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종교사를 읽고

에세이 2008. 12. 12. 23:21

'미국종교사'라는 책이 있다. 번역서가 아닌 직접 저술한 책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알라딘의 책 소개를 그대로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역사와 정치를 살펴볼 때 종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시민종교’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은 그간 미국의 정치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미국의 정치나 여러 정책들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안되는 미국 종교사 통사이며, 한국 사람에 의한 탈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면서, 그 동안 역사 속에서 소외되어 왔던 소수자들에게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이 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주민, 여성, 이민자, 새로운 종교, 사회적 소수자 등의 종교적 경험이 이전까지의 어떤 미국 종교사 통사보다 더 균형 있게 언급되어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주를 줄이고 비교적 평이하게 기술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종교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의 글은 그 책을 읽고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던 글의 일부분이다. 딱히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있는 글도 아니고, 그냥 생각들이 듬성듬성 흩뿌려진 그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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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나는 항상 대한민국의 오천 년 역사를 자랑스러워 할 것을 고등 교육을 통해서 주입 받았으나, 실은 오천 년 전에 한반도에 거주 했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들, ‘한국인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미국선교사들일본인, 그리고 이승만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정희와 그가 추진했던 근대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 대한민국은 기껏해야 백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정체성을 만들어 왔을 뿐인데, 어쩌면 이러한 관점이 이백 년 동안 국가 정체성을 구축해 온 미국을 대한민국이 기를 쓰고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내 생각으론, 대한민국이 미국의 진정한 실체, 혹은 바람직한 면을 모방하고 있다기 보단, 그 풍문과 소문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저항문화이자 빈곤지역 흑인들의 정서를 담고있는 힙합을 우리 나라에 소개한 것이 주로 유학파였던 관계로 그 힙합 문화는 압구정이라는 부자 동네를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양키문화로 포장되었으며, 역시 블루스에서 태동하여, 자유롭고 분방한 흑인들의 리듬을 담고 있는 재즈 역시 고급 문화로 여겨져청담동에서 가장 열렬히 소비 되어 왔다. 또한 미국 중산층을 날카롭게 해부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 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창동의 영화처럼 매우 적나라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미국 교외의 전형적인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 바인데, 그 풍경은 일산과 분당의 외곽지역의 소위 전원 주택들이 열심히들 흉내 내고 있는 바다.

...(중략)

미국이 비록 남의 나라 역사이긴 하지만미국 현대사에 흥미를 느낀다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는 1960년대이다그 시기에 미국의 모순은 절정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미국이 베트남 전에 참전하면서반전 시위가 극렬하게 일었고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거센 반문화 운동히피 운동이 일어 났다또한 진보적인 것으로 유명한 버클리 주립 대학에서는 ‘Civil Right Movement’가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고또한 이 곳 샌프란시스코는 게이-레즈비언 인권 운동이 있었던 도시로 유명하고지금도 여전히 미국 내에서 게이-레즈비언의 비율이 가장 높다.

게다가 그 시기의 반문화 운동은 동양의 종교특히 인도의 힌두교와 일본에 의해 소개 된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어떻게 보면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동양과 서양이 보다 더 격렬하게 만나서 조우한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어쨌든 이 곳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아시안의 비율도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며시내 중심가에는 ‘Asian Art Museum’이 건재 하다.

히피와 동양 문화의 영향을 받은 반문화 운동은, 대한민국 보수 교회 내에서는소위 사탄의 음악, 문화로 정의 내려진 바 있는데, 그것의 여파로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음반들이 어머니에 의해서 쓰레기통에처박히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이 곳에서는 ‘Bible Belt’로 불리고 있는 미국 남부의 대단히 보수적인 개신교 그룹의 견해와 일맥 상통하는 바다. 물론, 가장 진보적이고, ‘뉴욕보다도 훨씬 더 ‘liberal’한 도시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들 자부하는 샌프란시스칸들에게 그러한 보수 개신교 그룹은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아마도 그 당시에 가장 아이러니칼한 상황은, 서구에서 규정한 -에이지라는 개념을 그대로 대한민국에 수입해서 그것을 다시 사탄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대체 누구의 눈으로, ‘상황들을보고 있는가

영화를 예로 들자면, 헐리우드 영화를 볼 때에도, 요즘 부쩍 커진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 시장을 의식 해서 인지, 아시아인,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배우들이 부쩍 출연하고, 우리 나라의 몇몇 유명 배우도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런 영화를 볼 때 간혹 내 스스로에게도 놀라는 것은, 백인, 주로, 앵글로 색슨족과 나란히 서 있는 동아시아인을 보고 있는데, 그 동아시아인이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다시 말해서, '타자'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러한 관점들이 내 안에도 주입되어 있다는 것에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략)  

저자의 책 '미국 종교사' 를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맨 앞의 유럽인들이 기독교를 들고 미 대륙에 진출하기 이전에 다양한 소위 원시적인종교들이 존재 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한 것과, 기독교가 그 다양성들을 파괴했다는 것, 그리고 그 종교들에 대한 간략한 묘사였다. 또한 종교또는 종교성이라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풍요로운 경험을 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정의 한다면, 과연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믿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과연 그 시절, 기계 문명 이전의 시기 보다 더욱 풍요로운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이것을 예술, 또는 예술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한다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예술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현대인들이 과연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통찰이 더욱 크고, 삶에 있어서더욱 많은 것을 누리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반문해보았는데, 명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시스템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지라, 그 시스템을 만들어 낸것이 결국엔 인간 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시스템은 인간을 억압하는데, ‘제도권안에서 존재하는 종교라는 것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아니라, 또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문해 본다.

언뜻 스치는 단상이긴 하지만, 21세기에는 어쩌면 각 종교 간에 드리워져있는 장막들, ‘말씀교리제도로써 갈려 있는 그 숱한 종교들의 경계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한 역사가가 20세기에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구세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라고 답한 것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종교를 택할지, 어떤 식으로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될지는 모르겠다. 인상 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종교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박상륭의 소설 혹은 잡설 '죽음의 한 연구'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 대한 묘사였다. 그 죽음이라는 것이 무슨 대단하고도 큰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건너는 것이 유달리 까다로웠던 미국 입국 심사대 보다 도 훨씬 더 부드럽게 훌쩍 지나가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읽은 지 오래 되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주인공이 마치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죽음이라는 활짝 열려 있는 문 앞에서 전혀 망설임 없이 그냥 걸어가던 속도로 훌쩍 지나가는 듯한느낌이라고 내 방식대로 다시 묘사를 할 수 있겠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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