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국가

인용과 링크 2009. 2. 9. 16:44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들렀던 대형서점은 영어원서들로 빼곡했지만 정작 말레이시아와 관련한 인문학이나 사회학 서적이 없었다.저는 이 부분에서 무척 공감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정체성이 없이 식민시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우울함이 생기는 군요.

제가 다루는 분야인 법학에서도 이런 근본문제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근대화 (현대화도 아닌)에 많은 문제점을 해결 못하고 있으며 법을 다루는 주체들 조차도 적용기준에 대해서 외국의 기준을 의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선진국이라면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걸맞게 발전한 자신들만의 법적체계와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모방국가에서는 자신들의 가진 법률시스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외국의 유사한 이론을 흉내낼 뿐입니다.

가장 흉내를 잘내는 모방국가는 역시 일본이구요. 하지만 그기까지만 갈 수 있을 뿐 더 이상은 안되는 것이 일본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본을 흉내내기도 바쁜 법률모방국가이죠. 법률모방국가의 특징은 참여자를 모두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문서화된 '논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률가들의 법적 결정을 읽어보면 '이는 신의성실에 반하므로...' 또는 '이는 적정 형량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등의 일반원리를 구체화시켜서 설득해야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냥 일반원리를 최종적 논증으로 제시하고 끝내버리는 일이 흔하게 이루어지죠. 아무도 설득되지 않고 결과를 승복하지 않는 불만시민들만 늘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의 법학은 영어원서나 독일어원서가 서점에 들어찬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에 맞는 이론이나 체계가 없이 원서를 번역해서 짜집기한 정도에 그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전공도 별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원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군요...

자주 들르는 한 문화비평가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다.


인문학이나 사회학이나 뒤에 달린 고고한 '배울 '에 주눅들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야기의 좋고 나쁨은 '도덕'과는 무관하다.)그 이야기들은 자신을 이해하게 해주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없으면 사람은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과 무관한 사회에서 '물 건너온' 이야기를 더 많이 아는 사람은 헷갈리게 된다.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이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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