개인주의에 좀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 곳에 살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있다. 개인주의의 부정적인 면,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에 좀 더 민감해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종에 대한 것들이다.)

좀 웃기는 예를 들자면, 홍대 클럽에 처음 가보았을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삥 둘러 앉아 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이리저리 싸돌아 다녀야 하는 클럽 안에서 느꼈던 일종의 자유로움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실은, 삥 둘러 앉아 퍼 마시는 술 자리에 동석한 여자들 보다는 클럽 안의 여자들이 더 예쁠 확률이 높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물론 '물'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쪽수'다.) 

혹은, 예전부터 나는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등수 매기기 보다는 각자의 독특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독특, 이라는 단어와 특이, 하다는 단어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이 있는 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논평하면서 그 자식, 참 특이해,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누군가에게 그 '특이'라는 단어를 '독특'이라는 단어로 바꾸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대화의 맥을 자르는 그런 말을 하진 않는다. 다소 쓸데 없는 민감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내가 한국 작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김승옥인데, 신경숙이라는 소설가는 그 김승옥이라는 소설가를 매우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문학 수업을 그 김승옥의 소설을 베껴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굉장히, 대단히, 매우매우 절실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작가'가 되어 온전한 하나의 개인으로 인정 받으려는 사람이 남의 소설을 베끼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출간 된 신경숙의 새 소설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 해] 앞 부분을 잠깐 읽어 보았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내 편견과는 달리 느낌이 괜찮았다. 특히 서술자가 이인칭 주어를 사용하면서 '너는-' , '너는-' 이라고 말하는 장치는 꽤 인상적이었다.)

연관지어서 문하생, 이라는 무협지적인 세계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문하생이 성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문하생은 결국 그 대가 밑에서 '뒤치닥거리'를 하는 노동자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하산 하거라, 는 그야말로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문하에 들어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하산을 할 래야 할 수가 없다. 그거 말곤 먹고 살 길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 투쟁'을 해야 하고 시급 혹은 주급 또는 월급을 차질 없이 정확하게 챙겨야 하는데, 대부분 언젠가는 그 '문하'를 벗어나-통해서, 자신이 대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의 경우와 같은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만화 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문하생'이라는 개념 보다는 그 밑에서 일하며 계약에 의거해서 정당한 보수를 받는 '노동자'의 개념을 갖는다고 알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발달한' 영화 산업과 방송 산업에는 지금도 '문하생'들이 몰려 들고 있다. (그리고 나도 한 때 '문하생'이 되기를 자처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 밑에는 빵빵한 문하생들이 많아서 그 문하에 들어가질 못 했다.)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과 서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된 다면 마치 여기저기에서 멋지게 묘사 된 사무라이들의 대결 처럼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한 사람은 죽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면에선 그것이 진짜 '대화'인지도 모르겠다만.) 

단지 어떤 사안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물론 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예민했다고는 하지만 상대방의 세계관을 슬쩍슬쩍 건드리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면 기본적으로 모든 논쟁은, 아니 모든 대화들이 상대방의 세계관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흐를 때가 많은 것 같다.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보내는, '통촉하소서 마마-' 로 시작 되는 상소문이라는 조선 시대 문화-체제의 영향, 혹은 어린 시절에 접했던 전래 동화를 비롯한 조선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과 '사극'들의 영향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위 친구와 친구 사이, 선배와 후배 사이, 선생(혹은 교수)과 학생 사이에 '갈굼'이 존재할 때 매우 불편했다. (덧붙이자면, 말 그 자체로써는 상대방의 세계관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강렬한 이야기를 접하는 간접 체험 혹은 어떤 강렬한 직접 체험이 있으면 모를까.)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규칙을 지키게 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예컨데, 고등학교에서 선생들이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가지고 지랄하거나 때리는 것은 무의미하고 낭비라고 본다. 그냥 학교 전체를 금연 구역으로 설정하고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발견하게 되면 제재를 가하면 된다. 이때 그 제재는 정학이 될 수도 있다. 담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을 발견하게 되면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곳을 고발하면 된다. (이렇게 쓰다 보니 개인주의라기 보다는 어떤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저대로 되었더라면 난 고등학교 때 담배를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쓰다 보니, 미국 물을 먹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점점 통제가 되질 않는다. 대강 통제가 되는 것 같아 보이는 이 시점에서 마무리지을까 한다. 문맥과 상관 없이 삐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담기 위해 남발한 () 괄호가 읽는 이들을 성가시게 할 것 같다. 그랬다면 죄송하다.

:

반찬 생각

에세이 2009. 2. 1. 18:02
'외국'의 한국 음식점에 대한 악명이 이래저래 높은 것 같다. 손님이 먹고 남긴 잔반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 한다든지, 음식 맛이 형편 없다든지, 서비스가 이래저래 불친절하다든지. 물론 한국의 한국 음식점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는 다른 나라 음식점과 이래저래 비교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도 있고, 누가 경험한 것을 들은 것도 있고, 누가 경험한 것을 적어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나도 그 '한국 음식점'들을 경험하면서 속으로 욕하기에 바빴는데, 요즘 들어서 문득 다른 생각이 부쩍 들기 시작한다. 

'한국 음식'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반찬의 가짓 수가 많다는 점이고, '한국 음식점'의 특징은 그 반찬은 모두 으례히 상차림의 일부분으로 따로 가격을 매기지 않고 나온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는 법인데, 그 많은 반찬은 과연 공짜로 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부쩍부쩍 들기 시작한다. 특히 그간 이런저런 다른 나라 음식점들을 다니면서 먹어 본 결과 한국 음식점처럼 반찬을 그냥 제공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한국에서 으례히 친절한 '인심'을 기대하면서 내뱉었던 말들을 되새기게 된다. "아줌마, 반찬 좀 더 주세요."  "여기요, 마늘 좀 더 주세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요. 아참, 무 많이 넣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