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04.30 구십년대식
  2. 2009.04.29 경영학
  3. 2009.04.21 박찬욱과 홍상수 9
  4. 2009.04.18 미국 애들 1
  5. 2009.04.08 웨어알유프롬?
  6. 2009.04.07 다시 들추어 본 도쿄 관광기
  7. 2009.04.04 백현진

구십년대식

짤막한 거 2009. 4. 30. 12:00

1989년 여름, 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국내 출판.
1990년 여름, [상실의 시대] 10만부 돌파.
1990년 초. 다케이코 이노우에의 만화 [슬램덩크], 잡지 [소년 챔프]에 연재 시작.
1991년 2월 모일 일본 캡콤사의 대전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 출시.[각주:1]
1991년 여름 일본의 가라오케 부산을 통해 상륙, 이후 '노래방'이라는 이름으로 성업.
1992년 초, 만화가 이명진, 일본풍 만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으로 데뷔.

1992년 초,,,,,,,,,  홍대앞에 '락카페' 생겨남.
1992년 2월 17일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 공연, 1명 사망, 70여 명 중경상.
1992년 4월 모일 [요! 태지]로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각주:2]

1992년 04월 29일 미국 LA 폭동 일어남.
1992년 06월 01일 MBC에서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 방영. 1달 반 간 지속 됨.
1992년 10월 28일 사이비 종말론 거짓으로 밝혀 짐.

1993년 02월 25일 김영삼 정부 출범.
1993년 08월 07일 대전엑스포 개최.
1993년 겨울. 93-94 농구 대잔치 최절정 인기를 구가.

1994년 04월 05일 그룹 Nirvana의 리드 보컬, 리드 기타, 커트 코베인 자살.

1994년 05월 26일 존속살해범 미 유학생 박한상 체포.

1994년 07월 10일 여름그룹, 쿨 데뷔.

1994년 09월 21일 5명을 살해한 지존파 일당 7명 체포.[각주:3]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17명 부상
1995년 새해 벽두 김영삼 정부 세계화 선언.

1995년 01월 09일 SBS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6개월 간 지속 됨.[각주:4]

1995년 04월 05일 홍대앞 바 '드럭'에서 커트 코베인 사망 1주년 추모 공연 열림.[각주:5]
  
1995년 4월 14일 영화주간지 [씨네21] 창간.
1995년 5월 모일 영화월간지 [키노] 창간.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

1995년 9월 2일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개봉.
1995년 12월 23일 [타락천사] 개봉.[각주:6]

1996년 01월 31일 서태지 은퇴선언.

1996년 03월 18일 홍상수 감독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개봉.[각주:7]

1996년 09월 07일 H.O.T 데뷔. MBC TV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토토즐, 이라고도 함)

1996년 10월 11일 대한민국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1997년 03월 03일 영화 [비트] 개봉.[각주:8]

1997년 12월 05일 IMF 구제금융 신청
1997년 12월 모일 NAVER 검색 서비스 시작
1998년 02월 25일 김대중 정부 출범, 정보화 선언.
1998년 04월 09일 미국 블리자드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 대한민국 출시.[각주:9]

1999년 02월 13일 영화 [쉬리] 개봉. [각주:10]
1999년 03월17일 '오양 비디오' 논란.[각주:11]


(계속)

  1. 짧은 경기 시간으로 오락실 업주에게도 이익을 극대화 시켜주는 게임. 이내 오락실은 스트리트 파이터2 로 가득 찼으며 아이들에겐 실력은 곧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혁신적인 게임.
    [본문으로]
  2. MBC TV <특종! TV연예>, 당시 생소한 '본토' 카피 음악을 들은 전영록은 대단히 벙쪄함.
    [본문으로]
  3. 지존파, 라는 이름은 홍콩영화 [지존무상]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으로]
  4. 최초로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드라마였다.
    [본문으로]
  5. 홍대 클럽씬, 인디씬의 출발이라고들 함.
    [본문으로]
  6. 당시 키노 편집장 정성일의 강력한 옹호와 함께 90년대 중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음.
    [본문으로]
  7. 평론가, 기자, 영화 잡지에 힘입어 독특한 작가로 자리 매김함.
    [본문으로]
  8. 한국영화가 방화 라는 딱지를 떼어버린 결정적인 분수령. 물론 이 것에는 미국 AFI에서 유학했던 김형구 촬영 감독의 세련된, 왕가위 영화 풍의, 촬영이 한 몫 했다.
    [본문으로]
  9. 가장 초자본주의에 어울리는 게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옴. 그 이전까지 당구를 치던 아이들 이 모두 게임방으로 몰려 가는 계기가 됨. 10대-20대 인터넷 사용 확산에 기여.
    [본문으로]
  10. 한국형 블록버스터, 말하자면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이제 한국 영화에서도 총격전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620만 명 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함. - 난 이 영화를 어찌하다 극장에서 세 번을 보았고, 매 번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등 출연 함. 삼성, 영상 사업단의 마지막 작품이었음.
    [본문으로]
  11. 30대-50대 인터넷 사용 확산에 기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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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짤막한 거 2009. 4. 29. 21:30

왜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 '경영학'을 공부 할까? 대학교 때 '조직관리론'을 열심히 공부한 다음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조직관리'를 당하게 되는 것. 정말 아이러니, 하다. 게다가 '조직관리론'에서 공부한 것 처럼 만 '조직관리' 당한다면 평생 직장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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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과 홍상수

에세이 2009. 4. 21. 05:40


영화 감독 박찬욱.

박찬욱의 영화를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올드보이]를 가장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 영화는 내게 개인적으로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보통 영화를 볼 때 스크린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곤 하는데, [올드보이]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본 영화 중에서 내가 스크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본 영화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대 실망이었다.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내가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잘못 보았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그래도 그의 다음 영화가 여전히 궁금, 하다. 한국에서 그의 새 영화 [박쥐]가 개봉한다고 한다.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투자를 받은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모양인데, 예전에 어디선가 얼핏 접한 바로는 그의 새 영화가 헐리우드의 투자를 받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서 투자 금액을 다 채우지 못한 결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선택'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의 새 영화 [박쥐]가 궁금, 하다. 언제 어디서 보게 될 른지.


영화 감독 홍상수.

예전에 영화 감상 노트를 세 권 정도 작성한 적이 있다. 첫 째 권의 이름은 Dream, 둘 째 권의 이름은 Reality, 그리고 마지막 셋 째 권의 이름은 KINO[각주:1]였다. 제목이 유치한 까닭은 모두 스무 살 이전에 채웠던 노트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과 영화에 관한 정보, 그리고 영화에 관한 간략한 감상으로 한 쪽 씩을 채웠다. 영화에 대한 별 다섯 개 짜리 별점도 어줍잖게 매겼다.

들쭉날쭉 내 편견대로 재미삼아 매기던 영화에 대한 별점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처음 보고 나선 '?'로 매겼다. 참 묘한 영화고, 영화가 좋았다고도,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서른 살이 넘어서야 좀 이해가 가능할 것 같은 영화다, 라고 적었다. 

최근 작 [밤과 낮][각주:2]을 제외한 그의 모든 영화를, 적어도 세 네 번씩 반복해서 본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모든 인터뷰와, 그의 영화와 관련해서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영화 평론을 읽었던 것 같다. 아마 이창동을 제외하곤 한국의 유명 영화 감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감독일 것이다. 

이상하게 그의 영화에선 아무런 희망도 찾아 볼 수 없고, 인물들은 바닥의 끝을 드러 내며, 영화의 엔딩은 그야 말로 갑자기 불현듯 찾아 오는 데다가 아무런 결론도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모호하고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의 영화에 대해서 강한 적의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오히려 내가 혼란스러울 때 그의 영화를 보면서 도리어 위로를 받거나 머리가 맑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건 취향, 일 따름 이다. 아무튼, 보고 싶었던 [밤과 낮]도 아직 못 봤는데, 그의 새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개봉한다고 한다. 두 영화 다 언제 어디서 보게 될 른지 원.


평론가 정성일의 두 사람 비교. 

예전에 영화 평론가 정성일[각주:3],이 두 감독에 대한 을 쓴 적이 있다. 평론가 정성일은 2005년 7월에 [The DVD]라는 잡지에 기고된 이 글에서 박찬욱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 취향에서 풍겨 나오는 의문스러운 점에 관해서 논하고 난 뒤, 그 두 감독의 영화 취향에 한국 영화의 영향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나서 결국 그 들은 앞선 세대 한국 영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일종의 '아버지'가 없는 정신적 고아 신세라고 지적한 뒤, 그 결과 그들의 '한국 영화' 속에서도 정작 '한국'이 빠져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서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한국 영화 감독 들의 영화에 한국의 냄새가 나지 않는 다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나는 앞선 세대 한국 영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영화 감독이 그 둘 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영화를 만드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 감독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유현목 감독을 제일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감독, 하길종 감독을 제일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젋은 세대 감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영향, 이라는 것은 그냥 이것저것 보다가 받게 되는 것이지, '한국 영화사'의 맥락을 공부한 다음 일부러, 찾아 가면서 본 영화, 고전, 들은 사실 영향, 과는 별 관련이 없게 마련이다.)

조금 확장 해서 이야기하자면, 예전에 불었던 김기영 감독 재발견과 그에 대한 열풍도 영화 감독들이 '성장하면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미 장성한 뒤에 애타게 '아버지'를 찾아 해맨 결과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각주:4]

또한 평론가 정성일은 자신이 항상 되새김질 하던 프랑스 영화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의 그 유명한 말 -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 의 마지막 단계를 충실하게 실천 중이다. 어쩌면 그의 영화적 아버지도 결국 어느 '프랑스' 영화 감독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그가 만드는 영화 제목은 독일 작가 괴테의 소설 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다. (물론 그는 서른도 되기 전에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 했고, 그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하여간 좀 아이러니. 하다.)

하여간, 그의 글의 논조와는 별개로, 내 주목을 끈 부분이 한 군데 있다. 평론가 정성일의 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렇게 대담을 좋아하는 저널 중에서 어떤 저널도 홍상수와 박찬욱의 대담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 칸에 있었던 2004년 실제로 수많은 저널들이 두 사람의 대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뛰었다. 그러나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말뜻은 서로 상대를 만나기 싫다는 것이다...


애초에 하고 싶었던 말.

보통 서로에게 무심하거나 관심 없다라는 것을 넘어서 싫다, 까지 가려면 비슷한 면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겹치는 부분이 없는 사람들끼리는 싫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냥 무심하게 될 뿐이다. 두 감독의 경우, 모두 삶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부조리함[각주:5], 을 다룬 다는 점에서 두 감독은 대단히 닮아 있다. 

박찬욱의 영화들을 살펴 보면, 영화사에서 기획한 작품에 고용 되어 남북 정상 회담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만나 대박을 터트렸던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의 흥행 실패로 인해서 보다 더 흥행에 신경을 썼고 흥행에서도 성공한 [올드보이]와 같은 경우에는 물론 부조리함 뿐 만 아니라 비극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좀 더 자유롭게 만든 영화들,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는 보지 않아서 언급을 하지 못하겠다) [복수는 나의 것], [심판], [컷], [친절한 금자씨],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경우엔 부조리가 장면장면 그득그득하고 구조 상으로도 부조리극, 으로 분류 될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들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의 모든 작품이 한 마디로 말해서 부조리, 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공통된 냉소적인 정서와 부조리함, 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감독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박찬욱 감독의 경우엔 부자연스러운 상황과 부자연스러운 대사와 부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부조리함을 만들어 내는 반면, 홍상수 감독은 자연스러운[각주:6] 상황과 자연스러운 대사와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부조리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복수는 나의 것]에 등장하는 인물 들, [올드보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무늬의 벽지, [심판]의 상황 설정, [컷]의 (너무나도 인위적으로 서구적이어서 조금 역겨운) 미장센, [친절한 금자씨]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교실 단체 살인이라는 상황 설정과 금자씨라는 인물, 그리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모든 설정들, 이 그러하다. 또한 그의 영화들에 사용되는 대사들은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들이 아니라 좀 극적인 나머지 때로는 연극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한 마디로 많은 것이 부자연스럽다. 

그에 반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흔히 그의 영화들을 수식하는 '일상적인' 이라는 형용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일상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고, 별 다른 극적인 상황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상황들을 현미경을 가져다 대고 본 다음 그의 방식대로 재조립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감독의 차이가 형식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박찬욱의 영화들은 보다 더 장르적이고, 대단히 스타일리쉬하고, 영상 자체에서 오는 쾌락을 다루는 것에 매우 능숙하고, 비비 꼬더라도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르면서 극적인 구조를 포기하지는 않는 편이다. 반면 홍상수의 영화들은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도 없고, 화면은 대단히 사실적이며, 영상 자체에서 나오는 쾌락을 다루는 것에도 무심한 편이다. (심지어,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영화 [강원도의 힘] DVD에선 끊임없이 마이크가 등장한다.)

좀 잡스럽게 늘어 놓은 것 같은데, 이 생각들은 예전에 어떤 녀석, 이 나보고 어떻게 박찬욱과 홍상수의 영화를 둘 다 좋아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듣고 꾸준히 생각했던 것들이 뭉쳐져서 나왔다. 지금은 그 때와는 달리 점점 더 홍상수의 영화 들에 좀 더 애착이 간다. 어쨌든, 아무래도 그 두 감독의 신작, 을 보아야지만 이 모든 것들이 좀 더 확실해 질 것 같아 보인다. 


  1. 러시아어다. 키노라고 읽는다. 극장, 영화라는 뜻이다. 물론 95년에 창간 된 영화 잡지[KINO]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으로]
  2. 한국 DVD 시장의 붕괴로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본문으로]
  3. 솔직히 평론가 정성일이 쓴 많은 글들 중에서 현학적이면서 프랑스 철학 서적 번역체로 뒤범벅이 된 글들은 별로 읽을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씩은 너무 홀로 멀리 나아가서 혼자 만의 독백을 하기도 한다. 허나, 난 그가 영화에 대해서 매우 절실하고 치열하고 강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새 영화를 결국은 궁금해서라도 보게 될 것 같다.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는 김영진.
    [본문으로]
  4. 하지만, 그렇게 찾아 낸 '아버지'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하녀]는 대단히 세련된 '서구적인' 공간과 소도구를 통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보고 싶다면 여기, 덧붙이자면, 소위, '상업 영화' 감독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공간과 소도구를 통한 미장센을 잘 다루는 감독은 봉준호고, 소위, '예술 영화' 감독 중에선 홍상수, 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비극과 부조리극은 엄연히 다르다. 예컨데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아 마침내 모랫 바람이 이는 절벽 위에서 원수를 만나 싸우다 그만 원수의 칼끝에 맞아 장렬히 죽게 되면 그건 비극, 에 가깝다고 볼 수 있고, 마침내 모랫 바람이 이는 절벽 위에서 원수를 만나 싸우다가 원수의 칼을 쳐서 떨어 뜨리고 난 뒤 그의 목에 복수의 칼끝을 겨누자, 그 원수가 "사실은, 내가 니 아비다." 라고 말하면서 끝나게 되면 그건 부조리극, 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6. 그렇다고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자연스럽게' 찍는 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현장 관찰기에 따르면,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이 자존심을 상할 수도 있을 만치, 동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연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의 영화 속 상황들은 대단히 '부자연스럽게' 그의 의도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소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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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들

짤막한 거 2009. 4. 18. 13:54

미국 애들이 개인주의, 적이라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개인주의, 가 그야 말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미국 애들이 장착하고 있는 개인주의, 는 적어도 나에겐, 부정적인 모습 보단 긍정적인 모습으로 더 다가 온다. 단지 하나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미국 애들이 개인주의, 적이라고 해서 그 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나라이고, 미국 애들은 그런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미국이 그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나라라는 것이 미국 애들의 개인주의, 를 뒷받침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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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알유프롬?

에세이 2009. 4. 8. 08:23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한 바 BAR 에 앉아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술에 취한 녀석이 옷깃을 스치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더니만, 내 생김새를 보고 말을 걸어 왔다. "어디서 왔나? 일본인인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녀석과는 생김새가 다른 것이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는 거다. "아니, 한국인인데?" 한국에 있으면서 내가 한국인임을 상기시켜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외국에 나오면 내가 자꾸 한국인임을 상기시키게 된다. "그래. 북한은 좀 심각하지?" "응. 북한이 좀 심각하지." 비꼬는 감정을 담아 실어 보냈는데, 잘 전달은 안 됐을것 같다. 

너 '원래'는 어디서 왔니?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나는 이 질문을 받아도 별 느낌이 없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양계 미국인'들은 이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에 지쳐있을 듯 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 하나, 가 내 앞에서 북한에서 미사일 발사를 했다는 '타임'지 기사를 펄럭이며 흔들어 댔다. 그러더니 '김정일'에 대해서 장난스레 묻는다. 내가 '김정일'을 어찌 아나. 그리고 난 '싸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그런데 그 가장 가까운 사람 하나, 에 대해서 내 주변에 이야기 하면 전부 나중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니까, 그 '중국애' 말야,,,' 아무리 대만, 에서 왔다고 말해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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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추어 본 도쿄 관광기

에세이 2009. 4. 7. 15:46

2008년 팔 월, 일본 동경에 오일 간 머물렀다.





내게 자신이 묵고 있던 기숙사 방을 제공해준 친구는 한국에서 논문 심사 준비를 해야 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과 달리 난 그 도시에 홀로 머무르게 되었다. 일본의 첫 번째 인상은 친구가 살고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공간들이 구석 구석 낭비 없이 잘 활용 되고 있었다. 화장실의 욕조는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었는데, 그 것 또한 화장실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었고, 한 개의 수도꼭지로 세면대와 욕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한 공중 화장실에는 남성용 소변기 옆 마다 우산 걸이가 장착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디테일'했다. 순간 디자이너들이 일본에 와서 열광하고 간다는 소리가 생각 났다.

동경의 지하철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는 것을 넘어서 산 골짜기의 선사 마냥 정적이 흘렀다. 샌프란시스코의 버스 안은 곳곳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음악 소리로 난리 법석인데, 동경의 지하철은 정적이 흘렀다. 내 이어폰은 싸구려여서 음악들이 바깥으로 대부분 새어 나왔는데, 그 때 마다 친절한 일본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소리를 줄여 달라고 요청하고 갔다. 나중엔 지하철에서 음악 듣는 것을 포기 했다. 



시부야에는 사람이 많았다. 담배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피울 수 있었다. 처음엔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만 그 지정된 장소를 찾았다. 나중엔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정말 외로워질 때면 그 장소에 기어 들어 갔다. 한 무리의 사람 들이 잠시 같은 곳에 모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연기를 내뿜다가 다시 제 갈길 가는 느낌이 좋았다. 



메이지 신궁은 일본이 우리 나라와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과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 '근대화'를 시켰던 메이지 천황과 그 부인의 시체가 썩어 있는 곳이다. 그 곳을 방문하면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스스로 애써 지우자, 하늘 천, 자를 형상화 시킨 간결한 도리이의 미학이 나를 반겼다. 



관광지이지만 휴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고, 관광지이지만 관광지 특유의 요란하고 상업적인 분위기가 다소 덜했다. 약간의 경건함이 느껴졌고, 그 곳에서 난 소위 '신사 참배'를 했다. 동전을 함에다가 던져 집어 넣고, 박수를 두 번 딱딱 치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별 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랫 동안 눈을 감고 있으려니 눈꺼풀만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참배 방법을 한 녀석에게 배웠다. 그 녀석은 내가 메이지 신궁에 들어 갈 때 부터 내 앞에서 줄곧 혼자 걸어갔다. 머리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샤기 컷을 했고, 허리에는 체크 무늬 웃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시부야를 배회할 법한 녀석이었고, 펑크 락도 좀 좋아 할 것 만 같은 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일상에 메이지 신궁이라는 공간이 들어서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신주꾸로 향했다. 가부키초 1번가. 쾨쾨한 냄새를 벗삼아 보았던 많은 일본 만화들이 그 곳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그 근처에서 왠 흑인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 왔다. 업소 삐끼였다. 아무리 다소 불안하고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관광객의 행색이었다고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어느 락 음악 공연이 열리는 곳에 도착 했다. 관객은 대부분이 이십 대 초반의 앳된 여자 애들이었고, 음악이 시작 되자 그 들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한 켠에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 되어 있었다.  

                                     
동경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들은 하나 같이 운동복에 가까운 복장을 하거나 자전거 택배일을 하는 사람들 특유의 복장들을 따라 가고 있는 데 반해 동경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패션에도 신경들을 쓰고 있었다. 동경은 대도시였다. 

셋째 날이 되자 문득 패션에 신경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젠 체 하느라고, '세계로 간다' 류의 책이 싫어서, 정보가 보다 다양해서, 샌프란시스코 시립 도서관에서 빌린 '론리 플래닛' 영문판을 들고 다녔다. 슬슬 그 책에서 찾은 바 Bar 몇 군데를 들리기 시작했다. 맥주 값은 턱없이, 너무나 턱없이 비쌌다. 비싼 맥주를 먹고 나와 충동적으로 길거리에 놓여져 있는 자전거 몇 개를 잡아 당겼다. 세 번째 자전거는 중심이 약간 어긋나 있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넷째 날부턴 그 자전거를 타고 동경 시내를 돌아 다녔다. 마치 내가 이 곳에 오랫 동안 살아 왔던 사람인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런 착각 속에 길을 잃었다. 그리고 펼쳐지는 서민적 풍경들. 그런데 그 서민적 풍경들이 구질구질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그 곳에서 외국인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서민적 풍경들 마저도 나에겐 이국적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해악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며칠 간 어딘 가에 머문다. 원래 들었던 풍문과, 보았던 영화와 사진들과 만화들이 여행의 들뜬 마음과 결합해서 현지에 대한 판타지를 마구마구 생산한다. 

어쨌든 정말로 멋진 바 Bar 하나를 발견해서 이틀 연속으로 갔다. 이름은 4, 일본어 발음으로 시-. 첫 번째 날엔 머리 색깔만 검고 이외수를 닮은 주인 홀로 있었다. 시부야역 바로 옆에 위치한, 기찻길 옆 바 Bar는 전철이 지나갈 때 마다 조금씩 떨었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로 조금씩 더 떨었다. 주인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 보자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디제잉에 열중했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틀어 주는 바였다. 오 미터 길이의 나무로 된 바와 조그만 나무 테이블이 네 개, 조금 커다란 단체 손님용 테이블에 하나 있는 바였다. 주인이 손수 서빙을 하고 손수 음악을 섞었다. 두 번째 날엔 프랑스계 일본인 여자 바텐더가 있었고 여자 한 명이 바에 앉아 있었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바 안으로 들어 갔다. 



                                        
그녀 옆의 옆 자리에 앉았다. 맥주를 시키고, 먼저 바텐더에게 말을 건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여자 손님 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눈썹이 가늘었던 그녀는 화장기가 전연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허연 가부키 분장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평범한 오-에르, O.L, Office Lady, - 사무직에 종사하는 여성을 일컫는 말 - 라고 소개한 그녀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샌프란시스코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첫 대화는 쉽게 풀려 나갔다. 그리고 난 그녀 바로 옆 자리로 옮겨 갔다. 

그녀는 힙-홉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힙-합 아닌가요? 힙-홉, 홉, 홉. 끝내 힙-합을 힙-홉으로 밖에 발음하지 못하는 그녀가 순간 귀여워 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는 내가 머리 속에 품고 있었던 귀여운 일본 여자, 라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에 딱 맞은 얼굴 이었다. 

난 일본식 서민 술집에 가서 꼬치 구이 냄새를 맡으면서 사케를 마시고 싶었지만, 멍청하게도 난 그 전에 그녀에게 나이를 물어 보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녀는 삼십 대 중반이었고, -얼굴은 분명 이십 대 중반인데- 애가 있는 이혼녀였다. 그래, 큰 상관은 없었지만,,, 조금 있으니 그녀에게 전화가 왔고, 그 전화는 집에서 애를 대신 봐주고 있는 자기 어머니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뒤에 내가 먼저 일어 났는지, 그녀가 먼저 일어 났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이름은 까먹은지 오래다. 단지 힙-홉, 홉, 홉, 을 힙-합으로 발음 하려고 노력하다가 관두었던 때의 귀여운 표정만이 생생하다. 

내심 마지막으로 생각해 두었던 어느 곳으로 향했다. 파티도 하고 분위기도 왁자하고 소위 '인터내셔널'들이 많이 들락거린다는 곳이었다. 들어가자 백인 남자 바텐더가 나를 반겼다. 사람들 중 십 중 팔구는 서구인이었다. 바텐더는 나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데, 나는 젠 체 하느라고 나는 여행자요, I'm a traveler - 끽해야 동경 밤거리 방황하는 주제에 - 라고 말했다. 녀석은 갑자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 발음은 그에게 troubler로 들렸다. 자전거를 하나 훔쳤으니 troubler 일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I'm a stranger, 라고 말해줄 걸 그랬나 보다. 어쨌든 그 담에 날 반긴 건, 샌프란시스코에 잠시 살았다고 하니 과도한 반가움을 표시하던, 자신을 캘리(포니아) 걸 Cali-girl 이라고 소개하던 바텐더였고, 나는 비싼 맥주를 몇 잔 또 주문하고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들을 자리를 옮겨 다니며 나누기 시작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땐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한 강박이 스스로에게 조금 줄어 든다. 익숙치 않은 외국어라서 그럴 것이다. 

마지막 날이 마침 [인간 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의 생일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묘는 동경 근처에 있었다. [인간 실격]은 지금까지 읽었던 중에 가장 강렬하게 읽었던 책 중의 하나다. 그 책은 내 속에 쇠꼬챙이를 쑤셔 넣고 휘젓는 듯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십년 쯤 늦게 그 책을 발견하고, 읽은 것에 대해 분노 했다. 

누군가가 프랑스에 여행 갔을 때 고흐 무덤에 찾아가서 자신이 쓴 편지를 그 무덤 위에 올려 놓고 눈물기가 가시지 않은 촉촉한 자신의 눈을 담은 플라로이드 사진을 보여 준 일이 있었다. 나도 다자이 오사무의 묘에 가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지 않았다. 먼저 이미 누가 한 일을 내가 그대로 따라 하기 싫다는 유치한 어린 아이의 본능이 발동했다. (그 누군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고흐를 좋아하고, 하루끼를 좋아해서 한 때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쨌든 내가 좋으면 된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고민을 그쳤다고 했다. 여자라 그런지, 나보다 더 성숙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미 [인간 실격]에 대한 기억이 좀 가물가물 했다. [인간 실격]을 읽었던 기억은 십 대에 책을 접하고, 반복해서 읽고, 의지하고, 위로 받고, 그런 종류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 책에 매혹 되었던 기간은 강렬했지만 짧았고, 다시 또 다른 책과 또다른 영화와 또 다른, 또 다른 무엇에 매혹 되어 있었다. 

근데 실은, 무엇 보다 귀찮았던 거다. 굳이 그 먼길을 찾아가서 자살해 버린 일본인 묘 앞에 서기가 싫었던 거다. 그리고, 그때 엉뚱하게도 왜 김승옥은 그런 글들을 써제꼈으면서 80년 광주 이후에 충격을 받고 재미없게시리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버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각주:1] 

샌프란시스코로 돌아 와서 동경을 배경으로 한 영화, [Lost in Translation]을 보았다. AIR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화면도 예쁘고, 빌 머레이의 감정 없는 얼굴 표정도 맘에 들고, 스칼렛 요한슨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는데, 문득 영화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어떤 일본인(아시아인)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이 느껴져서 끝까지 보지 못했다.

이하 사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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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생각이 엉뚱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책 [르네상스인 김승옥] 에서 확인 한 바, 김승옥의 연표에 따르면 1960년, 그러니까 그가 20세 때, 4.19 이후 일본문화 개방정책으로 출판된 일본의 전후소설을 읽고 "일본 작가들의 허무주의에 입각한 탐미주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다자이 오사무에게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사실은 대학생 때부터 소설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그때 번역되기 시작하는 일본 소설을 읽고 받은 충격이랄까 자극 때문이었어요... 내가 과거에 막연하게 헤르만 헤세 읽고 앙드레 지드 읽고 하면서 서양 문학에서 받았던 느낌과는 다르게 훨씬 실감나고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아,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이렇게 아프고 절실하게 쓸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느낌을 충격적으로 받았죠." 라고 말하고 있다. 참조, [르네상스인 김승옥] 65쪽. (2009/04/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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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에세이 2009. 4. 4. 14:24

그를 어어부 밴드, 니 뭐니 하면서 잠깐 잠깐 접한 적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마도 황신혜 밴드, 하고 좀 헷갈렸고, 난 저런 풍의 밴드 이름에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아예 음악을 찾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홍대를 기반으로 뻘소리가 들어 있지 않는 음악 평론을 쓰는 분, 의 글을 접하고는 백현진, 의 음악을 들어 볼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주문한 앨범을 뜯고 나서 음악을 쭈욱 듣고 나니 이 백현진이라는 사람의 음악은 규정 지을 수 없다, 어떤 카테고리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느꼈다. 날 것. 적나라함. 이런 표현이 이 앨범에 가장 잘 어울린다. 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시적이면서도 서사적임과 동시에 사회성까지 두루 갖추었으며, 멜로디와 연주 또한 범상하진 않다. (물론, 어어부 밴드에 비해서는 많이 약해 진 것이라고들 한다.) 무엇보다 백현진의 창법. 죽여 준다.

규정지을 수 없음, 과 창법에서 언뜻 톰 웨이츠 Tom Waits , 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도 났다. 하지만, 톰 웨이츠의 음악이 철저하게 미국의 이야기가 담긴, 미국적인 음악이라면, 백현진의 음악은 진짜 한국적인 냄새가 흠씬 풍기는 음악이다. 무엇보다 한국, 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물경 그 것들이 서울, 의 어느 지역, 에 한한 이야기라고 할 지라도. 결국 백현진,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친숙한 지역을 노래하고 있을 뿐이니깐.

아무튼, 음악에서 순대국맛, 도 나고 옛날 떡볶이 맛, 도 난다. 그러면서도 촌스럽거나 싼티나지 않는다. 

앨범에는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추천사 들이 있다. 하지만,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영화 보다는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좀 더 어울린다. 또한 유튜브에 내가 이 앨범을 사게 만든 결정적인 뮤직 비디오, [학수 고대했던 날]이 있다. 백현진 본인, 이 출연 했으며, 캠코더로 대충 찍은 듯 하지만 역시 범상치 않은 뮤직 비디오다. 

한 가지 더, 앨범 [반성의 시간] 에는 총 열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두 곡에 외국인이 등장한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 '북미인/앵글로색슨인' 이다. 한 명은 캐나다 남성 배낭 여행객이고, 다른 한 명은 미국 남성 주둔 군인이다. (또한 둘 다 '백인'인 듯 하다) 각각 한국 남성과, 한국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표현 된다. 열 두 곡 중 두 곡, 1/6, 꽤 적지 않은 비율이다. (2008/09/04)


덧. 백현진의 노래를 다시금 들으니, 이번엔 당구장에서 '사구'를 치다가 시켜 먹는 짱깨맛이 나는 구나. 당구장에서 '사구'를 치다가 시켜 먹는 짱깨맛, 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제는 흘러간 구십 년대의 풍경/취향, 일지도. 그 것들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예전 한국 영화 [품행제로]가 팔십 년대를 형상화 했던 것 처럼, 내 십대를 규정한 구십 년대를 형상화 하는 영화가 나오겠지. 누군가가 슬슬 지금 부터 기획해서 수년 뒤에 시기를 잘 맞춰 개봉하면 잘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2009/01/09)

덧덧.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에 대한 또 다른 좋은 글.

덧덧덧. 사분 오십 오초 부근 부터 그가 눈이 빠지도록,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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