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드리밍 아이디어 판
카테고리 없음 2009. 5. 21. 20:18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하는 길에 김은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꼭 보아야 할 곳, 일명 지그재그길, 롬바르드 길 Lombard Street를 보고 싶다고 션에게 말했다. 김의 머릿 속에는 여행 책자에서 본 갖가지 꼭 가보아야 할 곳들에 대한 정보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션은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은 여행 책자에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그 곳을 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션이 김에게 너는 서울에 살면서 남산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본 일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는 와중, 그들은 마침내 롬바르드 길에 도착했다. 겨우겨우 찾아낸 그 지그재그길을 션의 차를 타고 내려 오며 김은 숙제 하나를 끝마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아직 해야할 과제는 도시 마다 한 보따리가 남아 있었다.
션, 은 바빴다. 미국에 이민을 온 뒤로 항상 바빴다. 션은 바쁜 시간을 쪼개 공항으로 김을 배웅 나갔다. 처음엔 너무 오랜 만에 만난 김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션은 관광을 온 김을 데리고 이 곳 저 곳을 다녔다. 관광을 온 김에게 의미 있는 것은 결국 멋진 사진을 찍어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상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며칠 머무는 것으로 어떻게 이 곳을 알 수 있을까. 사실 김을 데려간 카페는 션이 미국에 처음 이민 와서 일했던 카페였다. 하지만 다소 들떠있는 김에게 그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박, 은 대학을 다니던 도중 휴학을 하고 IT 벤처 사업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산업으로 IT 산업과 신용 카드 산업을 꼽고 있었다. 서류만 잘 갖춰 놓는다면 당시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박은 한 때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렸던 삼성역에서 강남역 사이의 테헤란로, 테헤란 벨리에 그럴 듯한 사무실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 년 반이 지난 뒤 박은 빚과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그 사무실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박은 자신이 왜 실패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IT 붐이 거품 이어서였는지, 모든 것을 걸고 창업을 한 자신과 달리 다른 녀석들은 단지 하나의 경험으로 여겨서 였는지, 그냥 자신의 능력 부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좌절해 있는 박에게 박의 아버지가 이미 오래 전에 신청해 놓은 미국 이민 심사가 통과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박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은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영어 이름을 션, 이라고 지었다.
션이 일했던 카페는 알게 모르게 유명한 카페였다. 그 카페는 실리콘 밸리에서 IT 벤처 기업을 차렸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션은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실패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IT 닷컴 붐을 타고 벤처 기업을 차려서 성공한 사람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길을 가다 발에 채일 정도로 그득했다. 미국인들은 낯선 사람에게도 뭔가 자신과 공통점이 발견 된다 싶으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 놓았다. 션이 만약 한국에서 이런 공간을 발견했으면 한국에 머물러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