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하나

김이박 이야기 2009. 5. 21. 21:48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 안. 박, 의 자리 두 줄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자. 그의 옆에는 지속적으로 칭얼대고 간헐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가 하나. 그가 아이를 달래는 품새가 좀 사무적이다.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고 난 뒤 박, 은 가족 들과 함께 출구로 빠져 나가는 도중에 그의 서류를 흘낏 볼 수 있었다. 홀트 아동 복지회. 박은 1991년에 개봉 되었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 제목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 해 박은 해외 입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벌써 십 수년 전의 일이었고, 그 동안 해외 입양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입국 심사대는 미국인, 과 외국인, 으로 나뉘어 있었다. 박과 박의 가족은 외국인 창구 앞에 줄을 섰다. 박은 여행사에서 덮어 씌운 자기네 회사 로고가 박힌 파란색 여권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을 임국 심사관 앞에 내밀었다. 입국 심사관은 말 없이 여권을 휘리릭 넘겨 비자가 박힌 부분을 찾아 냈다. 그 곳엔 F24. 영주권자의 만 21세 이상의 미혼자녀 이민 비자. 공항 문 밖을 나서면서 박, 은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와, 공기 참 시원하다. 


이, 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 보라빛 주름 치마를 꺼내 입고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길을 나섰다. 이, 가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도 이제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반짝거렸고, 바람은 차가웠다. 비가 오는 기간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큰 변화가 없는 날씨 아래서 이, 는 그간 거처를 세 번, 일터를 두 번, 옮겼다. 이, 의 일주일은 간략했다. 월요일 부터 금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나와 영어 학원으로 향했다. 적당한 수준의 영어 수업을 듣고 난 뒤 이, 는 오후와 저녁 내내 한국 음식점에서 일을 했다. 시급은 캘리포니아에서 노동법으로 규정해 놓은 최저 임금 보다 1불이 적었고 사장이 반을 가져가고 남은 팁의 반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었고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한국인들은 유난히 팁에 인색했다. 이, 는 일요일에는 오전 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다. 토요일은 비워 놓고.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이, 는 다운 타운에서 케이블 카를 탔다. 케이블 카 안은 관광객으로 들끓고 있었다. 


김, 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 싸이키델릭 Psychedelic 에 앉아 주인 아저씨와 60년대 미국 음악에 대해서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바 Bar 안은 자욱했다. 담배 연기와 오래 된 각종 포스터와 음악으로. 주인 아저씨 뒤에는 LP판이 수두룩하게 꽃혀 있었다. 오십이 조금 넘은 주인 아저씨는 사십 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 주인 아저씨는 젊은 시절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드로 일을 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아직 해외 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았던 시절. 덕택에 외국에 자주 들락거릴 수 있었다. LP를 하나 둘 씩 사모으기 시작 했고, 그 LP판이 조그만 바 Bar의 한 쪽 벽면을 채울 수 있는 숫자가 되었을 때 주인 아저씨는 일을 그만 두고 바 Bar 를 차렸다. 일을 그만 둔 날 주인 아저씨는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을 보았다. 양조위는 경찰을 그만 두고 왕정문이 일하던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왕정문은 패스트푸드 점을 그만두고 스튜어디스가 되었고, 그는 스튜어드를 그만두고 주인 아저씨가 되었다. 

물론 요즘은 LP판을 건드리지 않은 지 오래다. 주인 아저씨 앞에는 컴퓨터 한 대가 있고 윈-앰프가 랜덤 플레이 모드로 돌아가고 있는 중. 김, 이 컵에 담긴 벨기에산 맥주 호가든을 꿀꺽거리며 마실 즈음 쿵쿵 거리면서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 1967년에 발표 된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 이 꾸역꾸역. 김, 이 주인 아저씨에게 말했다. 내일 가요. 어딜?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미국이요. 도시 이름부터 먼저 말하는 걸 보니 미국에 갈 준비는 다 되었구만. 가서 돈 떨어질 때까지 머무르다 오려구요. 어디서? 친구가 하나 있어요. 안 본지 진짜 오래 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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