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드리밍 아이디어 판

카테고리 없음 2009. 5. 21. 20:18

사 년제에 다닌 뒤 사 년이 지난 뒤,에 만난 여자. 영화를 전공하는, 감독을 지망했지만 재능은 없어 보였고, 차라리 단역 배우가 그나마 나아 보였던. 담배를 많이 피웠고, 분당에서 자라 났지만 분당을 혐오했던, 그게 계기가 되어서 만났던, 그래서 상수동 앞에서 같이 살았던, 그러다가 결국은 파리로 유학을 가버린, 김은 그런 그녀가 마냥 부러웠던, 하지만 그만큼여유 돈은 없었던, 그래서 싸이키델릭에서 일을 했고, 하지만 돈은 충분치 않아서 등록금을 빼돌렸고, 몰래 지금 미국에 가려는, 중산층 집안의 자제인.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서 션, 은 친구 김, 을 기다렸다. 따로 주차를 하지 않고 공항 주위를 두 바퀴 돌았다. 세 바퀴를 돌 때 쯤 션은 여행 가방을 들고 서 있는 김을 발견해서 차에 태웠다. 이게, 몇 년 만이냐. 그러게 정말 오랜 만이다. 션은 김을 차에 태워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팔로 알토 Palo Alto 로 데리고 갔다. 강남역에 있었던 이태리 파스타 전문점 팔로 알토 Palo Alto 가 이 곳에서 따온 것 임을 김, 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건물들이 아기자기 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김에게 션이 미국에 오자 마자 부자 동네로 데려오는 것이 아닌데, 라고 말했다. 그들은 어느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했다. 김은 처음 맛 본 베이글이 생각보다 맛이 없어 다 먹지 못하고 카페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 문득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홈리스 Homeless 들이 눈에 들어 왔다. 김, 은 이어 스탠포드 대학교를 구경했다. 그 곳의 스페인식 건축물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내에는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잘 알 수 없는 로댕의 조각들이 있었다. 김은 조각품들의 커다란 손과 발과 몸의 굴곡들을 보면서 어떤 기운을 느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하기 전에 그들은 잠깐 월-마트에 들렸다. 아직 미국식 대형 마트점이 한국에 대중화 되기 이전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이 공간은 김에게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구석 구석을 구경하니 한 켠에 진열되어 있는 사냥총도 보이고, 용도 조차 짐작하기 힘든 갖가지 공구 셋트들,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스포츠 용품 들이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금문교였다. 그 위용에 김의 입이 쩍 벌어졌다.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문교. 저 다리를 공사하다가 죽은 인부 숫자가 더 많을까, 아니면 공사 후에 저 다리 위에서 뛰어 내려 자살한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을까. 션은 생각에 잠긴 김을 다시 차에 태워 금문교 근처를 드라이브하다 일본식 정원에 멈춰 섰다. 관광을 온 놈 치곤 사진을 너무 안 찍는다며 사진 좀 찍으라는 션의 배려였지만, 김은 그 순간 미국에서 발견한 일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션은 다시 김을 데리고 금문교를 건너, 사진 찍기 좋은 소살리토 Sosalito, 티뷰론 Tibulon 으로 향했다. 현대 자동차에서 출시했던 스포츠카 티뷰론이 이 곳에서 따온 것 임을 김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언덕 들 위에는 깨끗하고 하얀 멋진 집들이, 영화 속에서나 보던 집들이 있었다.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데. 응? 무슨 그림? 그러게, 대체 무슨 그림일까나.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하는 길에 김은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꼭 보아야 할 곳, 일명 지그재그길, 롬바르드 길 Lombard Street를 보고 싶다고 션에게 말했다. 김의 머릿 속에는 여행 책자에서 본 갖가지 꼭 가보아야 할 곳들에 대한 정보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션은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은 여행 책자에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그 곳을 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션이 김에게 너는 서울에 살면서 남산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본 일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는 와중, 그들은 마침내 롬바르드 길에 도착했다. 겨우겨우 찾아낸 그 지그재그길을 션의 차를 타고 내려 오며 김은 숙제 하나를 끝마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아직 해야할 과제는 도시 마다 한 보따리가 남아 있었다. 


션, 은 바빴다. 미국에 이민을 온 뒤로 항상 바빴다. 션은 바쁜 시간을 쪼개 공항으로 김을 배웅 나갔다. 처음엔 너무 오랜 만에 만난 김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션은 관광을 온 김을 데리고 이 곳 저 곳을 다녔다. 관광을 온 김에게 의미 있는 것은 결국 멋진 사진을 찍어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상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며칠 머무는 것으로 어떻게 이 곳을 알 수 있을까. 사실 김을 데려간 카페는 션이 미국에 처음 이민 와서 일했던 카페였다. 하지만 다소 들떠있는 김에게 그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박, 은 대학을 다니던 도중 휴학을 하고 IT 벤처 사업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산업으로 IT 산업과 신용 카드 산업을 꼽고 있었다. 서류만 잘 갖춰 놓는다면 당시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박은 한 때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렸던 삼성역에서 강남역 사이의 테헤란로, 테헤란 벨리에 그럴 듯한 사무실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 년 반이 지난 뒤 박은 빚과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그 사무실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박은 자신이 왜 실패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IT 붐이 거품 이어서였는지, 모든 것을 걸고 창업을 한 자신과 달리 다른 녀석들은 단지 하나의 경험으로 여겨서 였는지, 그냥 자신의 능력 부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좌절해 있는 박에게 박의 아버지가 이미 오래 전에 신청해 놓은 미국 이민 심사가 통과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박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은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영어 이름을 션, 이라고 지었다. 

션이 일했던 카페는 알게 모르게 유명한 카페였다. 그 카페는 실리콘 밸리에서 IT 벤처 기업을 차렸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션은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실패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IT 닷컴 붐을 타고 벤처 기업을 차려서 성공한 사람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길을 가다 발에 채일 정도로 그득했다. 미국인들은 낯선 사람에게도 뭔가 자신과 공통점이 발견 된다 싶으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 놓았다. 션이 만약 한국에서 이런 공간을 발견했으면 한국에 머물러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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