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세 단계

구라 2009. 2. 12. 19:08

여행에도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그 중의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여행 책자에 소개 된 장소를 도는 관광지 답습 여행입니다너무나도 안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뻔하기 이를 데 없어 사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합니다. 이 여행 단계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여행지는 선진국일 경우가 많고, 가장 선호되는 곳은 아무래도 서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일 것입니다.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이 그냥 도시 한 군데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데, 그 도시 이름은 미국에 있는 라스베가스입니다. 그 도시에는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파리의 에펠탑,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이 모두 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잘만 각도를 맞추어 사진을 찍는다면 마치 세계 곳곳의 명소를 모두 다녀 온 듯한 효과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서 부연 설명 하자면,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찍는 사진들은 모두 자신이 어디어디에 갔다 왔다는 것을 증명 해주는 증명 사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지물 또는 건축물이고 사진을 보게 될 사람들이 그 지형지물 또는 건축물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펠탑이나 콜로세움과 같이 정확하게 그 장소에 해당하는 랜드 마크를 공략하는 것은 필수 적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여행이 이미 유행을 지난 듯이 보여 이쯤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는 '독특한' 여행기를 써내는 저자들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뭔가 주제를 잡고 여행을 떠나는 방법 입니다. 주요 목적은 잃어 버린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이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여행하는 법 자체 보다는 여행 에세이들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하고자 합니다

서점에 가서 진열된 여행 에세이들을 한 번 쭉 훑어 봅시다. 그 말랑 말랑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의 여행기 책자들 표지에서는 왠지 모를 커피 내음이 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아무 책이나 뽑아 들고 책장을 넘기게 되면 반드시 책의 속표지에는 저자의 사진과 저자의 간략한 소개가 나옵니다. 사진에서는 벌써 자유로운 여행자의 풍모가 반드시 풍겨 나오기 마련이고 이것저것 많이 시도를 해 보았던 울퉁불퉁한 인생사를 드러내는 저자에 대한 소개는 톡톡 튑니다. 예컨데,

"모모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이미 집을 나가 하룻 동안 거리를 쏘다닌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자율 학습을 빼 먹고 무작정 바다가 보고 싶어 부산 행 기차에 올랐다.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했지만, 철학 수업 보다는 기타를 더욱 사랑했다. 입대 직전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 하기 시작했다. 인디 밴드 기타리스트,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거쳐 현재 문화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아침 마다 주머니에 여권을 챙겨 넣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

정도면, 그럭저럭 무난한 소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론 사진입니다. 저자 사진들의 특징을 꼭 무 짜르듯이 나눌 순 없겠지만, 대략적으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적이면서 다소 철학적인 모양새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더 소탈하면서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적인 모양새를 강조하고자 할 때는 대부분 얼굴을 전부 보여주기 보다는 약간은 어두운 조명을 깔고 각도를 약간 달리 하여서 얼굴 윤곽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얼굴을 반 쯤 만 보여 주거나 얼굴에 뿔테 안경을 낀다든지하여 얼굴을 정면에선 보여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소탈한 자유분방함을 강조 하고 싶을 때는 대게 제 멋대로 자란 듯한 수염을 기르면서 다소 과감하게 정면을 보면서 소탈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들이 여행을 하면서 뽑아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발견할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느낌의 글 들입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데이트 중에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비시시 웃으면서 '기내식!'이라고 힘차게 대답했던 그녀." 

라든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여행을 떠나서 만나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너 자신이라고. 인천 공항을 떠나 이십 육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혹은, 

"조그마한 바스릴라1마을에서의 경험은 확실히 내 기존의 생각들을 조금씩 바꾸어 놓기에 충분 했다. 그 들은 작고 변변치 않아 보이는 것들 틈바구니에서도 소박한 웃음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 들의 일상을 잠시 엿 본 나는 그 마을을 나서며 내가 지금 껏 쫓아 왔던 가치들에 대해서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나에게 넉넉한 웃음을 보여준 마누에2가 부쩍 생각이 난다." 

정도의 글들을 한 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진과 함께 발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사진들은 첫 번째 단계의 여행에서 언급한 사진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유명한 것들을 포착하기 보다는 뚝뚝 묻어나오는 자유로움을 포착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단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여행지는 주로 쿠바, 인도, 몽골 사막, 칠레, 터키, 카오산 로드 등등이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야 말로 여행자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단계가 되겠습니다. 바로 그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의 단계입니다. 마치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 가는 방법이 되겠는데요. 사실 이렇게 계속 살아서야 먹고 사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므로 간략하게 자기가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서울을 여행하고 싶다면 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먼저 첫 번째 방법은 좀 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슬슬 집을 나서 집 앞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자기가 학교나 직장과 같이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버스나 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찬찬히 창 밖을 내다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리고 싶을 때 내립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버스 카드를 이용하면 버스 요금은 버스를 탄 횟수가 아니라 버스를 탄 거리에 따라 계산이 되므로 돈도 얼마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가보는 동네가 나오면 내려서 이곳 저곳 휘적거리면서 돌아다녀 보는 겁니다. 그러다 출출하면 밥을 먹게 되겠지요. 이런 식으로 하루 일정을 채운 후에 가능하면 평소에 자신이 자주 유흥을 즐기던 동네가 아닌 생판 낯선 동네에 있는 술집에 가서 홀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때 구천 몇 번이나 천 몇 번 과 같이 네 자리 숫자로 된 버스를 타서 서울 근교 일산이나 분당과 같은 곳으로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그 곳도 여행지에 넣어 포괄적으로 서울과 서울 근교 여행으로 범위를 넓힐 수도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방법은 휴일이나 주말보다는 주중에 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주말이나 휴일에 본격적으로 여행자 기분을 내보는 것입니다. 집에서 여행 베낭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서울시 안내 책자를 챙깁니다. 그리고 인천 공항으로 향합니다.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의 시각을 확인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맘에 들어 하는 곳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시각에 맞추어서 그 인파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리무진을 타고 서울로 향합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서울에 처음 온 관광객인 양 서울을 돌아다닙니다. 경복궁에도 가보고 남산 N 타워에도 올라가서 서울의 전경도 구경합니다. 내려 오는 길에 남산 한옥 마을도 들려 사진도 찍고 인사동에 들려서 전통 음식도 맛보고 한국의 전통이 담긴 중국산 기념품도 하나 사고 삼청동과 가회동을 돌아 보고 조그만 갤러리도 한 번 쓱 들어가 봅니다. 이렇게 비교적 정해진 코스를 다니다보면 서울을 관광하는 외국인도 만나 이야기도 더듬거리면서 주고 받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 제가 처음에는 정해진 관광지를 답습하는 여행을 피하라고 말했던가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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