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9.06.30 김이박 유학기
  2. 2009.06.30 [잭슨 폴록]과 [낸시 랭]: 예술의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3. 2009.06.27 인간적인 1
  4. 2009.06.25 11.5%
  5. 2009.06.22 북한과 삼성그룹 비교
  6. 2009.06.20 [이명박]과 [소라 껍데기] : 공공 미술품 관점에서
  7. 2009.06.10 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8. 2009.06.09 아빠! 힘내세요
  9. 2009.06.03 김이박 종교 체험기
  10. 2009.06.02 김 훈 단상
  11. 2009.06.021
  12. 2009.06.02 보진 않았지만, [마더]에 대한 잡설 2

김이박 유학기

김이박 이야기 2009. 6. 30. 18:33

김이박은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오페라의 본 고장 이태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학 과정에서 대학 과정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김이박은 행복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골목 골목 박혀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카페나 술집에서도 성악이 언제나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마치고 김이박은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딱히 이태리에서 성악과 관련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김이박은 성악의 아름다움을 알아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가 못 마땅합니다. 

김이박은 요즘 이태리의 작가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을 번역 하는 일을 합니다. 그는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을 한국에 처음으로 번역한 사람입니다. 파치노 드니로의 소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이어 한국어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파치노 드니로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재재작년인가 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파치노 드니로의 책을 읽은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이태리에 가고 싶어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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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과 [낸시 랭]: 예술의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구라 2009. 6. 30. 08:45

누군가가 '예술은 무엇입니까?'라고 거대하고 실체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한다면 '형식입니다.'라고 간략하게 대답할 것이다. 

...


형식이 없어 보이는 예술에도 잘 살펴 보면 형식이 들어 있다. 이를 테면 미국에서 자국의 예술가를 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명해진 예술가들 중의 한 명인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은 물감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는데, 관람자가 그 잭슨 폴록의 그림 앞에 서서 그가 '물감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라는 '형식'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작품은 형식을 갖춘 예술품이 된다. 

현대 미술이라는 장르에 속하진 않지만, 김 훈을 예로 들면, 그의 작품 뿐 만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일해 왔다는 점, 그가 독일제 연필로 글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쓴다는 점, 또한 '형식'이 된다.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고 있는 김 훈 연재 소설 페이지에는 그가 직접 연필로 휘갈겨 쓴 원고지가 스캔이 되어 올라 오고 있는데, 그게 결코 괜한 짓거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에서 '형식'을 감상하는 것은 결코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과격하게 나아가 보자면, 잭슨 폴록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꼭 그의 그림을 볼 필요는 없다는 일종의 궤변도 통용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나도 그의 그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어차피 그의 그림에 있어서 '형식'은 예술품 바깥에 있다. 

Pop-Artist 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낸시 랭 Nancy Lang' 또한 이런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만들어 낸 예술품 자체는 아무런 형식도 가치도 찾아 볼 수가 없지만, 그의 예술품 바깥의 요소, 어느 정도 나이 먹은 예술계 주변의 오피니언 리더 남성들의 취향을 잘 겨냥한 아낌없이 베푸는 '애교' 와 남자를 집어 삼킬 것 같은 퇴폐미가 전혀 없는 매력 없는 '섹시함'을 발산하면서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도 그녀의 '매력'들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녀의 '이름 자체', 등등을 통해 볼 때 분명히 '형식'이 들어 있다. 돈에 의해서 마치 모든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 '포스트-모던 Post-Modern'한 시대에서 '실제 생활'에서 형식을 구축한다고 해서 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형식의 수준을 논할 일이고, 싸구려다. (오해 없길 바란다, 지금 싸구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인 '박혜령'이 아니라, 예술가/예술품 '낸시 랭 Nancy Lang'이다.)

한 편 앞에서 말한 '실제 생활'이라는 것이 실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실제 생활'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예술 내부에서 '형식'을 구축하려 하기 보다는, 미디어를 통해서 '형식'을 구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에서 볼 때 '연예인'과 매우 닮아 있다. 배우와 연예인을 비교 하면서 예를 들어 보자면, '배우'는 작품 안에서 '삶'을 연기 하지만, 삶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 연기'를 하는 것은 '연예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미 예술가/예술품의 '형식'이 작동하는 공간은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퍼포먼스 Performance 공간을 벗어나 미디어 공간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고 이런 점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필요도 있다. 잠깐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 보아도, 변기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 오면서, 이미 만들어진 상업 제품과 예술품의 차이가 허물어지고, 미술관과 일상 공간의 경계가 느슨해진 것이 '서구'에서 1917년에 벌어진 일로, 벌써 92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에도 예술은 '무궁한 발전'을 이루었고, 한국 사회는 열심히 '서구'를 따라 잡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연예인'을 굳이 번역하자면 '셀러브리티 Celebrity'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예술가/예술품'이 '미디어'를 통해서 어떤 형식을 구축하려고 드는 새로운 형식을 갖춘 예술 장르를 Celebrity-Art 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탄생으로 바라 보는 것은 어떨까 싶고, 이런 면에서 본다면 삶 속에서 미디어(포탈 사이트, 싸이월드)등을 통해서 '배우 연기'를 하는 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아방-가르드 avant-garde' 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잭슨 폴록으로 돌아가보자. 그가 칭송되었던 배경에는 현대 미술이라는 부분에서 미국이 유럽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 들어 있었다. 팽창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 미술에 있어서도 스타가 필요하다. 나아가 이젠 스타가 필요한 것 뿐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새로운 장르를, 새로운 것, 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새로운 장르로 '셀러브리티-아트 Celebrity-Art' 가 있고 그 한 복판에 '낸시 랭 Nancy Lang'이 있다. 

물론 이미 미국에도 패리스 힐튼 Paris Hilton 과 같은 Celebrity-Art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긴 하지만, 미국은 포탈 사이트가 한국 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아직 Celebrity-Art 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으므로, 먼저 저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국가가 임자라고 볼 수 있겠다.


...

'예술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형식입니다.'라고 대답할 거라고 했다. 만약 '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치'중에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바꿔서 묻는다면 나는 '진실입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치 중에서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달성되기 위해서 '형식'은 얼마든지 '도구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통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쌓이는 기술 Craft 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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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짤막한 거 2009. 6. 27. 11:56

그 사람 참 인간적인 사람이야. 인간적이군. 인간적이야. 

대체 뭐가 인간적이란 말인가. 정이 많고, 감정적이고, 격정적이고, 실수도 하고, 비합리적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뭐 그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러한 것들만 인간적인 것인가.

수학과 과학을 만들어낸 것 또한 인간이 아닌가. 기계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계산과 숫자와 합리적인것, A를 삽입하면 F 라는 과정을 통해서 C가 만들어 지는 것. F(A)=C. 이러한 것들 또한 '인간적인' 것들은 아닌가. 법칙과 공식에 맞추어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 기계적이고 싶어 하는 것. 반복되는 일상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안전을 갈망하는 것 또한 인간적이지 않은가.

파시즘-권위주의-폭력과 같은 것들 또한 인간이 자유-평등-박애를 갈망하는 것 만큼이나 대단히 '인간적인' 현상아닌가. 파시즘-권위주의-폭력과 같은 것이 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일관되게 비일관적인 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덕목'이 아닐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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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에세이 2009. 6. 25. 04:48

MUNI 버스를 기다리는데 신문 자판대에 놓여 있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co Chronicle   1면 기사 제목이 눈에 확- 들어 와서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니,

 "(California) Stete's 11.5% jobless rate highest since 1941 | 실업률 11.5% 로 1941년 이후 최고조에 달해".


아니, 길거리 걸어다니는 사람들 열 명 중 한 명이 지금 직업이 없단 소리냐.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주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 전체 실업률 9.4% 보다 더 높단 말이냐.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 재정이 파산 상태인 거냐. 그래서 다음 달 부터 MUNI 버스비를 한 번 타는데 1.5 불에서 2.0 불로, 월 정기권은 45 불에서 55 불로 인상하는 거냐. 그리고 기사에 두 번째로 달린 댓글을 보니, 

"We all know what would fix the unemployment problem, don't we? Imagine no foreigners. Yeah, I know, I can't say that. | 뭐가 이 실업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안 그래? '외국인'이 없다고 상상해 보자구. 아, 그래, 알어. 이런 말 하면 안 되지." 

그래, 188개의 추천과 180개의 반대가 달렸구나. 근데, 나야 여기서 순도 백 프로 '외국인'이지만, '니들'은 미국에 이민을 와서 시민권을 가지게 된 동양인들, 미국에서 태어난 동양인들 Asian-American, 도 '외국인'으로 취급하잖아. '니들'도 어차피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다 이민자면서.

아니, 그리고 대공황이 공식적으로 시작된게 1929년 10월 뉴욕 주가 시장 대폭락인데, 정작 실업률이 11.7% 의 정점을 찍은 건 그로부터 대략 11년이 지난 뒤인 1941년 1월이었단 말이냐? 그렇담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이번 '공황'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실업률이 무려 (캘리포니아 주 기준으로) 11.5% 에 도달 했으니 이젠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냐?  (링크 시켰던 기사 에서 "The state's peak unemployment rate was 11.7 percent in January 1941." 라는 문구를 보고 1929년 부터 시작 되어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난 1941년 까지 이어진 대공황 당시 캘리포니아 주 실업률이 11.7% 가 최고였을거라고 '추측'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확대 해석이다. 대공황 당시 가장 높았던 캘리포니아 주의 실업률이 몇 프로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미국 전체로는 23.6% 였다고 한다. 1941년 이전 수준으로 더 나빠질 수도 있겠다...) 근데 결국 미국이 대공황에서 빠져 나온건 1941년 12월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며 참전하게 된 세계 제2차 대전이 있고 나서 아니었나? 

음, 미국이 '악의 축'으로 꼽았던 나라 중에서 이란은 요즘 격렬한 민주화 시위가 한창 진행 중이고, 얼마 전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Downtown 에서도 이란 민주화 시위 지지 시위가 있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란의 이번 시위는 이란의 '(누구신가, 가 그렇게도 강조하시는 목표인)국가 브랜드 향상'에 큰 공을 세우고 있지 싶다. 그래서 눈을 돌려 보니, 다른 '악의 축' 북한은 어느 덧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실태를 취재하던 샌프란시스코 Current TV의 중국계, 한국계 미국인 여기자 두 명을 납치해서 12년의 강제 노동형을 때렸고, 여전히 핵 개발은 진행 중이시고, 이런 시절에 후계자 교체까지 진행하면서 권력 삼 대 세습이라는 초유의 일을 진행중이신 와중인데, 얼마전에 진행 된 한-미 정상회담에선 '강력한 대북압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지.

그래, 아무튼 실업률 11.5%라 이거지? 그래서 그저께 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맥도널드에 딸려있는 창고 옥상에 누군가가 올라가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댄 것이냐? 대체로 흑인들과 소수의 동양인이 사는 이 동네에 왜 스케이트 보드를 옆에 낀 백인이 엄하게 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단 말이냐. 불과 이십 미터 떨어져 있는 경찰서에서 아무도 오질 않길래 신고를 해야 하나, 근데 신고를 하면 무슨 '죄'가 성립이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May I take your order? | 뭘 주문 하시겠어요?" 라는 낭랑한 기계음으로 내 단잠을 깨워주시는 Drive-thru 맥도널드 판매원도 여전히 주문을 받기에 여념이 없는 걸 보아 '사유지 칩입'으로 신고할 생각은 없는 듯 해 보여,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잠시 귀를 기울여 보니 제대로 들리는 건 Fucking San Francisco 밖에 없었는데, 순간 저 인간은 무슨 이유로 San Francisco가 Fuck스러운걸까, 어차피 저리 소리를 지르는게 관심 받고 싶은 듯 하여, 밖에 나가 '대화'를 시도해 볼까 하다가, 참았는데, 아마도 1년 반 정도 전이면 대화를 시도해 봤지 싶은데, 지금 보다 호기심에 차 있던 시절이었던지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밖은 어느 덧 잠잠.

음, 창 밖을 보니 금빛 아치, 오십 개의 별과 열 세 개의 흰 색-붉은 색 띠, 가 바람에 펄럭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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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삼성그룹 비교

인용과 링크 2009. 6. 22. 14:30

북한 North Korea




남한 South Korea, 의 삼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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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소라 껍데기] : 공공 미술품 관점에서

구라 2009. 6. 20. 18:30

The Museum of Post-Modern Art

[이명박]


2007년 12월 19일 作

투표자들 | 피와 뼈와 살

여기저기




[소라 껍데기]


2006년 

클라에스 올덴버그, 쿠제 반 부르겐 | 알루미늄 주물

청계광장






해설

[이명박]은 그를 뽑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상징하면서도, 살아 있어 걸어 다니기 때문에 미술관 밖에서도 관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공공 미술품이다. 그를 뽑은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 있던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그를 뽑았던 사람들에게, 마치 거울을 들여다 보는 듯한 효과를 지닌 자기 반영적인 작품으로 기능하길 기대하고 있다. 요즘 들어 어느새 검찰, 경찰과 같은 공권력이나 구속, 수사와 같은 것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데, 본래의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점차 잃어 버리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안타깝다. 

[이명박]이라는 공공 미술품은 그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아 차리기 쉽다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지닌다. 이런 측면에서 [이명박]은 이명박이 서울 시장에 재직하면서 서서히 공공 미술품으로 기능하려 하고 있을 2005년-2006년 무렵에 설치 되었던, 서울시 청계천 초입에 솟아 있는 [소라 껍데기]라는 또 다른 공공 미술품과 비교 된다. 이 작품 [소라 껍데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보를 아는 것이 필요하고, 그 정보들은 공공 미술품 [이명박]의 배경 정보를 아는 것과 달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검색이 필요하다. 

당시 회사 KT에서 작가에게 들인 돈과 제작비를 모두 포함해서 34억 원을 들여 서울시에 기부했던 이 [소라 껍데기]는 팝 아트 Pop-Art 작가 클라에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계-유태계 미국인과 그의 아내 쿠제 반 부르겐이 공동 설계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Spring]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데, 작가들은 청계천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이 이 [소라 껍데기]를 설계했다. 당시 '서울의 랜드 마크'를 만들 것을 염두에 두고 서울시 산하에서 청계천 상징 조형물 선정과 제작 등의 업무를 위임 받은 곳은 서울문화재단이라는 곳으로 당시 대표 이사는 [이명박]과 함께 역시 요즘 살아 있는 공공 미술품으로 활약 중이신 [유인촌]이다. 추측하건데, 선정 과정에서 어느 유명한 미술관련 인사가 미술계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클라에스 올덴버그라는 사람을 추천했을 것으로 짐작 된다. 

이 [소라 껍데기] 감상에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계천과 그 [소라 껍데기] 사이에는 아무런 역사적, 문화적 맥락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청계천과 그 [소라 껍데기] 사이에는 아무런 역사적, 문화적 맥락도 없다, 라는 맥락'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지만, 비로소 그 맥락 안에서 [소라 껍데기]가 품고 있는 진정한 메세지가 이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 [소라 껍데기]를 감상하는데는 여느 현대 미술 Modern Art 이 그러하듯이 사전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고 감상에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해야 한다. 허나, 본래 공공 장소에 설치 되는 공공 미술품이라는 것은 얼른 알아먹을 수 있어야 하므로 이러한 [소라 껍데기]의 특징은 공공 장소에 설치 되는 공공 미술품으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저 [소라 껍데기]는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아서 제대로 다시 전시 되어야 한다. 마치 현대 미술 Modern Art 이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을 떠나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 처럼. 변기는 미술관 안에 있을 때 예술품이지, 화장실 안에 있으면 변기일 따름인 것 처럼.

[이명박]이라는 공공 미술품의 공식 전시 기간은 (아직까지는) 2013년 2월까지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은 여러 번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라건데, [이명박]의 전시 기간이 끝나는 대로 그 재산으로 저 34억 짜리 [소라 껍데기]를 서울시로부터 다시 사들여서 이명박 자신의 집 뒷 마당에 세워 놓아 가치를 높여 주었으면 한다. 그의 집 뒷 마당이야말로 저 [소라 껍데기]가 놓여져 있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맥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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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인용과 링크 2009. 6. 10. 13:39

하나,

모든 문제를 이념이나 도덕성의 문제로 환원하여 판단하려는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답이 안 나오는 부류다. 그게 좌파건 우파건 어디건 별 상관이 없다. 문자주의, 근본주의 개신교 신앙에 사로 잡혀 '개독'이라고 욕을 먹는 사람들과 별 반 다르지 않다.


하나 그리고 반,

물론 '개독'이라고 욕을 먹는 이유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전도 방식'도 들어 있는데, 그 방식은 도를 아십니까, 나 예전 운동권, 의 그것과 별 반 다르지 않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선후배가 모인 자리 혹은 직장 상사와 부하가 모여 있는 술자리에선 '설교'가 있을 것이고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교'와 '전도'는 대단히 한국적인 문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두울,

체 게바라 티-셔츠을 입는 것과 롯데월드에 가서 '프렌치 레볼루션 French Revolution'이란 이름이 붙은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스타벅스에 가서 Fuck the Capitalism! 이라는 글씨를 쓰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아, 그리고 체 게바라는 전투 과정에서 발생했던 탈영병을 가차 없이 처형 했다지.


세엣,

읽고 싶은 책. 2009년 4월 30일에 영어판이 나왔는데,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6월 10일에 한국어판이 번역되어 나왔다. 놀랄만큼 빠르다. 그리고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추천사가 붙어 있는 듯 하다. 한데, 샌프란시스코 시립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 보니 나오질 않는다. 캐나다 사람이 쓴 책이라고 홀대 하는 건가. 


네엣,

'콘텐츠', '웹 2.0' , '통섭 교육' 와 같은 '용어'들에 대해선 항상 의구심을 가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비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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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짤막한 거 2009. 6. 9. 17:43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영어 회화 열심히
댕기고, 있잖아요
국제중 입시 학원
다녀야, 하잖아요
담 달부턴 발레도
배워야, 하잖아요


아빠! 힘-내세요오
우리가, 있어요오오




해설 : 1997년 한국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등 한국 경제가 그럭저럭 거덜이 난 이후 1998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BC카드 광고에 삽입 되었던 노래 하나가 문득 갑자기 떠올라 자꾸만 머리에서 맴돈 나머지, 딸린 애는 없지만, 당시 신용 카드 하나 만드는 것이 블로그 하나 만드는 것 보다도 쉬웠던 것을 상기하며, 원곡 가사에 내용을 좀 더 덧붙여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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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종교 체험기

김이박 이야기 2009. 6. 3. 01:12
믿쑵니까. 아멘. 믿쑵니까. 아멘. 믿쑵니까. 아멘. 김이박, 은 어머니를 따라 기도원에 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 바닥은 군데군데 물이 스며 들어 검게 썩어 있었다. 입구에는 몇 백 켤레의 신발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고, 기도원 건물 안에서는 발냄새가 났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피아노 반주가 흘렀다. 통성기도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이박의 앞 줄에 있던 한 소년이 두 손을 천장에 향해 활짝 벌리고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소년이 몸을 격렬하게 앞 뒤로 흔들 때마다 소년의 무릎팍은 마루 바닥을 찧었고, 그 때 마다 둔탁한 소리를 냈다. 두둑-두둑-두둑. 김이박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넌 너무 차가워. 같은 교회 사람들은 김이박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섭씨 100도로 끓고 있는 물은 36.5도를 유지하고 있는 물에게 넌 너무 차갑다고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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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단상

에세이 2009. 6. 2. 11:45

2001년 출간 된 [칼의 노래]가 유행했을 때, 그 책을 서점에 한 걸음에 달려가서 사서 읽었다. 나중에 학교 내에서 중고책을 사고 파는 바자회가 열렸을 때 그 책을 바로 내놨다. 한 문장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당시 그 책에 담긴 김 훈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집을 읽었을 때는 문장들과 문장들에 담긴 사유를 좋아했다. 

어느 날 강남역 교보문고를 배회하고 있는데 주위가 소란스러워 둘러보니 단편집 [강산무진] 출간을 기념하는 김 훈의 팬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어떤 이, 가 김 훈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싸인을 대신 받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뽑아 들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었고, 말없이 책을 내밀었고, 그는 나를 한 번 쳐다 보고는 이름을 묻고는 싸인을 해 주었다. 그 때 그가 보여준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어떤 이, 의 이름을 대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는 그 책을 들고 집으로 왔다. 다 읽고 나서는 일주일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그 단편집에 담긴 허무가 날 사로잡아서 였는지, 아님 내가 그 당시에 말할 수 없이 허무했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이후 그의 장편 소설은 읽어 보려 한 적이 없었지만, 발표된 단편 소설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는 분명히 유물론자이면서 이상(理想)을 믿지 않으며 가치가 들어가 있는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인데, 이상(異常)하게도 그의 문장들을 읽어 나갈 때, 어떤 정신적인 것들이 깃든다.

김 훈이 인터넷에 [공무도하]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된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한 김 훈이 쓰는 이번 소설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기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장편 소설 중에서 처음으로 시간적 배경이 현대로 설정되어 있다. 그의 말처럼 처음으로 '당대의 일'을 쓰고 있다. 아울러 굳이 정치적 성향으로 분류하자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그가 현재의 '시국 상황' 아래서 연재하고 있는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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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거 2009. 6. 2. 10:02
노빠, 황빠, 심빠, 무슨 빠, 무슨 빠, 무슨 빠. 빠빠빠. 글쎄. 무슨, 각기 다른 빠, 들이 서로 구별되어 오롯하게 존재하는 걸까? 무슨 빠, 라는 실체가 있는게 아니라 한국을 유령처럼 배회하는[각주:1] 빠심(), 이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빠심, 이 있는 한 언제든지 누군가와 결합하여 박빠, 유빠, 등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출몰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다.


  1. 빠심, 을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생각해 보니 오프라 윈프리와 스티븐 잡스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고 바락 오바마도 어느 정도 빠심, 을 업고 당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빠심, 에 더 많은 종교적 심성이 깃들어 있다. 아울러 자꾸 미국하고만 비교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이미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방식으로- 미국화가 진행 된 상황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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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진 않았지만, [마더]에 대한 잡설

짤막한 거 2009. 6. 2. 09:33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를 아직 보지도 않았고, 언제-어디서 보게 될른지 모르지만, 꼭 보고 싶다. 사람들이 [마더]에 대해서 '어머니의 본성'을 다루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내 생각엔 '어머니의 본성' 앞에 '한국'이라는 단어를 추가 시켜 '한국 어머니의 본성'을 다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어머니의 본성, 모성' 뿐 만 아니라 '문화적인 맥락' 또한 반드시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 개신교가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한국' 개신교가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와 같다. 

[마더]를 본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마 [마더]에서 묘사된 어머니를 백프로 이해하고 지지할 것 같은데, 나중에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면 영화를 보고 나온 자식을 둔 어머니들 중에서, 한국계 미국인 나아가 동양계 미국인을 제외한 미국인 어머니에게 [마더]에서 묘사된 어머니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지하냐고 물어 보고 싶다. 아울러 예전에 읽었던 어느 영문 블로그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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