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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5 관계
  2. 2008.12.25 입술
  3. 2008.12.25 가족
  4. 2008.12.23 형 동생
  5. 2008.12.20 현실과 스크린 사이 : 성적 소수자의 경우
  6. 2008.12.12 미국 종교사를 읽고
  7. 2008.12.10
  8. 2008.12.10 =
  9. 2008.12.10 하루
  10. 2008.12.10 안다
  11. 2008.12.09 김이박 유학기, 일
  12. 2008.12.09 믿질 못하겠어
  13. 2008.12.08 아이브레인 iBrain
  14. 2008.10.31 한국어와 영어에 대한 생각
  15. 2008.09.29 세계는 감옥 2
  16. 2008.09.29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17. 2008.09.23 르 클레지오와 최수철
  18. 2008.09.23 미드 그리고 한국
  19. 2008.09.21 원숭이 섬의 비밀에 대한 단상
  20. 2008.09.17 잭 케루악 잡설
  21. 2008.09.17 콩나물 영어책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22. 2008.09.04 김이박 성장기
  23. 2008.07.26 김이박 일상기
  24. 2008.07.26 김,이,박
  25. 2008.07.26 What's our country?
  26. 2008.07.20 컨베이어 벨트
  27. 2008.06.03 다이아몬드

관계

2008. 12. 25. 20:17

걔?

아냐

친분은 없어
안면만 있어

:

입술

2008. 12. 25. 19:21

도톰한 
그녀의 입술

키스할 때
물어뜯기 좋다

:

가족

2008. 12. 25. 19:01

가족이란
말하자면
평생 탈퇴가 
불가능한
동아리 랄까

:

형 동생

2008. 12. 23. 15:23

남 동생 두 명을 둔
삼형제 중 장남이니까 이런 말 하는건데,

단언 컨데, 

형이니까 말하는 건데,
선배로써 너한테 말하는 건데,
 
식으로,
 
누군가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그 뒤는 귀담아 들을 필요 조차 없다.

대부분 개소리다. 

남 동생 두 명을 둔
삼형제 중 장남으로써 이런 말 하는거다.


:

현실과 스크린 사이 : 성적 소수자의 경우

에세이 2008. 12. 20. 21:16

한국에서는 성적 소수자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가 유행인가 보다. 멀쩡한 신윤복은 여장남자로 둔갑하여 동성애와 이성애를 넘나드는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야오이'물은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조만간 개봉할 유하 감독의 '쌍화점'은 고려 말 왕과 왕후와 호위무사간의 찐한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유 하 감독은 불현듯 과거로 돌아갔다.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하다.) 게이-레즈비언-트렌스 젠더-바이 섹슈얼.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한국에서 금기시 되지 않고, 드라마, 영화의 소재로 전면적으로 활용 된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성적 소수자들에 비례하여 한국 사회는 과연 그러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이 예전보다 개선이 된 것일까?

살아 오면서 주변에서 그러한 성적 소수자를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얼마 전 내가 몇 년 동안 알아 왔던 어떤 이가 성적 소수자라는 것을 알고 놀랬다. 그렇다면, '그 많던 '게이'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한국 땅에서 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르게 그러한 성적 소수자를 살아가면서 잘 마주칠 수 없는 까닭은 마치 한국 땅에서 길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잘 마주칠 수 없는 것과 일맥상통할 지 모른다. 반대로, 미국 땅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도심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마주칠 수 있다. 왜? 미국에는 한국보다 장애인이 더 많아서?

이유는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부터, 공공 시설을 이용하는 것,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에 있어서 장애인들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무엇 보다 '정상인'들의 시선을 그 들이 어떻게 감내하고 다니는 지 나로써는 짐작조차 안 된다. 성적 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땅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처럼 한국 땅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다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어 있다는 것. 길거리에는 '정상인'들로 그득한데, 스크린과 브라운관에는 '비정상인'들로 넘쳐 나는 듯 하다. 

:

미국 종교사를 읽고

에세이 2008. 12. 12. 23:21

'미국종교사'라는 책이 있다. 번역서가 아닌 직접 저술한 책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알라딘의 책 소개를 그대로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역사와 정치를 살펴볼 때 종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시민종교’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은 그간 미국의 정치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미국의 정치나 여러 정책들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안되는 미국 종교사 통사이며, 한국 사람에 의한 탈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면서, 그 동안 역사 속에서 소외되어 왔던 소수자들에게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이 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주민, 여성, 이민자, 새로운 종교, 사회적 소수자 등의 종교적 경험이 이전까지의 어떤 미국 종교사 통사보다 더 균형 있게 언급되어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주를 줄이고 비교적 평이하게 기술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종교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의 글은 그 책을 읽고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던 글의 일부분이다. 딱히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있는 글도 아니고, 그냥 생각들이 듬성듬성 흩뿌려진 그런 글이다. 

-----------------------------------------------------------------------------------------

...(중략)

나는 항상 대한민국의 오천 년 역사를 자랑스러워 할 것을 고등 교육을 통해서 주입 받았으나, 실은 오천 년 전에 한반도에 거주 했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들, ‘한국인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미국선교사들일본인, 그리고 이승만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정희와 그가 추진했던 근대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 대한민국은 기껏해야 백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정체성을 만들어 왔을 뿐인데, 어쩌면 이러한 관점이 이백 년 동안 국가 정체성을 구축해 온 미국을 대한민국이 기를 쓰고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내 생각으론, 대한민국이 미국의 진정한 실체, 혹은 바람직한 면을 모방하고 있다기 보단, 그 풍문과 소문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저항문화이자 빈곤지역 흑인들의 정서를 담고있는 힙합을 우리 나라에 소개한 것이 주로 유학파였던 관계로 그 힙합 문화는 압구정이라는 부자 동네를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양키문화로 포장되었으며, 역시 블루스에서 태동하여, 자유롭고 분방한 흑인들의 리듬을 담고 있는 재즈 역시 고급 문화로 여겨져청담동에서 가장 열렬히 소비 되어 왔다. 또한 미국 중산층을 날카롭게 해부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 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창동의 영화처럼 매우 적나라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미국 교외의 전형적인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 바인데, 그 풍경은 일산과 분당의 외곽지역의 소위 전원 주택들이 열심히들 흉내 내고 있는 바다.

...(중략)

미국이 비록 남의 나라 역사이긴 하지만미국 현대사에 흥미를 느낀다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는 1960년대이다그 시기에 미국의 모순은 절정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미국이 베트남 전에 참전하면서반전 시위가 극렬하게 일었고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거센 반문화 운동히피 운동이 일어 났다또한 진보적인 것으로 유명한 버클리 주립 대학에서는 ‘Civil Right Movement’가 시작 된 것으로 알고 있고또한 이 곳 샌프란시스코는 게이-레즈비언 인권 운동이 있었던 도시로 유명하고지금도 여전히 미국 내에서 게이-레즈비언의 비율이 가장 높다.

게다가 그 시기의 반문화 운동은 동양의 종교특히 인도의 힌두교와 일본에 의해 소개 된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어떻게 보면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동양과 서양이 보다 더 격렬하게 만나서 조우한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어쨌든 이 곳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아시안의 비율도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며시내 중심가에는 ‘Asian Art Museum’이 건재 하다.

히피와 동양 문화의 영향을 받은 반문화 운동은, 대한민국 보수 교회 내에서는소위 사탄의 음악, 문화로 정의 내려진 바 있는데, 그것의 여파로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음반들이 어머니에 의해서 쓰레기통에처박히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이 곳에서는 ‘Bible Belt’로 불리고 있는 미국 남부의 대단히 보수적인 개신교 그룹의 견해와 일맥 상통하는 바다. 물론, 가장 진보적이고, ‘뉴욕보다도 훨씬 더 ‘liberal’한 도시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들 자부하는 샌프란시스칸들에게 그러한 보수 개신교 그룹은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아마도 그 당시에 가장 아이러니칼한 상황은, 서구에서 규정한 -에이지라는 개념을 그대로 대한민국에 수입해서 그것을 다시 사탄이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대체 누구의 눈으로, ‘상황들을보고 있는가

영화를 예로 들자면, 헐리우드 영화를 볼 때에도, 요즘 부쩍 커진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 시장을 의식 해서 인지, 아시아인,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배우들이 부쩍 출연하고, 우리 나라의 몇몇 유명 배우도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런 영화를 볼 때 간혹 내 스스로에게도 놀라는 것은, 백인, 주로, 앵글로 색슨족과 나란히 서 있는 동아시아인을 보고 있는데, 그 동아시아인이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다시 말해서, '타자'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러한 관점들이 내 안에도 주입되어 있다는 것에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략)  

저자의 책 '미국 종교사' 를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맨 앞의 유럽인들이 기독교를 들고 미 대륙에 진출하기 이전에 다양한 소위 원시적인종교들이 존재 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한 것과, 기독교가 그 다양성들을 파괴했다는 것, 그리고 그 종교들에 대한 간략한 묘사였다. 또한 종교또는 종교성이라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풍요로운 경험을 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정의 한다면, 과연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믿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과연 그 시절, 기계 문명 이전의 시기 보다 더욱 풍요로운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이것을 예술, 또는 예술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한다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예술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현대인들이 과연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통찰이 더욱 크고, 삶에 있어서더욱 많은 것을 누리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반문해보았는데, 명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시스템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지라, 그 시스템을 만들어 낸것이 결국엔 인간 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시스템은 인간을 억압하는데, ‘제도권안에서 존재하는 종교라는 것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아니라, 또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문해 본다.

언뜻 스치는 단상이긴 하지만, 21세기에는 어쩌면 각 종교 간에 드리워져있는 장막들, ‘말씀교리제도로써 갈려 있는 그 숱한 종교들의 경계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한 역사가가 20세기에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구세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라고 답한 것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종교를 택할지, 어떤 식으로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될지는 모르겠다. 인상 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종교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박상륭의 소설 혹은 잡설 '죽음의 한 연구'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 대한 묘사였다. 그 죽음이라는 것이 무슨 대단하고도 큰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건너는 것이 유달리 까다로웠던 미국 입국 심사대 보다 도 훨씬 더 부드럽게 훌쩍 지나가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읽은 지 오래 되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주인공이 마치 뚜벅뚜벅 걸어가다가 죽음이라는 활짝 열려 있는 문 앞에서 전혀 망설임 없이 그냥 걸어가던 속도로 훌쩍 지나가는 듯한느낌이라고 내 방식대로 다시 묘사를 할 수 있겠다.

 ...(하략)


:

2008. 12. 10. 21:27

선이 그어져 있는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넘을까
말까
넘을까
말까

그런데 
선은 누가 그었을까

:

=

2008. 12. 10. 21:25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의 아무 호프집의 메뉴판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의 아무 호프집의 내부 장식재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의 아무 호프집
아무 유흥가의 간판 밀집 지역
아무 유흥가

예수 믿으세요
도를 아십니까
얼마까지 알아 보셨어요
물 진짜 좋아요 잠깐 구경만 하고 가세요

:

하루

2008. 12. 10. 21:21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

안다

2008. 12. 10. 21:21

안다.

ㅇ ㅏ ㄴ ㄷ ㅏ.

ㅇ  ㅏ  ㄴ  ㄷ  ㅏ  .

ㅇ     ㅏ     ㄴ     ㄷ     ㅏ     . 

 .


:

김이박 유학기, 일

카테고리 없음 2008. 12. 9. 16:02

올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서 한국인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된 김이박의 친구 녀석은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미국에서 동양 남성의 지위에 대해 자학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흑인 여성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이박이 농담삼아, 그럼 흑인 여성과 사귀어야 겠군. 하니, 장난하냐. 라는 반응이다. 

김이박이 시간당  8불을 받아가며 불법 노동을 하고 있는 곳은 주로 흑인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곳이다. 이 가게에서 파는 건 '백인'이다. 꼬불꼬불한 머리를 가진 흑인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찰랑찰랑하고 윤기나는 '백인' 머리를 판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겉모습이 가장 친숙하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관찰하는 것과 사장 아줌마와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김이박의 낙이다. 

하루는 한 '고객님'이 들어 왔다. 김이박은 그녀에게 '백인' 머리 몇 개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아줌마는, 김이박에게 그 고객님에 대해서 심심하면 들어와서 물건을 구경하고 귀찮게 하는데 절대로 물건은 사지 않는다고 덧붙이셨다. 김이박은 그래서 그 고객님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격지심이 발동했는지, 그 흑인 여성은 오바마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오바마가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이고, 이제는 변화- CHANGE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HANGE, CHANGE.

김이박은 순간 오바마가 말한 CHANGE에 대해서 생각했다. 속이 공허한 말들, 캠페인성 구호 일 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그 속을 채워 넣기 좋다. 그리하여 공허한 말들은 널리널리 퍼져 나가고 널리널리 받아들여 진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도 긍정적인 의미도 아니다. 현상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계속)


:

믿질 못하겠어

2008. 12. 9. 12:45

믿질 못하겠어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어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어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다는 걸 믿질 못하겠어


:

아이브레인 iBrain

구라 2008. 12. 8. 13:34

생명공학과 IT가 발달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서기 2020년 맥월드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는 놀라운 신제품 아이브레인 iBrain 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 Apple사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 한다. 스티브 잡스는 키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드디어, 우리는 선악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모양이자, 애플사 로고 모양이기도 한 직경 2인치 정도의 작은 칩을 정수리 위에 간단한 과정을 통해서 이식을 하는 순간 사람들의 뇌는 인터넷과 자동적으로 연결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뇌는 인터넷과 24시간 항상 접속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상태가 서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들이 잘 알려져 있다. 

먼저, 사실 확인적 대화 패턴, 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야, 그러니까 그 영화 말이야. 그 뚱뚱한 여배우하고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 말이야. 그 유치한 러브 스토리 영화 말이야. 커다란 배가 가라앉는 그 영화 말이야. 그 영화 제목이 뭐더라?' 라는 답에, '아, 그 영화 '인디아나 존스' 아니냐?' 라는 답이 달리면서, '아닌데, '인디아나 존스'는 확실히 아니야!' '아냐, 맞아.' 라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실 확인적 대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술을 마시고 나누게 되는 대화의 끄트머리는 대게, '아유, 네이버에 물어 봐.' 라는 식으로 마무리 되기 마련인데 집에 가서 그 취중 대화를 기억하고 네이버를 뒤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바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그 순간에 정보를 바로 바로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보 확인적 대화 패턴, 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한다. 

예를들어, '야, 너 어디있어?' , '그게 그러니까 논현동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그래서 언덕을 주욱 올라오다 보면 청포도길이 나오거든, 거기서 유턴을 해, 그런다음 첫 번째 신호등에서 다시 우회전을 한 다음에 오른 쪽으로 대략 백 미터쯤 오다 보면 경원빌딩이 나오거든? 거기 삼 층이야.' , 하지만 오 분 뒤에 다시 '야, 너 어디있어?' 라는 전화가 결려오면서 끝내 그 둘이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시간적, 자원적 낭비를 유발하는 정보 확인적 대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하자면 더 이상 길을 잃고 잘못된 곳을 해메다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일은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래 동화에서 잘 나오는 설정, 과거를 치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한 나그네가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가 (대체 과거를 치는 선비들이 한 둘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이미 검증된 길이 있을 것이고, 그 길 주변엔 주막과 묵을 곳과 장터가 발달을 했을 터인데 왜 혼자 이상한 곳을 헤매고 다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불빛 한 점을 발견하고 다가가니 왜 산중에 기와집 한 채가 있어 '이리 오너라.' 라고 점잖게 소리치니 왠 어여쁜 아낙네가 문을 열어 주는데 (그 아낙네는 물론 과부이고 깊은 산 중에서 어떤 식으로 홀로 먹고 사는진 알 순 없지만) 나그네는 다시금 점잖게 하루 밤 묵어가길 청하고 여인은 나그네를 사랑채에 들이는데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식의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설교적, 지적 허영심 분출적 대화 패턴, 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건 마치 레비-스트라우스가 말한 식인데? , '맞아, 그건 너무 프리텐셔스 pretentious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들이 헤겔이 말한 것 처럼 스노비즘을 보이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아.' , '이런, 그렇담 이건 완전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 걸?' 등등의 권위에 호소하고 현란한 단어가 섞여있는 고난이도 대화에 참여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거나,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 중인 반 고흐 그림을 보다가 동행한 서양미술사 전공자에게 반 고흐와 테오의 관계에 대해 물어 보았다가 느닷없이 인상파 강의를 듣는 식의 대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영한 사전과 위키페디아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면 더 이상 그것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못된 사실과 사건의 인용, 잘못된 수치의 인용, 잘못된 연도의 인용을 통한 갖가지 궤변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와 같이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점들이 바로 아이브레인 IBrain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혜택으로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만을 주고 받는 대화, 어디서 풍문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을 주고 받는 대화를 실현하는 진정한 소통의 참맛을 모두가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

한국어와 영어에 대한 생각

에세이 2008. 10. 31. 20:04

예전에 빔 벤더스라는 유명한 감독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극장에 찾아 가서 영화를 한 편 보았고,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꽤 인상 깊게 본 영화였던 것 같은데, 지금 그때 본 영화가 무슨 영화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에서 받았던 느낌이 영화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물론 한국말로 감독에게 질문을 했고, 영어로 통역이 되었다. (딱 한 명의 관객이 통역을 거치지 않고 영어로 직접 질문을 했다. 나는 그가 매우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머지 관객들이 대체 그가 빔 벤더스에게 무슨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면 안 되는 거다. 언어 생활이라는 것도 다 소통하자고 하는 짓이 아닌가.) 독일 감독이지만 미국 문화의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 영어로 영화도 많이 만들었던 빔 벤더스는 영어로 답을 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관객들이 질문을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감독님 영화 아주 잘 봤구요,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하나 같이 이 어구로 질문을 시작했는데, 통역자는 그 어구를 통역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쓸데 없거나 과도한 예의라고 생각했고, 또한 소위 '감독님'에서 느껴지는 권위적인 울림에 유난히 민감해 하면서 홀로 짜증을 내었다. 극장안에서 나와 영화 자체 보다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했다. 

쓸데없는 권위나 권위주의를 질색하기 때문에 때때로 모국어가 싫어질 때가 있다. 내게 가장 익숙한 언어, 내 생각의 집을 짓는 언어가 싫어질 때가 있다는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하여간 그러하다. 광고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한 후배 하나가 있는데, 그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두고 영어 연수를 다녀 왔었다. 얼마 전에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후배는 갑자기 언젠가는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한국의 회사원들이 꿈꾸는 유학, 미국 유학이란 학문에 대한 열정 보다는 다른 이유일 경우가 많다. 나도 회사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고, 한국 회사의 뭐 같은 상황에 대해선 아주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배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면서, 자신은 영어를 사용할 때 좀 더 자유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호칭, 나이와 지위를 확인한 다음에 사용하는 언어의 색깔이 달라지는 수직적인 언어가 나를 옭아 맨다고 느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직 후 제멋대로 영어를 지껄이면서 자유로움을 느낀 적도 많았다. 

한국어가 통으로 둘러치는 느낌이라면 영어는 보다 직접적으로 파고 든다. 좋아하는 영어 표현 중에 'Straight Shooter' 라는 표현이 있다. (좋아하는 한국어 표현 '뻘짓'이 은어인 것처럼 저 어구도 물론 은어다.) 이리저리 돌려 말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요점을 말하는 것/사람을 뜻한다. 그 은어를 배우는 순간, 내가 소위 '미드'를 좋아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설명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또한 한국어는 복잡하다. 정보의 교환에 있어서 약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호칭과 조사를 발음하는 그 순간, 정보의 교환은 비효율적이게 마련이다. 때때로 한국어는 허술하기도 하다. 주어와 목적어는 때때로 -아니 대부분-  생략되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대충 따져 보니 지금 하고 있는 언어 생활의 한 반은 한국어로, 또 그 반은 영어로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한국어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리 하게 된다. 한국어는 내 모국어다. 내 관념과 느낌들은 한국어로 내 속에서 구성된다. 예외 없다. 학생카드에 찍힌 바코드, 돈의 액수, 전화번호와 같은 숫자를 읽거나 기억할 때 나는 'one two three four,,,' 로 기억하지 않는다. 예외 없이 '일 이 삼 사'이게 마련이다.[각주:1] 영어는 나에게 있어 제2의 언어다.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말하자면, 겉으로 내 뱉는 언어와 달리 내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각을 통한 언어 생활은 여지 없이 한국어이게 마련이다. 또한 미국에 막 도착해서 대책 없이 영어를 내뱉던 시기와는 달리, 영어든 한국어든 원래 내 성향대로 조금 생각을 하고 조심스럽게 내뱉게 된다. 때때로 일 년 전의 내 영어가 지금의 영어 보다 더 나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 표현이 내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내 뱉을 때 그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이 고스란히 나와 밀착되어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뻘짓'이라는 '소리'를 발음하거나 떠올릴 때면 내가 숱하게 저질렀던 '뻘짓'들이 생각난다. 어쩌면 단어의 의미 보다는 소리 자체가 나와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반대로 영어로 이야기 할 때 느꼈던 자유로움은 온데간데 없이 허공에서 주먹질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언젠가 부터 나를 사로 잡는다. 퍽, 퍽, 소리가 나지 않는 언어 생활. 

물론 시간이 흐르고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경험이 쌓이면서 아주 조금씩 영어라는 언어와 나도 결합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예전에 내게 'straight shooter' 라는 표현을 가르쳐준 ESL 선생에게 영화를 같이 보자는 '작업' 메일을 보내는 뻘짓을 한 적이 있다. (그래, 이태리와 스웨덴 피가 섞인 늘씬한 금발 백인 여자였다. 비록 다리는 굵었다만. 어쨌든 '백인'이라서 수작을 붙였던 건, '절대' 아니다.) 남자 친구도 있는 여자 였지만, 관계도 별로 심각하지 않아 보였고 대화도 잘 통하고 서로 공통점도 많다고 생각한 나는 쓸데 없는 용기를 냈던 것 같다. 답 메일이 날라 왔다. 학생과 선생이 (나보다 두 살 어렸다.) 밖에서 일대일로 만나는 것은 부적절하다, 라고. 

그 순간 그녀가 사용한 'inappropriate 부적절한' 이라는 단어는 예전에 그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계기, 그러니까 클린턴이 르완스키와 집무실에서 '뻘짓'을 한 것에 대한 표현, '부적절한 관계 inappropriate relationship' 와는 완전히 다르게 내 속에 깊숙하게 박혔다. inappropriate, inappropriate, inappropriate, 왠지 학술적인 단어로 토플 공부 할 때나 나올 법한 저 단어는 내 '뻘짓'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영어를 통해서 받아 들이는 느낌이 점점 많아지게 되는 것이 나를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마치 몇 십년 외지 생활을 한 사람 마냥 가끔 한국어가 애틋하게 들릴 때가 있는 것 또한 느낄 때도 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struggle 이다. 스트러글. 이라고 발음할 때, 그 struggle 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뜻과 소리 자체의 느낌이 나 자신과 내 경험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의미도 좋고 소리도 좋다. 


  1. (2009년 7월 16일 추가)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할 것과 생각이 바뀐 것이 있다. 우선 혼자 있을 때 생각하는 것이야 한국어로 하지만,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거나 영문책을 읽을 때는 생각 또한 영어로 한다.

    또한 숫자를 일이삼사, 로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읽어 보진 않은 책인 [아웃라이어]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아시아 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로 보다 효율적으로 숫자를 기억할 수 있는 셈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위가 일, 단위에서 십, 단위로 바뀌어도 한국어로는 오-십오, 이런 식으로 앞에 하나의 글자만 추가하면 되지만 영어로 이야기하면 Five-Fifteen, 이런 식으로 표현이 아예 달라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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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감옥

에세이 2008. 9. 29. 20:12

홍콩 감독 왕가위의 '몽콕하문'(그녀는 꼭 '열혈남아'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에 취해서 중국어를 배우고 홍콩에 여행가서 영화 속에 나온 거리를 미친듯이 쏘다녔다는 그녀는 대학생활의 잔재 때문인지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을 꼭 '형'이라고 불렀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이 개봉하고 전설 속의 십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알려진 시절에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본 십만 명 중의 일 인이었던 그녀는 영화를 보면서 줄줄줄 눈물을 흘려서 주위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술을 이해한 일 인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정작 그녀는 도저히 그 영화가 이해되질 않아 분해서 울었다고 한다. 그녀는 술을 먹다가 흔히 술자리에서 오가는 개똥철학 또는 구라 중에서 내 머리 속에 지금 껏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말 중에 하나를 뇌까렸다. 

"이 세계는 감옥이야. 늙어서 죽는 것은 종신 형이 드디어 만료가 되는 것이지. 어린 나이에 일찍 죽는 것은 특별 사면이랄까. 자살?
 그건 탈옥이야."

꽤 간질간질 거리는 표현이 결혼한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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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카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인용과 링크 2008. 9. 29. 19:17

가끔씩은 돈, 명예, 권력을 탐하는 '세속적인 가치'에 반하여 소소하고 소박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 또한 진부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재테크 서적과 명상 서적의 차이는 또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진 단편 소설 '라쇼몽'. 그 '라쇼몽'을 쓴 작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는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사랑해야 한다.
구름의 반짝임, 
대나무의 서걱거리는 소리,
참새 떼의 지저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모든 일상의 사소한 일 속에서 
최상의 달콤함을 느껴야 한다.

...
...
...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사소한 일을 사랑하는 자는 
사소한 일로 인해 괴로워하게 마련이다.
우리도 미묘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미묘하게 괴로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소한 일에 괴로워해야 한다.
구름의 반짝임, 
대나무의 서걱거리는 소리, 
참새 떼의 지저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모든 일상의 사소한 일 속에서 
지옥같은 고통을 느껴야 한다.


덧. 이 글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통찰이 빛난 글이라기 보다는 덤덤한 자기 고백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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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와 최수철

에세이 2008. 9. 23. 20:54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을 뒤적거리던 시절이었다. 책방에서 몇 권 사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몇 권 빌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유명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다가, 차츰차츰 취향이 생겼다. 때로는 제목만 보고 느낌이 오는 책을 덥썩 집어 들고 읽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조서: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 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르 클레지오라는 작가의 소설이었다. 무슨 무슨 상을 받았다는 찬사 보다 내게 더 중요한 건 저 제목이었다. 왠지 책에서 광기어린 남자의 얼굴이 어른 거렸다. 

책을 중간 쯤 읽다 덮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보면서 생겨난 프랑스 문화에 대한 호감, 파리를 여행 했을 때의 그 느낌은 온데 간데 없이 프랑스어를 번역한 글은 더 이상 읽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되내였다. 그 생각은 단단치 않아서 그 뒤로도 몇 번 더 데였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번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생각보다 나와 코드가 안 맞았을 수도 있고, 서구 문화에서 살아 가면서 비롯된 고민이라는 맥락이 나와 맞지 않아서 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책은 내 책꽂이의 한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갔다.

어느 날, '기억과 상상' 이라는 주제로 르 클레지오가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억. 그리고 상상. 꽤나 고민했던 주제이고, 실제로 부딪히기도 했던 주제였다. 마침 할 일도 없었고, 날은 추웠지만 나는 그 곳으로 향했다. 가방엔 다 읽지 않은 '조서'를 챙겨 넣었다. 객석의 자리는 삼분지 일쯤 차 있었다. 맨 앞 자리에는 소설가 황석영이 앉아 있었다. 그 뒷 줄에는 박이문 교수가 앉아 있었다. , 취직이라는, 토익 공부라는, 현실을 도피한 채로 읽었던 책중에 박이문 교수가 쓴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이라는 철학 에세이가 들어 있었다. 두 번을 비비 꼰 제목이 맘에 들었다. 줄도 몇 군데 그었고,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르 클레지오가 들어 왔다. 백발의 장성한 그는 단상에 마련된 테이블의 맨 왼쪽 의자에 커다란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그 옆 자리는 사회자의 몫이었고, 다시 그 옆 자리에 작가 최수철이 있었다. 

문학과 지성 소설명작선도 동시에 뒤적거리던 시절이었다. 최수철의 '공중누각'이라는 소설집도 그 안에 포함 되었다. 그 책을 돗대기 시장 마냥 붐비는 청계천의 한 귀퉁이에 앉아서 읽어내려 갔었다. 청계천은 막 콘크리트 어항으로 탈바꿈을 바친 상태였고, 사람들은 그 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애초에 나는, 파리의 뤽 상부르 공원에는 따뜻한 햇살과 푸르른 잔듸와 연애하는 남녀와 개를 끌고 산책나온 사람들과 책을 읽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서울에선 왜 바깥에서 여유롭게 주저 앉아 책을 못 읽을 소냐 싶었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서울 광장도 기웃거려보다가 그냥 청계천으로 향했던 시절이었다. 참으로 갈데가 없구나 툴툴거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경복궁 안에라도 가봤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어쨌거나, 쭈그리고 앉아 읽은 '공중누각'은 꽤나 머리를 두근거리게 만들고, 심장을 벌떡거리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내 안의 무슨 단추를 누른 것 마냥, 속에서는 끊임없이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용은 하나도기억나지 않는데다가, 주제가 뭐였는지 뭐가 뭐였는지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몇 줄기의 섬광 같은 것만 남아 있다. 

강의는 지루했다. 쓸만한 말은 몇 개 없이 교장 선생 훈시나 대대장 정신 교육처럼 시간이 흘러흘러 갔다. 서구 세계에서 온 르 끌레지오는 프랑스와 한국이 닮아서 친근감을 느낀다는 말을 했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었다. 두 나라 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비해 약하다고 했다. 글쎄요. 미국에서 출간된 '우리들의 멍청한 세상 Our Dumb World' 이라는 배꼽 빠지는 책에선 프랑스에 대해 '신 위에 있는 단 하나의 나라 One Nation Above God' 프랑스는 혁명도 발명하고 문화도 발명하고 예술도 만들었고, 와인도 만들었다고ㅡ 말하고 있던데요. 어쨌든. 르 끌레지오는 다음 학기 부터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시작한다고 했다. 짧은 강연이 끝나가는데 나는 작가 최수철을 바라 보았다. '공중누각'을 생각했다.

짧은 강연이 끝나고 작가 사인회가 열렸다. 르 클레지오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르 클레지오는 제1세계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최수철은 여기서 한국어로 글을 썼다. 최수철은 자리에서 일어 났다. 지하 1층 교보 문고에 내려가 '공중누각'을 한 권 더 사올까라는 생각을 했다. '조서'를 꺼내 앞으로 나갔다. 내 앞에는 머리가 길고 손톱이 길고 눈썹도 긴 까만 머리 여자가 서 있었다. 예뻤다. 

갑자기 좌중이 어수선해지더니, 하얀 백발의 박이문과 그 수행원이 단상 앞으로 다가 왔다. 수행원은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행원은 박이문을 르 클레지오 앞으로 데려 갔다. 박이문은 르 클레지오를 알현하고 그에게 어떤 명함 하나를 건냈다. 박이문은 매우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르 클레지오는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까만 머리 여자 차례가 되었다. 르 클레지오에게 프랑스어로 웃으며 말을 걸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더욱 예뻤다. 나에게 똑딱이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르 클레지오는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내 차례가 되고, 나는 말 없이 '조서'를 건넸고, 르 클레지오는 책 앞 표지에 싸인을 해 주었다. 강연장을 나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일층 로비로 향했다. 눈발이 내렸다. 점점 멀어지는 까만 머리 여자의 뒷 모습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연기와 눈발이 섞였다. 나는 다시 강연장으로 엘레비이터를 타고 올라 갔다. 최수철이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최수철에게 쭈볏쭈볏 다가갔다. 소설 잘 읽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왜 그런지 몰라도, 당신의 소설을 잘 읽었노라는 말이 그 순간 하고 싶었다. 르 클레지오의 싸인이 담긴 '조서'는 언젠가 그의 소설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발을 맞으며 집으로 와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을 책꽂이에서 빼 쓰레기통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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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그리고 한국

에세이 2008. 9. 23. 15:22

좀 지난 일이지만, 언론에서 한동안 '미드'를 중점적으로 다룬 적이 있었고, 그 미드 열풍의 진원지로 '프리즌 브레이크'를 주로 언급했는데, 정말이지 이거야 말로 예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농구 열풍이 불었을 때 이미 광범위하게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만화 '슬램덩크'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열풍에 편승한 - '마지막 승부'라는 유치찬란했던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만큼이나, 나름 미국 드라마를 사랑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헛다리 짚기 혹은 뒷북치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프렌즈'를 보면서 공부 안 하고 놀고 있다는 죄책감을 나는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라고 달랜지 오래였고, 동시에 C.S.I 라는 추리/스릴러 물은 미스러리 장르 매니아들에게, X-파일이라는 드라마는 SF에 관심이 있는, - 물론 난 SF에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정말 정통(미국식) SF팬들은 아마 '스타트렉'에 좀 더 열광하지 않나 싶다. -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었던 터였다. 

게다가 내 성장기를 잠깐 한 번 되돌아 본다면, 

스위스 군용칼의 이름을 맥가이버칼로 둔갑시킨, 지금 생각해 보면 왠지 포르노에 나올 법한 배우가 나오는 '맥가이버'와 피부가 벗겨져서 그들의 징그러운 파충류 껍질이 드러날 때마다 기겁을 하던 'V'에 이르기까지. 성장기에는 일종의 지침이 되었으나, 미국과 한국이라는 너무나 다른 사회 문화 환경으로 인해서 현실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던 '케빈의 열두 살'과 한때 미국 고등학생들의 표준적인 삶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완전 부자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착한 드라마 '버버리힐즈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미드가 얼마나 많았냔 말이다. (한때 성장기 드라마로 '사춘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기대를 하고 보았지만, 어쨌든 한국이라는 장소적인 현실성은 있었지만,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파고든다는 현실성은 전무하다시피 그냥 착했고, 재미없는 드라마였다)

생각해보면, '비트'를 제외하곤, '교실이데아'를 제외하곤 당시 대체 내가 발 디디고 있던 현실과 관련지어 내가 열광할 수 있었던 영화와 음악은 당시 무엇이었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국내 코리안-아메리칸들에 대한 관심에서 이런저러한 것을 뒤적거리다가 SEAM라는 락 밴드를 이끌었던 박수영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적이 있다. 흑인 음악에서 나왔으되 이제는 거의 백인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버린 '락'의 영역에서 - 특히 90년대 얼터너티브 락이라는 더욱 더 그러하다 - 몇 안되는 동양계 라커였던 박수영의 밴드들의 음악을 마이스페이스와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보았는데, 음악들이 괜찮았다. 뭔가 완전히 독특한 특색은 없었지만, 조용한 힘이 느껴지는 그러한 음악이었달까.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SEAM이라는 밴드는 우여곡절 끝에 세명의 코리안-아메리칸과 한 명의 아이리쉬-아메리칸으로 구성된 밴드였는데, 당시 홍대에서 공연을 가진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의 인터뷰를 읽다가 '코리안'인 내가 공감을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코리안-아메리칸, 나아가 아시안-아메리칸들은 성장기에 자신과 같은 피부색의 롤 모델을 대중문화에서 접하지 못한, 좀 어떻게 보면 이상한 세대라는 것. 내가 (혹은 우리가, 우리 세대가) 성장기에 가장 좋아 했던 영화/음악이 대부분 미국산 이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발디디고 있었던 현실과 별로 연결될 수 없었다는 것. 이 두개가 왠지 비슷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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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섬의 비밀에 대한 단상

에세이 2008. 9. 21. 08:27

90년대 초반에 집에 XT 또는 AT/286 컴퓨터를 소장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원숭이 섬의 비밀] 이라는 어드벤처 게임을. 당시 '교육용 컴퓨터'라는 이름을 달고 정확한 용도는 아직 알 수 없으나 하여간 교육에 도움이 될 거라는 취지에서 컴퓨터 열풍이 불었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여기엔 컴퓨터를 파는 사람들이 영리하게도 컴퓨터 앞에 '교육용'이라는 단서를 달아 자녀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는 학부모들을 공략한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그 교육용 컴퓨터들을 가지고 정작 마땅히 할 것은 별로 없었는데, 그 틈새를 메꾸어 준 것이 바로 각종 컴퓨터 게임들이다. 그 중에서도 루카스 필름이 만들어 낸 [원숭이 섬의 비밀]과 같은 어드벤처 게임은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원숭이 섬의 비밀]이라는 게임이 있기 이전에 [매니악 맨션]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미친 과학자가 납치해 간 여자 친구를 구한다는 것이 설정이었는데, 그 주인공의 친구들을 보면, 물리학에 미친 녀석, 펑크락 보컬, 서핑에 미친 녀석, 작가 지망생, 등등. 하여간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다. 그 [매니악 맨션]의 건축 양식은 샌프란시스코 유명한 건축 양식인 빅토리아 양식이다. 이 두 개의 게임을 디자인 한 사람은 론 길버트라는 사람으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아 Bay Area 출신이다. 사실 이 사람은 인터페이스 방식과 진행 방식 등, 장르 하나를 만들어 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무래도 제일 골때리는 것이 게임 전반에 깔려 있는 유머일 것이다. 

몇 주 전, 거의 십 몇 년 만에 론 길버트의 게임들을 다시 플레이 해 봤다. 당시 어드벤처 게임 열풍이 불었을 때는 열심히 매뉴얼을 보면서 클리어 하는데 몰두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열심히 대화들을 읽어 가면서 해 봤는데, 기본적으로 대화 하나 하나가 골때렸다. 시니컬한 유머와 상대방을 공격하는 위트들이 전면에 깔려 있는 데, 예를 들면 중간에 칼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칼싸움이라는 것이 다름이 아닌 얼마나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모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너하고 얘기 하느니 차라리 원숭이하고 얘기하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을 받아치는 방법은, 오, 니 가족들과 다시 뭉치게 된 것을 축하 해. 뭐 이런 식이다. 한국어로는 느낌이 좀 살지 않는다만. 게다가 게임에 기본적으로 '아나키'적인 요소들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일단, 원숭이 섬의 비밀은 아직 21살도 안되서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미국에선 음주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서 신분증이 없으면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나이는 21살이 넘어야 한다.) 주인공 가이브러쉬가 다름 아닌 '해적'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랜 만에 그 게임들을 다시 해 보며 문득 들었던 의문이 있다. 이 게임들은 영어를 모르는 상태로는 즐긴 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담 대체 90년대 초반에 불었던 어드벤처 게임 열풍은 무엇 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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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케루악 잡설

에세이 2008. 9. 17. 12:28

1950년대의 미국은 풍요의 시대였다. 자신감으로 넘쳤던 시대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과 일본을 물리친 미국, 단순히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 뿐 만이 아니라 파시즘에 맞서 '자유'를 수호했다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공장은 다시금 물샐틈 없이 돌아 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시스템은 번영을 구가했다. 상품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노동자들은 일을 해서 그 상품들을 구매하고, 다시 그 돈이 돌고 도는 가운데 번영을 이룩했다. 그리하여 미국식 중산층의 삶, 아메리칸 드림이 물질로써, 현상으로써 구체화 되기 시작했고 그 구체화된 것들은 맥도날드 햄버거 처럼 매우 규격화 되어 있었다. 삶이 너무 규격화 되면 설령 그 삶이 안전하고 미래를 보장하더라도 그 삶 방식 자체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50년대 미국은 이러한 삶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해서 반동의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그 건전한 시민으로써의 삶을 저버린 채 다른 방식의 삶을 개인적으로 구체화 시키려고 했던 세대들을 일컬어 '비트 세대' , '비트 제네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왜 '비트'인지, 비트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단지 '비트 제네리이션'을 정의했던 한 작가를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잭 케루악이다. 그는 당시 콜럼비아 대학교를 다니다가 선불교에 심취했고, 약물을 옹호 했던 비트족 시인 앨런 긴즈버그와 윌리암 버로스를 만나고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미국과 멕시코를 여행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잭 케루악은 이 소설을 쓸 때 당시 유행했던 50년대 재즈의 즉흥 연주 기법을 빌어와서 자유롭게 소설을 기술한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잭 케루악은 소설을 여러 번 고쳐서 썼다고 한다. 

보통 한 사람이 유명해지거나, 한 작품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때에는 단지 그 사람이 천재적이거나, 그 작품이 천재성을 띄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시대'와 만났다. 혹은 그 시대가 만들어 냈다는 말이 적합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 보다 더욱 더 끔찍한 것은 그가 사실은 대한민국 '주류', '중산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실체라는 것이다. 대형 서점에 쌓여 있는 영어 '공부' 서적, 자기계발 서적, 경영/마케팅 서적, -해라, -처럼 하면 -한다, 류의 제목을 달고 있는 서적들이 만들어 낸 실체라는 것이다. 부동산에 목을 매고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실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끌어 오자면, [의지의 승리]라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예술가가 만들어 낸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선전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철저하게 계획되어 제작된 그 다큐멘터리는 실로 웅장하며, 자못 감동적이다. '파시즘', '국가주의'라는 내용물의 촌스러움과 상관 없이 형식 그 자체로는 촌스럽지 않고 매끈하게 빠진, 매우 잘 만들어진 선전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다루어 지고 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파시즘에 빠졌던 독일 사람들의 광기와, 히틀러가 내뿜어 내는 말의 마력을 조금 느낄 수 있다. 히틀러의 마지막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연단에 등장해서 '히틀러는 독일이다, 독일은 히틀러다.' 라는 말을 한다. 그 순간 나는 아돌프 히틀러를 만들어 낸 것이야 말로 경제적으로 공황 상태에 있던 그 당시 독일인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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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영어책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에세이 2008. 9. 17. 12:04

전차를 탔다. 옆자리에 한 동양 남성이 앉았다. 손에 들린 책을 보니 '콩나물'이라는 한글이 보인다. 한국인이구나. 그리고 행색을 보니 여행객이 틀림이 없다고 추측했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펴든 상태로 책은 읽지 않은채로 주위를 계속 휘휘거리면서 두리번 거리는 불안한 몸짓이 느껴졌다. 내 경험에 따르면 여행객의 몸짓이다. 그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성이 아닌 매력적인 여성이었으면 난 말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 '콩나물-'이라는 말로 시작된 책을 흘낏 쳐다 보았다. 그 책의 왼쪽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제26일, Accomplish- " 날짜 별로 암기해야 하는 중요 단어가 실려 있는 단어 책이었다.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왜 여행을 와서 단어 책 따위를 들고 있는거냐.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거냐. 줄줄이 이어지는 잡생각들. 근데 보다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옆에 앉은 한 한국인이 저 책을 들고 있는 것이 화가 날까?

어쩌면 한국적인 토양에서 자란 나도 그러한 주입된, 거짓된 영어 스트레스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단어장으로 구성된 책 몇 권쯤은 샀을 것이며,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항상 맘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문득 솟구치는 근원적 의문, 왜 영어를 해야하지에 대한 대답은 미룬채로. 아싸리 영어 점수 따위는 중요치 않아, 라고 무시해 버리는 것도. 한국식 영어 '공부'에 뛰어 들어 점수 올리기에 매진하는 것도 아닌 어물쩡한 상태로 말이다. 이 모든 건 결국 나 혼자 생각을 피워 올리는 것에서 비롯 되었지만, 결론은 내 과거, 내 과거를 둘러 싸고 있었던 환경에 대한 노여움으로 발전하는 엉뚱한 계기가 되었다. 

한 가지 더.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대체 무슨 글이 실려 있었던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체 못할 반발심으로 당시엔 영어 교과서를 제대로 펴본 적이 없으니깐 말이다. 한데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독일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는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를 가로 지르는 고전을 집필했던 작가의 소설이 어려울 것이라는 단견과는 달리,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은 그의 드라이한 문체 때문에라도 영어로 된 소설 중에선 제일 읽기가 수월하다. 대체 헤밍웨이의 소설을 고등학생에게 읽히는 독일의 영어 교육과 한국의 그것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 집에 누군가, 가 놀러 왔다.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가 다른 주로 떠나 1년간 교환학생 과정을 이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누군가, 는 바이올린을 들고 왔다. 속에서 또 꾸역꾸역 생각들이 맴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에게 이렇게 물을 뻔 했다. 그래, 바이올린 뮤지션/연주가 중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니? 누군가, 는 과연 바이올린이 좋아서,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소리가 좋아서 바이올린을 시작했던 것일까. 아니면 한국 중산층의 유별난 서양 클래식 악기에 대한 사랑이 녀석에 까지 대물림 된 것일까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질문. 이미 내 나름대로는 후자의 것일거라는 설정을 이미 깔아 놓은 채 확인을 하고 싶다는 것.

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영화 [조이럭 클럽] 을 보다가 발견한 사실은 피아노에 대한 사랑이 한국 중산층 가정의 전유물 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살아 가는 중국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네 명 정도의 딸과 어머니들을 통해서 다루고 있는 그 영화는 어머니와 딸과의 주요한 갈등의 축으로 피아노 배우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피아노를 배울 것을 강요하고, 딸은 그것을 괴로워 하면서 억지로 배우다가 마침내 반항하게 된다는. 억지로 피아노를 배웠던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 지면서 난 그것이 아시아적인 무엇일 거라고 사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 영화를 고른 인도계 여자 선생이 감동적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홀로 확신을 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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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성장기

김이박 이야기 2008. 9. 4. 19:02

김이박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로 김이박의 가정은 평범한, 아니 실은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은 중산층이다. 김이박은 어릴 적 다른 중산층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배웠다. 들으면 들을수록 태아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태교를 했던 그의 어머니는, 사람이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지. 김이박은 피아노를 배웠다. 

김이박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모든 일엔 때가 있어, 그리고 지금은 공부할 때야. 너는 학생이야,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김이박은 열심히 공부를 했다. 가끔씩 야동을 보면서 백인 여자의 몸을 감상한 것을 빼곤. 덕분에 김이박은 사년제에 들어갔다. 김이박은 그 곳에서, 열심히 술을 먹었다. 그리고 토했다. 다시 술을 먹었다. 그리곤 다시 토했다. 그리곤 다시금 술을 먹곤, 다시금 토를 했다. 

그러다 김이박은 군대에 갔다. 고참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 김이박은 열심히 군생활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선임 비위도 적당히 맞추고, 후임도 적당히 괴롭히고, 휴가를 나가선 나이트를 가서 여자를 꼬시기 위해 노력도 하고, 미아리도 가고 청량리도 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제대.

김이박은 대학에 복학 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돈을 타내 유럽 여행을 갔다. 여행 책자를 옆 구리에 꼭 끼고 떠났다. 김이박은 야동에서 보았던 백인 여자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에펠탑과 콜로세움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어. 김이박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김이박은 지금 자신이 유럽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유럽에 갔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많았다. 

김이박은 복학을 해서 이제 졸업하면 뭘 해야하는 지를 고민했다. 인생 뭐 있냐? 김이박은 토익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회사에서는 자기계발에 힘쓰라는 말을 했다. 무엇보다 시간 관리, 인맥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김이박은 열심히 일을 했고, 야근을 했고, 지쳐갔다. 그런 김이박을 안쓰럽게 생각한 일가친척 어르신들은,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아이를 가져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김이박은 선을 보았다. 선을 본 자리에서 김이박에게 상대방 여자는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 보았다. 김이박은 선을 보고 나와 홀로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었다. 인생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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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일상기

김이박 이야기 2008. 7. 26. 09:47

김이박은 조그마한 웹 사이트 기획사에 다닌다. 그 바닥에선 알아주는 기획자가 얼마 전에 독립하면서 새롭게 차린 회사다. [성공하는 인간들의 백 가지 습관],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뱀머리 리더십], [금송아지가 온다], [인맥 마케팅] 등등 갖가지 리더십, 마케팅 서적과 경영 이론들이 줄줄히 꽃혀 있는 사장실에서 김이박은 면접을 보았다. 사장이 썼다는 책도 한 구석에 꽃혀 있었는데, 김이박은 후일 입사한 지 삼 개월이 지나서야 회사에서 버는 순수익이 사장이 썼다는 책의 인세보다도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김이박은 회사에 합격을 했던 것이다. 서울 소재의 사 년제를 나오고 글을 좀 말이 되게 쓸 줄 알고, 영어 성적이 좋고, 대학 시절 조그만 공모전에서 상도 탄 경험이 있는 김이박을 사장이 괜찮게 본 모양이다. 

오늘도 김이박은 자신을 닦달하는 거래처 이 대리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진땀이 빠져라 전화길 붙들고 있다 오전 일과를 마쳤다. 남녀관계보다 더 힘들고 더 무서운 건 갑을관계였다. 하지만 김이박의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는 말이 말을 낳으면서 하나도 결정되는 것은 없는 기획 회의도, 내용 보다는 PPT의 폼과 글씨의 폰트를 맞추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프리젠테이션 준비도 아니었다. 바로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이었다. 그때만 되면 김 팀장의 눈치를 봐가며 메신저질과 스포츠 기사 검색에 열을 올리던 옆자리 박군도 여지 없이 진지해 지는 것이었다. 과연 오늘 점심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그 어떤 회의에서 오가는 문제 보다도 더욱 심오하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다행히도 오늘은 야근이 없는 날이다. 김이박은 오랜 만에 맞는 야근 없는 금요일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종로로 향했다. 버스를 탔다. 버스 전용 차선을 타고 버스는 신나게 씽씽 달린다. 버스 안은 버스 기사가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로 매우 시끄럽다. 음악이 꿍짝꿍짝 흘러 나온다. 이어서 교통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교통 안내 방송의 내용은 똑같다. 이쪽도 막히고 저쪽도 막히고 저기선 차량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으며, 요기선 차량들이 서행하고 있으니 우회하라는 방송이다. 버스 기사의 표정은 침울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손에 뭔가를 쥐고 있다. 문자도 보내고,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고, 다운 받은 미드도 본다. 그런데, 노선이 정해져 있는 버스에서 왜 교통 정보가 필요한 걸까.

김이박은 버스에서 내려 부랴부랴 약속장소로 항했다. 사람들로 미어 터지는 종로 길거리에서 그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연인 한 쌍과 심하게 부딪힌다. 여자의 어깨가 김이박의 허리를 빠르게 강타하고 지나갔다. 김이박이 찡그리면서 여자를 바라보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자의 품 안에 안겨서 까르르 거린다. 그 옆에 있던 남자가 대신 대충 사과하고 지나간다. 저들은 과연 한 몸이구나.

김이박은 약속 장소인 서울 극장 앞에 도착했다. 여자 친구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무는데, 갑자기 옆에서 욕지거리가 들려 온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금 영화를 보고 나온, 김이박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두 남자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씨발 왜 이걸 보자고 한거야. 존나 재미 없잖아. 아이 씨발. 난 존나리 재미있을 줄 알았지. 아 정말 요즘 영화가 왜 전부 이따위냐. 존나 짜증 이빠이네. 그래, 정말이지 한국영화 수준 정말 낮은 거 같아. 아 씨발 이젠 정말 한국 조폭 코메디 영화는 안 볼거야. 그러게 씨발 욕만 졸라리 하고 하나도 재미없어. 야, 씨발 술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야. 오늘은 술 먹고 좋은데 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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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김이박 이야기 2008. 7. 26. 09:42

서울 근교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부천에 거주하는 김, 은 40대 중반이다. 이리저리 직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고깃집을 운영한지 이제 10년 째다. 아내와 아들 둘이 있다. 사교육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럭저럭 생활은 할만하다. 그에게 있어 불만은 이 곳이 자신의 유일한 생활 터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각자 생활에 바쁜 친구들과 송년 모임을 가지기 위해서 그는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먼저 연락을 하고, 날짜와 시간을 잡고, 이리저리 준비했다.

그에겐 박, 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방송국 피디다. 광화문 근처의 원룸에 혼자 기거한다. 무지하게 바쁘고 외국도 몇 번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자신에 비해서 활동 영역이 넓어 보이는 박, 을 그는 부러워 한다.

그에겐 분당에 사는 이, 라는 친구도 있다. 자신처럼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부장 자리를 꿰차기 일보 직전이다. 부동산으로 제법 재미도 본 이, 는 비교적 제 시간에 도착했다. 박, 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박, 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엔 무슨 연예인 지망생과 로맨스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우리 상무가 말이야. 골프를 배워 보라는 거야. 내가 붙잡고 있는 라인이라 새겨 듣는 척 했지. 미국 가 있는 자식 놈 때문에 돈도 많이 들어가는 데 무슨 골프냔 말이야. 근데 말이야. 이게 또 무시할 순 없는 거 같단 말이야. 아무래도 인맥을 넓히는덴 골프만한게 없단 말이지. 그래서 골프 셋트를 큰 맘 먹고 샀지. 그리고 일단은 연습장에 다니는데 말야. 하다보니 이것도 재미있단 말이야. 쏠쏠하다니깐. 이, 가 말한다.

요즘 연예계가 참 시끄럽지. 애새끼들이 말이야. 기고 만장해져가지고 말이야. 예전엔 방송국에 드나 들면서 어떻게든 눈도장 찍으려고 난리 브루스를 췄는데 말이야. 요즘은 기획사다 덕션이다 뭐다 해서 전부 밖으로 돌아요 이것들이. 더러워서 나도 독립을 하던가 해야지 원. 근데 히트친게 있어야 말이지. 제길. 뭐 대박 터지는 아이템 없을까. 응?  박, 이 말한다.

이 근방에 모텔이 새로 생겼는데 말이야. 모텔 프로방스던가 뭔가. 하여간에 그 모텔이 생긴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거야. 알고 봤더니 이 것들이 무슨 인터넷 카페에서 홍보를 한다고 하지 뭐야. 요즘은 모텔도 사용 후기를 올리는 시대가 된거야. 하여간 우리한텐 잘 된 일이지 뭐야. 김, 이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가 상무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오고, 다시 외국에 유학중인 이, 의 아들이 용돈을 보내 달라는 전화가 온 다음 부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대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아직도 박에게 앵겨 붙는 최, 신, 임과 같은 골빈 연예인 지망생들에게서 차례로 전화가 오면서부터 일 수도 있다. 박, 은 미안하다면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 선다.

이, 는 박, 이 나가기가 무섭게 ‘문란한’ 박, 의 사생활을 한참 씹어 댄다. 박, 이 자신이 알고 지내는 ‘동생’들을 이야기할 때 열심히 경청하던 이, 가 아니다. 한편으론 돈을 주고서야지만 박, 이 만나는 ‘등급’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더러워서’ 더욱 목소리가 커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 은 그저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가 이, 가 일어선다. 김, 은 배웅하고, 자리를 정돈한다. 고깃집에 딸려 있는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이, 의 아내가 나와서 거든다. 아내는 치우다가 그만 쟁반 하나를 떨어 뜨린다. 김, 은 그것을 트집삼아 아내와 대판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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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our country?

에세이 2008. 7. 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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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한 전문직 여성이 있다. 이십 대 후반 쯤 되는 그 여성은 현재 홍대 입구 근처의 원룸에 살고 있다. 그녀의 직장은 광화문 근처에 있고, 현재 그녀는 외국계 홍보 기획사에 'Assistant Director' 라는 직책을 가지고 재직 중이다. 연봉은 한 4500정도.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서 켈로그 콘프로스트와 우유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 한다. 도브 비누의 거품을 온 몸에 묻혀 가며 샤워를 한 후, 빅토리아 시크릿의 섹시한 속옷을 걸친다. 기분이 다소 좋아진 그녀는 시세이도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도나 카렌 투 피스를 걸친다. 그런 후에 지난 달에 큰 맘 먹고 지른 마놀라 블라닉 구두를 신고, 셀린느 토트백을 들고 출근을 한다. 그녀는 출근을 하는 길에 PMP로 어제 다운 받았던 [sex and the city]의 가장 최근 에피소드를 본다.

그녀가 현재 담당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TOEIC/TOEFL 장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ETS라는 회사다. 한국 신문에 영어 시험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실리는 것을 방어하는 것이 현재 그녀가 맡은 임무이다. 미국 ETS 본사 와의 힘겨운 이메일 업무 처리로 오전 일과 내내 바빴던 그녀는 점심을 근처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벨기에 와플로 간단히 해결한다. 오후 일과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인인 그녀의 상사 미셸과 현재 처리 중인 업무에 대한 미팅으로 훌쩍 지나 간다. 아차, 빼먹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녀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신디다.

신디는 오늘, 왠일로 비교적 업무처리가 순조로운지라 여섯 시 정시 퇴근을 맞이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맞는 꿀같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 신디가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신디의 남자 친구는 톰 요크라는 영국인인데 런던 대학교에서 영어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흥국생명 빌딩에 위치한 영국 문화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삼십대 초반의 건장한 백인 남성이다. 신디는 톰과 함께 메드 포 갈릭에서 이탈리안 피자로 저녁을 먹고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 전시회를 관람한다. 한껏 예술적으로 고양된 그들은 근처 와인 바에서 캘리포니아산 베어풋 메를롯 레드 와인을 마신다. 그런 후에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아일랜드산 영화<Once>를 본다. 인디 뮤지션의 사랑 이야기인 그 영화를 보고 낭만에 빠진 둘은 신디의 원 룸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톰이 제조한 크랜베리 보드카를 나누어 마신후에,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밴드 <AIR>의 노래를 들으면서 둘은 섹스를 한다.

자, 그녀가 한국에서 태어 났고, 한국어를 할 줄 알며,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낸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우리의 '신디'는 지금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가?

갑자기 무슨 된장녀의 일과를 늘어 놓느냐구? 좋다. 그렇담 한 편 반대로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대학 졸업 후에 1년이 지나도록 취직을 하지 않고 있는 백수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십 대 시절에 유명을 달리 했고, 현재 그의 어머니는 김밥천국을 운영하면서 힘들게 돈을 벌고 있다. 어렵사리 그는 대학 교육을 마쳤으나, 졸업 후에 이개월 정도 웹-사이트 기획 회사에서 잠깐 일하다가, 폭압적인 직장 내 인간 관계와 거래처와의 불합리한 갑을관계에 질려 회사를 때려친 후, 현재 집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그는 요즘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미드'에 푹 빠져 있다. 한 달에 삼 만원 남짓한 돈만 지불하면 무한정 다운 받을 수 있는 미드를 종류 별로 다운 받으면서, 어쨌든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돈을 벌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구나라는 새롭고도 놀라운 깨달음과 함께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미드를 보고 감상을 간간히 티스토리에 포스팅하면서 백수 생활을 한껏 즐기고 있는 중이다.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2를 어제 막 끝냈고, 요즘은 [히어로즈]에 올인 중이다. 아직도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는 미드가 무궁무진한지라, 당분간 그는 취직할 생각이 없다. 동시에 드라마 속 미국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그는 지금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가?

소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과연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는 시간은 하루 중 얼마나 될까? 진정 한국적인 것들 속에서 살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숭늉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운 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수업을 들은 후에,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한 후에, 전통 찻 집에서 차를 즐기다가, 간송 미술관에 가서 김흥도의 신윤복의 그림을 감상하며 한국적인 미에 흠뻑 빠졌다가 저녁엔 영화 [오! 수정]에 나왔던 인사동 막걸리집에서 고갈비와 막걸리를 먹으면 하루 종일 '한국'에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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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

에세이 2008. 7. 20. 17:52

어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이 난다. 신은경 - 왜 그 [조폭마누라]에 나왔던 여자배우 말이다. - 과 얼굴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신은경과 그의 남편이, - 어쩌면 [조폭마누라]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 마트에 가서 쇼핑 카트를 몰고 다니다가 바겐 세일 코너에 가서 치열한 몸싸움 끝에 싸게 물건을 집어 든 다음 밝고 환하게 웃으면서 남편과 몸을 부딪히면서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다. 대단히 평화로운 일상적인 행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난 그 장면이 매우 경멸스러웠다. 가끔씩은 도무지 이러한 일상적인 행복에 대한 알 수 없는 혐오감이 대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 것이 궁금해진다.

마트는 싸고 편리하다. 그런데 왜 나는 마트에 가는 것이 경멸스럽고, 혐오스러울까. 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해서 빨리 빠져 나오고 싶어지는 걸까.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 있는 코너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위에 올라가 있는 느낌을 받아서? 계산대에 다가가서 검정색 고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물건들을 하나 둘 씩 올리는 것이 비인간적이어서?

언젠가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집 근처 '피트니스 클럽' (알다시피, '헬스 클럽'과 '피트니스 클럽'은 엄연히 다르다. '짱깨집'과 '차이니즈 레스토랑'의 차이 정도랄까.) 에서 클럽 회원들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그 곳을 무료로 한 달 동안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나누어 준 적이 있었고, 그래서 난 뱃살을 주물럭 거리며 몇 번 그 곳에 간 적이 있다.

과연 그곳은 '헬스 클럽'과 달리 '피트니스 룩'을 한 껏 차려 입은 여자들로 가득 했는데, 참으로 하늘거리는 그녀들의 생김새는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힘을 쭉 빼놓곤 했다. 그 곳엔 갖가지 형태의 기계들로 그득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계는 물론 런닝 머신이었다. 그 검정색 컨베이어 벨트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 속도를 조절하고 시간을 입력하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그 검정색 컨베이어 벨트 말이다. 그 벨트 위에서 달리면서 땀을 쭈욱 빼다가 어느 순간 마트에서 느꼈던 그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고 나는 그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내려 왔다. 그리곤 다시는 그 검정색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의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패션지 편집장이 신참내기 직원에게 한 소리를 하면서 대체 니가 입고 있는 그 '블루'가 그냥 '블루'인줄 아느냐면서,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짜내는 것 부터 시작해서 그 '블루'가 대중화 되어 대중적인 브랜드의 옷에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설명력의 부족으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듯)그걸 보는 순간 뭔가 저 분께서는 지금 게임의 법칙 그 자체를 꿰고 있구나, 대체 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한 큐에 설명해 주고 계시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힘든 노동의 댓가로 손에 쥔 자유 이용권, 돈을 사용하는 그 순간도 뭔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알짱거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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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에세이 2008. 6. 3. 00:13
느 날 TV를 보다가 다이아몬드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내용은 빤하다. 다이아몬드를 통해서 여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는 내용이다. 저게 먹히나?

먹힌다. 적어도 영화 [색, 계]를 보면 이장관(양조위)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이장관과 왕가지(탕웨이)사이의 보는 사람까지도 집어 삼킬듯한 '色'과, 그 '色'이 물질로 형상화 된 바로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다.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참으로 압도적이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던 극장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탄성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감정을 좀 더 자유롭게 표출하는 한국의 극장에서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여인네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그 장면에서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을 것은 당연 지사다.

다시 다이아몬드 광고로 돌아가서. 그 광고를 보면서 예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에 사로 잡혔다. '내가 과연 다이아몬드를 여자에게 사 줄 만한 경제적 능력을 갖추게 되는 날이 올까?' 이런 생각을 내쫓기 위한 방법은 바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떠올리면서 '그래,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결국 제 1세계가 제 3세계에 대해 자행하는 착취의 결과물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진보적이긴 하나, 어째 좀 재미 없고 패배적이다.

이 시점에서 떠올려야 하는 또 다른 다이아몬드는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에 나오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신파극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내용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 시절에 대부호였던 김중배가 이수일의 연인이었던 심순애에게 물질 공세를 퍼붓고, 특히 다이아몬드를 선사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장면이 등장한다. 이수일이 심순애를 매몰차게 내치면서 말한다. "순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좋단 말이더어냐아?" 심순애가 이수일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흑흑흑. 아니어요. 수일씨이. 아니어요." 아이구야.

잠시 이수일이 얼마나 찌질한 인간 인지 증명하는 것을 뒤로 한 채,

영화 [물랑 루즈][각주:1]를 살펴 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 영화를 봤을 것이다. 물랑 루즈를 들락거리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인 여신 샤틴(니콜 키드만), 그에게 다이아몬드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극장을 지어주겠다면서 무차별 물량 공세를 퍼붓는 '부르주아 귀족' 공작. 허나 그러한 샤틴을 사로 잡는 것은 다름 아닌 돈 한 푼 없는 '보헤미안 예술가'인 시인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 지지고 볶고 노래 부르고 한 끝에 죽어가는 샤틴의 사랑을 얻은 것은 크리스티앙. '공작'은 돈은 돈 대로 대준 끝에 끝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자기 이름도 말할 겨를 없이 끝까지 그저 '공작'으로 남은 채로 불쌍하고 쓸쓸하게 극에서 퇴장한다.

자, 수일아. 그래, 순애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 자넨 대체 뭘 했나? 보아하니 도시락 폭탄을 제조하는 지하실 앞에서 휘휘거리며 망을 보는 사람들에게 물을 떠다 주지도, 하얼삔역을 사전 답사하는 사람들의 도시락을 챙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상태였으니 인간과 사회에 질문을 하여간 던져 보는 학문의 장에 뛰어 들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구나. 그럼 대체 순애의 마음이 저렇게 흔들릴 때까지 뭘 했나? 하루에 조금씩 시간을 내어 기타를 연습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되든 안 되든 머리 싸매가며 순애를 휘어 잡을 시를 쓰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뭘 했나? 이도 저도 안 되면 시인 이 상이 금홍이 데리고 술 먹는 자리에 어떻게든 껴서 한 수 배워 보려고 노력을 하든가. 이수일은 이후 '보헤미안'이 되어 '부르주아'를 상대하는 길을 택하지도, 독립 운동에 투신하는 '투사'가 되어 아우라를 내뿜는 길을 택하지도 않은 채, 그도 또한 '부르주아'가 되기 위한 길을 걷는다. 

이후의 내용은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나열해 보자면. 이수일은 결국 '그 시절'에 고리대금업자의 밑에 들어가 악착 같이 돈을 모으려는 선택을 한 와중에 그 고리대금업자가 죽어 버려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고, 오호 횡재라, 한편 심순애는 자신의 '죄'를 뉘우친 채 - 여자가 다이아몬드를 보고 헷가닥 하는 것이 죄라면 남자가 섹시한 여자를 보고 헷가닥 하는 것은 정말이지 큰 죄다. - 대동강에 투신 자살, 아이고 맙소사, 하려다, 수일의 친구인 '낙관'에게 구출 되고, 등장인물 이름 한 번 참, 두 사람은 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남녀관계에 왠 제3자? 이게 뭐 KBS [사랑과 전쟁]인 줄 아나, 다시 재결합. 끝. 아아. 누가 [이수일과 심순애]를 신파극이라고 했는가. 정말이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버금가는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극 자체를 벗어나 극의 바깥을 살펴 보아도,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1897년부터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 되었던 [곤지키야샤]라는 소설을 한국어로 번안한 작품이다. 또한 [곤지키야사]는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문 소설 [여자여, 약한 것]을 각색한 것이다. 물론,  21 세기를 살아가는 지혜는 약한 것이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 사로 잡혔던 19 세기적 사고 방식을 극복하는 것이다. 


  1. (2009년 06월 03일) 한데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결국 이 영화 [물랑루즈]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돈을 댄 사람은 '공작'이 아니던가. 그리고 영화 관람비를 내는 것은 '보헤미안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 영화 관람비를 통해서 돈을 번 건 '공작'이 아니던가. 어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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