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단상

에세이 2009. 6. 2. 11:45

2001년 출간 된 [칼의 노래]가 유행했을 때, 그 책을 서점에 한 걸음에 달려가서 사서 읽었다. 나중에 학교 내에서 중고책을 사고 파는 바자회가 열렸을 때 그 책을 바로 내놨다. 한 문장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당시 그 책에 담긴 김 훈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집을 읽었을 때는 문장들과 문장들에 담긴 사유를 좋아했다. 

어느 날 강남역 교보문고를 배회하고 있는데 주위가 소란스러워 둘러보니 단편집 [강산무진] 출간을 기념하는 김 훈의 팬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어떤 이, 가 김 훈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싸인을 대신 받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뽑아 들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었고, 말없이 책을 내밀었고, 그는 나를 한 번 쳐다 보고는 이름을 묻고는 싸인을 해 주었다. 그 때 그가 보여준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어떤 이, 의 이름을 대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는 그 책을 들고 집으로 왔다. 다 읽고 나서는 일주일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그 단편집에 담긴 허무가 날 사로잡아서 였는지, 아님 내가 그 당시에 말할 수 없이 허무했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이후 그의 장편 소설은 읽어 보려 한 적이 없었지만, 발표된 단편 소설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는 분명히 유물론자이면서 이상(理想)을 믿지 않으며 가치가 들어가 있는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인데, 이상(異常)하게도 그의 문장들을 읽어 나갈 때, 어떤 정신적인 것들이 깃든다.

김 훈이 인터넷에 [공무도하]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된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한 김 훈이 쓰는 이번 소설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기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장편 소설 중에서 처음으로 시간적 배경이 현대로 설정되어 있다. 그의 말처럼 처음으로 '당대의 일'을 쓰고 있다. 아울러 굳이 정치적 성향으로 분류하자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그가 현재의 '시국 상황' 아래서 연재하고 있는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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