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9.05.29 권위주의
  2. 2009.05.29 박민규 연재 소설을 통한 잡설 2
  3. 2009.05.25 돈 리 Don Lee
  4. 2009.05.23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둘
  5. 2009.05.22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Krzysztof Kieślowski 2
  6. 2009.05.21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하나
  7. 2009.05.21 캘리포니아 드리밍 아이디어 판
  8. 2009.05.18 영화가 끝나고 1
  9. 2009.05.06 용서 받지 못한 자 감상 2
  10. 2009.05.01 집단주의 단상
  11. 2009.05.01 외국인 떡실신 시리즈에 대한 생각

권위주의

짤막한 거 2009. 5. 29. 21:35

권위주의는 윗 사람에 의해서 결코 타파되지 않는다. '야자타임'을 시작하고 끝내는 건 윗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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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연재 소설을 통한 잡설

인용과 링크 2009. 5. 29. 17:54

박민규 연재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가 끝났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첫 연재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부터 내내 그의 연재 소설을 링크로 달아 두었다. 백화점 직장 내 풍경에 대한 묘사와 '군만두'라는 여자의 캐릭터,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선이 맘에 들어서 즐겨 읽었다. 주인공의 롤-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요한'이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설정한 1985년 즈음이라는 시절을 놓고 보았을 때 너무 세련된 녀석이어서 조금 비현실적인 면이 들기도 했다. 작가가 묘사하는 '못생긴' 여자의 절절한 고백이 담긴 절실한 편지는 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가 잘 구사했던 신랄하고도 경쾌한 풍자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 때 은희경을 좋아해서 그가 쓴 소설을 모조리 다 읽었는데,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을 때 마주한 것은 내가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했던 면도날 같은 문장들이 다 사라진 밋밋한, '문학'을 써보고자 하는 욕구가 여실히 들어난 문장들이었다. 그런 느낌이 그의 이번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에서 조금 느껴진다. 

애초에 작가는 '신파'를 쓰겠다고 말했고, '사랑'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했고, '헤피 엔딩' 이었는데, 끝에서 '못생긴' 여주인공이 찾은 해답은 '프랑크푸르트'라는 아련한 느낌의 독일 도시로의 이민이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아련한 느낌을 주는 스위스 도시 '라우터브룬넨'에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말이죠. 그래서 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특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이 삶이 좋은 거예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 10장 9화에서.

1989년 즈음에 피부색이 그 나라 국민의 대다수와 다른 한 여자가, 다 자라 성인이 된 이십 대 중반에 독일로 간호사로 이민을 가서 십 년 정도 살게 되면, 과연 '특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살 수 있는가ㅡ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 여 주인공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독일어로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할 수 있는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이건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주욱 내내 여자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를 그렇게 상세하게 묘사를 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저 여자 주인공이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독일이 아닌,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이 아닐까. 그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은 아마도 '야만적인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나쁘지 않을까. 아마도 저 여자 주인공은 아마 그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에 독일, 에 더욱 더 잘 정착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정재은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고 옥지영(지영), 이요원(혜주), 배두나(태희), 등이 나오는 [고양이를 부탁 해]라는 영화가 있다. 인천의 여상을 졸업한 아이들의 삶을 공간적 배경을 잘 살리면서 제대로 묘사한 이 작품은 서울에서 나름대로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고자 애쓰는 혜주를 뒤로 하고 지영과 태희가 김포 공항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순간 화면에는 커다랗고 두툼한 고딕체로 'GOOD BYE' 라는 흰색 자막이 화면을 메운다. '지긋지긋한 한국이여 안녕'을 말하는 것 같은 그 자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그 엔딩 장면을 보고 있을 당시 내가 '외국'에 이미 나와 있어서인지 기분이 묘했고, 동시에 그래서 그 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저 두 여자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라는 생각이 머릴 맴돌았다. 사실 '그 이후'의 삶이 더욱 궁금했다.[각주:1]

문득 '기러기 아빠[각주:2]'들의 실상과 그들의 애환은 제법 보도가 되고 알려진데 비해서, 그 기러기 아빠 자녀들의 현실은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대단히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현실'은 어떨까? 

(하여간 쓰다 보면, 결국은 샛길이다, 샛길인데, 그 샛길들을 모아 보면 또 비스무리한 면이 있다.)


  1. 그래서 삼 부작이 유행이라길래 한 번 삼 부작을 나름대로 구상해 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는 이야기고, 두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그 '외국'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그 주인공들이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부웅 뜬 채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째 써 놓고 보니 재미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2. 연예인중에 기러기 아빠가 상당수인 걸로 알고 있다. 아마 통계를 내보면 '일반인'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을 외국에 보낼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동기는 단순히 한국의 공교육 과정이 싫어서 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하는이 영상 에서 1분 이후부터 1분 가량 펼쳐지는 어떤 풍경이 그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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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리 Don Lee

에세이 2009. 5. 25. 10:30

한국계 미국인 작가 돈 리의 소설 [Wrack and Ruin] 2008, [Country of Origin] 2004, [Yellow] 2001, 을 다 읽었다. 그의 소설을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건너 띄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쓰는 문장 자체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주제들이 하나 같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처럼 삶의 단면이 담긴 장면 하나를 찍어서 보여 주기도 하면서, 미니멀한 표현을 통해서 심층부에 깔린 본질을 잡아 내는 탁월한 솜씨는 그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레이몬드 카버의 흔적이 보인다. 한국 소설가 중에서는 이창동의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와 얼마 전에 죽은 홍성원(1937-2008)의 소설집 [주말여행]과 비견 될 수 있겠다. 감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깊숙히 건드린다.

[Yellow]는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여러가지 삶의 단면들을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 준다. 이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2002년에 번역 출판 되었는데, 그 책과 관련된 언론의 상투적인 표현들,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황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재단될 수 없다. 아무튼 단편 소설의 매력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Country of Origin]는 미스터리 소설로, 한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에서 나온 한 미국 여자가 일본에서 시체로 발견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대단히 흥미진진하고 복잡한 플롯과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조금씩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면서 결국에는 제목에 걸맞는 주제 의식을 보여 준다. 재미있다. 

위의 두 개의 소설에서는 물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옐로우'에서는 '국적' 보다는 '인종'에 대한 것이고, [Country of Origin]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띄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므로 '한인 작가'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최근에 보급본으로 출간 된 [Wrack and Ruin]에는 한국계 미국인 두 형제가 나온다. 한 명은 리버럴 아트 컬리지를 나오고 '뉴욕'에서 크게 성공한 예술가지만 그 경력을 뒤로 하고, 북 캘리포니아의 어느 조그만 가상 마을 - 작가가 설정한 - 에 조용히 살고 있고 뒷 뜰에서는 마리화나를 키우고 있다, 다른 한 명은 하버드를 나오고 투자 은행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인디 영화' 제작자로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으로 그가 자신의 형이 살고 있는 그 마을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데, 풍자와 아이러니로 그득한 이 소설에는 특히 '아트 세계'에 대한 풍자가 일품이다. 이 소설에는 예술가 형이 자신이 크게 성공하는 계기가 되는 설치예술품을 한국의 창호지 문창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묘사를 제외하곤 '한국적인 요소'라곤 전혀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위치가 묘한 까닭은,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다. 흔히 볼 수 있는 1.5세대 나 2세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3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의 아버지가 '미국 정부 외교부'에서 근무 했던 이력 때문에 어린 시절을 '서울'과 '동경'에서 보냈다고 한다. 부자는 삼 대를 가야 비로소 부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 세대는 부를 쌓는데 전념을 해야하고, 이 세대는 그 쌓은 부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면, 삼 세대 쯤 가면 이제 어릴 적 부터 풍요롭고도 여유롭게 자라났기 때문에 생각과 행동거지에서 부자다움, 이 뚝뚝 묻어난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선 아직까진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일 세대 이민자는 어떻게든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며, 이 세대 이민자는 그런 부모를 보고 자라면서 좀 더 안정된 정착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삼 세대 쯤 가면 이제,,, 근데 여기 까지 쓰다 보니 어설픈 삼 세대 '이론'[각주:1]'에 어떤 이의 삶을 끼워 맞추는 격이 되어 버려서 그만 해야겠다.



  1. '이론'이 나온 김에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론'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이론'은 '스무 살 법칙'이다. 이 '스무 살 법칙'이 작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스무 살에 결혼하고, 예순 살에 죽는다. 간단하다. 스무 살 아리따운 여성이 마흔 살의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자 마흔 살, 남자 예순 살까지 같이 산다. 그리고 남자는 죽고, 돈 많은 마흔 살 여자는 스무 살 잘생긴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자 예순 살, 남자 마흔 살까지 같이 산다. 그리고 여자는 죽고, 돈이 많은 마흔 살 남자는,,, 적어도 이 세계 안에서는 돈과 미모가 공평하게 분배된다는 특징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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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둘

김이박 이야기 2009. 5. 23. 00:11
김, 은 서울 사년제에 들어간 뒤 사년이 지난 뒤 처음으로 한 여자를 오랫 동안 만났다. 이 년 정도 꾸역꾸역 대학을 다닌 뒤 이 년 조금 넘게 군대를 마친 직후였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응암동 근처에 반지하방 하나를 얻었고, 홍대 앞을 싸돌아다니며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쭉 같이 어울렸던 헤비-메탈 밴드 녀석들과 같이 날마다 술을 먹었다. 도피하는 심정이었다. 어디로인지, 어디에서인지, 는 몰랐다. 수능 시험을 치루고 난 뒤엔 어디에서인지, 어디로인지, 가 그럭저럭 분명했었다. 

김, 은 술자리를 그럭저럭 좋아했지만,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쏘주가 문제였다. 한 잔 두 잔 세 잔 반 입에 털어 넣고 나면 그 이상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밴드 녀석들과 뭉칠 때는 한데 어우러져 쏘주를 입에 털어 넣고 매운 안주를 먹어야 했다. 항상 속은 쓰렸고, 결국 변기를 부여 잡았고, 술값과 안주값은 어느 샌가. 

어느 날 밤. 김, 은 홀로 비틀거리며 홍대 앞 거리를 걷고 있었다. 걷다 보니 어느 샌가 전에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골목이 나왔다. 토사물, 돌모퉁이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몹시 추워 보이는 여자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몸을 앞 뒤로 천천히 흔들거리며 그 여자들을 달래고 있는 남자들, 형형색색의 커다란 글씨와 각종 표식들, 바람이 불 때 마다 휘날리는 종이 조각들, 이 없었다. 주황색 빛을 내는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고, 그 밑에 조그마한 간판 하나가 있었다. 싸이키델릭.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지막히 다가와서 말을 걸고는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씩 다가오라고 속삭였다. 빰빠라 빰빰, 빰빠라 빰빰. 북소리 장단. 빰빠라 빰빰, 빰빠라 빰빰. 한 발 또 한 발. 빰빠라 빰빰, 빰빠라 빰빰. 김, 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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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Krzysztof Kieślowski

인용과 링크 2009. 5. 22. 21:03
영화 감독의 자서전을 두 개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스페인 사람 루이스 부뉴엘의 자서전 [나의 마지막 한숨]의 몇 부분을 얼마 전 발췌 번역하여 인용했다. 그리고 문득 폴란드 사람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자서전 [Kieslowski On Kieslowski]의 서문 Epigraph 부분이 기억나 한 번 그 부분만 번역해서 올려 볼까 했는데, 책 전체를 번역할 계획을 하고 차근차근 올리고 있는 분이 계시더라. 조금 놀랬다.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각주:1]는 폴란드 사람으로 1941년에 태어나 1968년에 우츠 영화학교[각주:2]를 졸업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으로 경력을 쌓았고,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 사무 노동자들의 생활, 자신이 자란 폴란드 우츠시를 기록하는 등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극 영화로 옮겨간 사람이다. (영화 제작 시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폴란드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그 이후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신에게 받았다는 십계명의 각 계명들을 주제로 하여 1988년에 TV시리즈 [십계][각주:3]를 만들었고, 그 중 [살인하지 말라], 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각주:4]으로, [간음하지 말라], 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각주:5]으로 확장 되어 극장 개봉도 이루어졌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서방 세계'에서 유명해졌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폴란드에서는 그가 점점 추상화 된 주제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각주:6]와 폴란드를 오가며 1991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각주:7]을 만들고, 결국 프랑스 쪽의 투자를 받아 프랑스 국기의 개념, 자유-평등-박애, 를 주제로 삼색 시리즈, 1993년 [블루][각주:8], 1994년 [화이트][각주:9], 1994년 [레드][각주:10]를 만들고 나더니, 이번엔 단테의 [신곡]을 각색하여 [천국], [연옥], [지옥]을 만들려다 1996년에 만 54세로 비교적 일찍 죽었다. 그가 다루려고 했던 주제들을 보자면 자서전을 통해서 드러나는 사려깊고 소박하면서도 다소 우울하고,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그의 태도와는 별개로 대단히 야심만만했던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참으로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이름이다. 그가 유명해지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이 많았다면, 먼저 이름부터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알렌 스튜어트 코닉스버그가 자신의 이름을 우디 앨런 Woody Allen 으로 바꾸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덜 유명했을 것이다.

지금 각주를 남발하여 숫자들과 [본문으로]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아무튼, [Kieslowski On Kieslowski]는 생생하고 재미있고 솔직하여 추천할 만한 읽을거리다. 좀 설레발을 쳐 놓았는데, 그에게 별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도 '서문 Epigraph' 부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에세이로, 읽어 볼 만 하다.  키에슬롭스키 자서전 읽기



  1. 이 사람이 만들었던 영화 중 DVD로 출시 된 작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섭렵하겠다는 강박이 식어서 아직 다 보진 못했다.
    [본문으로]
  2. 송일곤, 문승욱 감독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본문으로]
  3. 몇 개는 재미있고, 대단하고, 의미심장한데, 역시 전체를 다 보는 것은 섭렵에 대한 강박이 좀 있어야 한다.
    [본문으로]
  4. 자세히 보다보면 카메라 필터는 이렇게 사용하는 구나, 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영화로, 영상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주제 또한 예사롭지 않다.
    [본문으로]
  5. 훔쳐 본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 가지고 참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본문으로]
  6. 이 사람 뿐 만이 아니라 몇 가지 사례를 더 보면, 폴란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짝사랑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7. 배우, 구도, 카메라의 움직임, 조명, 색감, 음악, 의상, 소품.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참 아름다우나 스토리는 정말 남 부럽지 않게 지루하다.
    [본문으로]
  8. 한 번 볼 때 보다 두 번째 볼 때 더욱 깊게 다가오는 영화고, 되풀이하여 보면 볼 수록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영화다.
    [본문으로]
  9. 줄리 델피가 나오는 블랙-코메디 영화다. 꽤 웃긴다.
    [본문으로]
  10. 고백하자면, 지금껏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장시간 눈물을 흘렸던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사람의 영화들을 전부 모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좀 낚인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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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하나

김이박 이야기 2009. 5. 21. 21:48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 안. 박, 의 자리 두 줄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자. 그의 옆에는 지속적으로 칭얼대고 간헐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가 하나. 그가 아이를 달래는 품새가 좀 사무적이다.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고 난 뒤 박, 은 가족 들과 함께 출구로 빠져 나가는 도중에 그의 서류를 흘낏 볼 수 있었다. 홀트 아동 복지회. 박은 1991년에 개봉 되었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 제목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 해 박은 해외 입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벌써 십 수년 전의 일이었고, 그 동안 해외 입양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입국 심사대는 미국인, 과 외국인, 으로 나뉘어 있었다. 박과 박의 가족은 외국인 창구 앞에 줄을 섰다. 박은 여행사에서 덮어 씌운 자기네 회사 로고가 박힌 파란색 여권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을 임국 심사관 앞에 내밀었다. 입국 심사관은 말 없이 여권을 휘리릭 넘겨 비자가 박힌 부분을 찾아 냈다. 그 곳엔 F24. 영주권자의 만 21세 이상의 미혼자녀 이민 비자. 공항 문 밖을 나서면서 박, 은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와, 공기 참 시원하다. 


이, 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 보라빛 주름 치마를 꺼내 입고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길을 나섰다. 이, 가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도 이제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반짝거렸고, 바람은 차가웠다. 비가 오는 기간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큰 변화가 없는 날씨 아래서 이, 는 그간 거처를 세 번, 일터를 두 번, 옮겼다. 이, 의 일주일은 간략했다. 월요일 부터 금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나와 영어 학원으로 향했다. 적당한 수준의 영어 수업을 듣고 난 뒤 이, 는 오후와 저녁 내내 한국 음식점에서 일을 했다. 시급은 캘리포니아에서 노동법으로 규정해 놓은 최저 임금 보다 1불이 적었고 사장이 반을 가져가고 남은 팁의 반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었고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한국인들은 유난히 팁에 인색했다. 이, 는 일요일에는 오전 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다. 토요일은 비워 놓고.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이, 는 다운 타운에서 케이블 카를 탔다. 케이블 카 안은 관광객으로 들끓고 있었다. 


김, 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 싸이키델릭 Psychedelic 에 앉아 주인 아저씨와 60년대 미국 음악에 대해서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바 Bar 안은 자욱했다. 담배 연기와 오래 된 각종 포스터와 음악으로. 주인 아저씨 뒤에는 LP판이 수두룩하게 꽃혀 있었다. 오십이 조금 넘은 주인 아저씨는 사십 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 주인 아저씨는 젊은 시절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드로 일을 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아직 해외 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았던 시절. 덕택에 외국에 자주 들락거릴 수 있었다. LP를 하나 둘 씩 사모으기 시작 했고, 그 LP판이 조그만 바 Bar의 한 쪽 벽면을 채울 수 있는 숫자가 되었을 때 주인 아저씨는 일을 그만 두고 바 Bar 를 차렸다. 일을 그만 둔 날 주인 아저씨는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다. 양조위는 경찰을 그만 두고 왕정문이 일하던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왕정문은 패스트푸드 점을 그만두고 스튜어디스가 되었고, 그는 스튜어드를 그만두고 주인 아저씨가 되었다. 

물론 요즘은 LP판을 건드리지 않은 지 오래다. 주인 아저씨 앞에는 컴퓨터 한 대가 있고 윈-앰프가 랜덤 플레이 모드로 돌아가고 있는 중. 김, 이 컵에 담긴 벨기에산 맥주 호가든을 꿀꺽거리며 마실 즈음 쿵쿵 거리면서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 1967년에 발표 된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이 꾸역꾸역. 김, 이 주인 아저씨에게 말했다. 내일 가요. 어딜?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미국이요. 도시 이름부터 먼저 말하는 걸 보니 미국에 갈 준비는 다 되었구만. 가서 돈 떨어질 때까지 머무르다 오려구요. 어디서? 친구가 하나 있어요. 안 본지 진짜 오래 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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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드리밍 아이디어 판

카테고리 없음 2009. 5. 21. 20:18

사 년제에 다닌 뒤 사 년이 지난 뒤,에 만난 여자. 영화를 전공하는, 감독을 지망했지만 재능은 없어 보였고, 차라리 단역 배우가 그나마 나아 보였던. 담배를 많이 피웠고, 분당에서 자라 났지만 분당을 혐오했던, 그게 계기가 되어서 만났던, 그래서 상수동 앞에서 같이 살았던, 그러다가 결국은 파리로 유학을 가버린, 김은 그런 그녀가 마냥 부러웠던, 하지만 그만큼여유 돈은 없었던, 그래서 싸이키델릭에서 일을 했고, 하지만 돈은 충분치 않아서 등록금을 빼돌렸고, 몰래 지금 미국에 가려는, 중산층 집안의 자제인.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서 션, 은 친구 김, 을 기다렸다. 따로 주차를 하지 않고 공항 주위를 두 바퀴 돌았다. 세 바퀴를 돌 때 쯤 션은 여행 가방을 들고 서 있는 김을 발견해서 차에 태웠다. 이게, 몇 년 만이냐. 그러게 정말 오랜 만이다. 션은 김을 차에 태워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팔로 알토 Palo Alto 로 데리고 갔다. 강남역에 있었던 이태리 파스타 전문점 팔로 알토 Palo Alto 가 이 곳에서 따온 것 임을 김, 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건물들이 아기자기 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김에게 션이 미국에 오자 마자 부자 동네로 데려오는 것이 아닌데, 라고 말했다. 그들은 어느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했다. 김은 처음 맛 본 베이글이 생각보다 맛이 없어 다 먹지 못하고 카페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 문득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홈리스 Homeless 들이 눈에 들어 왔다. 김, 은 이어 스탠포드 대학교를 구경했다. 그 곳의 스페인식 건축물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내에는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잘 알 수 없는 로댕의 조각들이 있었다. 김은 조각품들의 커다란 손과 발과 몸의 굴곡들을 보면서 어떤 기운을 느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하기 전에 그들은 잠깐 월-마트에 들렸다. 아직 미국식 대형 마트점이 한국에 대중화 되기 이전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이 공간은 김에게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구석 구석을 구경하니 한 켠에 진열되어 있는 사냥총도 보이고, 용도 조차 짐작하기 힘든 갖가지 공구 셋트들,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스포츠 용품 들이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금문교였다. 그 위용에 김의 입이 쩍 벌어졌다.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문교. 저 다리를 공사하다가 죽은 인부 숫자가 더 많을까, 아니면 공사 후에 저 다리 위에서 뛰어 내려 자살한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을까. 션은 생각에 잠긴 김을 다시 차에 태워 금문교 근처를 드라이브하다 일본식 정원에 멈춰 섰다. 관광을 온 놈 치곤 사진을 너무 안 찍는다며 사진 좀 찍으라는 션의 배려였지만, 김은 그 순간 미국에서 발견한 일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션은 다시 김을 데리고 금문교를 건너, 사진 찍기 좋은 소살리토 Sosalito, 티뷰론 Tibulon 으로 향했다. 현대 자동차에서 출시했던 스포츠카 티뷰론이 이 곳에서 따온 것 임을 김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언덕 들 위에는 깨끗하고 하얀 멋진 집들이, 영화 속에서나 보던 집들이 있었다.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데. 응? 무슨 그림? 그러게, 대체 무슨 그림일까나.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하는 길에 김은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꼭 보아야 할 곳, 일명 지그재그길, 롬바르드 길 Lombard Street를 보고 싶다고 션에게 말했다. 김의 머릿 속에는 여행 책자에서 본 갖가지 꼭 가보아야 할 곳들에 대한 정보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션은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은 여행 책자에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그 곳을 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션이 김에게 너는 서울에 살면서 남산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본 일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는 와중, 그들은 마침내 롬바르드 길에 도착했다. 겨우겨우 찾아낸 그 지그재그길을 션의 차를 타고 내려 오며 김은 숙제 하나를 끝마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아직 해야할 과제는 도시 마다 한 보따리가 남아 있었다. 


션, 은 바빴다. 미국에 이민을 온 뒤로 항상 바빴다. 션은 바쁜 시간을 쪼개 공항으로 김을 배웅 나갔다. 처음엔 너무 오랜 만에 만난 김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션은 관광을 온 김을 데리고 이 곳 저 곳을 다녔다. 관광을 온 김에게 의미 있는 것은 결국 멋진 사진을 찍어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상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며칠 머무는 것으로 어떻게 이 곳을 알 수 있을까. 사실 김을 데려간 카페는 션이 미국에 처음 이민 와서 일했던 카페였다. 하지만 다소 들떠있는 김에게 그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박, 은 대학을 다니던 도중 휴학을 하고 IT 벤처 사업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산업으로 IT 산업과 신용 카드 산업을 꼽고 있었다. 서류만 잘 갖춰 놓는다면 당시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박은 한 때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렸던 삼성역에서 강남역 사이의 테헤란로, 테헤란 벨리에 그럴 듯한 사무실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 년 반이 지난 뒤 박은 빚과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그 사무실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박은 자신이 왜 실패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IT 붐이 거품 이어서였는지, 모든 것을 걸고 창업을 한 자신과 달리 다른 녀석들은 단지 하나의 경험으로 여겨서 였는지, 그냥 자신의 능력 부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좌절해 있는 박에게 박의 아버지가 이미 오래 전에 신청해 놓은 미국 이민 심사가 통과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박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은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영어 이름을 션, 이라고 지었다. 

션이 일했던 카페는 알게 모르게 유명한 카페였다. 그 카페는 실리콘 밸리에서 IT 벤처 기업을 차렸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션은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실패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IT 닷컴 붐을 타고 벤처 기업을 차려서 성공한 사람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길을 가다 발에 채일 정도로 그득했다. 미국인들은 낯선 사람에게도 뭔가 자신과 공통점이 발견 된다 싶으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 놓았다. 션이 만약 한국에서 이런 공간을 발견했으면 한국에 머물러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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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에세이 2009. 5. 18. 06:22

...Movies have a hypnotic power, too. Just watch people leaving a movie theatre; they're usually silent, their heads droop, they have that absentminded look on their faces, unlike audiences at plays, bullfights, and sports events, where they show much more energy and animation. This kind of cinematographic hypnosis is no doubt due to the darkness of the theatre and to the rapidly changing scenes, lights and camera movements, which weaken the spectator's critical intelligence and exercise over him a kind of fascination. Sometimes, watching a movie is a bit like being raped.

[My Last Sigh], Autobiography by Luis Bunuel.

...또한 영화에는 최면적인 힘이 들어 있다. 극장을 떠나는 사람들을 한 번 살펴 보자. 대게 말 한 마디 없고, 고개는 떨구고 있으며, 저 마다 넋이 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다. 연극, 투우, 운동 경기와 같이 생동하고 활기찬 것들을 보고 나온 관객들과는 다르다. 이 같은 영화의 최면적인 힘은 물론 의심할 바 없이 어둡고 컴컴한 영화관과 재 빠르게 바뀌는 장면, 조명, 카메라의 움직임 등에서 나오는 것으로, 관객들의 지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영화에) 매혹 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때때로, 영화를 보는 것은 이를테면, 강간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마지막 한숨], 스페인 영화 감독 루이스 부뉴엘 자서전 中 중간 부분[각주:1].



극장에서 본 생애 첫 영화가 무엇이었는진 알 수 없다. 동네 친구의 아버지가 동네 친구와 나를 재재개봉관에 데리고 가서 본 제목도 기억 안나는 미국산 코메디 영화, 그리고 동시 상영된 [예스마담]일 수도 있고, 혹은 어머니 손을 붙잡고 지금은 없어진 신사동 씨네하우스에서 보게 된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일 수도 있다. 단지 난 흑백 영화 [모던 타임즈]를 보고 나온 뒤의 느낌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대낮에 극장에 들어가서 어두 컴컴한 곳에서 영화를 보고 다시 밝은 햇빛 아래로 빠져 나왔을 때, 다시 마주한 현실 세계는 물컹물컹하고 명료하지 않았다. 

[왕의 남자]를 보고 나왔을 때였다. 그 영화는 놀라운 걸작이라고까지 부를 순 없지만, 잘 만들어진 수작이었다.[각주:2]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예닐곱 층을 내려 오는 동안 둘 셋 무리지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그 어떤 싸-한 공기가 맴돌았다.[각주:3] 난 그 순간 이 영화가 꽤나 인기를 끌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천 만 명이 넘을 줄이야.

또 다른 천 만 명을 넘게 동원한 영화 중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은주의 얼굴을 열심히 쳐다 보았고, 장동건이 연기한 진태가 막판에 내뿜는 광기는 전혀 공감이 되질 않았다.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1관 거의 맨 뒷줄에서 보았는데, 워낙 영화관이 커서 영화가 끝나고 줄을 지어 영화관 밖으로 빠져 나가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꾸역꾸역 영사막 바로 앞까지 와 이제 막 출구로 나가려는 찰나, 맨 앞 줄에 앉아 있던 언뜻 보기에 한 칠십 대 정도로 보이는 어느 노 부부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삭히고 있었고, 부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남편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XX씨가 살아서 돌아오는 거 아니 잖아요..." 너무나도 스펙타클한 전쟁 장면이 실은 불과 몇 세대 전 한국 땅에서 일어난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는데, 그 상황과 그 부인의 '대사'가 너무나도 딱 떨어지는 것이라 지금도 사실 그게 내 정확한 기억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하다. 

또 하나 기억하는 '대사'는 [올드보이]를 두 번째 봤을 때다. 첫 번째 처럼 영사막 가까이 다가가서 '강간'당하기를 기대하면서 보았는데, 두 번째 관람은 역시나 영사막에서 멀찍하니 떨어져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려는 찰나, 내 앞 대 여섯 번째 줄 앞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자리를 박차며 일어 서더니, "...내가 만나면 아주 그냥 죽여 버릴꺼야!" 라고 나지막히 소리쳤다. 오대수가 감금방에서 풀려난 뒤의 나이 쯤으로 보이는 그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아마, 저 아저씨가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일거야. 근친상간 설정이 기분이 나쁜 거겠지. 근데 어쩌면 저 아저씨에게는 미도 나이 쯤 되는 딸이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아마도 그 딸을 보면서 적어도 한 번 쯤은 딸과 자고 싶다, 라는 괴물 같은 생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었을지도 몰라. 물론 그 즉시 그 생각을 황급하게 치워 버렸겠지. 그래서 저렇게 과도한 반응을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난 그 즉시 이 생각을 황급하게 치워 버렸다.

종로 3가에는 서울 아트 시네마라는 극장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장면'을 말하기 이전, 잠시 이 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인사동 뒷 길 비릿한 돼지 고기 냄새를 맡으면서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낙원상가 입구가 나온다. 극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안에는 평소엔 마주할 일이 절대 없어 보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 있다. 한 부류는 나 자유롭고파, 옷 차림을 차려 입었거나 이마에 나 진지한 녀석이야, 라고 써 놓은 것이 보이는 둥 하여간 멀티 플렉스를 다니면 별로 마주치기 힘든 사람들이다. 주로 이 십대에서 삼십 대 중반 정도에 이르는 사람들로 그 들이 향하는 곳은 서울 아트 시네마, 라는 '예술 영화' 만을 전문적으로 틀어 주는 곳이다. 다른 부류는 남자는 주로 색이 들어간 정장에 보타이, 여자는 '토탈패숀'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옷 들로 한 껏 멋을 부린 차림새다. 주로 오십 대 이상 신사숙녀 분들로 그 들이 향하는 곳은 극장과 같은 층에 있는 '성인 나이트' 다. 이렇게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는 서로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각자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잠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하는 참 재미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또한 서울 아트 시네마의 독특한 점은 홀로 와서 영화를 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마치 청담동에선 연예인을 보아도 호들갑 떨지 않고 '시크'하게 구는 것이 불문율이듯이, (그래야 연예인들이 청담동에 계속 오니깐.) 영화 감독과 배우를 보아도 역시 호들갑 떨지 않는 것이 상례라는 것. 

그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장-피에르 멜빌[각주:4]이라는 프랑스 사람이 만든 [그림자 군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장-피에르 멜빌 스스로도 경험했던,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스에 맞서 싸웠던 '레지스탕스'에 대한 이야기인데, '레지스탕스'라는 프랑스 단어에서 모락모락 풍겨오는 낭만적인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폼나게 나치 일당을 때려 부수는 [인디아나 존스]류의 활극은 그 영화에 없다. 단지 조직 내의 배신자를 찾아 내어 처단하는 일에 대한 건조하고 정밀한 묘사로 영화가 꽉 채워져 있다. 아주 묵직한 영화이고 끝까지 보고 나면 진이 빠지게 되는 좋은 영화다. 그렇게 기진맥진해서 영화관을 빠져 나와 극장 내 화장실로 향했다. 단 한 남자가 입구 쪽에서 가장 가까운 맨 오른쪽 구석 소변기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왼쪽 옆의 옆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섰고, (입구에서 가까우니까) 아직 까지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충격이 고스란히 나에게 남아 있었다. 그 충격은 남자가 화장실 안 소변기 앞에서 으레 하게 되는 일을 하는 와중에도 가시질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안 좋은 버릇 중의 하나가 소변기 앞에서도 평소와 다름 없이 괜히 두리번 거릴 때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문득 그 남자를 흘낏 쳐다 보게 되었다. 그 남자는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대략 육십 도 가량 천장으로 들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보통 소변기 앞에서는 정면을 쳐다 보거나 자신의 몸에 달린 것을 쳐다 보게 마련이지 허공을 쳐다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도 소변기 앞에서 권장 될 만한 시선 처리는 아니다. 하지만 허공을 쳐다 보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얼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남자가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 순간 만큼은 영화를 보고 충격을 먹은 한 명의 관객으로 보였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상황들은, 모두 내 해석이 덧붙여진 것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기억을 재구성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밝혀 둔다. 



...Our imagination, and our dreams, are forever invading our memories; and since we are all apt to believe in the reality of our fantasies, we end up transforming our lies into truths. Of course, fantasy and reality are equally personal, and equally felt, so their confusion is a matter of only relative importance.
     In this semiautobiography, where I often wander from the subject like the wayfarer in a picaresque novel seduced by the charm of the unexpected intrusion, the unforeseen story, certain false memories have undoubtedly remained, despite my vigilance. But, as I said before, it doesn't much matter. I am the sum of my errors and doubts as well as my certainties. Since I'm not a historian, I don't have any notes or encyclopedias, yet the portrait I've drawn is wholly mine- with my affirmations, my hesitations, my repetitions and lapses, my truths and my lies. Such is my memory... 
 
[My Last Sigh], Autobiography by Luis Bunuel.

우리의 상상과 꿈은 언제나 우리의 기억을 침범한다. 우리는 줄곧 상상 속의 현실을 쉽게 믿어 버리고, 종국에는 거짓말이 참말로 둔갑한다. 물론, 상상과 현실은 모두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혼동은 (개개인에게) 상대적으로 각기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비록 내가 경계는 하고 있지만,  '피카레스코'[각주:5] 소설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주인공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재미난 사건과 행동들로 차 있듯이, 이 반(半) 자서전에는 내 이야기들이 종잡을 수 없이 널려 있으며, 확실하게 잘못된 기억들 또한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확실함 만큼이나 내 오류와 확실치 않은 것 또한 나인 것이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나에 대한) 어떤 기록물이나 백과사전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기 묘사해 놓은 것들은, 확신과 우유부단함, 반복과 일탈, 진실과 거짓말과 함께 모두 나, 인 것이다. 말하자면, 내 기억들이다.

[나의 마지막 한숨], 루이스 부뉴엘 자서전  시작 부분.[각주:6]



  1. 내 식대로 번역해 보았다. 아직 이 책은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아마존으로 주문했던 이 책을 이제서야 뒤늦게 들춰보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루이스 부뉴엘이 얼마나 유쾌한 사람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물론 원문은 스페인어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영어판이다.) 루이스 부뉴엘에 관련된 서적은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이라는 제목으로 문화학교 서울에서 출판 한 바 있다. (읽어 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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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은 정진영이 연기한 연산군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연산군이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장면, 창호지 창살을 손가락으로 드르륵 튕기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과 반군이 쳐들어 오기 직전에 광대들의 줄타기를 보면서 일순간 환하게 웃던 장면은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결국 하나의 영화는 한 두 개의 장면으로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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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물론 사람들은 대게 엘리베이터안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허나, 반례로 [여 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보고 나왔을 때가 있다. 이미 영화가 끝나갈 때 부터 객석에서는 영화에 대한 야유와 악담이 터져 나왔는데, 그 야유와 악담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치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본 영화 중에 최악이야."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더, [여 교수의 은밀한 매력],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은 모두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에서 따온 것이다. 부르주아를 풍자하는 부뉴엘의 똘끼가 번뜩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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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 사람은 [백경(모비딕)]을 지은 미국 작가 허먼 멜빌 Melville을 너무 나도 좋아한 나머지 성을 멜빌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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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 처럼) 링크 여기 의 [2]. 장르별 소설 - 2. 건달소설 항목, 혹은 저기를 참고할 것. 설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소설 장르라고 느꼈다. 또한, '피카레스코'라는 발음에서 느껴지는 '우아함'과 뜻 자체는 거리가 참 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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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좋아하는 글들을 번역하는지라 재미는 있는데, 역시 번역은 어렵고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다. 번역이 맘에 안 드신다면 원문을 읽으시길 바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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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지 못한 자 감상

에세이 2009. 5. 6. 21:22

윤종빈 감독의 대한민국 군대에 관한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각주:1]를 누구, 와 같이 보았다. 누구, 와 영화를 같이 꽤 보았는데, 그 중 한국 영화는 한 편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보니 나에겐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DVD, 윤종빈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 VCD 가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좀 셌고, [올드보이]는 나를 바짝 끌어 당겨 스크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만든 영화 긴 했으나, 최근에 다시 보니 별 다른 감흥도 일어 나지 않는 데다가, 그 안에는 그다지 한국적인 것도 없고 또한 한국에 가 본 일이 없는 누구, 에게 한국의 풍경, 을 보여 주기에도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용서 받지 못한 자]를 골랐다. VCD는 사 놓았으되 이 번이 두 번째 감상 이었다. 

[용서 받지 못한 자]가 한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나는 그 영화를 어떤 이, 와 같이 보았다. 영화의 후반 부에 감독이 직접 연기한 어리버리한 신병이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지만 차가운 대답을 들은 후에 절망한 나머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담배를 피우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야, 이제 저 새끼 좆 되겠다." 라고 내 뱉었고, 옆에서 어떤 이, 가 "왜?" 라고 물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영화관 앞 돌벤치에 앉아서 담배만 피워 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버스 정류장으로 항했고, 손을 들어 어떤 이, 에게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떤 이, 에게서 문자가 왔다. "수고 했어, 오빠." 참 고마웠던 그 문자 메세지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며칠 뒤에 같은 곳에서 감독과의 대화, 가 있었다. XX대 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옆에는 같은 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스탭진들이 함께 했다. 조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등. 질문이 오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 알 수 없는 '데자뷰' 현상이 느껴졌다. 나란히 앉아 있는 같은 학교 선후배인 그 들의 모습에서 문득 내무반에 정렬해 있는 병장, 상병, 일병, 이병의 모습이 느껴졌다. 

누구, 와 [용서 받지 못한 자]를 다시 보는데 몸이 무척이나 가려웠다. 오랜만에 모든 상황과 대사들이 내 몸에 바싹바싹 와서 닿았기 때문이었다. 누구, 는 나에게 역시 한국 사회, 는 대단히 폭력적인 것 같다고 말을 했는데, 별로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다시 보니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조금 작위적이고 관습적이었다.[각주:2] 어리버리했던 신병이 자살해 버리는 것, 그리고 그 어리버리했던 신병에게 잘 해주려고 했던 주인공 또한 자살해 버리는 것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 상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공감이 되질 않았다. 한편, 그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진행자가 두 주인공의 관계, 에서 동성애, 의 냄새가 난다고 질문을 해서 당시에는 좀 생뚱 맞았는데, 과도하게 죄의식을 느끼다가 결국 자살 해 버리는 주인공 녀석이 친구(하정우)를 통해서 계속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모습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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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카투사는 아니 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울 용산 미8군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막사의 1층과 2층은 미군들이 사용했고, 3층은 한국군이 사용했다. 막사 1층에는 미군들의 옷을 세탁하고 수선하고 구두를 닦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미군에 고용되어 있었다. 'Out-sourcing 외부용역'이었다. 식당에서 우리들, 카투사들, 미군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은 모두 미군에 고용된 한국 사람들이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소대원들이 우르르 밖에 몰려 나가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제설 작업은 제설차가 대신 해 주었다. 미군은 돈이 충분했다. 

  1. 1960년에 존 휴스턴이 만들었던 영화 제목, 그리고 1992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고 주연한 영화 제목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서 따온 것이다. 최근에 주목 받은 한국 영화 [똥파리]의 영문 제목은 [Breathless]로 이 제목은 1960년에 장-뤽 고다르가 만든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영문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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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독은 이에 대해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 기억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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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 단상

짤막한 거 2009. 5. 1. 15:52

(한국의) 집단주의란 좀 무서운 면이 있다. 각자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언어로 말한다. 개신교 교회에 다니게 되면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할 것은 예수와 개신교 교리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 통용되는 '형제님'과 '자매님'으로 시작 되는 그 특유의 화법이다. 이건 인터넷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글루에 들어가면 이글루인들 특유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디씨인사이드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게 분화된 언어들이 소통을 방해한다. 어차피 집단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소통에 만족하는 건 아닌가, 혹은 개인 대 개인으로 소통하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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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떡실신 시리즈에 대한 생각

에세이 2009. 5. 1. 10:27

외국인 떡실신 시리즈, 가 인터넷 상에서 유행한다. (굳이 링크하지는 않겠다. 구글에서 '외국인 떡실신'을 쳐보면 한 바가지가 나온다) 저 시리즈가 사실이 아니라 픽션인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왜 자꾸만 저런 것들이 유행하는 걸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보통 경제적인 발전과 문화적인 발전은 정비례를 이루어서 달려가게 마련이고, 경제적인 발전에 따라서 문화적인 것들도 발전하여 외국에 알려지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기형적으로 경제적인 발전 정도가 그 문화적인 발전 정도에 비해서 훨씬 앞서있다. 불과 몇 십년 만에 너무나도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하느라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경제적인 발전으로 인해서 예전 보다 더 많은 사람 들이 외국에 나올 기회가 생겼고, 외국에서 체류하는 일도 보다 더 많아 지게 되었다. 거기에 허울 좋은 IT 강국, 이라는 허명에 걸맞게 인터넷 망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고 인터넷 생활이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외국의 모습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영어 열풍과 대학의 '국제화 바람' 으로 인해서 소위, 제1세계 외국인들이 여행하고 체류하는 숫자가 날로 늘어나면서 '외국'을 점점 더 가까이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말해 주는 문화적인 어떤 것이 하도 적다 보니, 외국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많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외국인들이 관심이 없는 것은 상상 외로 훨씬 심하다. 마치 이건 내가 수리남, 이나 과테말라, 혹은 코트디부아르, 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과 일맥상통 하다. 쉽게 말해서, 어디서 왔어? 라는 물음에 한국, 싸우스 코리아, 라고 말한 다음엔 딱히 한국에 대한 대화를 이어 나가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라는 소리다. 차라리 북한, 노쓰 코리아에 대한 이야기. 김정일과 미사일과 핵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 모를까?

반면에, 어떤 한국인이 외국에 여행을 하거나 체류를 하게 되면, 그 경험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 어떤 한국인이 경험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어떤 실망감이 존재한다. 예컨데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던 사람이 내친 김에 러시아를 여행한다고 하자, 그 사람이 한국 작가 어느 누구를 좋아하건 간에, 러시아인들이 그 사람이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알리가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옆에 붙어 있는 나라들, 일본, 중국이 하나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잘 나가는 나라들이라는 점이 한국인을 더욱 기분나쁘게 만든다. (나도 물론 기분이 나쁠 때가 많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인종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 입장에서 볼 때 구별하기 쉽지 않고, 그 세 나라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이라는 문화적인 동질성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자꾸 비교되기 십상이다.

이 모든 것이 중첩이 된 불일치가 발생하고, 그런 불일치를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서 저런 '외국인 떡실신 시리즈' 와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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