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많이 읽는 다는 소리를 듣는 방법

구라 2009. 1. 21. 06:49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가, 옷을 사는 이유가 옷을 입기 위해서 보다는 옷 사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옷을 사면서 치수를 재기 위해 입어 보는 횟수와 옷을 산 후에 입는 횟수가 똑 같은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책은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물건이 본래의 용도보다 다른 부분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듯이, 책이란 물건도 본래 전시품으로써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 


1.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 놓는다.

1)가벼운 재미 위주의 책만 꽂아 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무겁고 어렵고 심각한 종류의 책만 꽂아 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절한 비율로 가벼운 책들과 무거운 책들을 섞어 꽂아 놓아 책장을 구경하는 사람에게, 어느 쪽으로든, "너도 이런 책을 읽는 구나, 의외인데?"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똑똑하면서 재미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2)그 적절한 비율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평소에 자신이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사람이면 무거운 종류의 책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반대로 평소에 자신이 심각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종류의 책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따라서 위의 이런 책은 [자본론]에서 [드래곤 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질 수 있다.

3)어떤 경우에도 "뭐뭐뭐여, 뭐뭐뭐를 하라." 류의 자기계발, 경제경영 서적은 피하는 것이 좋다. 

4)다양함을 우선시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전공,직업에 충실할 것이냐는 항상 풀기 힘든 어려운 문제다. 어떤 경우에도 적어도 한 두 권 정도는 "난 니가 이 책 좋아할 줄 알았어." 라는, 책 주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책을 꽂아 놓는다. 

5)자신의 집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자신의 책장을 보여 주는 이득 보다는 너저분한 생활 공간을 보여줘야 하는 결점이 더 크다면 자신의 책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2. 책장의 책을 뽑아 밖에 나갈 때 마다 들고 다닌다. 

1)똑같은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똑같은 사람에게 보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2)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는 들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복장이 너무 발랄하다면 다소 지적인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자신의 복장이 너무 무겁다면 다소 가벼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3)여행 시에 어떤 책을 들고 다녀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여행 시에는 책을 많아야 여행 안내 책자를 제외하고 한 권 내지 두 권 정도 밖에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으로 여행을 갈 계획이고, 그 외국이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과 같은 '제1세계'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영문판은 괜찮은 선택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단, 사전에 한글판으로 미리 읽어 두어야 한다. 국내 여행이거나, 외국 여행이라도 영문책이 싫다면 김영하의 소설은 괜찮은 선택이다. 또한 '론리 플래닛'이나 '세계로 간다'와 같은 여행 책자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 하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여행자들이 서로를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위의 일을 반복한다. 

그리하여 책의 숫자를 더욱 늘리고, 각각의 책에 적당한 양의 손때를 묻혀 놓는다. 간혹 가다 책장에서 깨끗한 책을 발견하고 읽지 않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원래 책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깨끗하게 보는 편이라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물론, 책을 되도록 헌책방에서 구입한다면 위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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