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박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9.07.20 김이박 여행기, 파리
  2. 2009.07.09 김이박 여행기, 신두리
  3. 2009.07.04 김이박 여행기, 상동리
  4. 2009.06.30 김이박 유학기
  5. 2009.06.03 김이박 종교 체험기
  6. 2009.05.23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둘
  7. 2009.05.21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하나
  8. 2009.02.10 김이박 영화 감상기
  9. 2008.09.04 김이박 성장기
  10. 2008.07.26 김이박 일상기
  11. 2008.07.26 김,이,박

김이박 여행기, 파리

김이박 이야기 2009. 7. 20. 00:44

김이박은 문득 파리 생각을 했다.

'아아. 파리. 아니지. 빠리라고 해야지. 파리라고 하면 날아다니는 파리와 헷갈릴 수 있으니. 다시 빠리. 아아. 빠리. 물론 빠리라고 발음 할 때 이미 내 마음은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어. 그렇게 내 맘이 춤을 출 때면 빠리에 가서 택시 운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야. 그리고 나서 책을 하나쯤 써도 좋겠지. 제목은 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정도가 어떨까 싶어. 어때, 근사하지? 서울의 택시 운전은 술 냄새와 톱밥 냄새에 쩔어 있지만 빠리의 택시 운전은 에스쁘레쏘 향과 끄로와쌍 향에 젖어 있겠지. 아. 끄로와쌍 향이 뭔진 몰라. 먹어 본 적도 없어. 그냥 넘어 가자구. 시적 허용. 오케?'


김이박은 일 년 뒤 빠리에 갔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내려 노르드 역으로 갔어. 메트로를 타고 삐갈 거리로 갔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빠리지엔느 들이 나를 반겨 주더군. 얼마나 예쁘던지! 저 치렁치렁한 금발과 휘날리는 스카프와 펄럭이는 치마와,,, 어라랏. 나한테 다가와 전화번호가 들어 있는 명함을 주고 가더군. 봉수와 Bonsoir?'


삐갈 거리는 사창가로 유명한 곳이다. 


(계속)


:

김이박 여행기, 신두리

김이박 이야기 2009. 7. 9. 10:12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상동리 앞에서 김이박은 하룻 밤 묵을 곳을 찾다가 여인숙을 발견했다. 주인장에게 만 원을 쥐어 주고 방안으로 들어선 김이박은 순간 온 몸에서 가려움을 느꼈다. 호텔, 유스호스텔, 모텔, 여관이 아닌 여인숙은, 난생 처음이었다. 가방을 놓고 방을 나와 여인숙 옆 슈퍼로 들어가 하이트 맥주 한 피처와 담배 한 갑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샀다. 여인숙 앞 길에선 어느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눈웃음을 치며 김이박에게 학생, 놀다가지 그래, 라고 말을 걸었고, 한 쪽 켠에는 얼굴이 까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서 있었다. 

방 안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마음이 가라 앉자 그제서야 가려움이 사라졌다. 서서히 그 한 평 짜리 공간에 익숙해져 갔다. 김이박은 순간 이 곳이 잠시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야 하는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과연 살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지금 꾸고 있는 꿈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꿈을 꾸고 있을 걸. 간단히 답을 내리고 난 후 가방을 열어 책 두 권을 꺼냈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여행의 목적이 죽으러가는 건 아니었으나. 

김이박이 자기방 한 켠의 커다란 책꽂이 앞에 서서 딱 두 권을 챙겨야겠다고 마음 먹었을때, 이상하게도 그 두 권이 연결되어 눈에 들어 왔다. 자기방에서는 전혀 읽히지 않았던 그 글줄들은 이상하게도 여인숙방에서는 죽죽 읽혔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얇은 벽을 타고 옆 방 여자의 신음소리가 김이박의 귀에 들어왔다. 남자와, 어쩌면 여자와, 혹은 홀로 만들어 냈을 그 소리. 솔직했다.

이틑날 아침 김이박은 여인숙 앞 히드라 침 튀기는 소리가 요란했던 PC방에서 갈 만한 곳을 검색 한 끝에 버스를 타고 변산반도로 향했다. 변산반도에 도착해서 노을, 시원한 바다 전경,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한적한 바닷가, 한적한 먹자골목의 횟 집 창문마다 와글와글거리는 주문표들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익숙한 풍경들. 지겨웠다. 

역전의 또 다른 여인숙으로 향했다. 이번엔 가렵지 않았다. 만 오천원 짜리 여인숙방은 오천원의 값어치 만큼 욕조와 TV가 딸려 있었다.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고 맥주를 마시며 오랜 만에 TV를 켰다. 놀랍게도 TV에서는 마침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이 방영 되고 있었다. 나이스 타이밍. 김이박은 TV를 틀어 놓은 상태에서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뿌연 수증기와 뿌연 담배 연기가 섞였고, 마침 TV에서는 [몽중인 夢中人] 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완벽했다.

영화가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아. 


:

김이박 여행기, 상동리

김이박 이야기 2009. 7. 4. 19:24

김이박은 불현듯 떠오르는 낭만적인 공상들과 돈을 챙겨 집을 나섰다.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는 기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 어디선가 접했던 낭만적인 풍경에는 항상 기타와 칠성 사이다와 춘천행 기차가 함께 했지만, 춘천엔 가본 적도 없었고 기타는 칠 줄 몰랐고 칠성 사이다는 마셔 본지 오래.

서울역에는 전경들로 그득했다. 정부는 전국 농민대회를 일치감치 불법으로 규정지었다. 전경들은 전국 농민대회를 며칠 앞두고 상경하는 농민들을 하나 둘 씩 체포했다. 그는 전경과 농민들을 지나 서울역 매표소 앞에 섰다. 터치스크린이 장착된 자동 매표기 앞에 섰다.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가장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는 지명을 검색하다 그럴듯한 지명 하나를 발견했다. 상동리. 순간 김이박의 머리 속에선 -리, 에 걸맞는 -리, 스러운 풍경들이 펼쳐 졌다. 양촌리는 아니지만 상동리에는 전원마을이 펼쳐져 있고 담임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받기 위해 전원일기를 쓰는 금동이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동리에 가는 기차 표를 손에 쥐고 김이박은 기차에 올라 탔다. 옆 자리에는 한 아줌마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기차가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창 밖에는 익숙한 경부선 고속도로변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 졌다. 상동리. 그는 심지어 그 곳이 어느 도에 있는 지도 몰랐다. 경상도인지 강원도인지 충청도인지 혹은 전라도인지. 경기도일지도 몰랐지만, 왠지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설레였다. 투닥투닥, 투닥투닥. 무궁화호는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냈다. 김이박은 그 소리를 좋아했다. 

옆 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통화를 시작했다. 투닥투닥, 여보세요, 투닥투닥, 아들, 나야. 투닥투닥, 잘 지내 아들? 투닥투닥, 이번 방학 때 내려 올 거지? 투닥투닥, 뭐라고? 투닥투닥, 뭐하는데? 투닥투닥, 안 내려 온지 꽤 되었잖아? 투닥투닥, 그러지 말고 내려 와. 투닥투닥, 아니, 방값도 보내 달라고? 투닥투닥, 용돈은? 투닥투닥, 벌써 다 썼어? 투닥투닥,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투닥투닥, 집 근처에서 과외 해도 되잖아? 투닥투닥, 알았다, 알았어. 투닥투닥, 알았어, 끊는다. 투닥투닥, 투닥투닥, 투닥투닥.

통화를 마친 아줌마는 전화기를 한 동안 만지작 거리다가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어느 새 창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점점 상동리에 가까워져 가는데 아파트의 갯수는 점점 늘어만 가자 김이박은 다소 불안했다. 이윽고 기차가 멈추고 사람들을 쏟아 냈다. 김이박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기껏해야 경기도 언저리에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긴 상동리인데, 여긴 어디지? 

상동리역 앞 광장에는 커다란 관광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광주광역시 관광 안내도. 김이박은 순간, 서울의 청량리를 떠올렸다. 

:

김이박 유학기

김이박 이야기 2009. 6. 30. 18:33

김이박은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오페라의 본 고장 이태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학 과정에서 대학 과정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김이박은 행복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골목 골목 박혀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카페나 술집에서도 성악이 언제나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마치고 김이박은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딱히 이태리에서 성악과 관련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김이박은 성악의 아름다움을 알아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가 못 마땅합니다. 

김이박은 요즘 이태리의 작가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을 번역 하는 일을 합니다. 그는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을 한국에 처음으로 번역한 사람입니다.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이어 한국어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파치노 드니로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재재작년인가 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치노 드니로의 책을 읽은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이태리에 가고 싶어 합니다.


(계속)


:

김이박 종교 체험기

김이박 이야기 2009. 6. 3. 01:12
믿쑵니까. 아멘. 믿쑵니까. 아멘. 믿쑵니까. 아멘. 김이박, 은 어머니를 따라 기도원에 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 바닥은 군데군데 물이 스며 들어 검게 썩어 있었다. 입구에는 몇 백 켤레의 신발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고, 기도원 건물 안에서는 발냄새가 났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피아노 반주가 흘렀다. 통성기도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이박의 앞 줄에 있던 한 소년이 두 손을 천장에 향해 활짝 벌리고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소년이 몸을 격렬하게 앞 뒤로 흔들 때마다 소년의 무릎팍은 마루 바닥을 찧었고, 그 때 마다 둔탁한 소리를 냈다. 두둑-두둑-두둑. 김이박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넌 너무 차가워. 같은 교회 사람들은 김이박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섭씨 100도로 끓고 있는 물은 36.5도를 유지하고 있는 물에게 넌 너무 차갑다고 말하곤 한다.


: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둘

김이박 이야기 2009. 5. 23. 00:11
김, 은 서울 사년제에 들어간 뒤 사년이 지난 뒤 처음으로 한 여자를 오랫 동안 만났다. 이 년 정도 꾸역꾸역 대학을 다닌 뒤 이 년 조금 넘게 군대를 마친 직후였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응암동 근처에 반지하방 하나를 얻었고, 홍대 앞을 싸돌아다니며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쭉 같이 어울렸던 헤비-메탈 밴드 녀석들과 같이 날마다 술을 먹었다. 도피하는 심정이었다. 어디로인지, 어디에서인지, 는 몰랐다. 수능 시험을 치루고 난 뒤엔 어디에서인지, 어디로인지, 가 그럭저럭 분명했었다. 

김, 은 술자리를 그럭저럭 좋아했지만,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쏘주가 문제였다. 한 잔 두 잔 세 잔 반 입에 털어 넣고 나면 그 이상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밴드 녀석들과 뭉칠 때는 한데 어우러져 쏘주를 입에 털어 넣고 매운 안주를 먹어야 했다. 항상 속은 쓰렸고, 결국 변기를 부여 잡았고, 술값과 안주값은 어느 샌가. 

어느 날 밤. 김, 은 홀로 비틀거리며 홍대 앞 거리를 걷고 있었다. 걷다 보니 어느 샌가 전에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골목이 나왔다. 토사물, 돌모퉁이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몹시 추워 보이는 여자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몸을 앞 뒤로 천천히 흔들거리며 그 여자들을 달래고 있는 남자들, 형형색색의 커다란 글씨와 각종 표식들, 바람이 불 때 마다 휘날리는 종이 조각들, 이 없었다. 주황색 빛을 내는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고, 그 밑에 조그마한 간판 하나가 있었다. 싸이키델릭.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지막히 다가와서 말을 걸고는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씩 다가오라고 속삭였다. 빰빠라 빰빰, 빰빠라 빰빰. 북소리 장단. 빰빠라 빰빰, 빰빠라 빰빰. 한 발 또 한 발. 빰빠라 빰빰, 빰빠라 빰빰. 김, 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속)


: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하나

김이박 이야기 2009. 5. 21. 21:48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 안. 박, 의 자리 두 줄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자. 그의 옆에는 지속적으로 칭얼대고 간헐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가 하나. 그가 아이를 달래는 품새가 좀 사무적이다.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고 난 뒤 박, 은 가족 들과 함께 출구로 빠져 나가는 도중에 그의 서류를 흘낏 볼 수 있었다. 홀트 아동 복지회. 박은 1991년에 개봉 되었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 제목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 해 박은 해외 입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벌써 십 수년 전의 일이었고, 그 동안 해외 입양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입국 심사대는 미국인, 과 외국인, 으로 나뉘어 있었다. 박과 박의 가족은 외국인 창구 앞에 줄을 섰다. 박은 여행사에서 덮어 씌운 자기네 회사 로고가 박힌 파란색 여권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을 임국 심사관 앞에 내밀었다. 입국 심사관은 말 없이 여권을 휘리릭 넘겨 비자가 박힌 부분을 찾아 냈다. 그 곳엔 F24. 영주권자의 만 21세 이상의 미혼자녀 이민 비자. 공항 문 밖을 나서면서 박, 은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와, 공기 참 시원하다. 


이, 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 보라빛 주름 치마를 꺼내 입고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길을 나섰다. 이, 가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도 이제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반짝거렸고, 바람은 차가웠다. 비가 오는 기간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큰 변화가 없는 날씨 아래서 이, 는 그간 거처를 세 번, 일터를 두 번, 옮겼다. 이, 의 일주일은 간략했다. 월요일 부터 금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나와 영어 학원으로 향했다. 적당한 수준의 영어 수업을 듣고 난 뒤 이, 는 오후와 저녁 내내 한국 음식점에서 일을 했다. 시급은 캘리포니아에서 노동법으로 규정해 놓은 최저 임금 보다 1불이 적었고 사장이 반을 가져가고 남은 팁의 반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었고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한국인들은 유난히 팁에 인색했다. 이, 는 일요일에는 오전 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다. 토요일은 비워 놓고.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이, 는 다운 타운에서 케이블 카를 탔다. 케이블 카 안은 관광객으로 들끓고 있었다. 


김, 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 싸이키델릭 Psychedelic 에 앉아 주인 아저씨와 60년대 미국 음악에 대해서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바 Bar 안은 자욱했다. 담배 연기와 오래 된 각종 포스터와 음악으로. 주인 아저씨 뒤에는 LP판이 수두룩하게 꽃혀 있었다. 오십이 조금 넘은 주인 아저씨는 사십 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 주인 아저씨는 젊은 시절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드로 일을 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아직 해외 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았던 시절. 덕택에 외국에 자주 들락거릴 수 있었다. LP를 하나 둘 씩 사모으기 시작 했고, 그 LP판이 조그만 바 Bar의 한 쪽 벽면을 채울 수 있는 숫자가 되었을 때 주인 아저씨는 일을 그만 두고 바 Bar 를 차렸다. 일을 그만 둔 날 주인 아저씨는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다. 양조위는 경찰을 그만 두고 왕정문이 일하던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왕정문은 패스트푸드 점을 그만두고 스튜어디스가 되었고, 그는 스튜어드를 그만두고 주인 아저씨가 되었다. 

물론 요즘은 LP판을 건드리지 않은 지 오래다. 주인 아저씨 앞에는 컴퓨터 한 대가 있고 윈-앰프가 랜덤 플레이 모드로 돌아가고 있는 중. 김, 이 컵에 담긴 벨기에산 맥주 호가든을 꿀꺽거리며 마실 즈음 쿵쿵 거리면서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 1967년에 발표 된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이 꾸역꾸역. 김, 이 주인 아저씨에게 말했다. 내일 가요. 어딜?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미국이요. 도시 이름부터 먼저 말하는 걸 보니 미국에 갈 준비는 다 되었구만. 가서 돈 떨어질 때까지 머무르다 오려구요. 어디서? 친구가 하나 있어요. 안 본지 진짜 오래 된.


(계속)

:

김이박 영화 감상기

김이박 이야기 2009. 2. 10. 19:35

김이박은 어느 유명한 영화제에 가서 어떤 유명한 영화를 봤는데 그 유명한 영화가 끝나자 한 유명한 감독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박은 방금 본 영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아 보여 용기를 내서 손을 번쩍 들고, 감독님, 주절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그래서 말인데요. 가나다라마바사는 아자차카타파하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게 맞나요? 

그러자 어떤 유명한 영화를 만든 한 유명한 감독님은 영화 관객과의 대화를 영화 스태프와의 대화로 착각했는지 버럭 성질을 내며 손에 쥔 마이크를 던지더니, 빌어먹을, 의미는 스스로들 찾으란 말이야! 안 그럼 아무 의미 없다고! 

그러나 김이박은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

김이박 성장기

김이박 이야기 2008. 9. 4. 19:02

김이박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로 김이박의 가정은 평범한, 아니 실은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은 중산층이다. 김이박은 어릴 적 다른 중산층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배웠다. 들으면 들을수록 태아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태교를 했던 그의 어머니는, 사람이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지. 김이박은 피아노를 배웠다. 

김이박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모든 일엔 때가 있어, 그리고 지금은 공부할 때야. 너는 학생이야,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김이박은 열심히 공부를 했다. 가끔씩 야동을 보면서 백인 여자의 몸을 감상한 것을 빼곤. 덕분에 김이박은 사년제에 들어갔다. 김이박은 그 곳에서, 열심히 술을 먹었다. 그리고 토했다. 다시 술을 먹었다. 그리곤 다시 토했다. 그리곤 다시금 술을 먹곤, 다시금 토를 했다. 

그러다 김이박은 군대에 갔다. 고참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 김이박은 열심히 군생활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선임 비위도 적당히 맞추고, 후임도 적당히 괴롭히고, 휴가를 나가선 나이트를 가서 여자를 꼬시기 위해 노력도 하고, 미아리도 가고 청량리도 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제대.

김이박은 대학에 복학 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돈을 타내 유럽 여행을 갔다. 여행 책자를 옆 구리에 꼭 끼고 떠났다. 김이박은 야동에서 보았던 백인 여자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에펠탑과 콜로세움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어. 김이박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김이박은 지금 자신이 유럽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유럽에 갔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많았다. 

김이박은 복학을 해서 이제 졸업하면 뭘 해야하는 지를 고민했다. 인생 뭐 있냐? 김이박은 토익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회사에서는 자기계발에 힘쓰라는 말을 했다. 무엇보다 시간 관리, 인맥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김이박은 열심히 일을 했고, 야근을 했고, 지쳐갔다. 그런 김이박을 안쓰럽게 생각한 일가친척 어르신들은,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아이를 가져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김이박은 선을 보았다. 선을 본 자리에서 김이박에게 상대방 여자는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 보았다. 김이박은 선을 보고 나와 홀로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었다. 인생 뭐 있나. 


:

김이박 일상기

김이박 이야기 2008. 7. 26. 09:47

김이박은 조그마한 웹 사이트 기획사에 다닌다. 그 바닥에선 알아주는 기획자가 얼마 전에 독립하면서 새롭게 차린 회사다. [성공하는 인간들의 백 가지 습관],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뱀머리 리더십], [금송아지가 온다], [인맥 마케팅] 등등 갖가지 리더십, 마케팅 서적과 경영 이론들이 줄줄히 꽃혀 있는 사장실에서 김이박은 면접을 보았다. 사장이 썼다는 책도 한 구석에 꽃혀 있었는데, 김이박은 후일 입사한 지 삼 개월이 지나서야 회사에서 버는 순수익이 사장이 썼다는 책의 인세보다도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김이박은 회사에 합격을 했던 것이다. 서울 소재의 사 년제를 나오고 글을 좀 말이 되게 쓸 줄 알고, 영어 성적이 좋고, 대학 시절 조그만 공모전에서 상도 탄 경험이 있는 김이박을 사장이 괜찮게 본 모양이다. 

오늘도 김이박은 자신을 닦달하는 거래처 이 대리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진땀이 빠져라 전화길 붙들고 있다 오전 일과를 마쳤다. 남녀관계보다 더 힘들고 더 무서운 건 갑을관계였다. 하지만 김이박의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는 말이 말을 낳으면서 하나도 결정되는 것은 없는 기획 회의도, 내용 보다는 PPT의 폼과 글씨의 폰트를 맞추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프리젠테이션 준비도 아니었다. 바로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이었다. 그때만 되면 김 팀장의 눈치를 봐가며 메신저질과 스포츠 기사 검색에 열을 올리던 옆자리 박군도 여지 없이 진지해 지는 것이었다. 과연 오늘 점심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그 어떤 회의에서 오가는 문제 보다도 더욱 심오하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다행히도 오늘은 야근이 없는 날이다. 김이박은 오랜 만에 맞는 야근 없는 금요일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종로로 향했다. 버스를 탔다. 버스 전용 차선을 타고 버스는 신나게 씽씽 달린다. 버스 안은 버스 기사가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로 매우 시끄럽다. 음악이 꿍짝꿍짝 흘러 나온다. 이어서 교통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교통 안내 방송의 내용은 똑같다. 이쪽도 막히고 저쪽도 막히고 저기선 차량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으며, 요기선 차량들이 서행하고 있으니 우회하라는 방송이다. 버스 기사의 표정은 침울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손에 뭔가를 쥐고 있다. 문자도 보내고,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고, 다운 받은 미드도 본다. 그런데, 노선이 정해져 있는 버스에서 왜 교통 정보가 필요한 걸까.

김이박은 버스에서 내려 부랴부랴 약속장소로 항했다. 사람들로 미어 터지는 종로 길거리에서 그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연인 한 쌍과 심하게 부딪힌다. 여자의 어깨가 김이박의 허리를 빠르게 강타하고 지나갔다. 김이박이 찡그리면서 여자를 바라보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자의 품 안에 안겨서 까르르 거린다. 그 옆에 있던 남자가 대신 대충 사과하고 지나간다. 저들은 과연 한 몸이구나.

김이박은 약속 장소인 서울 극장 앞에 도착했다. 여자 친구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무는데, 갑자기 옆에서 욕지거리가 들려 온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금 영화를 보고 나온, 김이박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두 남자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씨발 왜 이걸 보자고 한거야. 존나 재미 없잖아. 아이 씨발. 난 존나리 재미있을 줄 알았지. 아 정말 요즘 영화가 왜 전부 이따위냐. 존나 짜증 이빠이네. 그래, 정말이지 한국영화 수준 정말 낮은 거 같아. 아 씨발 이젠 정말 한국 조폭 코메디 영화는 안 볼거야. 그러게 씨발 욕만 졸라리 하고 하나도 재미없어. 야, 씨발 술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야. 오늘은 술 먹고 좋은데 가는거다. 


:

김,이,박

김이박 이야기 2008. 7. 26. 09:42

서울 근교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부천에 거주하는 김, 은 40대 중반이다. 이리저리 직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고깃집을 운영한지 이제 10년 째다. 아내와 아들 둘이 있다. 사교육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럭저럭 생활은 할만하다. 그에게 있어 불만은 이 곳이 자신의 유일한 생활 터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각자 생활에 바쁜 친구들과 송년 모임을 가지기 위해서 그는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먼저 연락을 하고, 날짜와 시간을 잡고, 이리저리 준비했다.

그에겐 박, 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방송국 피디다. 광화문 근처의 원룸에 혼자 기거한다. 무지하게 바쁘고 외국도 몇 번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자신에 비해서 활동 영역이 넓어 보이는 박, 을 그는 부러워 한다.

그에겐 분당에 사는 이, 라는 친구도 있다. 자신처럼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부장 자리를 꿰차기 일보 직전이다. 부동산으로 제법 재미도 본 이, 는 비교적 제 시간에 도착했다. 박, 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박, 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엔 무슨 연예인 지망생과 로맨스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우리 상무가 말이야. 골프를 배워 보라는 거야. 내가 붙잡고 있는 라인이라 새겨 듣는 척 했지. 미국 가 있는 자식 놈 때문에 돈도 많이 들어가는 데 무슨 골프냔 말이야. 근데 말이야. 이게 또 무시할 순 없는 거 같단 말이야. 아무래도 인맥을 넓히는덴 골프만한게 없단 말이지. 그래서 골프 셋트를 큰 맘 먹고 샀지. 그리고 일단은 연습장에 다니는데 말야. 하다보니 이것도 재미있단 말이야. 쏠쏠하다니깐. 이, 가 말한다.

요즘 연예계가 참 시끄럽지. 애새끼들이 말이야. 기고 만장해져가지고 말이야. 예전엔 방송국에 드나 들면서 어떻게든 눈도장 찍으려고 난리 브루스를 췄는데 말이야. 요즘은 기획사다 덕션이다 뭐다 해서 전부 밖으로 돌아요 이것들이. 더러워서 나도 독립을 하던가 해야지 원. 근데 히트친게 있어야 말이지. 제길. 뭐 대박 터지는 아이템 없을까. 응?  박, 이 말한다.

이 근방에 모텔이 새로 생겼는데 말이야. 모텔 프로방스던가 뭔가. 하여간에 그 모텔이 생긴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거야. 알고 봤더니 이 것들이 무슨 인터넷 카페에서 홍보를 한다고 하지 뭐야. 요즘은 모텔도 사용 후기를 올리는 시대가 된거야. 하여간 우리한텐 잘 된 일이지 뭐야. 김, 이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가 상무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오고, 다시 외국에 유학중인 이, 의 아들이 용돈을 보내 달라는 전화가 온 다음 부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대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아직도 박에게 앵겨 붙는 최, 신, 임과 같은 골빈 연예인 지망생들에게서 차례로 전화가 오면서부터 일 수도 있다. 박, 은 미안하다면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 선다.

이, 는 박, 이 나가기가 무섭게 ‘문란한’ 박, 의 사생활을 한참 씹어 댄다. 박, 이 자신이 알고 지내는 ‘동생’들을 이야기할 때 열심히 경청하던 이, 가 아니다. 한편으론 돈을 주고서야지만 박, 이 만나는 ‘등급’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더러워서’ 더욱 목소리가 커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 은 그저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가 이, 가 일어선다. 김, 은 배웅하고, 자리를 정돈한다. 고깃집에 딸려 있는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이, 의 아내가 나와서 거든다. 아내는 치우다가 그만 쟁반 하나를 떨어 뜨린다. 김, 은 그것을 트집삼아 아내와 대판 싸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