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리 Don Lee

에세이 2009. 5. 25. 10:30

한국계 미국인 작가 돈 리의 소설 [Wrack and Ruin] 2008, [Country of Origin] 2004, [Yellow] 2001, 을 다 읽었다. 그의 소설을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건너 띄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쓰는 문장 자체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주제들이 하나 같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처럼 삶의 단면이 담긴 장면 하나를 찍어서 보여 주기도 하면서, 미니멀한 표현을 통해서 심층부에 깔린 본질을 잡아 내는 탁월한 솜씨는 그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레이몬드 카버의 흔적이 보인다. 한국 소설가 중에서는 이창동의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와 얼마 전에 죽은 홍성원(1937-2008)의 소설집 [주말여행]과 비견 될 수 있겠다. 감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깊숙히 건드린다.

[Yellow]는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여러가지 삶의 단면들을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 준다. 이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2002년에 번역 출판 되었는데, 그 책과 관련된 언론의 상투적인 표현들,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황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재단될 수 없다. 아무튼 단편 소설의 매력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Country of Origin]는 미스터리 소설로, 한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에서 나온 한 미국 여자가 일본에서 시체로 발견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대단히 흥미진진하고 복잡한 플롯과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조금씩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면서 결국에는 제목에 걸맞는 주제 의식을 보여 준다. 재미있다. 

위의 두 개의 소설에서는 물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옐로우'에서는 '국적' 보다는 '인종'에 대한 것이고, [Country of Origin]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띄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므로 '한인 작가'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최근에 보급본으로 출간 된 [Wrack and Ruin]에는 한국계 미국인 두 형제가 나온다. 한 명은 리버럴 아트 컬리지를 나오고 '뉴욕'에서 크게 성공한 예술가지만 그 경력을 뒤로 하고, 북 캘리포니아의 어느 조그만 가상 마을 - 작가가 설정한 - 에 조용히 살고 있고 뒷 뜰에서는 마리화나를 키우고 있다, 다른 한 명은 하버드를 나오고 투자 은행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인디 영화' 제작자로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으로 그가 자신의 형이 살고 있는 그 마을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데, 풍자와 아이러니로 그득한 이 소설에는 특히 '아트 세계'에 대한 풍자가 일품이다. 이 소설에는 예술가 형이 자신이 크게 성공하는 계기가 되는 설치예술품을 한국의 창호지 문창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묘사를 제외하곤 '한국적인 요소'라곤 전혀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위치가 묘한 까닭은,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다. 흔히 볼 수 있는 1.5세대 나 2세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3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의 아버지가 '미국 정부 외교부'에서 근무 했던 이력 때문에 어린 시절을 '서울'과 '동경'에서 보냈다고 한다. 부자는 삼 대를 가야 비로소 부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 세대는 부를 쌓는데 전념을 해야하고, 이 세대는 그 쌓은 부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면, 삼 세대 쯤 가면 이제 어릴 적 부터 풍요롭고도 여유롭게 자라났기 때문에 생각과 행동거지에서 부자다움, 이 뚝뚝 묻어난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선 아직까진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일 세대 이민자는 어떻게든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며, 이 세대 이민자는 그런 부모를 보고 자라면서 좀 더 안정된 정착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삼 세대 쯤 가면 이제,,, 근데 여기 까지 쓰다 보니 어설픈 삼 세대 '이론'[각주:1]'에 어떤 이의 삶을 끼워 맞추는 격이 되어 버려서 그만 해야겠다.



  1. '이론'이 나온 김에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론'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이론'은 '스무 살 법칙'이다. 이 '스무 살 법칙'이 작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스무 살에 결혼하고, 예순 살에 죽는다. 간단하다. 스무 살 아리따운 여성이 마흔 살의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자 마흔 살, 남자 예순 살까지 같이 산다. 그리고 남자는 죽고, 돈 많은 마흔 살 여자는 스무 살 잘생긴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자 예순 살, 남자 마흔 살까지 같이 산다. 그리고 여자는 죽고, 돈이 많은 마흔 살 남자는,,, 적어도 이 세계 안에서는 돈과 미모가 공평하게 분배된다는 특징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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