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섬의 비밀에 대한 단상

에세이 2008. 9. 21. 08:27

90년대 초반에 집에 XT 또는 AT/286 컴퓨터를 소장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원숭이 섬의 비밀] 이라는 어드벤처 게임을. 당시 '교육용 컴퓨터'라는 이름을 달고 정확한 용도는 아직 알 수 없으나 하여간 교육에 도움이 될 거라는 취지에서 컴퓨터 열풍이 불었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여기엔 컴퓨터를 파는 사람들이 영리하게도 컴퓨터 앞에 '교육용'이라는 단서를 달아 자녀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는 학부모들을 공략한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그 교육용 컴퓨터들을 가지고 정작 마땅히 할 것은 별로 없었는데, 그 틈새를 메꾸어 준 것이 바로 각종 컴퓨터 게임들이다. 그 중에서도 루카스 필름이 만들어 낸 [원숭이 섬의 비밀]과 같은 어드벤처 게임은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원숭이 섬의 비밀]이라는 게임이 있기 이전에 [매니악 맨션]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미친 과학자가 납치해 간 여자 친구를 구한다는 것이 설정이었는데, 그 주인공의 친구들을 보면, 물리학에 미친 녀석, 펑크락 보컬, 서핑에 미친 녀석, 작가 지망생, 등등. 하여간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다. 그 [매니악 맨션]의 건축 양식은 샌프란시스코 유명한 건축 양식인 빅토리아 양식이다. 이 두 개의 게임을 디자인 한 사람은 론 길버트라는 사람으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아 Bay Area 출신이다. 사실 이 사람은 인터페이스 방식과 진행 방식 등, 장르 하나를 만들어 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무래도 제일 골때리는 것이 게임 전반에 깔려 있는 유머일 것이다. 

몇 주 전, 거의 십 몇 년 만에 론 길버트의 게임들을 다시 플레이 해 봤다. 당시 어드벤처 게임 열풍이 불었을 때는 열심히 매뉴얼을 보면서 클리어 하는데 몰두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열심히 대화들을 읽어 가면서 해 봤는데, 기본적으로 대화 하나 하나가 골때렸다. 시니컬한 유머와 상대방을 공격하는 위트들이 전면에 깔려 있는 데, 예를 들면 중간에 칼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칼싸움이라는 것이 다름이 아닌 얼마나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모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너하고 얘기 하느니 차라리 원숭이하고 얘기하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을 받아치는 방법은, 오, 니 가족들과 다시 뭉치게 된 것을 축하 해. 뭐 이런 식이다. 한국어로는 느낌이 좀 살지 않는다만. 게다가 게임에 기본적으로 '아나키'적인 요소들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일단, 원숭이 섬의 비밀은 아직 21살도 안되서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미국에선 음주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서 신분증이 없으면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나이는 21살이 넘어야 한다.) 주인공 가이브러쉬가 다름 아닌 '해적'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랜 만에 그 게임들을 다시 해 보며 문득 들었던 의문이 있다. 이 게임들은 영어를 모르는 상태로는 즐긴 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담 대체 90년대 초반에 불었던 어드벤처 게임 열풍은 무엇 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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