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에세이 2009. 5. 18. 06:22

...Movies have a hypnotic power, too. Just watch people leaving a movie theatre; they're usually silent, their heads droop, they have that absentminded look on their faces, unlike audiences at plays, bullfights, and sports events, where they show much more energy and animation. This kind of cinematographic hypnosis is no doubt due to the darkness of the theatre and to the rapidly changing scenes, lights and camera movements, which weaken the spectator's critical intelligence and exercise over him a kind of fascination. Sometimes, watching a movie is a bit like being raped.

[My Last Sigh], Autobiography by Luis Bunuel.

...또한 영화에는 최면적인 힘이 들어 있다. 극장을 떠나는 사람들을 한 번 살펴 보자. 대게 말 한 마디 없고, 고개는 떨구고 있으며, 저 마다 넋이 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다. 연극, 투우, 운동 경기와 같이 생동하고 활기찬 것들을 보고 나온 관객들과는 다르다. 이 같은 영화의 최면적인 힘은 물론 의심할 바 없이 어둡고 컴컴한 영화관과 재 빠르게 바뀌는 장면, 조명, 카메라의 움직임 등에서 나오는 것으로, 관객들의 지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영화에) 매혹 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때때로, 영화를 보는 것은 이를테면, 강간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마지막 한숨], 스페인 영화 감독 루이스 부뉴엘 자서전 中 중간 부분[각주:1].



극장에서 본 생애 첫 영화가 무엇이었는진 알 수 없다. 동네 친구의 아버지가 동네 친구와 나를 재재개봉관에 데리고 가서 본 제목도 기억 안나는 미국산 코메디 영화, 그리고 동시 상영된 [예스마담]일 수도 있고, 혹은 어머니 손을 붙잡고 지금은 없어진 신사동 씨네하우스에서 보게 된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일 수도 있다. 단지 난 흑백 영화 [모던 타임즈]를 보고 나온 뒤의 느낌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대낮에 극장에 들어가서 어두 컴컴한 곳에서 영화를 보고 다시 밝은 햇빛 아래로 빠져 나왔을 때, 다시 마주한 현실 세계는 물컹물컹하고 명료하지 않았다. 

[왕의 남자]를 보고 나왔을 때였다. 그 영화는 놀라운 걸작이라고까지 부를 순 없지만, 잘 만들어진 수작이었다.[각주:2]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예닐곱 층을 내려 오는 동안 둘 셋 무리지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그 어떤 싸-한 공기가 맴돌았다.[각주:3] 난 그 순간 이 영화가 꽤나 인기를 끌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천 만 명이 넘을 줄이야.

또 다른 천 만 명을 넘게 동원한 영화 중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은주의 얼굴을 열심히 쳐다 보았고, 장동건이 연기한 진태가 막판에 내뿜는 광기는 전혀 공감이 되질 않았다.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1관 거의 맨 뒷줄에서 보았는데, 워낙 영화관이 커서 영화가 끝나고 줄을 지어 영화관 밖으로 빠져 나가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꾸역꾸역 영사막 바로 앞까지 와 이제 막 출구로 나가려는 찰나, 맨 앞 줄에 앉아 있던 언뜻 보기에 한 칠십 대 정도로 보이는 어느 노 부부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삭히고 있었고, 부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남편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XX씨가 살아서 돌아오는 거 아니 잖아요..." 너무나도 스펙타클한 전쟁 장면이 실은 불과 몇 세대 전 한국 땅에서 일어난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는데, 그 상황과 그 부인의 '대사'가 너무나도 딱 떨어지는 것이라 지금도 사실 그게 내 정확한 기억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하다. 

또 하나 기억하는 '대사'는 [올드보이]를 두 번째 봤을 때다. 첫 번째 처럼 영사막 가까이 다가가서 '강간'당하기를 기대하면서 보았는데, 두 번째 관람은 역시나 영사막에서 멀찍하니 떨어져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려는 찰나, 내 앞 대 여섯 번째 줄 앞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자리를 박차며 일어 서더니, "...내가 만나면 아주 그냥 죽여 버릴꺼야!" 라고 나지막히 소리쳤다. 오대수가 감금방에서 풀려난 뒤의 나이 쯤으로 보이는 그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아마, 저 아저씨가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일거야. 근친상간 설정이 기분이 나쁜 거겠지. 근데 어쩌면 저 아저씨에게는 미도 나이 쯤 되는 딸이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아마도 그 딸을 보면서 적어도 한 번 쯤은 딸과 자고 싶다, 라는 괴물 같은 생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었을지도 몰라. 물론 그 즉시 그 생각을 황급하게 치워 버렸겠지. 그래서 저렇게 과도한 반응을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난 그 즉시 이 생각을 황급하게 치워 버렸다.

종로 3가에는 서울 아트 시네마라는 극장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장면'을 말하기 이전, 잠시 이 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인사동 뒷 길 비릿한 돼지 고기 냄새를 맡으면서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낙원상가 입구가 나온다. 극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안에는 평소엔 마주할 일이 절대 없어 보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 있다. 한 부류는 나 자유롭고파, 옷 차림을 차려 입었거나 이마에 나 진지한 녀석이야, 라고 써 놓은 것이 보이는 둥 하여간 멀티 플렉스를 다니면 별로 마주치기 힘든 사람들이다. 주로 이 십대에서 삼십 대 중반 정도에 이르는 사람들로 그 들이 향하는 곳은 서울 아트 시네마, 라는 '예술 영화' 만을 전문적으로 틀어 주는 곳이다. 다른 부류는 남자는 주로 색이 들어간 정장에 보타이, 여자는 '토탈패숀'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옷 들로 한 껏 멋을 부린 차림새다. 주로 오십 대 이상 신사숙녀 분들로 그 들이 향하는 곳은 극장과 같은 층에 있는 '성인 나이트' 다. 이렇게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는 서로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각자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잠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하는 참 재미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또한 서울 아트 시네마의 독특한 점은 홀로 와서 영화를 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마치 청담동에선 연예인을 보아도 호들갑 떨지 않고 '시크'하게 구는 것이 불문율이듯이, (그래야 연예인들이 청담동에 계속 오니깐.) 영화 감독과 배우를 보아도 역시 호들갑 떨지 않는 것이 상례라는 것. 

그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장-피에르 멜빌[각주:4]이라는 프랑스 사람이 만든 [그림자 군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장-피에르 멜빌 스스로도 경험했던,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스에 맞서 싸웠던 '레지스탕스'에 대한 이야기인데, '레지스탕스'라는 프랑스 단어에서 모락모락 풍겨오는 낭만적인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폼나게 나치 일당을 때려 부수는 [인디아나 존스]류의 활극은 그 영화에 없다. 단지 조직 내의 배신자를 찾아 내어 처단하는 일에 대한 건조하고 정밀한 묘사로 영화가 꽉 채워져 있다. 아주 묵직한 영화이고 끝까지 보고 나면 진이 빠지게 되는 좋은 영화다. 그렇게 기진맥진해서 영화관을 빠져 나와 극장 내 화장실로 향했다. 단 한 남자가 입구 쪽에서 가장 가까운 맨 오른쪽 구석 소변기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왼쪽 옆의 옆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섰고, (입구에서 가까우니까) 아직 까지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충격이 고스란히 나에게 남아 있었다. 그 충격은 남자가 화장실 안 소변기 앞에서 으레 하게 되는 일을 하는 와중에도 가시질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안 좋은 버릇 중의 하나가 소변기 앞에서도 평소와 다름 없이 괜히 두리번 거릴 때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문득 그 남자를 흘낏 쳐다 보게 되었다. 그 남자는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대략 육십 도 가량 천장으로 들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보통 소변기 앞에서는 정면을 쳐다 보거나 자신의 몸에 달린 것을 쳐다 보게 마련이지 허공을 쳐다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도 소변기 앞에서 권장 될 만한 시선 처리는 아니다. 하지만 허공을 쳐다 보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얼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남자가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 순간 만큼은 영화를 보고 충격을 먹은 한 명의 관객으로 보였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상황들은, 모두 내 해석이 덧붙여진 것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기억을 재구성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밝혀 둔다. 



...Our imagination, and our dreams, are forever invading our memories; and since we are all apt to believe in the reality of our fantasies, we end up transforming our lies into truths. Of course, fantasy and reality are equally personal, and equally felt, so their confusion is a matter of only relative importance.
     In this semiautobiography, where I often wander from the subject like the wayfarer in a picaresque novel seduced by the charm of the unexpected intrusion, the unforeseen story, certain false memories have undoubtedly remained, despite my vigilance. But, as I said before, it doesn't much matter. I am the sum of my errors and doubts as well as my certainties. Since I'm not a historian, I don't have any notes or encyclopedias, yet the portrait I've drawn is wholly mine- with my affirmations, my hesitations, my repetitions and lapses, my truths and my lies. Such is my memory... 
 
[My Last Sigh], Autobiography by Luis Bunuel.

우리의 상상과 꿈은 언제나 우리의 기억을 침범한다. 우리는 줄곧 상상 속의 현실을 쉽게 믿어 버리고, 종국에는 거짓말이 참말로 둔갑한다. 물론, 상상과 현실은 모두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혼동은 (개개인에게) 상대적으로 각기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비록 내가 경계는 하고 있지만,  '피카레스코'[각주:5] 소설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주인공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재미난 사건과 행동들로 차 있듯이, 이 반(半) 자서전에는 내 이야기들이 종잡을 수 없이 널려 있으며, 확실하게 잘못된 기억들 또한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확실함 만큼이나 내 오류와 확실치 않은 것 또한 나인 것이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나에 대한) 어떤 기록물이나 백과사전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기 묘사해 놓은 것들은, 확신과 우유부단함, 반복과 일탈, 진실과 거짓말과 함께 모두 나, 인 것이다. 말하자면, 내 기억들이다.

[나의 마지막 한숨], 루이스 부뉴엘 자서전  시작 부분.[각주:6]



  1. 내 식대로 번역해 보았다. 아직 이 책은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아마존으로 주문했던 이 책을 이제서야 뒤늦게 들춰보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루이스 부뉴엘이 얼마나 유쾌한 사람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물론 원문은 스페인어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영어판이다.) 루이스 부뉴엘에 관련된 서적은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이라는 제목으로 문화학교 서울에서 출판 한 바 있다. (읽어 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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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은 정진영이 연기한 연산군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연산군이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장면, 창호지 창살을 손가락으로 드르륵 튕기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과 반군이 쳐들어 오기 직전에 광대들의 줄타기를 보면서 일순간 환하게 웃던 장면은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결국 하나의 영화는 한 두 개의 장면으로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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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물론 사람들은 대게 엘리베이터안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허나, 반례로 [여 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보고 나왔을 때가 있다. 이미 영화가 끝나갈 때 부터 객석에서는 영화에 대한 야유와 악담이 터져 나왔는데, 그 야유와 악담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치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본 영화 중에 최악이야."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더, [여 교수의 은밀한 매력], [루이스 부뉴엘의 은밀한 매력]은 모두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에서 따온 것이다. 부르주아를 풍자하는 부뉴엘의 똘끼가 번뜩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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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 사람은 [백경(모비딕)]을 지은 미국 작가 허먼 멜빌 Melville을 너무 나도 좋아한 나머지 성을 멜빌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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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 처럼) 링크 여기 의 [2]. 장르별 소설 - 2. 건달소설 항목, 혹은 저기를 참고할 것. 설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소설 장르라고 느꼈다. 또한, '피카레스코'라는 발음에서 느껴지는 '우아함'과 뜻 자체는 거리가 참 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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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좋아하는 글들을 번역하는지라 재미는 있는데, 역시 번역은 어렵고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다. 번역이 맘에 안 드신다면 원문을 읽으시길 바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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