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크 Milk]

에세이 2009. 1. 13. 09:04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활동했던 '게이' 하비 밀크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밀크 Milk]를 보았다.[각주:1]영화가 끝나가면서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거의 울 뻔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박수 소리가 잠시 터져 나왔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인이라면, 저 하비 밀크라는 사람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게이이건, 아니건 간에. 

하비 밀크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가 지하철에서 꼬신 녀석과 침대 위에서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하면서 난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어, 그리고 오십 번째 생일을 난 기대하지 않아, 라고 말을 했는데, 그는 마흔 살이 넘어서부터 많은 것을 이루어 내었고, 마흔 여덟 살에 시청 안에서 암살 되었다. 

하비 밀크는 마흔 살에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거리로 이주해서 사진기를 파는 가게를 열었고, 그 가게는 곧 게이들의 동네 사랑방이 되었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출발점이 되었다. 하비 밀크는 처음에는 머리도 기르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편한 데로 대충 입었지만, '정치인'이 되고 부터는 말쑥한 정장에 머리도 짧게 깎고 수염도 다듬기 시작했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거리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하비 밀크가 자기와 같이 일하던 한 녀석에게 너는 운동가, Activist 니까 확성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곤 자신은 혼자 시청으로 뛰어가서 그 운동가 녀석이 사람들을 몰고 시청에 오기 까지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운동가가 사람들을 몰고 시청에 오자 하비 밀크는 시청 문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달랜다. 전략적인 모습이었다.

하비 밀크는 연애 지상주의자도 아니었고, 명랑 사회 이룩해보세, 라는 사람도 아니었고, '보헤미안 예술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사십 대 초반에 조그만 사진기를 파는 가게를 열고 '커밍 아웃한 게이'로 살면서 경제적인 수입에 맞추어서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가 해낸 가장 큰 업적은 학교에서 '게이'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인 주(state)민발의안 6, Proposition 6 의 통과를 저지시킨 것이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이고 시시각각 정체성이 변해가는 나라 미국에서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라는 잣대는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미국의 상황은 이러하다. 2008년 미국 대선때 캘리포니아 주, 에서는 '게이-레즈비언'들이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인 주민발의안 8, Proposition 8이 통과 되었고, 아시아인과 기독교인, 혹은 그 두 개의 범주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 법안을 통과하는데 한 몫 단단히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캐나다의 브리티쉬 컬럼비아라는 주, 에서는 '게이-레즈비언'들이 결혼하는 것은 이미 합법적이다. 

이 영화 [밀크 Milk]는 여러가지 부분에서 한국의 '좌파'들에게 영감을 줄 소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현장수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무려 해고씩이나 된 교사들을 위로해 줄 여지도 있다. 이건 그냥 느낌인데 이 영화가 2009년 4월 23일 한국에 개봉되면 어느정도 눈에 보이는 반향이 있을 것 같다. (그러하더라도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 Sicko]가 개봉했을 때 처럼 미국의 상황을 빌어다가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아, 그리고 영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에 어쩌면 내가 세부적인 부분에서 잘못 알아 듣고 헛소리 하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1. 내 오른쪽 옆에는 나와 같이 영화를 보러간 - 어쩌면 새로운 여자 친구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 미국에 산지 이제 오 년 째가 되가는 한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여전히 대사를 완전하게 못 알아 먹어 상황을 보아가면서 대화를 짐작하곤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알고 보니 동행인이 자신도 그러했다고 해서 잠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내 왼 쪽에는 한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와 같이 앉아 있었다. 그 흑인 남자는 레게 파마 머리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멋을 낸다고 레게 파마를 시도하지만, 흑인 남자들은 곱슬거리는 머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레게 파마를 시도 한다. 그리고 찰랑거리는 쭉 뻗은 머리를 부러워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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