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그리고 한국

에세이 2008. 9. 23. 15:22

좀 지난 일이지만, 언론에서 한동안 '미드'를 중점적으로 다룬 적이 있었고, 그 미드 열풍의 진원지로 '프리즌 브레이크'를 주로 언급했는데, 정말이지 이거야 말로 예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농구 열풍이 불었을 때 이미 광범위하게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만화 '슬램덩크'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열풍에 편승한 - '마지막 승부'라는 유치찬란했던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만큼이나, 나름 미국 드라마를 사랑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헛다리 짚기 혹은 뒷북치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프렌즈'를 보면서 공부 안 하고 놀고 있다는 죄책감을 나는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라고 달랜지 오래였고, 동시에 C.S.I 라는 추리/스릴러 물은 미스러리 장르 매니아들에게, X-파일이라는 드라마는 SF에 관심이 있는, - 물론 난 SF에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정말 정통(미국식) SF팬들은 아마 '스타트렉'에 좀 더 열광하지 않나 싶다. -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었던 터였다. 

게다가 내 성장기를 잠깐 한 번 되돌아 본다면, 

스위스 군용칼의 이름을 맥가이버칼로 둔갑시킨, 지금 생각해 보면 왠지 포르노에 나올 법한 배우가 나오는 '맥가이버'와 피부가 벗겨져서 그들의 징그러운 파충류 껍질이 드러날 때마다 기겁을 하던 'V'에 이르기까지. 성장기에는 일종의 지침이 되었으나, 미국과 한국이라는 너무나 다른 사회 문화 환경으로 인해서 현실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던 '케빈의 열두 살'과 한때 미국 고등학생들의 표준적인 삶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완전 부자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착한 드라마 '버버리힐즈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미드가 얼마나 많았냔 말이다. (한때 성장기 드라마로 '사춘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기대를 하고 보았지만, 어쨌든 한국이라는 장소적인 현실성은 있었지만,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파고든다는 현실성은 전무하다시피 그냥 착했고, 재미없는 드라마였다)

생각해보면, '비트'를 제외하곤, '교실이데아'를 제외하곤 당시 대체 내가 발 디디고 있던 현실과 관련지어 내가 열광할 수 있었던 영화와 음악은 당시 무엇이었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국내 코리안-아메리칸들에 대한 관심에서 이런저러한 것을 뒤적거리다가 SEAM라는 락 밴드를 이끌었던 박수영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적이 있다. 흑인 음악에서 나왔으되 이제는 거의 백인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버린 '락'의 영역에서 - 특히 90년대 얼터너티브 락이라는 더욱 더 그러하다 - 몇 안되는 동양계 라커였던 박수영의 밴드들의 음악을 마이스페이스와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보았는데, 음악들이 괜찮았다. 뭔가 완전히 독특한 특색은 없었지만, 조용한 힘이 느껴지는 그러한 음악이었달까.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SEAM이라는 밴드는 우여곡절 끝에 세명의 코리안-아메리칸과 한 명의 아이리쉬-아메리칸으로 구성된 밴드였는데, 당시 홍대에서 공연을 가진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의 인터뷰를 읽다가 '코리안'인 내가 공감을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코리안-아메리칸, 나아가 아시안-아메리칸들은 성장기에 자신과 같은 피부색의 롤 모델을 대중문화에서 접하지 못한, 좀 어떻게 보면 이상한 세대라는 것. 내가 (혹은 우리가, 우리 세대가) 성장기에 가장 좋아 했던 영화/음악이 대부분 미국산 이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발디디고 있었던 현실과 별로 연결될 수 없었다는 것. 이 두개가 왠지 비슷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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