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지 못한 자 감상

에세이 2009. 5. 6. 21:22

윤종빈 감독의 대한민국 군대에 관한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각주:1]를 누구, 와 같이 보았다. 누구, 와 영화를 같이 꽤 보았는데, 그 중 한국 영화는 한 편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보니 나에겐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DVD, 윤종빈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 VCD 가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좀 셌고, [올드보이]는 나를 바짝 끌어 당겨 스크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만든 영화 긴 했으나, 최근에 다시 보니 별 다른 감흥도 일어 나지 않는 데다가, 그 안에는 그다지 한국적인 것도 없고 또한 한국에 가 본 일이 없는 누구, 에게 한국의 풍경, 을 보여 주기에도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용서 받지 못한 자]를 골랐다. VCD는 사 놓았으되 이 번이 두 번째 감상 이었다. 

[용서 받지 못한 자]가 한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나는 그 영화를 어떤 이, 와 같이 보았다. 영화의 후반 부에 감독이 직접 연기한 어리버리한 신병이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지만 차가운 대답을 들은 후에 절망한 나머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담배를 피우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야, 이제 저 새끼 좆 되겠다." 라고 내 뱉었고, 옆에서 어떤 이, 가 "왜?" 라고 물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영화관 앞 돌벤치에 앉아서 담배만 피워 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버스 정류장으로 항했고, 손을 들어 어떤 이, 에게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떤 이, 에게서 문자가 왔다. "수고 했어, 오빠." 참 고마웠던 그 문자 메세지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며칠 뒤에 같은 곳에서 감독과의 대화, 가 있었다. XX대 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옆에는 같은 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스탭진들이 함께 했다. 조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등. 질문이 오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 알 수 없는 '데자뷰' 현상이 느껴졌다. 나란히 앉아 있는 같은 학교 선후배인 그 들의 모습에서 문득 내무반에 정렬해 있는 병장, 상병, 일병, 이병의 모습이 느껴졌다. 

누구, 와 [용서 받지 못한 자]를 다시 보는데 몸이 무척이나 가려웠다. 오랜만에 모든 상황과 대사들이 내 몸에 바싹바싹 와서 닿았기 때문이었다. 누구, 는 나에게 역시 한국 사회, 는 대단히 폭력적인 것 같다고 말을 했는데, 별로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다시 보니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조금 작위적이고 관습적이었다.[각주:2] 어리버리했던 신병이 자살해 버리는 것, 그리고 그 어리버리했던 신병에게 잘 해주려고 했던 주인공 또한 자살해 버리는 것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 상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공감이 되질 않았다. 한편, 그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진행자가 두 주인공의 관계, 에서 동성애, 의 냄새가 난다고 질문을 해서 당시에는 좀 생뚱 맞았는데, 과도하게 죄의식을 느끼다가 결국 자살 해 버리는 주인공 녀석이 친구(하정우)를 통해서 계속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모습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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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카투사는 아니 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울 용산 미8군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막사의 1층과 2층은 미군들이 사용했고, 3층은 한국군이 사용했다. 막사 1층에는 미군들의 옷을 세탁하고 수선하고 구두를 닦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미군에 고용되어 있었다. 'Out-sourcing 외부용역'이었다. 식당에서 우리들, 카투사들, 미군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은 모두 미군에 고용된 한국 사람들이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소대원들이 우르르 밖에 몰려 나가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제설 작업은 제설차가 대신 해 주었다. 미군은 돈이 충분했다. 

  1. 1960년에 존 휴스턴이 만들었던 영화 제목, 그리고 1992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고 주연한 영화 제목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서 따온 것이다. 최근에 주목 받은 한국 영화 [똥파리]의 영문 제목은 [Breathless]로 이 제목은 1960년에 장-뤽 고다르가 만든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영문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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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독은 이에 대해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 기억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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