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추어 본 뉴욕 관광기

카테고리 없음 2009. 3. 1. 05:00

2004년 겨울,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보스턴, 그리고 마침내 뉴욕.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일기장을 들고 다니면서 대강대강 적고 나서, 관광을 끝낸 직후 한국에 돌아와 정리했던 글이다.


첫째 날.

뉴욕에 입성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911 테러를 맞은 그들의 경비는 매우 삼엄했다. 국제선 이상으로 뒤지고 또 뒤졌다. 신발까지 벗어서 검사를 그 속을 뒤지는데, 아마도 계속해서 걸었기 때문에 냄새가 지독했을 텐데, 조금 미안했다.[각주:1]

아무튼 이제 맨하탄으로 간다.

맨하탄 한 복판, 정확히 말해서 타임 스퀘어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막 올라 왔을 때의 그 느낌.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까? 그 때의 찌릿찌릿함은 헐리우드에 막 도착 했을 때의 그 느낌과는 비교가 안 됐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빌딩 벽을 가득 메운 광고판들. 아, 저기 삼성과 엘지도 보이는군. 보스턴의 한가로움과는 – 물론 보스턴 시내를 거닌 날이 일요일이긴 하나 – 정말 대비되는 바쁜 분위기. 게다가 건널목을 건너다가 차에 치일 뻔 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것과 같은 느낌. 

34th Street에서 OO이 만나다. 여전하군. Saigon Grill에서 베트남 음식 먹어 주시다. 역시 맛있다. 에드가 앨런 포 생가를 카페로 만든 곳에서 커피를 마시다. 분위기 있으셔. 거창하지만, 어줍잖게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미국 여행 중 느낀 점, 안부를 주고 받고. 지금의 이 느낌을 최대한 즐겨 주시다. 


둘째 날.

본격적인 뉴욕 시내 관광. 자유의 여신상은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함. 그나마 안개가 껴서 잘 안보였지만. WTC가 있던 곳으로 가다. 폐허가 된 그곳은 여기저기에 기념물과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Reconstructing! , Rebuild! , Remember! [각주:2] 아무튼 그 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다시 세운다. 다시 일으킨다. 그리고 이 것을 기억하겠다. 결국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지. 뭐, 그 폐허를 보며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어쨌든 미국 본토에 대한 첫 공격이 아니었던가.

American Stock Exchange에 들어가려고 시도하지만 거부당함. 9.11 이후로 견학이 금지 되었다는 가드 아저씨의 설명. Wall Street는 출근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고, 빌딩 숲은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했고. East Village는 분위기 암울했고, 때맞춰 눈까지 내려 주시다. 근데 왜 눈이 내리는 데 우울하지? 암울한 이 곳을 벗어나서 다시 China Town으로 갔다. Dim Sum으로 점심을 때움. 맛있다. 

Soho에 가다. 옷, 빈티지, 뉴욕 스타일? (뉴욕 스타일이 있을까) Mac Center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니치 빌리지와 뉴욕대학교 그리고 필름 센터. 대학가, 옷가게들. 지나가다 Chicken Faita를 먹음. 구워서 주는데 맛있었다.

유스호스텔에서 잠시 쉬다가 그래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야경은 봐야겠고, 해서 나갔다. 11불이나 주고 올라가서 맨하탄 야경을 봤지만, 춥고 게다가 혼자라는 사실이 왠지 이건 청승이라는 생각만 자꾸 솟아오르게 했다. 담배 한 대 피고 바로 내려 왔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유스호스텔로 오는 길에 – 유스호스텔은 타임 스퀘어 한 복판에 위치함 – 42nd Street 지하철역에서 거리 공연을 보았다. 와우, 수준급인데? 멋진 Modern Rock 밴드.

유스호스텔에 돌아 오니 역시 일본애들이 한 바가지. 이래저래 이야기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그네들 봄방학이 3월 까지라는 사실. 그래서 이렇게 많았구만. 그 중에 키 150 센치미터 쯤 될까 말까 한 두 명의 여자 아이는 힙합 댄스를 배우러 뉴욕에 왔단다. 할렘에 있는 댄스 스쿨에 매일 출근 하신단다. 대단하다. 영어는 엉망인데, 넉살이 너무나도 좋으시다. 뮤양~. 그리고 일본어과를 다닌 다는 한국 여자애 한 명.


셋째 날.

늦게 일어 났다. 라이온 킹은 매진이라 결국 오페라의 유령을 예매했다. 차이나 타운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시내 관광. 성 패트릭 성당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마에 까만 십자가를 그리고 돌아 다니는 것을 봤다. 여기 오는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마에 까만 십자가를 달고 돌아 다녔다. 뭔데? Ashes Wednesday란다. 이마에 까만 십자가를 그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Sony Plaza에 가다. 역시 소니. 삼성이 타임 스퀘어에 있는 소니 광고판 자리에 들어 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소니는 아예 이런 플라자를 가지고 있었군. – 지금 생각해보면 소니는 어쩌면 경영 악화로 광고판을 철수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 뭐, 그다지 즐길 거린 없었다. 초등, 중학생 정도라면 모를까.

UN빌딩은 포기하고 다시 타임 스퀘어로 왔다. 타임 스퀘어를 거닐다가 Toy’s R us에 들어 갔다. 장난감 천국에 역시 캐릭터. 캐릭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갑자기 해버림. 바나나 리퍼블릭에서 봐두었던 니트를 결국 사버림. 젠장 87불이나 하는데!

OO이는 오늘 바쁘고, ㅁㅁ이는 내일 뉴욕에 오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유스호스텔에서 좀 쉬어야지. 그러나. 유스호스텔에서의 마지막 날. 우울함에 퐁당 빠져버렸다. 여행 중 최대의 위기로 외로움을 느꼈다. 갑자기, 왜 내가 미국에 왔을까? 무얼 얻었는가?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그런 생각들이 이어졌다. 미국이란 나라를 짧은 시간이지만 보려고 간 것이다. 2주 밖에 안 되는 시간이긴 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냥 놀러 온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도 무언가를 꼭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온 것이긴 하지만. 

룸메이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녀석은 독일에서 DJ를 하는 녀석인데, 힙합 LP를 사기 위해 뉴욕에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 백장의 LP를 보여줬다. 각각의 LP가 중고가 많아서 싸게는 1불에도 샀다고 자랑했다. 음, 그렇군. 다른 한 녀석은 일본녀석인데 그 녀석 또한 Dance를 배우기 위해 온 녀석이었다. Jazz Dance. OO이는 XX 인스티튜드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있고.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와 삶을 나눌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차피 결론도 안나는 생각. 갑자기 한 발자국 더 나아갈 때 한 가지를 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1층 로비에 내려 갔다. 뭐, 특별한 거 없지. 일단 나가자. 나가는 길에 들어오는 뮤를 보고. 클럽에 가지 않겠냐고 물음. 오케이.

클럽 Lauahn으로. Party를 기대했지만 역시 수요일. 10명도 없었다. 썰렁하기 그지 없군. 너무나 늘씬하고 예쁜 바텐더를 흘낏 흘낏 훔쳐 보면서 맥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앞에 앉은 뮤는 그냥 그런 표정. 결국 나왔다. 나오다가 그리스 애하고 어쩌다가 이야기함.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 녀석 삼성 이재용 상무하고 골프를 쳤다고 자랑함.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무튼.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는데, 생각 보다 안전하다고 느꼈다. 아무튼, 기분 전환이 되었다. 그나저나 힙합 클럽을 가야 쬐그만 뮤 녀석의 춤을 좀 봤을 텐데. 


넷째 날.

오랜만에 미국식으로 아침을 먹어 주시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다. 젠장 왜 또 일본이야. Japan! Japan! Japan! 왜 항상 일본 미술 전시 해 놓은 곳이 항상 클까? 정답은 그 녀석들이 돈이 많으니깐. 

아무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정말 컸다. 한 시간 짜리 투어에 참가했다. 할머니가 나오셨네 그랴. 노인 들이 할 수 있는, 하기에 적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서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어 보였다. 

학교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이 그룹. 근데 다 교복 입은 흑인들. Private School도 백인, 흑인 따로 있나? 미술관 여기 저기에서 Suit를 입고 앉아 있는 흑인들. 저녁이 되면 Suit를 벗고 할렘으로 돌아 가겠지. Express 전철 탐. 할렘 바로 전 역에서 내림. 내릴 때 흘깃 보니 90퍼센트 이상이 Black. 

자신이 하버드 대학을 다닌 다면 그 문화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집단에 들어간 이방인이다. 둘 중 하나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집단의 정체성을 받아들여 동화가 되던지. 아니면 떠나던지.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스쿨 타이], [죽은 시인의 사회], [여인의 향기] 등등.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생각을 더더욱 했던 것 같다. 분위기가 아무리 영국 귀족적 분위기건 어쩌건 간에, 거기에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지 않은가. 어쨌든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버드생 한 명 만나보지 못하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것.

그리스 미술. 검은색 바탕에 갈색. 다 같은 형식이다. 뭔가 기념하기 위한 것들로 보인다. 그때는 아마 실용품이었을 거다. 하우저가 말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작이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어 본다. 거리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뉴욕의 자랑스런 말. The Capital city of Culture & Art란다. 그래 니 잘났다. 정치, 경제를 잡고 있으니깐. 자연스레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구나. 

아프리칸 미술. 아기를 업고 있는 여자와 화살통을 메고 있는 남자를 형상화 한 나무로 된 조각상을 보았다. 가이드가 Western Art와 달리 다 실생활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먹고 살 만해야 예술을 위한 예술도 하는 법.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는? 그 분도 자본주의의 혜택을 입으셨다. 물감이 대량 생산되지 않았다면 그 분은 물감도 사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의 그림들을 우리가 볼 수 있었을까?

인상주의에서 발길을 멈추다. 르누아르. 이 분은 검은색을 절대 쓰지 않았다지. 잭슨 플롯, 렘브란트, 브뢰겔, 루벤스, 다비드. 클로드 모네! 환상! 피카소는 절대 이해 안 되는 큐비즘 보다는 오히려 ‘청색시대’라고 불리는 우울한 그림들이 더 맘에 와 닿았다. 

초등학생들.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예술을 가까이 하면서 자란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오가고 있다. 

OO이를 만나기 전에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갔던 중국식당에서 먹었던 이상한 면. 중국식 짜장면인가? 색깔은 비슷한데 발냄새 비슷한 냄새가 심하게 나서 거의 버렸다. OO이를 만나 타카피 주스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고급 중국 레스토랑에 갔다. ㅁㅁ이를 드디어 만났다. 여전하다. 뮤지컬 시간이 늦어서 OO이를 두고 둘이 먼저 나와서 타임 스퀘어를 열심히 뛰었다. 5분 정도 늦었지만 다행히도 들여 보내 주었다. 

오우. 10분 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샹젤리제. 마에스트로 바로 뒷 자리. 재수! 무대 장치가 예술임. 역시나 많이 알아 듣지는 못했다. 어쨌든 좋은 경험이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OO이를 다시 만나 향한 곳은 한국식 술집. 이런 저런 이야기. 


다섯 째 날.

오늘은 우드버리 쇼핑센터에 가는 날. 그 동안 참고 참았던 쇼핑 욕구를 한 번에 터트릴 시간이다. 그런데, 늦잠을 잤다. 다시 타이 음식을 먹고 있는데 옆에 게이들 등장. 남자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닥거리면서 음식을 먹는데, 속눈썹이 유난히들 기시다. 저런. 역시 맛있는 타이 아이스티. 그런데, 노닥거리다가 버스를 놓쳐 버린다. 짜증 이빠이. 우왕좌왕하다가 어쨌든 우드버리 아울렛에 떨어지다.

여기는 파라다이스. 왜 이리 싼 것일까? 

밤이 되어서야 돌아 왔다. 타운 하우스 앞에서 산 중국 음식, 그리고 맥주. 그리고 이야기. 이런 저런 걱정들. 쓸데 없는. 


마지막 날.

아침부터 무지하게 정신 없었다. 간신히 공항으로 가는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가방을 사러 헤맸다. 토요일 오전이라 연 상점이 안 보였다. 돈도 거의 떨어지고. 아무래도 그냥 봉지에 넣어 잔뜩 싸 들고 가기엔 세관원이 두려웠다. 돈. 쓸 때는 쓰자. 

거기에 버스까지 고장. (그런데 왜 항상 여행 마지막 날은 이런 일들이 몰아 닥치는 걸까. 서둘러서 그런가?) 시간이 늦어서 조마조마 했는데, 출국심사는 불과 10분도 안 걸려서 끝나서 조금 허탈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할 필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음. 차선을 찾자. 이거 가장 크게 배운 것. 


후기. 

아직도 비행기 삯을 기억한다. 서울-샌프란시스코-엘에이-보스턴-뉴욕-서울, 이라는 구간을 무식하게도 몽땅 비행기로 연결했고, 당시 정확히 109만원 (세금 포함) 지불했다. 항공사/여행사를 이잡듯이 뒤진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별로 읽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 데다가 생각 보다 읽을 거리도 별로 없는 '다시 들추어 본-' 을 끝내고 나니 그때 당시와 지금 내가 어떤 면에선 참 많이도 변했고 어떤 부분에선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지금 보니 유치한 구석이 너무 많아서 우스웠는데, 저런 유치한 구석을 지금은 얼마나 탈피했을까, 자문해 보아도 별로 좋은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위 문장 들은 사실 하나 마나한 소리고 결론은, 순간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어서 나름 좋았다는 거다. 이 글에 정보 가치는 거의 없지만, 읽는 누군가도 순간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면 좋을 것 같다. 


  1. 당시 난 일기장에서까지 착한 척을 하는 습성이 있었다. [본문으로]
  2. 첫 단어는 확실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확실하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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