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박

김이박 이야기 2008. 7. 26. 09:42

서울 근교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부천에 거주하는 김, 은 40대 중반이다. 이리저리 직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고깃집을 운영한지 이제 10년 째다. 아내와 아들 둘이 있다. 사교육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럭저럭 생활은 할만하다. 그에게 있어 불만은 이 곳이 자신의 유일한 생활 터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각자 생활에 바쁜 친구들과 송년 모임을 가지기 위해서 그는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먼저 연락을 하고, 날짜와 시간을 잡고, 이리저리 준비했다.

그에겐 박, 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방송국 피디다. 광화문 근처의 원룸에 혼자 기거한다. 무지하게 바쁘고 외국도 몇 번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자신에 비해서 활동 영역이 넓어 보이는 박, 을 그는 부러워 한다.

그에겐 분당에 사는 이, 라는 친구도 있다. 자신처럼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부장 자리를 꿰차기 일보 직전이다. 부동산으로 제법 재미도 본 이, 는 비교적 제 시간에 도착했다. 박, 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박, 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엔 무슨 연예인 지망생과 로맨스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우리 상무가 말이야. 골프를 배워 보라는 거야. 내가 붙잡고 있는 라인이라 새겨 듣는 척 했지. 미국 가 있는 자식 놈 때문에 돈도 많이 들어가는 데 무슨 골프냔 말이야. 근데 말이야. 이게 또 무시할 순 없는 거 같단 말이야. 아무래도 인맥을 넓히는덴 골프만한게 없단 말이지. 그래서 골프 셋트를 큰 맘 먹고 샀지. 그리고 일단은 연습장에 다니는데 말야. 하다보니 이것도 재미있단 말이야. 쏠쏠하다니깐. 이, 가 말한다.

요즘 연예계가 참 시끄럽지. 애새끼들이 말이야. 기고 만장해져가지고 말이야. 예전엔 방송국에 드나 들면서 어떻게든 눈도장 찍으려고 난리 브루스를 췄는데 말이야. 요즘은 기획사다 덕션이다 뭐다 해서 전부 밖으로 돌아요 이것들이. 더러워서 나도 독립을 하던가 해야지 원. 근데 히트친게 있어야 말이지. 제길. 뭐 대박 터지는 아이템 없을까. 응?  박, 이 말한다.

이 근방에 모텔이 새로 생겼는데 말이야. 모텔 프로방스던가 뭔가. 하여간에 그 모텔이 생긴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거야. 알고 봤더니 이 것들이 무슨 인터넷 카페에서 홍보를 한다고 하지 뭐야. 요즘은 모텔도 사용 후기를 올리는 시대가 된거야. 하여간 우리한텐 잘 된 일이지 뭐야. 김, 이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가 상무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오고, 다시 외국에 유학중인 이, 의 아들이 용돈을 보내 달라는 전화가 온 다음 부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대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아직도 박에게 앵겨 붙는 최, 신, 임과 같은 골빈 연예인 지망생들에게서 차례로 전화가 오면서부터 일 수도 있다. 박, 은 미안하다면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 선다.

이, 는 박, 이 나가기가 무섭게 ‘문란한’ 박, 의 사생활을 한참 씹어 댄다. 박, 이 자신이 알고 지내는 ‘동생’들을 이야기할 때 열심히 경청하던 이, 가 아니다. 한편으론 돈을 주고서야지만 박, 이 만나는 ‘등급’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더러워서’ 더욱 목소리가 커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 은 그저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가 이, 가 일어선다. 김, 은 배웅하고, 자리를 정돈한다. 고깃집에 딸려 있는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이, 의 아내가 나와서 거든다. 아내는 치우다가 그만 쟁반 하나를 떨어 뜨린다. 김, 은 그것을 트집삼아 아내와 대판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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