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케루악 잡설

에세이 2008. 9. 17. 12:28

1950년대의 미국은 풍요의 시대였다. 자신감으로 넘쳤던 시대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과 일본을 물리친 미국, 단순히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 뿐 만이 아니라 파시즘에 맞서 '자유'를 수호했다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공장은 다시금 물샐틈 없이 돌아 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시스템은 번영을 구가했다. 상품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노동자들은 일을 해서 그 상품들을 구매하고, 다시 그 돈이 돌고 도는 가운데 번영을 이룩했다. 그리하여 미국식 중산층의 삶, 아메리칸 드림이 물질로써, 현상으로써 구체화 되기 시작했고 그 구체화된 것들은 맥도날드 햄버거 처럼 매우 규격화 되어 있었다. 삶이 너무 규격화 되면 설령 그 삶이 안전하고 미래를 보장하더라도 그 삶 방식 자체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50년대 미국은 이러한 삶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해서 반동의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그 건전한 시민으로써의 삶을 저버린 채 다른 방식의 삶을 개인적으로 구체화 시키려고 했던 세대들을 일컬어 '비트 세대' , '비트 제네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왜 '비트'인지, 비트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단지 '비트 제네리이션'을 정의했던 한 작가를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잭 케루악이다. 그는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를 다니다가 선불교에 심취했고, 약물을 옹호 했던 비트족 시인 앨런 긴즈버그와 윌리암 버로스를 만나고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미국과 멕시코를 여행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잭 케루악은 이 소설을 쓸 때 당시 유행했던 50년대 재즈의 즉흥 연주 기법을 빌어와서 자유롭게 소설을 기술한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잭 케루악은 소설을 여러 번 고쳐서 썼다고 한다. 

보통 한 사람이 유명해지거나, 한 작품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때에는 단지 그 사람이 천재적이거나, 그 작품이 천재성을 띄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시대'와 만났다. 혹은 그 시대가 만들어 냈다는 말이 적합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 보다 더욱 더 끔찍한 것은 그가 사실은 대한민국 '주류', '중산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실체라는 것이다. 대형 서점에 쌓여 있는 영어 '공부' 서적, 자기계발 서적, 경영/마케팅 서적, -해라, -처럼 하면 -한다, 류의 제목을 달고 있는 서적들이 만들어 낸 실체라는 것이다. 부동산에 목을 매고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실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끌어 오자면, [의지의 승리]라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예술가가 만들어 낸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선전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철저하게 계획되어 제작된 그 다큐멘터리는 실로 웅장하며, 자못 감동적이다. '파시즘', '국가주의'라는 내용물의 촌스러움과 상관 없이 형식 그 자체로는 촌스럽지 않고 매끈하게 빠진, 매우 잘 만들어진 선전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다루어 지고 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파시즘에 빠졌던 독일 사람들의 광기와, 히틀러가 내뿜어 내는 말의 마력을 조금 느낄 수 있다. 히틀러의 마지막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연단에 등장해서 '히틀러는 독일이다, 독일은 히틀러다.' 라는 말을 한다. 그 순간 나는 아돌프 히틀러를 만들어 낸 것이야 말로 경제적으로 공황 상태에 있던 그 당시 독일인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