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연재 소설을 통한 잡설

인용과 링크 2009. 5. 29. 17:54

박민규 연재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가 끝났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첫 연재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부터 내내 그의 연재 소설을 링크로 달아 두었다. 백화점 직장 내 풍경에 대한 묘사와 '군만두'라는 여자의 캐릭터,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선이 맘에 들어서 즐겨 읽었다. 주인공의 롤-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요한'이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설정한 1985년 즈음이라는 시절을 놓고 보았을 때 너무 세련된 녀석이어서 조금 비현실적인 면이 들기도 했다. 작가가 묘사하는 '못생긴' 여자의 절절한 고백이 담긴 절실한 편지는 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가 잘 구사했던 신랄하고도 경쾌한 풍자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 때 은희경을 좋아해서 그가 쓴 소설을 모조리 다 읽었는데,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을 때 마주한 것은 내가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했던 면도날 같은 문장들이 다 사라진 밋밋한, '문학'을 써보고자 하는 욕구가 여실히 들어난 문장들이었다. 그런 느낌이 그의 이번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에서 조금 느껴진다. 

애초에 작가는 '신파'를 쓰겠다고 말했고, '사랑'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했고, '헤피 엔딩' 이었는데, 끝에서 '못생긴' 여주인공이 찾은 해답은 '프랑크푸르트'라는 아련한 느낌의 독일 도시로의 이민이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아련한 느낌을 주는 스위스 도시 '라우터브룬넨'에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말이죠. 그래서 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특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이 삶이 좋은 거예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느], 10장 9화에서.

1989년 즈음에 피부색이 그 나라 국민의 대다수와 다른 한 여자가, 다 자라 성인이 된 이십 대 중반에 독일로 간호사로 이민을 가서 십 년 정도 살게 되면, 과연 '특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살 수 있는가ㅡ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 여 주인공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독일어로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할 수 있는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이건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주욱 내내 여자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를 그렇게 상세하게 묘사를 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저 여자 주인공이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독일이 아닌,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이 아닐까. 그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은 아마도 '야만적인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나쁘지 않을까. 아마도 저 여자 주인공은 아마 그 독일 속의 작은 한국, 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에 독일, 에 더욱 더 잘 정착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정재은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고 옥지영(지영), 이요원(혜주), 배두나(태희), 등이 나오는 [고양이를 부탁 해]라는 영화가 있다. 인천의 여상을 졸업한 아이들의 삶을 공간적 배경을 잘 살리면서 제대로 묘사한 이 작품은 서울에서 나름대로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고자 애쓰는 혜주를 뒤로 하고 지영과 태희가 김포 공항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순간 화면에는 커다랗고 두툼한 고딕체로 'GOOD BYE' 라는 흰색 자막이 화면을 메운다. '지긋지긋한 한국이여 안녕'을 말하는 것 같은 그 자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그 엔딩 장면을 보고 있을 당시 내가 '외국'에 이미 나와 있어서인지 기분이 묘했고, 동시에 그래서 그 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저 두 여자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라는 생각이 머릴 맴돌았다. 사실 '그 이후'의 삶이 더욱 궁금했다.[각주:1]

문득 '기러기 아빠[각주:2]'들의 실상과 그들의 애환은 제법 보도가 되고 알려진데 비해서, 그 기러기 아빠 자녀들의 현실은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대단히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현실'은 어떨까? 

(하여간 쓰다 보면, 결국은 샛길이다, 샛길인데, 그 샛길들을 모아 보면 또 비스무리한 면이 있다.)


  1. 그래서 삼 부작이 유행이라길래 한 번 삼 부작을 나름대로 구상해 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는 이야기고, 두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그 '외국'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그 주인공들이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부웅 뜬 채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째 써 놓고 보니 재미없어 보인다.
    [본문으로]
  2. 연예인중에 기러기 아빠가 상당수인 걸로 알고 있다. 아마 통계를 내보면 '일반인'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을 외국에 보낼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동기는 단순히 한국의 공교육 과정이 싫어서 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하는이 영상 에서 1분 이후부터 1분 가량 펼쳐지는 어떤 풍경이 그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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