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과 [낸시 랭]: 예술의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구라 2009. 6. 30. 08:45

누군가가 '예술은 무엇입니까?'라고 거대하고 실체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한다면 '형식입니다.'라고 간략하게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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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 없어 보이는 예술에도 잘 살펴 보면 형식이 들어 있다. 이를 테면 미국에서 자국의 예술가를 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명해진 예술가들 중의 한 명인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은 물감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는데, 관람자가 그 잭슨 폴록의 그림 앞에 서서 그가 '물감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라는 '형식'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작품은 형식을 갖춘 예술품이 된다. 

현대 미술이라는 장르에 속하진 않지만, 김 훈을 예로 들면, 그의 작품 뿐 만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일해 왔다는 점, 그가 독일제 연필로 글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쓴다는 점, 또한 '형식'이 된다.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고 있는 김 훈 연재 소설 페이지에는 그가 직접 연필로 휘갈겨 쓴 원고지가 스캔이 되어 올라 오고 있는데, 그게 결코 괜한 짓거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에서 '형식'을 감상하는 것은 결코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과격하게 나아가 보자면, 잭슨 폴록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꼭 그의 그림을 볼 필요는 없다는 일종의 궤변도 통용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나도 그의 그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어차피 그의 그림에 있어서 '형식'은 예술품 바깥에 있다. 

Pop-Artist 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낸시 랭 Nancy Lang' 또한 이런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만들어 낸 예술품 자체는 아무런 형식도 가치도 찾아 볼 수가 없지만, 그의 예술품 바깥의 요소, 어느 정도 나이 먹은 예술계 주변의 오피니언 리더 남성들의 취향을 잘 겨냥한 아낌없이 베푸는 '애교' 와 남자를 집어 삼킬 것 같은 퇴폐미가 전혀 없는 매력 없는 '섹시함'을 발산하면서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도 그녀의 '매력'들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녀의 '이름 자체', 등등을 통해 볼 때 분명히 '형식'이 들어 있다. 돈에 의해서 마치 모든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 '포스트-모던 Post-Modern'한 시대에서 '실제 생활'에서 형식을 구축한다고 해서 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형식의 수준을 논할 일이고, 싸구려다. (오해 없길 바란다, 지금 싸구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인 '박혜령'이 아니라, 예술가/예술품 '낸시 랭 Nancy Lang'이다.)

한 편 앞에서 말한 '실제 생활'이라는 것이 실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실제 생활'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예술 내부에서 '형식'을 구축하려 하기 보다는, 미디어를 통해서 '형식'을 구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에서 볼 때 '연예인'과 매우 닮아 있다. 배우와 연예인을 비교 하면서 예를 들어 보자면, '배우'는 작품 안에서 '삶'을 연기 하지만, 삶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 연기'를 하는 것은 '연예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미 예술가/예술품의 '형식'이 작동하는 공간은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퍼포먼스 Performance 공간을 벗어나 미디어 공간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고 이런 점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필요도 있다. 잠깐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 보아도, 변기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 오면서, 이미 만들어진 상업 제품과 예술품의 차이가 허물어지고, 미술관과 일상 공간의 경계가 느슨해진 것이 '서구'에서 1917년에 벌어진 일로, 벌써 92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에도 예술은 '무궁한 발전'을 이루었고, 한국 사회는 열심히 '서구'를 따라 잡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연예인'을 굳이 번역하자면 '셀러브리티 Celebrity'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예술가/예술품'이 '미디어'를 통해서 어떤 형식을 구축하려고 드는 새로운 형식을 갖춘 예술 장르를 Celebrity-Art 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탄생으로 바라 보는 것은 어떨까 싶고, 이런 면에서 본다면 삶 속에서 미디어(포탈 사이트, 싸이월드)등을 통해서 '배우 연기'를 하는 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아방-가르드 avant-garde' 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잭슨 폴록으로 돌아가보자. 그가 칭송되었던 배경에는 현대 미술이라는 부분에서 미국이 유럽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 들어 있었다. 팽창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 미술에 있어서도 스타가 필요하다. 나아가 이젠 스타가 필요한 것 뿐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새로운 장르를, 새로운 것, 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새로운 장르로 '셀러브리티-아트 Celebrity-Art' 가 있고 그 한 복판에 '낸시 랭 Nancy Lang'이 있다. 

물론 이미 미국에도 패리스 힐튼 Paris Hilton 과 같은 Celebrity-Art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긴 하지만, 미국은 포탈 사이트가 한국 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아직 Celebrity-Art 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으므로, 먼저 저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국가가 임자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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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형식입니다.'라고 대답할 거라고 했다. 만약 '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치'중에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바꿔서 묻는다면 나는 '진실입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치 중에서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달성되기 위해서 '형식'은 얼마든지 '도구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통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쌓이는 기술 Craft 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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