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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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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구라 2010.03.23 17:06
다음은 소설 [1984]의 첫 머리이다. 


"1899년에 태어 났더라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을 것이고, 1930년에 태어 났더라면 전쟁에 휩쓸렸을 것이고, 1960년 즈음에 태어 났더라면 데모를 했을 것이다. 1930년 즈음에 남아메리카에서 태어 났더라면 체 게바라를 쫓아 다녔을 것이고, 1940년 즈음에 북아메리카에서 태어 났더라면 히피로 살았을 것이다.

1984년 생. 내게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들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옳다는 확신을 가질 일들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옳다는 확신을 가지며 동지들과 우애를 다지며 일치감과 소속감을 가질 일들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근래 쭉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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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

인용과 링크 2009.12.04 19:44

"...그러므로 세르반테스에게서 새로운 것은 기사적 생활태도를 반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 즉 이상적/낭만적 세계와 현실적/합리적 세계 중 그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세계상에 나타난 화해할 수 없는 이원론 곧 이념은 현실세계에서 실현될 수 없고 현실은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세르반테스)는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이상주의와 현실세계에 적응하는 분별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주인공 돈 키호테에 대한 그의 분열적 태도, 문학의 새로운 시기를 여는 그 태도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학에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구제자와 배신자 ,성자와 신성모독자가 구분되어 나타났으나 이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동시에 성자이자 바보가 되어 있는것이다. 유머에 대한 감각이 한 사물의 정반대되는 양면을 동시에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한 성격의 이중성에 대한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문학에서의 유머의 발견을 의미한다..."

p 196,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2권, 제2장: 매너리즘,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반성완 옮김, 1999.


"...The novelty in Cervantes's work was, therefore, not the ironic treatment of the chivalrous attitude to life, but the relativizing of the two worlds of romantic idealism and realistic rationalism. What was new the indissoluble dualism of his world-view, the idea of the impossibility of realizing the idea in the world of reality and of reducing reality to the idea..."

"...He(Cervantes) wavers between the justification of unworldly idealism and of worldly-wise common sense. From that arises his own conflicting attitude to his here, which ushers in a new age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Before Cervantes there had been only good and bad characters, deliverers and traitors, saints and blasphemers, in literature; here the hero is saint and fool in one and the same person. If a sense of humour is the ability to see two opposite sides of a thing at the same time, then the discovery of this double-sidedness of a character signifies the discovery of humour in the world of literature-of the kind of humour that was unknown before the age of mannerism..."

p 146~147, [The Social History of Art] Volume II: Mannerism, Arnold Houser, translated by Stanley Godman, 1951.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 '문화예술사'라는 수업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 네 권을 읽었다. (지금은 그 수업이 없어졌다) 몇 명씩 조를 짜서 한 꼭지씩을 맡아서 발표를 해야 했는데, 그 당시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맡았던 부분이 매너리즘이었다. 대학 수업을 자꾸 언급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희곡의 이해'라는 수업에선 희비극 꼭지를 맡았었다. 그러고 보면 관심사랄까, 방향이랄까는 항상 비슷했던 것 같다. 내친김에 생각나는 거 하날 더 언급하자면 박찬욱-봉준호-홍상수 영화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희비극'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책의 매너리즘 부분은 한 세 번쯤 읽은 것 같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한 번을 읽었는데, 고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읽었던 소설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책 읽는 행태를 돌이켜 볼 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책 네 권 전체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고 볼 순 없을 것이지만, 하우저의 책 네 권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면서 읽어 나갔기 때문에, 내용은 다 까먹었어도 그의 관점은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중고책 장터서 1불을 주고 영문판 [돈키호테]를 샀다.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왠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일단 제목은 읽어 두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마존을 뒤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고책 네권을 샀다. 몇 문단 정도 읽어 보고 종이 냄새도 잠깐 맡아 보았다. 3불 99전인 각각의 배송비가 책 네 권 각각의 값보다 '훨씬 많이' 나왔던 것은 당연지사. 

그러다 결국 1965년에 출판된 [Mannerism: The Crisis of the Renaissance and the Origin of Modern Art 매너리즘: 르네상스의 위기와 현대 예술의 기원]까지 사버렸다. 제목 때문이다. 특히 '...the Origin of Modern Art 현대 예술의 기원' 이라는 부분. 사 놓고 안 입는 옷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듯이 사 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책이 자꾸 날 끌어 당기니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1892년에 태어나 1978년에 죽었고, 영화사에서 일한 경력도 가지고 있는 아르놀트 하우저는 매너리즘을 현대 예술의 기원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덧 붙이자면, 당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다 읽고 난 뒤에 들었던 생각은 책의 제목이 [서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동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라는 것. 아니, 동-서양을 구분하자기 보다는 서로 관련이 있을 듯한 한/중/일 삼국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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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8학군

에세이 2009.12.04 18:04

홍정욱이 쓴 [7막 7장]을 가장 최근에 발견한 건 산호세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친구의 아버지 책상 위에 그 철지난 책이 고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이 자기 자랑과 치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 고백을 하자면 나는 그 책을 한국에서 유행이 되었던 당시, 꽤 재미나게 읽었다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그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서 소위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간략하게 묘사해 놓은 미국의 동부 문화와 서부 문화의 차이가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서울의 강북 문화와 강남 문화의 차이를 묘사해 놓은 책은 왜 없을까. 

'국민학교'때 까지 도봉산과 북한산을 매일 보면서 등하교를 하다가 중고등학교를 강남(의 변두리)에서 다니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집의 사정이 내가 강북의 국민학교를 다닐 때보다 강남의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더 어려웠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번도 내가 완전히 강남의 문화에 동화 되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강남의 문화라는 것이 뭐 별건 아니다. 갖가지 브랜드 명칭을 줄줄 읊조린다든지, 대략 십 몇 만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게스'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를 입고 '캘빈 클라인' 티셔츠를 입고 추워지면 그 위에 '더플 코트'를 입는 정도랄까)

아직도 기억나는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8학군'이라는 표현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온 다큐멘터리로 기억한다. 강북의 아이들과 강남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진행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서로 다른 운동장에 각각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운동장의 땅을 파서 뭔가를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메마른 운동장의 땅을 파야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 다큐멘터리는 친절하고 조곤조곤하고 간질간질한 음성해설이 없었고, 그저 그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집단의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험 결과는 예상 대로인데, 강북의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서 그 과제를 수행해내었다. 몇 명은 메마른 땅을 파기 쉽게 하려고 물을 떠왔고, 몇 명의 아이들은 또 뭔가 다른 일들을 했다. 강남의 아이들은 이기적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하나 둘 씩 운동장을 떠났다. 강남의 아이들이 떠나고 난 뒤 이런저런 도구들이 어지럽혀진 채로 남아 있던 풍경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을 무렵에 나는 왜 도봉산과 북한산이 보이는 집을 떠나 강을 건너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당시 어머니는 우리 집의 형편이 어려워져서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거나, 아님 당시 다니고 있던 흑석동에 있던 교회가 너무 멀기 때문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 둘 다 별 납득은 가질 않았던 설명이었다. 그리고 막상 다니던 교회는 이사를 간 뒤에 이름을 대면 바로 알 만한 소위 강남의 대형 교회로 옮겼으니까.

아마 '8학군'으로 가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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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월야밀회 月夜密會

에세이 2009.08.10 08:29



신윤복(1758~?)이 그린 [월야밀회 月夜密會]라는 그림이다. 좋아하게 '된' 그림이다. 물론 모든 그림이 어느 순간 부터 좋아하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쓰는 건 내가 '의식적으로' 저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엔 한국인의 숫자 보다 외국인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일부러, 서양 화가의 그림이 아닌 한국 화가의 그림을 찾기 시작했고, 이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좋아하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가을 즈음이었다. 신윤복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이전이었다. 이후 서서히 그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인 2008년 여름에 '간송미술관'에 저 그림을 직접 보러 갔었는데, 소장 작품 개방하는 것을 다소 까다롭게 관리하는 미술관의 규칙 때문에 저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신윤복 열풍'이 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그 시점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았던 것이 한국 사회의 그 '어떤 분위기'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담, 잠시 비교적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그림을 소개해보자.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 Egon Schiele(1890-1918)의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2004년에 출간 된 민음사판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나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주루륵 꽃혀 있는 도서관 서가 앞에서 [인간 실격]이라는, 단호하고도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이 맘에 들어 집어 들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당시 내 감정 상태와 고민들과 맞물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쇠꼬챙이를 집어 넣고 휘휘 돌리는 듯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주인공 요조 ([인간실격]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고는 하는데, 왜 따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홍대 여신' 요조가 아니다. 요조의 노래는 들어 본 적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럴 시간에 역시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오지은이나 정민아의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 와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책 표지에 있는 저 자화상을 쳐다 보게 된다. 주인공 요조와 저 자화상이 참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생각했고 쳐다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을 주는 그림에 매혹된 나는 이제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대형서점을 거닐다가 미술 코너에 에곤 실레와 관련된 책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들춰 보게 된다. 관심은 좀 있으나 책 한 권을 (사고 싶진) 공들여 읽고 싶진 않았던 나는 그림들을 조금 감상하다 집에 와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서 에곤 실레의 다른 그림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에곤 실레에 대한 정보가 글쓴이의 의견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는 한 사이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에곤 실레라는 사람에 대해서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저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더욱 더 좋아하게 된다."


신윤복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공식적인 기록 빼고 그가 실제로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다는 얘기. (그러다 보니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진부한 상상을 도발적 시도로 착각하는 듯이 보이는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하다 못해 그의 생애 조차도 1758~? 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에곤 실레의 생애 1890~1918 처럼 1918-1890=28 이라는 간단한 산수를 통해서 만 스물 여덟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 한 번 더 매혹되어 볼 만한 요소 조차도 없다. (물론,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는 신윤복이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 보다 왠지 더 매혹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그림에 찍혀 있는 낙관을 통해서 에곤 실레가 1912년, 즉 그의 나이 만 스물 두 살에 그렸던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월야밀회'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신윤복과 에곤 실레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신윤복이 김홍도의 제자였고 영향을 받았다는 '설'을 받아 들인다면, 둘 다 당대 유명한 화가였을 김홍도,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의 영향을 받아 들였으면서도, 그들의 스승들과는 다른 독특한 자기 만의 화풍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 [월야밀회 月夜密會]를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을 쳐다 보면 볼 수록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왼쪽의 남자는 군관 같다. 그 남자에 와락 안기어 있는 여자는 누굴까. 남자의 아내는 아닐 것이다. 같은 집에서 같이 먹고 자는 아내를 담벼락 밑에서 야심한 시각에 '어두운 밤 달빛 아래 몰래 만날 月夜密會' 이유가 없다. 오른 쪽에서 그들을 엿보고 있는 여자는 누굴까. 이들의 만남을 주선해 준 사람일까? 혹시 남자의 아내? 아님 길을 가다 이들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엿보고 있는 제3자?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이제, 그림의 '형식' 들을 감상해 보자. 먼저 구도. 인물과 배경의 배치가 매우 정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달이 있고, 그 맞은 편인 오른 쪽 아래에는 담과 건물과 나무들이 슬쩍 보인다. 군관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담벼락의 선과 맞닿아 있고, 그 선을 위 아래로 끝까지 연결하면 (왼쪽 공간이 조금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림을 전체적으로 이등분한다. 



이런 좌우 대칭 구도는 신윤복의 다른 그림 [기방무사 妓房無事]에서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역시 이야깃 거리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역시 [월야밀회 月夜密會]에서 가장 중요한 구도는 사선 구도이다.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면서 군관이 쓴 모자,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물론 저 남자가 군관이라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까지도 인위적으로 이 사선 구도에 일치 시켰다. 심지어는,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여자의 두 발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실제 사람이 취하는 자세를 옮겨 온 것이라 보기에는 대단히 어색하다. 그 두 발은 그림의 전체적인 사선 구도에 맞춰져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쌍 남녀의 발들. 군관 남자에 안겨 있는 여자의 발은 그 여자가 이미 사선 구도 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문제는 군관 남자의 오른 쪽 발이다. 발 모양이 거꾸로 되어 있다.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여자의 발이 보기에 어색하다면 군관 남자의 발은 그냥 불가능한 자세다. 그런데도 저 남자의 오른 발은 뒤집혀져서 그림의 사선구도를 강조하는 기능을 하도록 그려져 있다. (이게 이 그림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왼 발. 세 사람의 여섯 개의 발 중에서 유일하게 군관 남자의 왼 발 만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있고, 그 방향은 다른 모든 발들과 수직으로 되어 있다. 군관 남자의 그 왼 발은 왠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의 하나인 '남근'을 한 번 사용해 보자면,) 저 발은 왠지 '남근'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으로 감상할 '형식'으로는 세부적인 선들과 색깔이 남아 있는데, 특별히 길게 할 말은 없다.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들의 선들, 특히 군관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휘날리는 묘사가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도나 배치(layout)에는 비교적 민감한 편이지만 색깔에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편이라서, 색깔에 대해서 특별히 길게 적을 말은 없다. 다만 담벼락에 기댄 여자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붉은 어떤 것이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과 대비되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보태고 싶다. 


이상이다. 위에 적은 것들은 모두 그림을 오래오래 쳐다 보다 보니 발견하게 된 것들이다. 그럼, 이제 다시 [월야밀회 月夜密會]를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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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과 링크 2009.07.23 00:26

하나,

몇년 전 부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눈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제1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를 알라딘 미리보기를 통해서 시작 부분만 조금 읽어 보았는데, 재미있고 맘에 들어 언젠간 전체를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주원규가 썰을 푸는 방식도 문체도 맘에 들고 무엇 보다 '강남역 7번 출구/신촌역/압구정'과 같이 서울의 특정 장소를 그 장소에서 풍겨오는 느낌과 함께 소설 속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게다가 소설의 '대사건'이 펼쳐지는 무대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거려지는 공간인 삼성역 코엑스몰.


두울,

몇년 전 부터 책표지의 저자 소개를 눈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내가 눈여겨 보는 저자 소개는 다음과 같은 종류의 것 들로써, 이른바 [여행에세이]에서 주로 발견 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대충 검색해서 나온 첫 번째 결과를 인용한다.)

19XX년 출생. '지구에 와서 건진 건 우연히 카메라를 손에 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하늘냄새를 킁킁거리며 살아가는 그녀. 다양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여러 잡지에 ‘티양Teeyang’이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글을 실어왔다. 현재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XXXXX의 사진부 팀장으로 활동 중에 있다. 

날마다 하늘냄새를 킁킁거리며 살려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궁금하다. 듣기만 해도 참 힘들어 보인다. 가만 보면 저자 소개에도 어떤 '트렌드'가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이런 씨네21 김혜리 기자 글 스러운, 마치 '낙타를 닮은 속눈썹이 차양을 드리운 상한 눈은 물기를 비쳤다가도 금세 파란 빛을 발하는(김혜리가 쓴 유시민에 대한 묘사)' 듯한 저자 소개들은 누가 쓰는 것일까? 저자가 직접? 출판사 마케팅 팀장님이? (혹은 그 팀장님의 지시하에 팀원 김이박 대리가?) 아니면 저자 소개 전문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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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ulp 2009.07.23 14:32 Modify/Delete Reply

    저자가 직접 쓰는 경우는 드물고요. 요즘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저자의 약력을 받아서는 저런 식으로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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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여행기, 파리

김이박 이야기 2009.07.20 00:44

김이박은 문득 파리 생각을 했다.

'아아. 파리. 아니지. 빠리라고 해야지. 파리라고 하면 날아다니는 파리와 헷갈릴 수 있으니. 다시 빠리. 아아. 빠리. 물론 빠리라고 발음 할 때 이미 내 마음은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어. 그렇게 내 맘이 춤을 출 때면 빠리에 가서 택시 운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야. 그리고 나서 책을 하나쯤 써도 좋겠지. 제목은 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정도가 어떨까 싶어. 어때, 근사하지? 서울의 택시 운전은 술 냄새와 톱밥 냄새에 쩔어 있지만 빠리의 택시 운전은 에스쁘레쏘 향과 끄로와쌍 향에 젖어 있겠지. 아. 끄로와쌍 향이 뭔진 몰라. 먹어 본 적도 없어. 그냥 넘어 가자구. 시적 허용. 오케?'


김이박은 일 년 뒤 빠리에 갔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내려 노르드 역으로 갔어. 메트로를 타고 삐갈 거리로 갔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빠리지엔느 들이 나를 반겨 주더군. 얼마나 예쁘던지! 저 치렁치렁한 금발과 휘날리는 스카프와 펄럭이는 치마와,,, 어라랏. 나한테 다가와 전화번호가 들어 있는 명함을 주고 가더군. 봉수와 Bonsoir?'


삐갈 거리는 사창가로 유명한 곳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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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美人

에세이 2009.07.13 20:54
서울의 강남구와 서초구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은 번잡하고, 시끄럽고, 특색은 하나도 없는 프랜 차이즈 중심의 레스토랑으로 가득 차 있는 곳. 장점이 있다면 교통의 요지라는 것. 이건 한 이 년 전 까지의 기억이다. 서울은 워낙 모든 것들이 바뀌는 곳이니까.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바뀌는 방향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곳이니까. 

그런 특색없는 공간에 특색있는 술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미인'. 나이 드신 할머님과 할머님의 아들인 듯한 삼십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분과 그 남자 분의 부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기억한다. 가게 바깥의 흰색 간판에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엷게 스케치가 되어 있었고, 내부 벽에는 미대를 나온 부인되시는 분이 작업한 추상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황태구이 안주와 맥주를 곁들이면 참 맛있었다. 자주 갔다. 자주라고 해봤자 다 합쳐서 열 번을 넘지는 않았겠지만. 그 곳을 발견하고 나선 각기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도 모두 그 곳으로 데려 갔다. 갈 때 마다 그 안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테이블은 다 합쳐서 대략 일곱 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한 테이블에 네 명씩 앉을 수 있다고 치고 테이블이 손님들로 꽉 차도 대략 스물 여덟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술집이었다. 

뭔가 강남역스럽지 않았다.


딱 한 번 스물 여덟 명을 모두 채운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여느 때 처럼 황태구이와 맥주를 시켜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주 오랫동안 보아온 얼굴들이라서 사실 굉장히 새롭고 불꽃튀는 이야기란 없었는데, 문득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몇 명이 들어와서 맞은 편 벽의 테이블 다섯 개를 가리키면서 여길 좀 예약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면서. 그리고 테이블을 모두 붙여 한 데 모은 다음 한 명은 다시 핸드폰을 붙들고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메웠다.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 그룹은 이내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 그룹도 남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어느 덧 열 몇 명이 모여 드는 데도 모임에 여자 한 명 없다는 사실은 무척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엔 같은 부대에서 근무를 한 군대 모임인가 싶었다. 하지만 테이블 마다 적당한 안주 하나씩 깔리고 술잔이 각각 놓였는데도,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별 다른 대화가 없이 핸드폰 액정 화면을 바라 보거나 시계를 바라 보는 등 하나 같이 딴청을 피우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사람 들이 더욱 많아져 스무 명을 넘었을 무렵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그 누군가가 등장했다. 모인 사람은 모두 남자, 그리고 그 누군가도 남자였다. 그 누군가가 등장한 이후로 그 술집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군가 밖에 없었다. 술집을 운영하는 나이 많으신 할머님과 할머님의 아들인 듯한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분과 그 남자분의 부인되시는 분도, 나와 내 친구 두 명도, 묵묵히 입을 닫은 채 그 누군가의 말을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그 누군가의 말을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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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Nomad

2009.07.10 22:35

탈북자도 
노마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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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차이나

2009.07.10 22:32

중국 대사관 앞
시위대의 팻말

FREE TIBET
티벳에게 자유를
SHAME ON CHINA
부끄러운 줄 아시오, 중국이여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라벨

MADE IN CHINA
메이드 인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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