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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7.13 미인 美人

신윤복의 월야밀회 月夜密會

에세이 2009.08.10 08:29



신윤복(1758~?)이 그린 [월야밀회 月夜密會]라는 그림이다. 좋아하게 '된' 그림이다. 물론 모든 그림이 어느 순간 부터 좋아하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쓰는 건 내가 '의식적으로' 저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엔 한국인의 숫자 보다 외국인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일부러, 서양 화가의 그림이 아닌 한국 화가의 그림을 찾기 시작했고, 이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좋아하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가을 즈음이었다. 신윤복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이전이었다. 이후 서서히 그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인 2008년 여름에 '간송미술관'에 저 그림을 직접 보러 갔었는데, 소장 작품 개방하는 것을 다소 까다롭게 관리하는 미술관의 규칙 때문에 저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신윤복 열풍'이 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그 시점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았던 것이 한국 사회의 그 '어떤 분위기'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담, 잠시 비교적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그림을 소개해보자.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 Egon Schiele(1890-1918)의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2004년에 출간 된 민음사판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나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주루륵 꽃혀 있는 도서관 서가 앞에서 [인간 실격]이라는, 단호하고도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이 맘에 들어 집어 들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당시 내 감정 상태와 고민들과 맞물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쇠꼬챙이를 집어 넣고 휘휘 돌리는 듯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주인공 요조 ([인간실격]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고는 하는데, 왜 따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홍대 여신' 요조가 아니다. 요조의 노래는 들어 본 적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럴 시간에 역시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오지은이나 정민아의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 와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책 표지에 있는 저 자화상을 쳐다 보게 된다. 주인공 요조와 저 자화상이 참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생각했고 쳐다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을 주는 그림에 매혹된 나는 이제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대형서점을 거닐다가 미술 코너에 에곤 실레와 관련된 책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들춰 보게 된다. 관심은 좀 있으나 책 한 권을 (사고 싶진) 공들여 읽고 싶진 않았던 나는 그림들을 조금 감상하다 집에 와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서 에곤 실레의 다른 그림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에곤 실레에 대한 정보가 글쓴이의 의견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는 한 사이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에곤 실레라는 사람에 대해서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저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더욱 더 좋아하게 된다."


신윤복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공식적인 기록 빼고 그가 실제로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다는 얘기. (그러다 보니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진부한 상상을 도발적 시도로 착각하는 듯이 보이는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하다 못해 그의 생애 조차도 1758~? 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에곤 실레의 생애 1890~1918 처럼 1918-1890=28 이라는 간단한 산수를 통해서 만 스물 여덟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 한 번 더 매혹되어 볼 만한 요소 조차도 없다. (물론,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는 신윤복이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 보다 왠지 더 매혹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그림에 찍혀 있는 낙관을 통해서 에곤 실레가 1912년, 즉 그의 나이 만 스물 두 살에 그렸던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월야밀회'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신윤복과 에곤 실레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신윤복이 김홍도의 제자였고 영향을 받았다는 '설'을 받아 들인다면, 둘 다 당대 유명한 화가였을 김홍도,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의 영향을 받아 들였으면서도, 그들의 스승들과는 다른 독특한 자기 만의 화풍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 [월야밀회 月夜密會]를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을 쳐다 보면 볼 수록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왼쪽의 남자는 군관 같다. 그 남자에 와락 안기어 있는 여자는 누굴까. 남자의 아내는 아닐 것이다. 같은 집에서 같이 먹고 자는 아내를 담벼락 밑에서 야심한 시각에 '어두운 밤 달빛 아래 몰래 만날 月夜密會' 이유가 없다. 오른 쪽에서 그들을 엿보고 있는 여자는 누굴까. 이들의 만남을 주선해 준 사람일까? 혹시 남자의 아내? 아님 길을 가다 이들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엿보고 있는 제3자?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이제, 그림의 '형식' 들을 감상해 보자. 먼저 구도. 인물과 배경의 배치가 매우 정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달이 있고, 그 맞은 편인 오른 쪽 아래에는 담과 건물과 나무들이 슬쩍 보인다. 군관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담벼락의 선과 맞닿아 있고, 그 선을 위 아래로 끝까지 연결하면 (왼쪽 공간이 조금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림을 전체적으로 이등분한다. 



이런 좌우 대칭 구도는 신윤복의 다른 그림 [기방무사 妓房無事]에서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역시 이야깃 거리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역시 [월야밀회 月夜密會]에서 가장 중요한 구도는 사선 구도이다.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면서 군관이 쓴 모자,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물론 저 남자가 군관이라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까지도 인위적으로 이 사선 구도에 일치 시켰다. 심지어는,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여자의 두 발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실제 사람이 취하는 자세를 옮겨 온 것이라 보기에는 대단히 어색하다. 그 두 발은 그림의 전체적인 사선 구도에 맞춰져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쌍 남녀의 발들. 군관 남자에 안겨 있는 여자의 발은 그 여자가 이미 사선 구도 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문제는 군관 남자의 오른 쪽 발이다. 발 모양이 거꾸로 되어 있다.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여자의 발이 보기에 어색하다면 군관 남자의 발은 그냥 불가능한 자세다. 그런데도 저 남자의 오른 발은 뒤집혀져서 그림의 사선구도를 강조하는 기능을 하도록 그려져 있다. (이게 이 그림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왼 발. 세 사람의 여섯 개의 발 중에서 유일하게 군관 남자의 왼 발 만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있고, 그 방향은 다른 모든 발들과 수직으로 되어 있다. 군관 남자의 그 왼 발은 왠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의 하나인 '남근'을 한 번 사용해 보자면,) 저 발은 왠지 '남근'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으로 감상할 '형식'으로는 세부적인 선들과 색깔이 남아 있는데, 특별히 길게 할 말은 없다.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들의 선들, 특히 군관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휘날리는 묘사가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도나 배치(layout)에는 비교적 민감한 편이지만 색깔에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편이라서, 색깔에 대해서 특별히 길게 적을 말은 없다. 다만 담벼락에 기댄 여자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붉은 어떤 것이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과 대비되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보태고 싶다. 


이상이다. 위에 적은 것들은 모두 그림을 오래오래 쳐다 보다 보니 발견하게 된 것들이다. 그럼, 이제 다시 [월야밀회 月夜密會]를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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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美人

에세이 2009.07.13 20:54
서울의 강남구와 서초구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은 번잡하고, 시끄럽고, 특색은 하나도 없는 프랜 차이즈 중심의 레스토랑으로 가득 차 있는 곳. 장점이 있다면 교통의 요지라는 것. 이건 한 이 년 전 까지의 기억이다. 서울은 워낙 모든 것들이 바뀌는 곳이니까.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바뀌는 방향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곳이니까. 

그런 특색없는 공간에 특색있는 술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미인'. 나이 드신 할머님과 할머님의 아들인 듯한 삼십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분과 그 남자 분의 부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기억한다. 가게 바깥의 흰색 간판에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엷게 스케치가 되어 있었고, 내부 벽에는 미대를 나온 부인되시는 분이 작업한 추상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황태구이 안주와 맥주를 곁들이면 참 맛있었다. 자주 갔다. 자주라고 해봤자 다 합쳐서 열 번을 넘지는 않았겠지만. 그 곳을 발견하고 나선 각기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도 모두 그 곳으로 데려 갔다. 갈 때 마다 그 안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테이블은 다 합쳐서 대략 일곱 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한 테이블에 네 명씩 앉을 수 있다고 치고 테이블이 손님들로 꽉 차도 대략 스물 여덟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술집이었다. 

뭔가 강남역스럽지 않았다.


딱 한 번 스물 여덟 명을 모두 채운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여느 때 처럼 황태구이와 맥주를 시켜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주 오랫동안 보아온 얼굴들이라서 사실 굉장히 새롭고 불꽃튀는 이야기란 없었는데, 문득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몇 명이 들어와서 맞은 편 벽의 테이블 다섯 개를 가리키면서 여길 좀 예약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면서. 그리고 테이블을 모두 붙여 한 데 모은 다음 한 명은 다시 핸드폰을 붙들고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메웠다.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 그룹은 이내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 그룹도 남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어느 덧 열 몇 명이 모여 드는 데도 모임에 여자 한 명 없다는 사실은 무척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엔 같은 부대에서 근무를 한 군대 모임인가 싶었다. 하지만 테이블 마다 적당한 안주 하나씩 깔리고 술잔이 각각 놓였는데도,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별 다른 대화가 없이 핸드폰 액정 화면을 바라 보거나 시계를 바라 보는 등 하나 같이 딴청을 피우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사람 들이 더욱 많아져 스무 명을 넘었을 무렵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그 누군가가 등장했다. 모인 사람은 모두 남자, 그리고 그 누군가도 남자였다. 그 누군가가 등장한 이후로 그 술집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군가 밖에 없었다. 술집을 운영하는 나이 많으신 할머님과 할머님의 아들인 듯한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분과 그 남자분의 부인되시는 분도, 나와 내 친구 두 명도, 묵묵히 입을 닫은 채 그 누군가의 말을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그 누군가의 말을 들어 보자.

그 누군가의 말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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