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추어 본 촛불 시위 관광기

에세이 2009. 3. 29. 03:00

하나,

대한민국 제17대 대통의 당선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그 동안 간헐적으로 드러났던 '시대 정신'이 구체적인 실체로, 하나의 인간으로 등장한 모습에 몸서리 쳤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정책이고 뭐고 간에 그냥 저 한 사람, 저 대표자, 가 싫다는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한국 땅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선거 과정, 당선, 그 이후에 전개된 별의 별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미국 땅의 현실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마음 먹게 한 계기도 되었다. 앞으론 저 현실, 에 몸을 담그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 까, 하는 몽상을 하면서. 어차피, 2007년 팔월 말에 미국에 건너 오면서 몇몇 이들에게, 농담 삼아, '누군가,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꼴 보기 싫어서 미국 간다.' 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문과 촛불 시위 소식, 을 전해 들은 것은 것은 2008년 오월 쯤이었던 것 같다. 그 파문, 을 접하면서 다소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나는 미국 쇠고기를 아주, 잘,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쇠고기가 한국에 수입되는 것에 대해 특별히 내가 발언할 이유가 없었다. '광우병' 쇠고기, 라는 수식어는 과장되어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듯한 각종 선전물들이 거슬렸다. 미국 쇠고기가 그 미국 내 검역 기준 그대로 수입 된다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농촌의 피폐함과 농민에 대한 걱정? 글쎄다. 아무튼 지금까지도 아직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오히려 주목했던 것은 그 이야기, 를 처음 한 어느 유학생 녀석이 그간 난 대통령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 이 없었는데 왠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 녀석과 쇠고기를 사다가 구워먹은 적이 있었고, 문득 그 왠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표현에서 예전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생각났다. 

2008년 유 월 초, 대략 십 개월 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때맞춰서 촛불 시위가 좀 더 격렬해져 있었다. 나는 그 촛불 시위에 가고 싶었다. 가서 보고 싶었고, 가서 느껴 보고 싶었고, 가서 동참, 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대한 내 혐오감, 과 내 반대 의식을 가서 표출 하고 싶었다. 내 개인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어 보이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라는 이유, 는 아무래도 좋았다. 보다 더 적합한 구호나 이유가 있었더라면 나는 더욱 더 좋아했겠지만. 


두울,

촛불 시위에는 나와 내 친구 두 명이 함께 했다. 우리의 그 촛불 시위 참가, 가 관광, 에 가깝다는 것은 확실했다. 우리는 오랜 만에 만난 기념으로 홍대에서 술을 먹었다. 촛불 시위, 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광화문, 으로 향했다. 싸우러 간다거나, 비장한 각오, 이런 것은 없었다. 솔직히 나와 내 친구 두 명을 이끈 가장 강한 동인은 호기심,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내 분노, 를 과연 이 촛불 시위, 를 통해서 표출 할 수 있기는 할까, 를 고민했다. 

시청 역에 내리니 가장 먼저 나를 반겼던 풍경은 아스팔트 포장 도로 곳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잡상인' 들이었다. 종로 거리에 죽 늘어선 갖가지 길거리 음식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어쩌면 그 촛불 시위, 의 숭고함, 을 저 '잡상인'들이 망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 잡상인, 들을 비난할 권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각주:1]

광화문 사거리에 가까이 갈 수록 열기가 느껴졌다. 함성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앞으로 앞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서 마침내 이순신 장군 동산 밑에 전경 버스가 일렬 횡대로 앞 길을 탁 가로 막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곳에 이르자, 문득 밤하늘이 붉게 느껴졌다. 숨이 턱 막혔다. 일렬로 늘어선 전경 버스는 왠지 이 모든 거대한 부조리, 를 상징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전경 버스 위에는 젼경 들이 마치 개미떼 처럼 포진해 있었다. 머리 속은 하얘지고,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나를 휘감았다. 저걸 뚫어야 한다. 저걸 뚫고 지나가서 청와대로 가야 한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왠지 청와대로 진격해서 그 대표자, 를 끌어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이 들기 시작했다. 




깃발 들이 나부꼈고, 마이크에서는 열렬한 구호가 터져 나왔다. 다들 흥분해 있었고, 나 또한 흥분했다. 좀 더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싶어서 우회 했다. 일행 들과 삼청동 쪽으로 향했다. 교보문고 앞을 지나 우회하는 길은 좀 더 다른 풍경 이었다. 소위, 문화 시위, 답게 어느 인디 락 밴드의 공연이 한 켠에선 한창 이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종각역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안주와 맥주 캔이 눈에 띄었다. 서울 한강 고수 부지의 휴일, 같았다. 

삼청동으로 항하는 길에 군복을 차려 입은 예비역, 들의 무리가 눈에 띄었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 이열 종대로 열을 맞추어 행진, 하고 있었고, 그 오른 쪽 옆에는 소대장 역할을 맡고 있어 보이는 어느 해병 예비역, 이 인솔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 녀석이 장난 삼아 그 뒤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 뒤를 말없이 따라 갔다. 반대편에서 걸어 오던 한 무리 중에서 어떤 여자 분께서 "군인 아저씨들, 수고 하시네요. ^^" 라고 말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환호를 보냈다. 군대 생활이 조금이나마 보상, 을 받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길을 가는데 어느 외국인 남성, 이 어느 한국인 여성, 에게 뭔가 영어, 로 말을 걸고 있었다. 이열 종대 속의 한 녀석이 그 외국인 남성, 에게 잠시 눈길을 주자, 그 소대장 역할을 맡고 있던 녀석이 그 녀석에게 타박을 주었다. "야, 뭐 들으면 뭔 소린지 아나?" 

삼청동 앞의 상황은 이순신 장군 동상 밑과는 달리 좀 더 격렬했다. 시위대와 전경 사이의 간극은 좀 더 좁았기 때문이었다. 격렬한 욕설이 오갔다. 전경 버스의 철망을 뜯어내려는 움직임이 한창이었다. 한 시위자는 전경 부대의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과 계속 말다툼을 벌이는 중이었다. "아니, 왜 못 지나가게 하는 거예요?" "좀 지나가자구요." "말을 안 들으니깐, 청와대 앞에 가서 얘기를 좀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세엣,

다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으로 향했다. 이 곳도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더 격렬해져 있었다. 문득 홍대 입구를 배회할 만한 옷차림을 한 몇몇이 눈에 들어 왔다. 녀석들은 정확히 내가 한 때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프랑스 68혁명 때는 말이야.."

어디 선가 밧줄이 등장했다. 그 밧줄은 전경 버스에 묶였고 사람들은 그 밧줄에 매달렸다. 나 또한 그 밧줄에 매달렸다. 그리고 밧줄을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전경 버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뚫리는 건가. 우회하면서 본 바로는 일렬 횡대로 늘어선 전경 버스 뒤에는 다른 전경 버스들이 늘어 서 있었고, 더 많은 숫자의 전경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 밧줄을 잡아 당겨서 저 일차 벽을 무너 뜨리는 거다. 그러는 거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경 버스가 조금씩 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경 버스는 마치 연환계에 걸린 위나라 조조의 선단 처럼 굳게 서로서로 연결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힘들어 보였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더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울부짓기 시작했다. 때맞춰 노숙자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전경 버스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와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버스 위로 올라간 그 아저씨는 웃통을 벗어 던지고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몇 박자 지나지 않아서, 전경 들에 의해서 그는 버스 밑으로 끌려 내려 갔다. 

생각을 좀 해보기 시작했다. 결국 이 촛불 시위의 궁극의 목적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탄핵, 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라는 이유보다 나에겐 그 이유, 목적이 훨씬 더 설득력 있었고, 훨씬 더 와닿았다. 그때 스친 생각은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내 스스로 그런 결론이 나자, 저 마이크를 잠시 빌려서 사람들를 선동하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네엣, 

조금 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지쳐갔다. 문득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좀 휑하게 느껴질 무렵, 친구 녀석이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기분이 슬슬 나빠지고 있다면서. 기분이 슬슬 나빠지고 있다면서. 이대로 여기 계속 있다면, 결론은 이미 인터넷 방송, 들을 통해서 본 것 처럼 날이 밝게 되면 전경 들은 이제 공격을 시작할 것이고 몇 몇 사람들은 연행 되고 시위대는 뿔뿔히 흩어지게 될 예정이었다. 그 때 까지 버틸 여력이, 그리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종각역에서 택시를 잡았는데, 우리 보고 촛불 시위에 참가 했다 오는 길이냐고 묻더니만, 자기는 촛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태우지 않는다며 그냥 가버렸다. 겨우겨우 택시를 잡고 친구 집으로 향해 주린 배를 채우고 술을 좀 더 먹은 다음 잠을 청했다. 

이상이다. 


덧.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은 쿠데타, 나 체육관 선거, 를 통해서 권좌에 오른 것이 아니다.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투표자 중 49%의 지지를 업고 당선이 되었다. 실은 이 사실이 가장 끔찍하다. 그리고 그를 당선 시켰던 '문화적인' 환경, 은 아직도 크게 변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사, 라는 것을 친구와 해 보았다. 나와 그 친구는 정든 서울, 을 떠나 멀리 지방, 으로 '유학'을 가 이제 바햐으로 산과 바다를 벗삼을 예정이었다.

    그 친구의 장사 아이디어, 는 대학 졸업식 시즌에 맞춰서 졸업식장을 돌아다니면서 셀룰로이드 필름을 팔자는 거였다. 충무로에서 필름을 싸게 도매가에 살 수 있는 곳도 이미 알아 놓았다는 말도 했다. 나보곤 자본금만 좀 투자하면 된다고 말했다. 녀석이 나를 꼬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이제 우리는 지방, 으로 '유학'을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울, 여자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여자들을 앞으로 만나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대충 그 여자들이 다니는 대학들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은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연대 독수리 빌딩, 하면 아, 거기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한다든지 말이다. 왠지 몰라도 당시 내겐 꽤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그리하여 우리, 는 일 월 과 이 월 대략 이 개월에 걸쳐서 대학 졸업식장 들을 배회하면서 기념 사진을 기필코 찍어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상가 이상으로 필름을 팔면서 폭리를 취했다. 곳곳에서 필름, 과 각종 먹을 거리, 를 파는 사람들에 섞여 우리도 필름,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숭고한 졸업식장, 을 개판 오분 전 으로 만드는 것에 일조를 했다.

    그렇게 해서 구경하게 되었던 소위, 대학가, 라는 곳은 참으로 놀라운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강남역, 부근이야 어차피 유흥가, 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가, 주변에 서점이 즐비 하다던지, 고즈넉하다든지,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샘 솟는다든지, 하는 내 환상은 정말이지 순진무구한 착각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어떤 여대, 옆 풍경이 가장 놀라웠는데, 그 곳은 모델 학원, 성형 외과, 코스메틱, 옷 가게, 화장품 가게, 로 즐비했다.

    물론 맘에 드는 대학가, 도 있긴 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쏠쏠한 수익을 남겼던 장사, 경험을 기억 하면서, 나는 그 이후로 대략 반경 오 킬로미터 이내에 논과 밭과 산과 바다 밖에 없었던 내가 다녔던 대학을 좀 더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요즘은 다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니까 더 이상 필름, 깃발이 졸업식장, 을 어지럽히는 일은 없을 듯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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