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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3.23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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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12.04 강남 8학군
  5. 2009.08.10 신윤복의 월야밀회 月夜密會
  6. 2009.07.23 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2
  7. 2009.07.20 김이박 여행기, 파리
  8. 2009.07.13 미인 美人
  9. 2009.07.10 노마드 Nomad
  10. 2009.07.10 메이드 인 차이나
  11. 2009.07.10 간판
  12. 2009.07.10 여기나 거기나 거기나 여기나
  13. 2009.07.09 돈냄새
  14. 2009.07.09 김이박 여행기, 신두리
  15. 2009.07.04 김이박 여행기, 상동리
  16. 2009.06.30 김이박 유학기
  17. 2009.06.30 [잭슨 폴록]과 [낸시 랭]: 예술의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18. 2009.06.27 인간적인 1
  19. 2009.06.25 11.5%
  20. 2009.06.22 북한과 삼성그룹 비교
  21. 2009.06.20 [이명박]과 [소라 껍데기] : 공공 미술품 관점에서
  22. 2009.06.10 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23. 2009.06.09 아빠! 힘내세요
  24. 2009.06.03 김이박 종교 체험기
  25. 2009.06.02 김 훈 단상
  26. 2009.06.021
  27. 2009.06.02 보진 않았지만, [마더]에 대한 잡설 2
  28. 2009.05.29 권위주의
  29. 2009.05.29 박민규 연재 소설을 통한 잡설 2
  30. 2009.05.25 돈 리 Don Lee

ㅋㅋㅋ

2010. 5. 13. 18:41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ㅋㅋ ㅋㅋ ㅋㅋㅋ
ㅋ ㅋㅋ ㅋㅋㅋ ㅋㅋ ㅋ ㅋㅋ ㅋ
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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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구라 2010. 3. 23. 17:06
다음은 소설 [1984]의 첫 머리이다. 


"1899년에 태어 났더라면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을 것이고, 1930년에 태어 났더라면 전쟁에 휩쓸렸을 것이고, 1960년 즈음에 태어 났더라면 데모를 했을 것이다. 1930년 즈음에 남아메리카에서 태어 났더라면 체 게바라를 쫓아 다녔을 것이고, 1940년 즈음에 북아메리카에서 태어 났더라면 히피로 살았을 것이다.

1984년 생. 내게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들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옳다는 확신을 가질 일들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옳다는 확신을 가지며 동지들과 우애를 다지며 일치감과 소속감을 가질 일들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근래 쭉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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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

인용과 링크 2009. 12. 4. 19:44

"...그러므로 세르반테스에게서 새로운 것은 기사적 생활태도를 반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 즉 이상적/낭만적 세계와 현실적/합리적 세계 중 그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세계상에 나타난 화해할 수 없는 이원론 곧 이념은 현실세계에서 실현될 수 없고 현실은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세르반테스)는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이상주의와 현실세계에 적응하는 분별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주인공 돈 키호테에 대한 그의 분열적 태도, 문학의 새로운 시기를 여는 그 태도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학에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구제자와 배신자 ,성자와 신성모독자가 구분되어 나타났으나 이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동시에 성자이자 바보가 되어 있는것이다. 유머에 대한 감각이 한 사물의 정반대되는 양면을 동시에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한 성격의 이중성에 대한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문학에서의 유머의 발견을 의미한다..."

p 196,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2권, 제2장: 매너리즘,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반성완 옮김, 1999.


"...The novelty in Cervantes's work was, therefore, not the ironic treatment of the chivalrous attitude to life, but the relativizing of the two worlds of romantic idealism and realistic rationalism. What was new the indissoluble dualism of his world-view, the idea of the impossibility of realizing the idea in the world of reality and of reducing reality to the idea..."

"...He(Cervantes) wavers between the justification of unworldly idealism and of worldly-wise common sense. From that arises his own conflicting attitude to his here, which ushers in a new age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Before Cervantes there had been only good and bad characters, deliverers and traitors, saints and blasphemers, in literature; here the hero is saint and fool in one and the same person. If a sense of humour is the ability to see two opposite sides of a thing at the same time, then the discovery of this double-sidedness of a character signifies the discovery of humour in the world of literature-of the kind of humour that was unknown before the age of mannerism..."

p 146~147, [The Social History of Art] Volume II: Mannerism, Arnold Houser, translated by Stanley Godman, 1951.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 '문화예술사'라는 수업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 네 권을 읽었다. (지금은 그 수업이 없어졌다) 몇 명씩 조를 짜서 한 꼭지씩을 맡아서 발표를 해야 했는데, 그 당시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맡았던 부분이 매너리즘이었다. 대학 수업을 자꾸 언급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희곡의 이해'라는 수업에선 희비극 꼭지를 맡았었다. 그러고 보면 관심사랄까, 방향이랄까는 항상 비슷했던 것 같다. 내친김에 생각나는 거 하날 더 언급하자면 박찬욱-봉준호-홍상수 영화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희비극'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책의 매너리즘 부분은 한 세 번쯤 읽은 것 같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한 번을 읽었는데, 고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읽었던 소설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책 읽는 행태를 돌이켜 볼 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책 네 권 전체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고 볼 순 없을 것이지만, 하우저의 책 네 권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면서 읽어 나갔기 때문에, 내용은 다 까먹었어도 그의 관점은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중고책 장터서 1불을 주고 영문판 [돈키호테]를 샀다.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왠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일단 제목은 읽어 두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마존을 뒤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고책 네권을 샀다. 몇 문단 정도 읽어 보고 종이 냄새도 잠깐 맡아 보았다. 3불 99전인 각각의 배송비가 책 네 권 각각의 값보다 '훨씬 많이' 나왔던 것은 당연지사. 

그러다 결국 1965년에 출판된 [Mannerism: The Crisis of the Renaissance and the Origin of Modern Art 매너리즘: 르네상스의 위기와 현대 예술의 기원]까지 사버렸다. 제목 때문이다. 특히 '...the Origin of Modern Art 현대 예술의 기원' 이라는 부분. 사 놓고 안 입는 옷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듯이 사 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책이 자꾸 날 끌어 당기니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1892년에 태어나 1978년에 죽었고, 영화사에서 일한 경력도 가지고 있는 아르놀트 하우저는 매너리즘을 현대 예술의 기원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덧 붙이자면, 당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다 읽고 난 뒤에 들었던 생각은 책의 제목이 [서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동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라는 것. 아니, 동-서양을 구분하자기 보다는 서로 관련이 있을 듯한 한/중/일 삼국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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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8학군

에세이 2009. 12. 4. 18:04

홍정욱이 쓴 [7막 7장]을 가장 최근에 발견한 건 산호세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친구의 아버지 책상 위에 그 철지난 책이 고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이 자기 자랑과 치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 고백을 하자면 나는 그 책을 한국에서 유행이 되었던 당시, 꽤 재미나게 읽었다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그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서 소위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간략하게 묘사해 놓은 미국의 동부 문화와 서부 문화의 차이가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서울의 강북 문화와 강남 문화의 차이를 묘사해 놓은 책은 왜 없을까. 

'국민학교'때 까지 도봉산과 북한산을 매일 보면서 등하교를 하다가 중고등학교를 강남(의 변두리)에서 다니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집의 사정이 내가 강북의 국민학교를 다닐 때보다 강남의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더 어려웠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번도 내가 완전히 강남의 문화에 동화 되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강남의 문화라는 것이 뭐 별건 아니다. 갖가지 브랜드 명칭을 줄줄 읊조린다든지, 대략 십 몇 만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게스'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를 입고 '캘빈 클라인' 티셔츠를 입고 추워지면 그 위에 '더플 코트'를 입는 정도랄까)

아직도 기억나는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8학군'이라는 표현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온 다큐멘터리로 기억한다. 강북의 아이들과 강남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진행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서로 다른 운동장에 각각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운동장의 땅을 파서 뭔가를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메마른 운동장의 땅을 파야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 다큐멘터리는 친절하고 조곤조곤하고 간질간질한 음성해설이 없었고, 그저 그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집단의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험 결과는 예상 대로인데, 강북의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서 그 과제를 수행해내었다. 몇 명은 메마른 땅을 파기 쉽게 하려고 물을 떠왔고, 몇 명의 아이들은 또 뭔가 다른 일들을 했다. 강남의 아이들은 이기적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하나 둘 씩 운동장을 떠났다. 강남의 아이들이 떠나고 난 뒤 이런저런 도구들이 어지럽혀진 채로 남아 있던 풍경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을 무렵에 나는 왜 도봉산과 북한산이 보이는 집을 떠나 강을 건너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당시 어머니는 우리 집의 형편이 어려워져서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거나, 아님 당시 다니고 있던 흑석동에 있던 교회가 너무 멀기 때문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 둘 다 별 납득은 가질 않았던 설명이었다. 그리고 막상 다니던 교회는 이사를 간 뒤에 이름을 대면 바로 알 만한 소위 강남의 대형 교회로 옮겼으니까.

아마 '8학군'으로 가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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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월야밀회 月夜密會

에세이 2009. 8. 10. 08:29



신윤복(1758~?)이 그린 [월야밀회 月夜密會]라는 그림이다. 좋아하게 '된' 그림이다. 물론 모든 그림이 어느 순간 부터 좋아하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쓰는 건 내가 '의식적으로' 저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엔 한국인의 숫자 보다 외국인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일부러, 서양 화가의 그림이 아닌 한국 화가의 그림을 찾기 시작했고, 이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좋아하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가을 즈음이었다. 신윤복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이전이었다. 이후 서서히 그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인 2008년 여름에 '간송미술관'에 저 그림을 직접 보러 갔었는데, 소장 작품 개방하는 것을 다소 까다롭게 관리하는 미술관의 규칙 때문에 저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신윤복 열풍'이 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그 시점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았던 것이 한국 사회의 그 '어떤 분위기'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담, 잠시 비교적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그림을 소개해보자.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 Egon Schiele(1890-1918)의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2004년에 출간 된 민음사판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나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주루륵 꽃혀 있는 도서관 서가 앞에서 [인간 실격]이라는, 단호하고도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이 맘에 들어 집어 들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당시 내 감정 상태와 고민들과 맞물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쇠꼬챙이를 집어 넣고 휘휘 돌리는 듯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주인공 요조 ([인간실격]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고는 하는데, 왜 따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홍대 여신' 요조가 아니다. 요조의 노래는 들어 본 적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럴 시간에 역시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오지은이나 정민아의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 와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책 표지에 있는 저 자화상을 쳐다 보게 된다. 주인공 요조와 저 자화상이 참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생각했고 쳐다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을 주는 그림에 매혹된 나는 이제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대형서점을 거닐다가 미술 코너에 에곤 실레와 관련된 책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들춰 보게 된다. 관심은 좀 있으나 책 한 권을 (사고 싶진) 공들여 읽고 싶진 않았던 나는 그림들을 조금 감상하다 집에 와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서 에곤 실레의 다른 그림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에곤 실레에 대한 정보가 글쓴이의 의견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는 한 사이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에곤 실레라는 사람에 대해서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저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더욱 더 좋아하게 된다."


신윤복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공식적인 기록 빼고 그가 실제로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다는 얘기. (그러다 보니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진부한 상상을 도발적 시도로 착각하는 듯이 보이는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하다 못해 그의 생애 조차도 1758~? 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에곤 실레의 생애 1890~1918 처럼 1918-1890=28 이라는 간단한 산수를 통해서 만 스물 여덟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 한 번 더 매혹되어 볼 만한 요소 조차도 없다. (물론, 에곤 실레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는 신윤복이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 보다 왠지 더 매혹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그림에 찍혀 있는 낙관을 통해서 에곤 실레가 1912년, 즉 그의 나이 만 스물 두 살에 그렸던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월야밀회'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신윤복과 에곤 실레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신윤복이 김홍도의 제자였고 영향을 받았다는 '설'을 받아 들인다면, 둘 다 당대 유명한 화가였을 김홍도,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의 영향을 받아 들였으면서도, 그들의 스승들과는 다른 독특한 자기 만의 화풍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 [월야밀회 月夜密會]를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을 쳐다 보면 볼 수록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왼쪽의 남자는 군관 같다. 그 남자에 와락 안기어 있는 여자는 누굴까. 남자의 아내는 아닐 것이다. 같은 집에서 같이 먹고 자는 아내를 담벼락 밑에서 야심한 시각에 '어두운 밤 달빛 아래 몰래 만날 月夜密會' 이유가 없다. 오른 쪽에서 그들을 엿보고 있는 여자는 누굴까. 이들의 만남을 주선해 준 사람일까? 혹시 남자의 아내? 아님 길을 가다 이들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엿보고 있는 제3자?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이제, 그림의 '형식' 들을 감상해 보자. 먼저 구도. 인물과 배경의 배치가 매우 정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달이 있고, 그 맞은 편인 오른 쪽 아래에는 담과 건물과 나무들이 슬쩍 보인다. 군관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담벼락의 선과 맞닿아 있고, 그 선을 위 아래로 끝까지 연결하면 (왼쪽 공간이 조금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림을 전체적으로 이등분한다. 



이런 좌우 대칭 구도는 신윤복의 다른 그림 [기방무사 妓房無事]에서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역시 이야깃 거리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역시 [월야밀회 月夜密會]에서 가장 중요한 구도는 사선 구도이다.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면서 군관이 쓴 모자,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물론 저 남자가 군관이라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까지도 인위적으로 이 사선 구도에 일치 시켰다. 심지어는,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여자의 두 발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실제 사람이 취하는 자세를 옮겨 온 것이라 보기에는 대단히 어색하다. 그 두 발은 그림의 전체적인 사선 구도에 맞춰져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쌍 남녀의 발들. 군관 남자에 안겨 있는 여자의 발은 그 여자가 이미 사선 구도 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문제는 군관 남자의 오른 쪽 발이다. 발 모양이 거꾸로 되어 있다.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여자의 발이 보기에 어색하다면 군관 남자의 발은 그냥 불가능한 자세다. 그런데도 저 남자의 오른 발은 뒤집혀져서 그림의 사선구도를 강조하는 기능을 하도록 그려져 있다. (이게 이 그림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왼 발. 세 사람의 여섯 개의 발 중에서 유일하게 군관 남자의 왼 발 만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있고, 그 방향은 다른 모든 발들과 수직으로 되어 있다. 군관 남자의 그 왼 발은 왠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석이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의 하나인 '남근'을 한 번 사용해 보자면,) 저 발은 왠지 '남근'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으로 감상할 '형식'으로는 세부적인 선들과 색깔이 남아 있는데, 특별히 길게 할 말은 없다.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들의 선들, 특히 군관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휘날리는 묘사가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도나 배치(layout)에는 비교적 민감한 편이지만 색깔에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편이라서, 색깔에 대해서 특별히 길게 적을 말은 없다. 다만 담벼락에 기댄 여자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붉은 어떤 것이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과 대비되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보태고 싶다. 


이상이다. 위에 적은 것들은 모두 그림을 오래오래 쳐다 보다 보니 발견하게 된 것들이다. 그럼, 이제 다시 [월야밀회 月夜密會]를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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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인용과 링크 2009. 7. 23. 00:26

하나,

몇년 전 부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눈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제14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를 알라딘 미리보기를 통해서 시작 부분만 조금 읽어 보았는데, 재미있고 맘에 들어 언젠간 전체를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주원규가 썰을 푸는 방식도 문체도 맘에 들고 무엇 보다 '강남역 7번 출구/신촌역/압구정'과 같이 서울의 특정 장소를 그 장소에서 풍겨오는 느낌과 함께 소설 속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게다가 소설의 '대사건'이 펼쳐지는 무대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거려지는 공간인 삼성역 코엑스몰.


두울,

몇년 전 부터 책표지의 저자 소개를 눈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내가 눈여겨 보는 저자 소개는 다음과 같은 종류의 것 들로써, 이른바 [여행에세이]에서 주로 발견 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대충 검색해서 나온 첫 번째 결과를 인용한다.)

19XX년 출생. '지구에 와서 건진 건 우연히 카메라를 손에 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하늘냄새를 킁킁거리며 살아가는 그녀. 다양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여러 잡지에 ‘티양Teeyang’이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글을 실어왔다. 현재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XXXXX의 사진부 팀장으로 활동 중에 있다. 

날마다 하늘냄새를 킁킁거리며 살려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궁금하다. 듣기만 해도 참 힘들어 보인다. 가만 보면 저자 소개에도 어떤 '트렌드'가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이런 씨네21 김혜리 기자 글 스러운, 마치 '낙타를 닮은 속눈썹이 차양을 드리운 상한 눈은 물기를 비쳤다가도 금세 파란 빛을 발하는(김혜리가 쓴 유시민에 대한 묘사)' 듯한 저자 소개들은 누가 쓰는 것일까? 저자가 직접? 출판사 마케팅 팀장님이? (혹은 그 팀장님의 지시하에 팀원 김이박 대리가?) 아니면 저자 소개 전문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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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여행기, 파리

김이박 이야기 2009. 7. 20. 00:44

김이박은 문득 파리 생각을 했다.

'아아. 파리. 아니지. 빠리라고 해야지. 파리라고 하면 날아다니는 파리와 헷갈릴 수 있으니. 다시 빠리. 아아. 빠리. 물론 빠리라고 발음 할 때 이미 내 마음은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어. 그렇게 내 맘이 춤을 출 때면 빠리에 가서 택시 운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야. 그리고 나서 책을 하나쯤 써도 좋겠지. 제목은 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정도가 어떨까 싶어. 어때, 근사하지? 서울의 택시 운전은 술 냄새와 톱밥 냄새에 쩔어 있지만 빠리의 택시 운전은 에스쁘레쏘 향과 끄로와쌍 향에 젖어 있겠지. 아. 끄로와쌍 향이 뭔진 몰라. 먹어 본 적도 없어. 그냥 넘어 가자구. 시적 허용. 오케?'


김이박은 일 년 뒤 빠리에 갔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내려 노르드 역으로 갔어. 메트로를 타고 삐갈 거리로 갔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빠리지엔느 들이 나를 반겨 주더군. 얼마나 예쁘던지! 저 치렁치렁한 금발과 휘날리는 스카프와 펄럭이는 치마와,,, 어라랏. 나한테 다가와 전화번호가 들어 있는 명함을 주고 가더군. 봉수와 Bonsoir?'


삐갈 거리는 사창가로 유명한 곳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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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美人

에세이 2009. 7. 13. 20:54
서울의 강남구와 서초구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은 번잡하고, 시끄럽고, 특색은 하나도 없는 프랜 차이즈 중심의 레스토랑으로 가득 차 있는 곳. 장점이 있다면 교통의 요지라는 것. 이건 한 이 년 전 까지의 기억이다. 서울은 워낙 모든 것들이 바뀌는 곳이니까.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바뀌는 방향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곳이니까. 

그런 특색없는 공간에 특색있는 술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미인'. 나이 드신 할머님과 할머님의 아들인 듯한 삼십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분과 그 남자 분의 부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기억한다. 가게 바깥의 흰색 간판에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엷게 스케치가 되어 있었고, 내부 벽에는 미대를 나온 부인되시는 분이 작업한 추상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황태구이 안주와 맥주를 곁들이면 참 맛있었다. 자주 갔다. 자주라고 해봤자 다 합쳐서 열 번을 넘지는 않았겠지만. 그 곳을 발견하고 나선 각기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도 모두 그 곳으로 데려 갔다. 갈 때 마다 그 안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테이블은 다 합쳐서 대략 일곱 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한 테이블에 네 명씩 앉을 수 있다고 치고 테이블이 손님들로 꽉 차도 대략 스물 여덟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술집이었다. 

뭔가 강남역스럽지 않았다.


딱 한 번 스물 여덟 명을 모두 채운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여느 때 처럼 황태구이와 맥주를 시켜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주 오랫동안 보아온 얼굴들이라서 사실 굉장히 새롭고 불꽃튀는 이야기란 없었는데, 문득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몇 명이 들어와서 맞은 편 벽의 테이블 다섯 개를 가리키면서 여길 좀 예약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면서. 그리고 테이블을 모두 붙여 한 데 모은 다음 한 명은 다시 핸드폰을 붙들고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메웠다.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 그룹은 이내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 그룹도 남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어느 덧 열 몇 명이 모여 드는 데도 모임에 여자 한 명 없다는 사실은 무척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엔 같은 부대에서 근무를 한 군대 모임인가 싶었다. 하지만 테이블 마다 적당한 안주 하나씩 깔리고 술잔이 각각 놓였는데도,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별 다른 대화가 없이 핸드폰 액정 화면을 바라 보거나 시계를 바라 보는 등 하나 같이 딴청을 피우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사람 들이 더욱 많아져 스무 명을 넘었을 무렵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그 누군가가 등장했다. 모인 사람은 모두 남자, 그리고 그 누군가도 남자였다. 그 누군가가 등장한 이후로 그 술집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군가 밖에 없었다. 술집을 운영하는 나이 많으신 할머님과 할머님의 아들인 듯한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분과 그 남자분의 부인되시는 분도, 나와 내 친구 두 명도, 묵묵히 입을 닫은 채 그 누군가의 말을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그 누군가의 말을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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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Nomad

2009. 7. 10. 22:35

탈북자도 
노마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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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차이나

2009. 7. 10. 22:32

중국 대사관 앞
시위대의 팻말

FREE TIBET
티벳에게 자유를
SHAME ON CHINA
부끄러운 줄 아시오, 중국이여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라벨

MADE IN CHINA
메이드 인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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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2009. 7. 10. 22:09

저것들은 소리없는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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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나 거기나 거기나 여기나

2009. 7. 10. 22:02

포드차 지붕 위 휘날리는
성조기와 푸른 다윗의 별

그차의 범퍼 스티커,

ABORTION IS MURDER and MURDER IS CRIME!
낙태는 살인이고 살인은 범죄다!


서울시청 앞 가득메운
태극기와 성조기

그들의 플랜카드,

친북좌파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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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냄새

2009. 7. 9. 10:13

천 원 짜리
일 달러 짜리
똑 같은 냄새
향긋하면서도 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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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여행기, 신두리

김이박 이야기 2009. 7. 9. 10:12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상동리 앞에서 김이박은 하룻 밤 묵을 곳을 찾다가 여인숙을 발견했다. 주인장에게 만 원을 쥐어 주고 방안으로 들어선 김이박은 순간 온 몸에서 가려움을 느꼈다. 호텔, 유스호스텔, 모텔, 여관이 아닌 여인숙은, 난생 처음이었다. 가방을 놓고 방을 나와 여인숙 옆 슈퍼로 들어가 하이트 맥주 한 피처와 담배 한 갑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샀다. 여인숙 앞 길에선 어느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눈웃음을 치며 김이박에게 학생, 놀다가지 그래, 라고 말을 걸었고, 한 쪽 켠에는 얼굴이 까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서 있었다. 

방 안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마음이 가라 앉자 그제서야 가려움이 사라졌다. 서서히 그 한 평 짜리 공간에 익숙해져 갔다. 김이박은 순간 이 곳이 잠시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야 하는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과연 살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지금 꾸고 있는 꿈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꿈을 꾸고 있을 걸. 간단히 답을 내리고 난 후 가방을 열어 책 두 권을 꺼냈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여행의 목적이 죽으러가는 건 아니었으나. 

김이박이 자기방 한 켠의 커다란 책꽂이 앞에 서서 딱 두 권을 챙겨야겠다고 마음 먹었을때, 이상하게도 그 두 권이 연결되어 눈에 들어 왔다. 자기방에서는 전혀 읽히지 않았던 그 글줄들은 이상하게도 여인숙방에서는 죽죽 읽혔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얇은 벽을 타고 옆 방 여자의 신음소리가 김이박의 귀에 들어왔다. 남자와, 어쩌면 여자와, 혹은 홀로 만들어 냈을 그 소리. 솔직했다.

이틑날 아침 김이박은 여인숙 앞 히드라 침 튀기는 소리가 요란했던 PC방에서 갈 만한 곳을 검색 한 끝에 버스를 타고 변산반도로 향했다. 변산반도에 도착해서 노을, 시원한 바다 전경,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한적한 바닷가, 한적한 먹자골목의 횟 집 창문마다 와글와글거리는 주문표들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익숙한 풍경들. 지겨웠다. 

역전의 또 다른 여인숙으로 향했다. 이번엔 가렵지 않았다. 만 오천원 짜리 여인숙방은 오천원의 값어치 만큼 욕조와 TV가 딸려 있었다.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고 맥주를 마시며 오랜 만에 TV를 켰다. 놀랍게도 TV에서는 마침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이 방영 되고 있었다. 나이스 타이밍. 김이박은 TV를 틀어 놓은 상태에서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뿌연 수증기와 뿌연 담배 연기가 섞였고, 마침 TV에서는 [몽중인 夢中人] 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완벽했다.

영화가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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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여행기, 상동리

김이박 이야기 2009. 7. 4. 19:24

김이박은 불현듯 떠오르는 낭만적인 공상들과 돈을 챙겨 집을 나섰다.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는 기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 어디선가 접했던 낭만적인 풍경에는 항상 기타와 칠성 사이다와 춘천행 기차가 함께 했지만, 춘천엔 가본 적도 없었고 기타는 칠 줄 몰랐고 칠성 사이다는 마셔 본지 오래.

서울역에는 전경들로 그득했다. 정부는 전국 농민대회를 일치감치 불법으로 규정지었다. 전경들은 전국 농민대회를 며칠 앞두고 상경하는 농민들을 하나 둘 씩 체포했다. 그는 전경과 농민들을 지나 서울역 매표소 앞에 섰다. 터치스크린이 장착된 자동 매표기 앞에 섰다.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가장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는 지명을 검색하다 그럴듯한 지명 하나를 발견했다. 상동리. 순간 김이박의 머리 속에선 -리, 에 걸맞는 -리, 스러운 풍경들이 펼쳐 졌다. 양촌리는 아니지만 상동리에는 전원마을이 펼쳐져 있고 담임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받기 위해 전원일기를 쓰는 금동이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동리에 가는 기차 표를 손에 쥐고 김이박은 기차에 올라 탔다. 옆 자리에는 한 아줌마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기차가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창 밖에는 익숙한 경부선 고속도로변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 졌다. 상동리. 그는 심지어 그 곳이 어느 도에 있는 지도 몰랐다. 경상도인지 강원도인지 충청도인지 혹은 전라도인지. 경기도일지도 몰랐지만, 왠지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설레였다. 투닥투닥, 투닥투닥. 무궁화호는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냈다. 김이박은 그 소리를 좋아했다. 

옆 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통화를 시작했다. 투닥투닥, 여보세요, 투닥투닥, 아들, 나야. 투닥투닥, 잘 지내 아들? 투닥투닥, 이번 방학 때 내려 올 거지? 투닥투닥, 뭐라고? 투닥투닥, 뭐하는데? 투닥투닥, 안 내려 온지 꽤 되었잖아? 투닥투닥, 그러지 말고 내려 와. 투닥투닥, 아니, 방값도 보내 달라고? 투닥투닥, 용돈은? 투닥투닥, 벌써 다 썼어? 투닥투닥,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투닥투닥, 집 근처에서 과외 해도 되잖아? 투닥투닥, 알았다, 알았어. 투닥투닥, 알았어, 끊는다. 투닥투닥, 투닥투닥, 투닥투닥.

통화를 마친 아줌마는 전화기를 한 동안 만지작 거리다가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어느 새 창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점점 상동리에 가까워져 가는데 아파트의 갯수는 점점 늘어만 가자 김이박은 다소 불안했다. 이윽고 기차가 멈추고 사람들을 쏟아 냈다. 김이박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기껏해야 경기도 언저리에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긴 상동리인데, 여긴 어디지? 

상동리역 앞 광장에는 커다란 관광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광주광역시 관광 안내도. 김이박은 순간, 서울의 청량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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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유학기

김이박 이야기 2009. 6. 30. 18:33

김이박은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오페라의 본 고장 이태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학 과정에서 대학 과정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김이박은 행복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골목 골목 박혀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카페나 술집에서도 성악이 언제나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마치고 김이박은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딱히 이태리에서 성악과 관련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김이박은 성악의 아름다움을 알아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가 못 마땅합니다. 

김이박은 요즘 이태리의 작가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을 번역 하는 일을 합니다. 그는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을 한국에 처음으로 번역한 사람입니다.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이어 한국어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파치노 드니로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재재작년인가 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치노 드니로의 책을 읽은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이태리에 가고 싶어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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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과 [낸시 랭]: 예술의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구라 2009. 6. 30. 08:45

누군가가 '예술은 무엇입니까?'라고 거대하고 실체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한다면 '형식입니다.'라고 간략하게 대답할 것이다. 

...


형식이 없어 보이는 예술에도 잘 살펴 보면 형식이 들어 있다. 이를 테면 미국에서 자국의 예술가를 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명해진 예술가들 중의 한 명인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은 물감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는데, 관람자가 그 잭슨 폴록의 그림 앞에 서서 그가 '물감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라는 '형식'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작품은 형식을 갖춘 예술품이 된다. 

현대 미술이라는 장르에 속하진 않지만, 김 훈을 예로 들면, 그의 작품 뿐 만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일해 왔다는 점, 그가 독일제 연필로 글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쓴다는 점, 또한 '형식'이 된다.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고 있는 김 훈 연재 소설 페이지에는 그가 직접 연필로 휘갈겨 쓴 원고지가 스캔이 되어 올라 오고 있는데, 그게 결코 괜한 짓거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에서 '형식'을 감상하는 것은 결코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과격하게 나아가 보자면, 잭슨 폴록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꼭 그의 그림을 볼 필요는 없다는 일종의 궤변도 통용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나도 그의 그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어차피 그의 그림에 있어서 '형식'은 예술품 바깥에 있다. 

Pop-Artist 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낸시 랭 Nancy Lang' 또한 이런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만들어 낸 예술품 자체는 아무런 형식도 가치도 찾아 볼 수가 없지만, 그의 예술품 바깥의 요소, 어느 정도 나이 먹은 예술계 주변의 오피니언 리더 남성들의 취향을 잘 겨냥한 아낌없이 베푸는 '애교' 와 남자를 집어 삼킬 것 같은 퇴폐미가 전혀 없는 매력 없는 '섹시함'을 발산하면서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도 그녀의 '매력'들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녀의 '이름 자체', 등등을 통해 볼 때 분명히 '형식'이 들어 있다. 돈에 의해서 마치 모든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 '포스트-모던 Post-Modern'한 시대에서 '실제 생활'에서 형식을 구축한다고 해서 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형식의 수준을 논할 일이고, 싸구려다. (오해 없길 바란다, 지금 싸구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인 '박혜령'이 아니라, 예술가/예술품 '낸시 랭 Nancy Lang'이다.)

한 편 앞에서 말한 '실제 생활'이라는 것이 실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실제 생활'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예술 내부에서 '형식'을 구축하려 하기 보다는, 미디어를 통해서 '형식'을 구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에서 볼 때 '연예인'과 매우 닮아 있다. 배우와 연예인을 비교 하면서 예를 들어 보자면, '배우'는 작품 안에서 '삶'을 연기 하지만, 삶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 연기'를 하는 것은 '연예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미 예술가/예술품의 '형식'이 작동하는 공간은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퍼포먼스 Performance 공간을 벗어나 미디어 공간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고 이런 점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필요도 있다. 잠깐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 보아도, 변기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 오면서, 이미 만들어진 상업 제품과 예술품의 차이가 허물어지고, 미술관과 일상 공간의 경계가 느슨해진 것이 '서구'에서 1917년에 벌어진 일로, 벌써 92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에도 예술은 '무궁한 발전'을 이루었고, 한국 사회는 열심히 '서구'를 따라 잡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연예인'을 굳이 번역하자면 '셀러브리티 Celebrity'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예술가/예술품'이 '미디어'를 통해서 어떤 형식을 구축하려고 드는 새로운 형식을 갖춘 예술 장르를 Celebrity-Art 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탄생으로 바라 보는 것은 어떨까 싶고, 이런 면에서 본다면 삶 속에서 미디어(포탈 사이트, 싸이월드)등을 통해서 '배우 연기'를 하는 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아방-가르드 avant-garde' 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잭슨 폴록으로 돌아가보자. 그가 칭송되었던 배경에는 현대 미술이라는 부분에서 미국이 유럽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 들어 있었다. 팽창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 미술에 있어서도 스타가 필요하다. 나아가 이젠 스타가 필요한 것 뿐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새로운 장르를, 새로운 것, 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새로운 장르로 '셀러브리티-아트 Celebrity-Art' 가 있고 그 한 복판에 '낸시 랭 Nancy Lang'이 있다. 

물론 이미 미국에도 패리스 힐튼 Paris Hilton 과 같은 Celebrity-Art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긴 하지만, 미국은 포탈 사이트가 한국 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아직 Celebrity-Art 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으므로, 먼저 저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국가가 임자라고 볼 수 있겠다.


...

'예술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형식입니다.'라고 대답할 거라고 했다. 만약 '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치'중에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바꿔서 묻는다면 나는 '진실입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치 중에서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달성되기 위해서 '형식'은 얼마든지 '도구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통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쌓이는 기술 Craft 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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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짤막한 거 2009. 6. 27. 11:56

그 사람 참 인간적인 사람이야. 인간적이군. 인간적이야. 

대체 뭐가 인간적이란 말인가. 정이 많고, 감정적이고, 격정적이고, 실수도 하고, 비합리적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뭐 그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러한 것들만 인간적인 것인가.

수학과 과학을 만들어낸 것 또한 인간이 아닌가. 기계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계산과 숫자와 합리적인것, A를 삽입하면 F 라는 과정을 통해서 C가 만들어 지는 것. F(A)=C. 이러한 것들 또한 '인간적인' 것들은 아닌가. 법칙과 공식에 맞추어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 기계적이고 싶어 하는 것. 반복되는 일상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안전을 갈망하는 것 또한 인간적이지 않은가.

파시즘-권위주의-폭력과 같은 것들 또한 인간이 자유-평등-박애를 갈망하는 것 만큼이나 대단히 '인간적인' 현상아닌가. 파시즘-권위주의-폭력과 같은 것이 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일관되게 비일관적인 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덕목'이 아닐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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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에세이 2009. 6. 25. 04:48

MUNI 버스를 기다리는데 신문 자판대에 놓여 있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co Chronicle   1면 기사 제목이 눈에 확- 들어 와서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니,

 "(California) Stete's 11.5% jobless rate highest since 1941 | 실업률 11.5% 로 1941년 이후 최고조에 달해".


아니, 길거리 걸어다니는 사람들 열 명 중 한 명이 지금 직업이 없단 소리냐.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주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 전체 실업률 9.4% 보다 더 높단 말이냐.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 재정이 파산 상태인 거냐. 그래서 다음 달 부터 MUNI 버스비를 한 번 타는데 1.5 불에서 2.0 불로, 월 정기권은 45 불에서 55 불로 인상하는 거냐. 그리고 기사에 두 번째로 달린 댓글을 보니, 

"We all know what would fix the unemployment problem, don't we? Imagine no foreigners. Yeah, I know, I can't say that. | 뭐가 이 실업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안 그래? '외국인'이 없다고 상상해 보자구. 아, 그래, 알어. 이런 말 하면 안 되지." 

그래, 188개의 추천과 180개의 반대가 달렸구나. 근데, 나야 여기서 순도 백 프로 '외국인'이지만, '니들'은 미국에 이민을 와서 시민권을 가지게 된 동양인들, 미국에서 태어난 동양인들 Asian-American, 도 '외국인'으로 취급하잖아. '니들'도 어차피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다 이민자면서.

아니, 그리고 대공황이 공식적으로 시작된게 1929년 10월 뉴욕 주가 시장 대폭락인데, 정작 실업률이 11.7% 의 정점을 찍은 건 그로부터 대략 11년이 지난 뒤인 1941년 1월이었단 말이냐? 그렇담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이번 '공황'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실업률이 무려 (캘리포니아 주 기준으로) 11.5% 에 도달 했으니 이젠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냐?  (링크 시켰던 기사 에서 "The state's peak unemployment rate was 11.7 percent in January 1941." 라는 문구를 보고 1929년 부터 시작 되어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난 1941년 까지 이어진 대공황 당시 캘리포니아 주 실업률이 11.7% 가 최고였을거라고 '추측'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확대 해석이다. 대공황 당시 가장 높았던 캘리포니아 주의 실업률이 몇 프로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미국 전체로는 23.6% 였다고 한다. 1941년 이전 수준으로 더 나빠질 수도 있겠다...) 근데 결국 미국이 대공황에서 빠져 나온건 1941년 12월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며 참전하게 된 세계 제2차 대전이 있고 나서 아니었나? 

음, 미국이 '악의 축'으로 꼽았던 나라 중에서 이란은 요즘 격렬한 민주화 시위가 한창 진행 중이고, 얼마 전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Downtown 에서도 이란 민주화 시위 지지 시위가 있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란의 이번 시위는 이란의 '(누구신가, 가 그렇게도 강조하시는 목표인)국가 브랜드 향상'에 큰 공을 세우고 있지 싶다. 그래서 눈을 돌려 보니, 다른 '악의 축' 북한은 어느 덧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실태를 취재하던 샌프란시스코 Current TV의 중국계, 한국계 미국인 여기자 두 명을 납치해서 12년의 강제 노동형을 때렸고, 여전히 핵 개발은 진행 중이시고, 이런 시절에 후계자 교체까지 진행하면서 권력 삼 대 세습이라는 초유의 일을 진행중이신 와중인데, 얼마전에 진행 된 한-미 정상회담에선 '강력한 대북압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지.

그래, 아무튼 실업률 11.5%라 이거지? 그래서 그저께 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맥도널드에 딸려있는 창고 옥상에 누군가가 올라가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댄 것이냐? 대체로 흑인들과 소수의 동양인이 사는 이 동네에 왜 스케이트 보드를 옆에 낀 백인이 엄하게 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단 말이냐. 불과 이십 미터 떨어져 있는 경찰서에서 아무도 오질 않길래 신고를 해야 하나, 근데 신고를 하면 무슨 '죄'가 성립이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May I take your order? | 뭘 주문 하시겠어요?" 라는 낭랑한 기계음으로 내 단잠을 깨워주시는 Drive-thru 맥도널드 판매원도 여전히 주문을 받기에 여념이 없는 걸 보아 '사유지 칩입'으로 신고할 생각은 없는 듯 해 보여,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잠시 귀를 기울여 보니 제대로 들리는 건 Fucking San Francisco 밖에 없었는데, 순간 저 인간은 무슨 이유로 San Francisco가 Fuck스러운걸까, 어차피 저리 소리를 지르는게 관심 받고 싶은 듯 하여, 밖에 나가 '대화'를 시도해 볼까 하다가, 참았는데, 아마도 1년 반 정도 전이면 대화를 시도해 봤지 싶은데, 지금 보다 호기심에 차 있던 시절이었던지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밖은 어느 덧 잠잠.

음, 창 밖을 보니 금빛 아치, 오십 개의 별과 열 세 개의 흰 색-붉은 색 띠, 가 바람에 펄럭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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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삼성그룹 비교

인용과 링크 2009. 6. 22. 14:30

북한 North Korea




남한 South Korea, 의 삼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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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소라 껍데기] : 공공 미술품 관점에서

구라 2009. 6. 20. 18:30

The Museum of Post-Modern Art

[이명박]


2007년 12월 19일 作

투표자들 | 피와 뼈와 살

여기저기




[소라 껍데기]


2006년 

클라에스 올덴버그, 쿠제 반 부르겐 | 알루미늄 주물

청계광장






해설

[이명박]은 그를 뽑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상징하면서도, 살아 있어 걸어 다니기 때문에 미술관 밖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공공 미술품이다. 그를 뽑은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 있던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그를 뽑았던 사람들에게, 마치 거울을 들여다 보는 듯한 효과를 지닌 자기 반영적인 작품으로 기능하길 기대하고 있다. 요즘 들어 어느새 검찰, 경찰과 같은 공권력이나 구속, 수사와 같은 것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데, 본래의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점차 잃어 버리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안타깝다. 

[이명박]이라는 공공 미술품은 그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아 차리기 쉽다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지닌다. 이런 측면에서 [이명박]은 이명박이 서울 시장에 재직하면서 서서히 공공 미술품으로 기능하려 하고 있을 2005년-2006년 무렵에 설치 되었던, 서울시 청계천 초입에 솟아 있는 [소라 껍데기]라는 또 다른 공공 미술품과 비교 된다. 이 작품 [소라 껍데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보를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 정보들은 공공 미술품 [이명박]의 배경 정보를 아는 것과 달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검색이 필요하다. 

당시 회사 KT에서 작가에게 들인 돈과 제작비를 모두 포함해서 34억 원을 들여 서울시에 기부했던 이 [소라 껍데기]는 팝 아트 Pop-Art 작가 클라에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계-유태계 미국인과 그의 아내 쿠제 반 부르겐이 공동 설계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Spring]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데, 작가들은 청계천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이 이 [소라 껍데기]를 설계했다. 당시 '서울의 랜드 마크'를 만들 것을 염두에 두고 서울시 산하에서 청계천 상징 조형물 선정과 제작 등의 업무를 위임 받은 곳은 서울문화재단이라는 곳으로 당시 대표 이사는 [이명박]과 함께 역시 요즘 살아 있는 공공 미술품으로 활약 중이신 [유인촌]이다. 추측하건데, 선정 과정에서 어느 유명한 미술관련 인사가 미술계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클라에스 올덴버그라는 사람을 추천했을 것으로 짐작 된다. 

이 [소라 껍데기] 감상에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계천과 그 [소라 껍데기] 사이에는 아무런 역사적, 문화적 맥락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청계천과 그 [소라 껍데기] 사이에는 아무런 역사적, 문화적 맥락도 없다, 라는 맥락'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지만, 비로소 그 맥락 안에서 [소라 껍데기]가 품고 있는 진정한 메세지가 이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 [소라 껍데기]를 감상하는데는 여느 현대 미술 Modern Art 이 그러하듯이 사전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고 감상에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해야 한다. 허나, 본래 공공 장소에 설치 되는 공공 미술품이라는 것은 얼른 알아먹을 수 있어야 하므로 이러한 [소라 껍데기]의 특징은 공공 장소에 설치 되는 공공 미술품으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저 [소라 껍데기]는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아서 제대로 다시 전시 되어야 한다. 마치 현대 미술 Modern Art 이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을 떠나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 처럼. 변기는 미술관 안에 있을 때 예술품이지, 화장실 안에 있으면 변기일 따름인 것 처럼.

[이명박]이라는 공공 미술품의 공식 전시 기간은 (아직까지는) 2013년 2월까지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은 여러 번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라건데, [이명박]의 전시 기간이 끝나는 대로 그 재산으로 저 34억 짜리 [소라 껍데기]를 서울시로부터 다시 사들여서 이명박 자신의 집 뒷 마당에 세워 놓아 가치를 높여 주었으면 한다. 그의 집 뒷 마당이야말로 저 [소라 껍데기]가 놓여져 있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맥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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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과 링크 2009. 6. 10. 13:39

하나,

모든 문제를 이념이나 도덕성의 문제로 환원하여 판단하려는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답이 안 나오는 부류다. 그게 좌파건 우파건 어디건 별 상관이 없다. 문자주의, 근본주의 개신교 신앙에 사로 잡혀 '개독'이라고 욕을 먹는 사람들과 별 반 다르지 않다.


하나 그리고 반,

물론 '개독'이라고 욕을 먹는 이유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전도 방식'도 들어 있는데, 그 방식은 도를 아십니까, 나 예전 운동권, 의 그것과 별 반 다르지 않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선후배가 모인 자리 혹은 직장 상사와 부하가 모여 있는 술자리에선 '설교'가 있을 것이고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교'와 '전도'는 대단히 한국적인 문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두울,

체 게바라 티-셔츠을 입는 것과 롯데월드에 가서 '프렌치 레볼루션 French Revolution'이란 이름이 붙은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스타벅스에 가서 Fuck the Capitalism! 이라는 글씨를 쓰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아, 그리고 체 게바라는 전투 과정에서 발생했던 탈영병을 가차 없이 처형 했다지.


세엣,

읽고 싶은 책. 2009년 4월 30일에 영어판이 나왔는데,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6월 10일에 한국어판이 번역되어 나왔다. 놀랄만큼 빠르다. 그리고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추천사가 붙어 있는 듯 하다. 한데, 샌프란시스코 시립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 보니 나오질 않는다. 캐나다 사람이 쓴 책이라고 홀대 하는 건가. 


네엣,

'콘텐츠', '웹 2.0' , '통섭 교육' 와 같은 '용어'들에 대해선 항상 의구심을 가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비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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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짤막한 거 2009. 6. 9. 17:43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영어 회화 열심히
댕기고, 있잖아요
국제중 입시 학원
다녀야, 하잖아요
담 달부턴 발레도
배워야, 하잖아요


아빠! 힘-내세요오
우리가, 있어요오오




해설 : 1997년 한국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등 한국 경제가 그럭저럭 거덜이 난 이후 1998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BC카드 광고에 삽입 되었던 노래 하나가 문득 갑자기 떠올라 자꾸만 머리에서 맴돈 나머지, 딸린 애는 없지만, 당시 신용 카드 하나 만드는 것이 블로그 하나 만드는 것 보다도 쉬웠던 것을 상기하며, 원곡 가사에 내용을 좀 더 덧붙여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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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종교 체험기

김이박 이야기 2009. 6. 3. 01:12
믿쑵니까. 아멘. 믿쑵니까. 아멘. 믿쑵니까. 아멘. 김이박, 은 어머니를 따라 기도원에 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 바닥은 군데군데 물이 스며 들어 검게 썩어 있었다. 입구에는 몇 백 켤레의 신발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고, 기도원 건물 안에서는 발냄새가 났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피아노 반주가 흘렀다. 통성기도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이박의 앞 줄에 있던 한 소년이 두 손을 천장에 향해 활짝 벌리고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소년이 몸을 격렬하게 앞 뒤로 흔들 때마다 소년의 무릎팍은 마루 바닥을 찧었고, 그 때 마다 둔탁한 소리를 냈다. 두둑-두둑-두둑. 김이박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넌 너무 차가워. 같은 교회 사람들은 김이박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섭씨 100도로 끓고 있는 물은 36.5도를 유지하고 있는 물에게 넌 너무 차갑다고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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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단상

에세이 2009. 6. 2. 11:45

2001년 출간 된 [칼의 노래]가 유행했을 때, 그 책을 서점에 한 걸음에 달려가서 사서 읽었다. 나중에 학교 내에서 중고책을 사고 파는 바자회가 열렸을 때 그 책을 바로 내놨다. 한 문장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당시 그 책에 담긴 김 훈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집을 읽었을 때는 문장들과 문장들에 담긴 사유를 좋아했다. 

어느 날 강남역 교보문고를 배회하고 있는데 주위가 소란스러워 둘러보니 단편집 [강산무진] 출간을 기념하는 김 훈의 팬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어떤 이, 가 김 훈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싸인을 대신 받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뽑아 들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었고, 말없이 책을 내밀었고, 그는 나를 한 번 쳐다 보고는 이름을 묻고는 싸인을 해 주었다. 그 때 그가 보여준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어떤 이, 의 이름을 대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는 그 책을 들고 집으로 왔다. 다 읽고 나서는 일주일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그 단편집에 담긴 허무가 날 사로잡아서 였는지, 아님 내가 그 당시에 말할 수 없이 허무했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이후 그의 장편 소설은 읽어 보려 한 적이 없었지만, 발표된 단편 소설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는 분명히 유물론자이면서 이상(理想)을 믿지 않으며 가치가 들어가 있는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인데, 이상(異常)하게도 그의 문장들을 읽어 나갈 때, 어떤 정신적인 것들이 깃든다.

김 훈이 인터넷에 [공무도하]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된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한 김 훈이 쓰는 이번 소설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기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장편 소설 중에서 처음으로 시간적 배경이 현대로 설정되어 있다. 그의 말처럼 처음으로 '당대의 일'을 쓰고 있다. 아울러 굳이 정치적 성향으로 분류하자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그가 현재의 '시국 상황' 아래서 연재하고 있는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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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거 2009. 6. 2. 10:02
노빠, 황빠, 심빠, 무슨 빠, 무슨 빠, 무슨 빠. 빠빠빠. 글쎄. 무슨, 각기 다른 빠, 들이 서로 구별되어 오롯하게 존재하는 걸까? 무슨 빠, 라는 실체가 있는게 아니라 한국을 유령처럼 배회하는[각주:1] 빠심(), 이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빠심, 이 있는 한 언제든지 누군가와 결합하여 박빠, 유빠, 등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출몰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다.


  1. 빠심, 을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생각해 보니 오프라 윈프리와 스티븐 잡스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고 바락 오바마도 어느 정도 빠심, 을 업고 당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빠심, 에 더 많은 종교적 심성이 깃들어 있다. 아울러 자꾸 미국하고만 비교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이미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방식으로- 미국화가 진행 된 상황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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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진 않았지만, [마더]에 대한 잡설

짤막한 거 2009. 6. 2. 09:33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를 아직 보지도 않았고, 언제-어디서 보게 될른지 모르지만, 꼭 보고 싶다. 사람들이 [마더]에 대해서 '어머니의 본성'을 다루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내 생각엔 '어머니의 본성' 앞에 '한국'이라는 단어를 추가 시켜 '한국 어머니의 본성'을 다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어머니의 본성, 모성' 뿐 만 아니라 '문화적인 맥락' 또한 반드시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 개신교가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한국' 개신교가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와 같다. 

[마더]를 본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마 [마더]에서 묘사된 어머니를 백프로 이해하고 지지할 것 같은데, 나중에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면 영화를 보고 나온 자식을 둔 어머니들 중에서, 한국계 미국인 나아가 동양계 미국인을 제외한 미국인 어머니에게 [마더]에서 묘사된 어머니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지하냐고 물어 보고 싶다. 아울러 예전에 읽었던 어느 영문 블로그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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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짤막한 거 2009. 5. 29. 21:35

권위주의는 윗 사람에 의해서 결코 타파되지 않는다. '야자타임'을 시작하고 끝내는 건 윗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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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연재 소설을 통한 잡설

인용과 링크 2009. 5. 29. 17:54

박민규 연재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가 끝났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첫 연재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부터 내내 그의 연재 소설을 링크로 달아 두었다. 백화점 직장 내 풍경에 대한 묘사와 '군만두'라는 여자의 캐릭터,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선이 맘에 들어서 즐겨 읽었다. 주인공의 롤-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요한'이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설정한 1985년 즈음이라는 시절을 놓고 보았을 때 너무 세련된 녀석이어서 조금 비현실적인 면이 들기도 했다. 작가가 묘사하는 '못생긴' 여자의 절절한 고백이 담긴 절실한 편지는 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가 잘 구사했던 신랄하고도 경쾌한 풍자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 때 은희경을 좋아해서 그가 쓴 소설을 모조리 다 읽었는데,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을 때 마주한 것은 내가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했던 면도날 같은 문장들이 다 사라진 밋밋한, '문학'을 써보고자 하는 욕구가 여실히 들어난 문장들이었다. 그런 느낌이 그의 이번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에서 조금 느껴진다. 

애초에 작가는 '신파'를 쓰겠다고 말했고, '사랑'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했고, '헤피 엔딩' 이었는데, 끝에서 '못생긴' 여주인공이 찾은 해답은 '프랑크푸르트'라는 아련한 느낌의 독일 도시로의 이민이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아련한 느낌을 주는 스위스 도시 '라우터브룬넨'에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말이죠. 그래서 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특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이 삶이 좋은 거예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 10장 9화에서.

1989년 즈음에 피부색이 그 나라 국민의 대다수와 다른 한 여자가, 다 자라 성인이 된 이십 대 중반에 독일로 간호사로 이민을 가서 십 년 정도 살게 되면, 과연 '특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살 수 있는가ㅡ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 여 주인공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독일어로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할 수 있는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이건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주욱 내내 여자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를 그렇게 상세하게 묘사를 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저 여자 주인공이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독일이 아닌,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이 아닐까. 그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은 아마도 '야만적인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나쁘지 않을까. 아마도 저 여자 주인공은 아마 그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에 독일, 에 더욱 더 잘 정착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정재은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고 옥지영(지영), 이요원(혜주), 배두나(태희), 등이 나오는 [고양이를 부탁 해]라는 영화가 있다. 인천의 여상을 졸업한 아이들의 삶을 공간적 배경을 잘 살리면서 제대로 묘사한 이 작품은 서울에서 나름대로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고자 애쓰는 혜주를 뒤로 하고 지영과 태희가 김포 공항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순간 화면에는 커다랗고 두툼한 고딕체로 'GOOD BYE' 라는 흰색 자막이 화면을 메운다. '지긋지긋한 한국이여 안녕'을 말하는 것 같은 그 자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그 엔딩 장면을 보고 있을 당시 내가 '외국'에 이미 나와 있어서인지 기분이 묘했고, 동시에 그래서 그 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저 두 여자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라는 생각이 머릴 맴돌았다. 사실 '그 이후'의 삶이 더욱 궁금했다.[각주:1]

문득 '기러기 아빠[각주:2]'들의 실상과 그들의 애환은 제법 보도가 되고 알려진데 비해서, 그 기러기 아빠 자녀들의 현실은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대단히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현실'은 어떨까? 

(하여간 쓰다 보면, 결국은 샛길이다, 샛길인데, 그 샛길들을 모아 보면 또 비스무리한 면이 있다.)


  1. 그래서 삼 부작이 유행이라길래 한 번 삼 부작을 나름대로 구상해 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는 이야기고, 두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그 '외국'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그 주인공들이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부웅 뜬 채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째 써 놓고 보니 재미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2. 연예인중에 기러기 아빠가 상당수인 걸로 알고 있다. 아마 통계를 내보면 '일반인'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을 외국에 보낼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동기는 단순히 한국의 공교육 과정이 싫어서 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하는이 영상 에서 1분 이후부터 1분 가량 펼쳐지는 어떤 풍경이 그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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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리 Don Lee

에세이 2009. 5. 25. 10:30

한국계 미국인 작가 돈 리의 소설 [Wrack and Ruin] 2008, [Country of Origin] 2004, [Yellow] 2001, 을 다 읽었다. 그의 소설을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건너 띄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쓰는 문장 자체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주제들이 하나 같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처럼 삶의 단면이 담긴 장면 하나를 찍어서 보여 주기도 하면서, 미니멀한 표현을 통해서 심층부에 깔린 본질을 잡아 내는 탁월한 솜씨는 그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레이몬드 카버의 흔적이 보인다. 한국 소설가 중에서는 이창동의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와 얼마 전에 죽은 홍성원(1937-2008)의 소설집 [주말여행]과 비견 될 수 있겠다. 감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깊숙히 건드린다.

[Yellow]는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여러가지 삶의 단면들을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 준다. 이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2002년에 번역 출판 되었는데, 그 책과 관련된 언론의 상투적인 표현들,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황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재단될 수 없다. 아무튼 단편 소설의 매력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Country of Origin]는 미스터리 소설로, 한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에서 나온 한 미국 여자가 일본에서 시체로 발견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대단히 흥미진진하고 복잡한 플롯과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조금씩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면서 결국에는 제목에 걸맞는 주제 의식을 보여 준다. 재미있다. 

위의 두 개의 소설에서는 물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옐로우'에서는 '국적' 보다는 '인종'에 대한 것이고, [Country of Origin]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띄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므로 '한인 작가'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최근에 보급본으로 출간 된 [Wrack and Ruin]에는 한국계 미국인 두 형제가 나온다. 한 명은 리버럴 아트 컬리지를 나오고 '뉴욕'에서 크게 성공한 예술가지만 그 경력을 뒤로 하고, 북 캘리포니아의 어느 조그만 가상 마을 - 작가가 설정한 - 에 조용히 살고 있고 뒷 뜰에서는 마리화나를 키우고 있다, 다른 한 명은 하버드를 나오고 투자 은행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인디 영화' 제작자로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으로 그가 자신의 형이 살고 있는 그 마을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데, 풍자와 아이러니로 그득한 이 소설에는 특히 '아트 세계'에 대한 풍자가 일품이다. 이 소설에는 예술가 형이 자신이 크게 성공하는 계기가 되는 설치예술품을 한국의 창호지 문창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묘사를 제외하곤 '한국적인 요소'라곤 전혀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위치가 묘한 까닭은,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다. 흔히 볼 수 있는 1.5세대 나 2세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3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의 아버지가 '미국 정부 외교부'에서 근무 했던 이력 때문에 어린 시절을 '서울'과 '동경'에서 보냈다고 한다. 부자는 삼 대를 가야 비로소 부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 세대는 부를 쌓는데 전념을 해야하고, 이 세대는 그 쌓은 부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면, 삼 세대 쯤 가면 이제 어릴 적 부터 풍요롭고도 여유롭게 자라났기 때문에 생각과 행동거지에서 부자다움, 이 뚝뚝 묻어난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선 아직까진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일 세대 이민자는 어떻게든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며, 이 세대 이민자는 그런 부모를 보고 자라면서 좀 더 안정된 정착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삼 세대 쯤 가면 이제,,, 근데 여기 까지 쓰다 보니 어설픈 삼 세대 '이론'[각주:1]'에 어떤 이의 삶을 끼워 맞추는 격이 되어 버려서 그만 해야겠다.



  1. '이론'이 나온 김에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론'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이론'은 '스무 살 법칙'이다. 이 '스무 살 법칙'이 작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스무 살에 결혼하고, 예순 살에 죽는다. 간단하다. 스무 살 아리따운 여성이 마흔 살의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자 마흔 살, 남자 예순 살까지 같이 산다. 그리고 남자는 죽고, 돈 많은 마흔 살 여자는 스무 살 잘생긴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자 예순 살, 남자 마흔 살까지 같이 산다. 그리고 여자는 죽고, 돈이 많은 마흔 살 남자는,,, 적어도 이 세계 안에서는 돈과 미모가 공평하게 분배된다는 특징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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