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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7 한국의 상징 잡설 1
  2. 2009.02.16 옷차림 1
  3. 2009.02.12 여행의 세 단계
  4. 2009.02.10 김이박 영화 감상기
  5. 2009.02.09 방송
  6. 2009.02.09 국제적 사고 2
  7. 2009.02.09 징글리쉬
  8. 2009.02.09 모방국가
  9. 2009.02.08 미국 물
  10. 2009.02.01 반찬 생각 2
  11. 2009.01.30 어떤 상상
  12. 2009.01.29 다시 들추어 본 로스엔젤레스 관광기
  13. 2009.01.26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14. 2009.01.26 한국의 뭐뭐뭐 3
  15. 2009.01.26 번역 출간 2
  16. 2009.01.23 오바마 취임에 대한 인종별 반응
  17. 2009.01.21 책 많이 읽는 다는 소리를 듣는 방법
  18. 2009.01.18 볼테르의 멋진 말
  19. 2009.01.17 부시의 마지막 연설
  20. 2009.01.17 영화관 내 화장실 앞
  21. 2009.01.15 알파벳 약자 기업들
  22. 2009.01.15 콘텐츠
  23. 2009.01.14 비극
  24. 2009.01.14 의문
  25. 2009.01.13 영화 [밀크 Milk] 2
  26. 2009.01.13 세 가지
  27. 2009.01.05 한국인 연습
  28. 2009.01.05 예능 프로그램
  29. 2008.12.29 가족 사진 1
  30. 2008.12.26 경건함

한국의 상징 잡설

에세이 2009. 2. 17. 19:05

한국산 인삼차 봉지를 보고 있으려니 그 조악한 디자인에서 왠지 소위 '동남아[각주:1]'라는 '형용사'를 사용해서 지칭할 때 느껴지는 그 느낌이 난다. 어쨌든 오랜 만에 인삼차 가루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자 처음엔 인삼 특유의 향이 나더니만 씁쓸한 뒷맛에서는 담배맛이 난다. 인삼차가 이렇게 그윽한 줄 전에는 잘 몰랐다. 마시고 있는 커피 봉지가 떨어지면 인삼차 상자를 하나 사야겠다. 자칫하면 중독될 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마셔 본 적도 없었던 복분자주를 사서 누구, 와 함께 마셨다. 한국산 술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누구, 는 복분자주를 좋아했다. '복분자주'에서 느껴지는 정력 어쩌구 저쩌구 하는 선입견이 없는 누구, 에게 그 술은 달콤하고 맛있는 산딸기로 만든 술이었을 따름이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 누구, 는 그 술병을 캘리포니아산 피노 느와르 와인 병과 나란히 진열해 놓았다. 

예전에 어깨죽지에 문신을 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주일 정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던 문신 디자인이 하회탈이다. 하회탈을 좀 캐주얼하게 변형하여 어깨에 새기면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릴 적 우리 집엔 하회탈이 걸려 있었는데, 난 그 하회탈을 바라 보면서 저게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아리송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아리송한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인생은 희비극'이라는 유치한 모토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곤 했다. 

한국 요리에 있어 특징이 있다면 고추장이 아닐까 싶다. 간장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고 된장은 '미소 수프' 라는 이름의 일본 음식이 이미 있다. 

  1. 이 형용사는 '뉴욕'이라는 반대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동남아와 뉴욕은 모두 고유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 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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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

카테고리 없음 2009. 2. 16. 18:22

영화 [낮술]이 3월이나 4월 쯤에 미국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관련된 뉴스를 찾아 보다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차림새가 몇 년 전 내 차림새와 완전히 똑같아서이다. 

예전에 이미 경험한 바는 있다. 싸이월드를 하고 있을 무렵,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어떤 아는 녀석의 싸이 홈피에서 보게 된, 유학을 준비하면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녀석의 차림새도 마찬가지였다. 

솔기가 군데 군데 뜯긴 빈티지풍 모자, 검은색 뿔테 안경, 그리고 살짝 기른 콧수염과 턱수염 등. 나는 내 나름대로 '개성'을 살린다고 했었지만, 단지 여기저기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배회하는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일종의 '유니폼[각주:1]'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저 영화, 재미있을 것 같다.


  1. 현재 검은색 뿔테 안경은 색깔이 갈색으로 바뀌었고, 수염은 똑같다. 모자는 인민군 스타일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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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세 단계

구라 2009. 2. 12. 19:08

여행에도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그 중의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여행 책자에 소개 된 장소를 도는 관광지 답습 여행입니다너무나도 안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뻔하기 이를 데 없어 사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합니다. 이 여행 단계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여행지는 선진국일 경우가 많고, 가장 선호되는 곳은 아무래도 서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일 것입니다.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이 그냥 도시 한 군데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데, 그 도시 이름은 미국에 있는 라스베가스입니다. 그 도시에는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파리의 에펠탑,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이 모두 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잘만 각도를 맞추어 사진을 찍는다면 마치 세계 곳곳의 명소를 모두 다녀 온 듯한 효과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서 부연 설명 하자면,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찍는 사진들은 모두 자신이 어디어디에 갔다 왔다는 것을 증명 해주는 증명 사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지물 또는 건축물이고 사진을 보게 될 사람들이 그 지형지물 또는 건축물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펠탑이나 콜로세움과 같이 정확하게 그 장소에 해당하는 랜드 마크를 공략하는 것은 필수 적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여행이 이미 유행을 지난 듯이 보여 이쯤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는 '독특한' 여행기를 써내는 저자들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뭔가 주제를 잡고 여행을 떠나는 방법 입니다. 주요 목적은 잃어 버린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이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여행하는 법 자체 보다는 여행 에세이들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하고자 합니다

서점에 가서 진열된 여행 에세이들을 한 번 쭉 훑어 봅시다. 그 말랑 말랑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의 여행기 책자들 표지에서는 왠지 모를 커피 내음이 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아무 책이나 뽑아 들고 책장을 넘기게 되면 반드시 책의 속표지에는 저자의 사진과 저자의 간략한 소개가 나옵니다. 사진에서는 벌써 자유로운 여행자의 풍모가 반드시 풍겨 나오기 마련이고 이것저것 많이 시도를 해 보았던 울퉁불퉁한 인생사를 드러내는 저자에 대한 소개는 톡톡 튑니다. 예컨데,

"모모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이미 집을 나가 하룻 동안 거리를 쏘다닌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자율 학습을 빼 먹고 무작정 바다가 보고 싶어 부산 행 기차에 올랐다.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했지만, 철학 수업 보다는 기타를 더욱 사랑했다. 입대 직전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 하기 시작했다. 인디 밴드 기타리스트,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거쳐 현재 문화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아침 마다 주머니에 여권을 챙겨 넣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

정도면, 그럭저럭 무난한 소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론 사진입니다. 저자 사진들의 특징을 꼭 무 짜르듯이 나눌 순 없겠지만, 대략적으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적이면서 다소 철학적인 모양새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더 소탈하면서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적인 모양새를 강조하고자 할 때는 대부분 얼굴을 전부 보여주기 보다는 약간은 어두운 조명을 깔고 각도를 약간 달리 하여서 얼굴 윤곽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얼굴을 반 쯤 만 보여 주거나 얼굴에 뿔테 안경을 낀다든지하여 얼굴을 정면에선 보여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소탈한 자유분방함을 강조 하고 싶을 때는 대게 제 멋대로 자란 듯한 수염을 기르면서 다소 과감하게 정면을 보면서 소탈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들이 여행을 하면서 뽑아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발견할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느낌의 글 들입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데이트 중에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비시시 웃으면서 '기내식!'이라고 힘차게 대답했던 그녀." 

라든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여행을 떠나서 만나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너 자신이라고. 인천 공항을 떠나 이십 육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혹은, 

"조그마한 바스릴라1마을에서의 경험은 확실히 내 기존의 생각들을 조금씩 바꾸어 놓기에 충분 했다. 그 들은 작고 변변치 않아 보이는 것들 틈바구니에서도 소박한 웃음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 들의 일상을 잠시 엿 본 나는 그 마을을 나서며 내가 지금 껏 쫓아 왔던 가치들에 대해서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나에게 넉넉한 웃음을 보여준 마누에2가 부쩍 생각이 난다." 

정도의 글들을 한 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진과 함께 발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사진들은 첫 번째 단계의 여행에서 언급한 사진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유명한 것들을 포착하기 보다는 뚝뚝 묻어나오는 자유로움을 포착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단계에서 가장 선호되는 여행지는 주로 쿠바, 인도, 몽골 사막, 칠레, 터키, 카오산 로드 등등이 있습니다

 

세 번째 단계야 말로 여행자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단계가 되겠습니다. 바로 그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의 단계입니다. 마치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아 가는 방법이 되겠는데요. 사실 이렇게 계속 살아서야 먹고 사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므로 간략하게 자기가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서울을 여행하고 싶다면 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먼저 첫 번째 방법은 좀 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슬슬 집을 나서 집 앞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자기가 학교나 직장과 같이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버스나 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찬찬히 창 밖을 내다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리고 싶을 때 내립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버스 카드를 이용하면 버스 요금은 버스를 탄 횟수가 아니라 버스를 탄 거리에 따라 계산이 되므로 돈도 얼마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가보는 동네가 나오면 내려서 이곳 저곳 휘적거리면서 돌아다녀 보는 겁니다. 그러다 출출하면 밥을 먹게 되겠지요. 이런 식으로 하루 일정을 채운 후에 가능하면 평소에 자신이 자주 유흥을 즐기던 동네가 아닌 생판 낯선 동네에 있는 술집에 가서 홀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때 구천 몇 번이나 천 몇 번 과 같이 네 자리 숫자로 된 버스를 타서 서울 근교 일산이나 분당과 같은 곳으로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그 곳도 여행지에 넣어 포괄적으로 서울과 서울 근교 여행으로 범위를 넓힐 수도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방법은 휴일이나 주말보다는 주중에 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주말이나 휴일에 본격적으로 여행자 기분을 내보는 것입니다. 집에서 여행 베낭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서울시 안내 책자를 챙깁니다. 그리고 인천 공항으로 향합니다.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의 시각을 확인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맘에 들어 하는 곳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시각에 맞추어서 그 인파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리무진을 타고 서울로 향합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서울에 처음 온 관광객인 양 서울을 돌아다닙니다. 경복궁에도 가보고 남산 N 타워에도 올라가서 서울의 전경도 구경합니다. 내려 오는 길에 남산 한옥 마을도 들려 사진도 찍고 인사동에 들려서 전통 음식도 맛보고 한국의 전통이 담긴 중국산 기념품도 하나 사고 삼청동과 가회동을 돌아 보고 조그만 갤러리도 한 번 쓱 들어가 봅니다. 이렇게 비교적 정해진 코스를 다니다보면 서울을 관광하는 외국인도 만나 이야기도 더듬거리면서 주고 받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 제가 처음에는 정해진 관광지를 답습하는 여행을 피하라고 말했던가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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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영화 감상기

김이박 이야기 2009. 2. 10. 19:35

김이박은 어느 유명한 영화제에 가서 어떤 유명한 영화를 봤는데 그 유명한 영화가 끝나자 한 유명한 감독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박은 방금 본 영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아 보여 용기를 내서 손을 번쩍 들고, 감독님, 주절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그래서 말인데요. 가나다라마바사는 아자차카타파하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게 맞나요? 

그러자 어떤 유명한 영화를 만든 한 유명한 감독님은 영화 관객과의 대화를 영화 스태프와의 대화로 착각했는지 버럭 성질을 내며 손에 쥔 마이크를 던지더니, 빌어먹을, 의미는 스스로들 찾으란 말이야! 안 그럼 아무 의미 없다고! 

그러나 김이박은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

방송

인용과 링크 2009. 2. 9. 22:26
- KBS.

'국민의 알 권리'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재야의 종소리 현장에 있었던 사운드와 화면 담당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와 있는 그대로의 화면을 채집하여 송출한다는 생방송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훼손되었다. 이건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수다. 역사에 남을 만한 프로그램이다. 


- MBC.

어떤 앵커의 마지막 멘트, '열공'. 뉴스 자막에 'ㅋㅋㅋ' 이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과연 인터넷 강국 답다.

2008년 MBC 400회 특집 100분 토론, 얼마나 '쇼'였냐면 보다가 순간 나경원 의원의 손짓이 섹시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모든 대화는 결국 노가리로 통한다. 노가리를 깔 수 밖에 없는 만남의 장이 너무 많다. 달리 예능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만에 잠깐 시청한 무릎팍 도사, 참 무서운 프로그램이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장기하, MBC 노조 파업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참 똑똑하다.

MBC가 소위 '좌파' 방송사인지, '우파' 방송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뉴스를 만들 때는 일단은 그냥 가장 기초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게 가장 어렵다. 


- 생각들 (문단 간의 연결 고리는 별로 없다)

대체 언론법 개정이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을 모르겠다. 언론들이 언론법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가 못 찾았겠지 싶다. 그런데 문득 소풍 나가서 자기를 세지 않아 한 명이 없어진 줄 아는 초등학교 1학년 반장이 생각난다. 

"MBC가 재벌/조중동 방송이 되면 '피디수첩' , '100분 토론'도 볼 수 없다." 에이, 설마 저렇게 주장했을려구. 난 여느 한국인들 처럼 한국어 문법 보다 되례 영어 문법이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 문장을 '미래 가정법'이라고 가정 하겠다. 그런데 저 '미래 가정법' 문장의 앞 뒤가 어떻게 연결 되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벌과 조중동을 매우 싫어하는데도 그러하다.

MBC 노조 파업은, 말하자면 현대 자동차 노조 파업하고 비슷한 거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하청 업체들(독립 프로덕션들)은 파업할 시간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기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멋지고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동시에 하청 업체들과의 계약을 합리적으로 작성하여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도 멋지고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아, 그건 노조 잘못이 아니던가?) 아무튼 간에, 국민, 공공, 공익은,,, 잘 모르겠다.

하청 업체(독립 프로덕션들)에는 물론 노조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케이블 업계에도 노조는 없을 것이다. 전문적인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을 네이버가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이유하고 일맥상통하다. 또한 방송 노동자들이 한 일주일에 육십 시간 정도만 일해도 (하청 업체 포함) 방송의 질이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기대를 잠시 해 본다. 방송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과 방송 노동자들이 육십 시간 일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순진한 기대인지 잘 모르겠다. 

공중파 방송의 막장 분위기가 내가 유튜브와 다음에서 위의 것들을 광고 시청 하지 않고 공짜로 볼 수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왠지 기업의 광고 담당자들은 공중파 보단 차라리 네이버에 광고를 더 많이 줄 것 같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다 US라는 불법 사이트도 계시다. '장물'들은 그만 훔쳐 봐야겠다.

미국놈들 중에 똑똑한 놈들은 참 똑똑하다. 방송사가 제작한 방송들을 방송사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대부분 '기술적으로' 광고를 시청할 수 밖에 없게 해 놓았다. 그리고 그 사이트 들은 북미 지역 이외에선 열리지 않는다. 당연하지, 북미 지역 이외의 시청자가 그 광고를 보았자 소용이 없으니까. 

어차피 방송을 거의 안 보는 편인데, 말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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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사고

짤막한 거 2009. 2. 9. 21:40
국제적 사고, 라는 것이 별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생각이 들거나, 어떤 말을 하게 되거나, 어떤 표현을 하게 될 때, 그 것들이 '한국 땅' 에서만 통용되는 것인가, 아닌가, 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휴,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맨날 야근하고 회식하고..." 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저 '사회생활'이라는 단어 앞에는 반드시 '한국'이라는 '고유 명사'가 추가 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적인 단어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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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글리쉬

에세이 2009. 2. 9. 18:39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당시 잠시 고등학교 영어 교사직을 하신 적이 있었고, 그 반대 급부로 집에는 출판사에서 홍보차 보내 준 각종 어린이용 영어 교재가 쌓여 갔다. 당시 그 영어 교재들을 믿기지 않게도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은 듣기를 강요한 어머니에 의해 조작된 기억일 확률도 조금은 있다.) 그래서 믿기지 않게도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장 기대가 되던 교과 과목은 영어였다. 영어, English. 그런데 중1때 영어 선생님이, 그러니까 내 생애 첫 영어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생각난다. 

"영어는 영어로는 잉글리쉬 English 라고 하지. 그런데 말야. 이게 나중엔 잉글리쉬 English가 아니라 징글리쉬가 될 거야. 징글징글하게 너희들을 평생동안 따라다닐 거야." 

징글징글하다 하여, 징글리쉬. 그것은 '콩글리쉬[각주:1]'와 함께 과연 '진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관문에는 영어가 점수로 변해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튼 당시 이 청천벽력과도 같고 저주와도 같은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는 중학교 시절에 영어'공부'를 완전히 손을 놓고 등한시했다. 또한 분명히 내가 어릴 적에 '배웠던' 영어는 꽤 흥미진진한 것이었는데, 중학교 시절에 만난 영어는 [성문 종합 영어]의 옷을 입고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내게 오형식과 관계대명사와 투-부정사와 전치사를 읊어 댔다. 영어는 언제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었고 '학문'의 일종 이었다. 동시에 단어장과 숙어장이 나를 반겼다. 물론 그 와중에 영어 공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등등의 책들은 언제나 서점에 진을 치고 있었고 대학생이 되고 나선 나도 물론 그런 책들의 저자들에게 돌아가며 인세를 보태 주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 자기 얼굴 보다 세 배는 더 큰 귀를 가지고 활짝 웃고 계시던 어느 토익 영어 전문 강사님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새삼 돌아가신 분에 대한 명복을 빈다. 이제서 고백하자면, 그 학원에 한 달 다닌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짝사랑 했던 여자를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느 샌가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은 바뀐 듯 하다. 문법과 단어와 해석이 아닌 실질적인 말하기와 듣기와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국제화 시대, 혹은 세계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어, 영어, English를 강조하는 외침이 징글징글하게 한국 땅에서 언젠가 부터 메아리치고 있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인과관계가 거꾸로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국제화' 시대와 '세계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영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국제화'되고, '세계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와 학원에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ESL 영어 강사들, 대학교의 영어 수업을 위해서 고용되고 있는 영어권 국가 출신 교수들, 그들이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별 인기 없던 한국 땅을 자꾸만 '국제적'이고 '세계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농촌에 베트남과 필리핀 출신 여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과 함께 말이다. 

아무튼 영어 산업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 중에 하나고 당분간 불황을 모르는 산업이 될 듯하고, 미국 경제가 엉망이 되어갈 수록 동아시아 -서서히 영어 열풍이 꺼져가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한국- 에는 점점 더 영어 강사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 현상 안에는 사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들어 있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의 일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중국을 배경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얼마 전에 나왔는데,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목은 Mad About English. 어서 보고 싶다.


  1. 언제 어디선가 읽었던 기사가 기억이 난다. 그 기사는 그 많은 중국 인구가 서서히 영어를 배우게 되어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 보다 더 많아지게 되면, 영어를 제2의 언어로 배우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보다 더 많아지게 되면, 그때는 과연 어떻게 될까, 를 다루고 있는 기사였다. 그때는 콩글리쉬, 칭글리쉬, 재패니쉬가 더 이상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액센트 또한 더 이상 '표준'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예측 기사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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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국가

인용과 링크 2009. 2. 9. 16:44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들렀던 대형서점은 영어원서들로 빼곡했지만 정작 말레이시아와 관련한 인문학이나 사회학 서적이 없었다.저는 이 부분에서 무척 공감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정체성이 없이 식민시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우울함이 생기는 군요.

제가 다루는 분야인 법학에서도 이런 근본문제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근대화 (현대화도 아닌)에 많은 문제점을 해결 못하고 있으며 법을 다루는 주체들 조차도 적용기준에 대해서 외국의 기준을 의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선진국이라면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걸맞게 발전한 자신들만의 법적체계와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모방국가에서는 자신들의 가진 법률시스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외국의 유사한 이론을 흉내낼 뿐입니다.

가장 흉내를 잘내는 모방국가는 역시 일본이구요. 하지만 그기까지만 갈 수 있을 뿐 더 이상은 안되는 것이 일본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본을 흉내내기도 바쁜 법률모방국가이죠. 법률모방국가의 특징은 참여자를 모두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문서화된 '논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률가들의 법적 결정을 읽어보면 '이는 신의성실에 반하므로...' 또는 '이는 적정 형량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등의 일반원리를 구체화시켜서 설득해야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냥 일반원리를 최종적 논증으로 제시하고 끝내버리는 일이 흔하게 이루어지죠. 아무도 설득되지 않고 결과를 승복하지 않는 불만시민들만 늘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의 법학은 영어원서나 독일어원서가 서점에 들어찬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에 맞는 이론이나 체계가 없이 원서를 번역해서 짜집기한 정도에 그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전공도 별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원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군요...

자주 들르는 한 문화비평가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다.


인문학이나 사회학이나 뒤에 달린 고고한 '배울 '에 주눅들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야기의 좋고 나쁨은 '도덕'과는 무관하다.)그 이야기들은 자신을 이해하게 해주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없으면 사람은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신과 무관한 사회에서 '물 건너온' 이야기를 더 많이 아는 사람은 헷갈리게 된다.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이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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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물

에세이 2009. 2. 8. 01:42

"미국 물 좀 먹었구나?"

빈정거리듯 던지는 저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저 소리를 듣게 된다면 왠지 좀 슬퍼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음부터 녀석들이 대화 중에 불필요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지 안 섞어 쓰는지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이 곳에 온지 한 달 도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다호 (맨 처음엔 아이다, 라는 호수 이름인 줄 알았다.) 주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 한 녀석이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왔고, 어느 중국 음식점에 같이 갔었다. 음식 두 개를 주문하고, 같이 나누어 먹게 되었는데, 나는 그저 무심코 중간에 놓여진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공용' 수저를 이용해서 내 그릇에 담았고, 다시 '내' 수저를 사용해서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 녀석이 그 광경을 다소 짜증스럽게 바라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내색은 안 했지만, 그 순간 나보다 일 년 반은 더 미국에 살았던 녀석의 머릿 속에는 아마 저 말이 떠오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친구 녀석은 졸업을 하고 일자리를 구하는데 실패하고 작년 겨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 갔다. 막 판에 전화 통화를 하다가 꼭 시민권 가진 여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이 곳에 정착을 하라는 자신의 아쉬움이 담긴 말을 하고 돌아갔는데, 그 뒤로 그 친구와는 연락이 점차 뜸해지고 있다. 조만간 연락 한 번 해야지 싶기도 하다.)

내가 하는 많은 생각들, 행동들은 미국,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샌프란시스코, 에 살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국에 있을 때 부터 하던 생각들, 행동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 내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이제 일 년 하고도 칠 개월 남짓 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가 예전부터 개인주의에 좀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 곳에 살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있다. 개인주의의 부정적인 면,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에 좀 더 민감해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종에 대한 것들이다.)

좀 웃기는 예를 들자면, 홍대 클럽에 처음 가보았을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삥 둘러 앉아 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이리저리 싸돌아 다녀야 하는 클럽 안에서 느꼈던 일종의 자유로움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실은, 삥 둘러 앉아 퍼 마시는 술 자리에 동석한 여자들 보다는 클럽 안의 여자들이 더 예쁠 확률이 높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물론 '물'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쪽수'다.) 

혹은, 예전부터 나는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등수 매기기 보다는 각자의 독특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독특, 이라는 단어와 특이, 하다는 단어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이 있는 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논평하면서 그 자식, 참 특이해,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누군가에게 그 '특이'라는 단어를 '독특'이라는 단어로 바꾸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대화의 맥을 자르는 그런 말을 하진 않는다. 다소 쓸데 없는 민감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내가 한국 작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김승옥인데, 신경숙이라는 소설가는 그 김승옥이라는 소설가를 매우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문학 수업을 그 김승옥의 소설을 베껴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굉장히, 대단히, 매우매우 절실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작가'가 되어 온전한 하나의 개인으로 인정 받으려는 사람이 남의 소설을 베끼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출간 된 신경숙의 새 소설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 해] 앞 부분을 잠깐 읽어 보았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내 편견과는 달리 느낌이 괜찮았다. 특히 서술자가 이인칭 주어를 사용하면서 '너는-' , '너는-' 이라고 말하는 장치는 꽤 인상적이었다.)

연관지어서 문하생, 이라는 무협지적인 세계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문하생이 성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문하생은 결국 그 대가 밑에서 '뒤치닥거리'를 하는 노동자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하산 하거라, 는 그야말로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문하에 들어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하산을 할 래야 할 수가 없다. 그거 말곤 먹고 살 길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 투쟁'을 해야 하고 시급 혹은 주급 또는 월급을 차질 없이 정확하게 챙겨야 하는데, 대부분 언젠가는 그 '문하'를 벗어나-통해서, 자신이 대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의 경우와 같은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만화 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문하생'이라는 개념 보다는 그 밑에서 일하며 계약에 의거해서 정당한 보수를 받는 '노동자'의 개념을 갖는다고 알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발달한' 영화 산업과 방송 산업에는 지금도 '문하생'들이 몰려 들고 있다. (그리고 나도 한 때 '문하생'이 되기를 자처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 밑에는 빵빵한 문하생들이 많아서 그 문하에 들어가질 못 했다.)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과 서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된 다면 마치 여기저기에서 멋지게 묘사 된 사무라이들의 대결 처럼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한 사람은 죽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면에선 그것이 진짜 '대화'인지도 모르겠다만.) 

단지 어떤 사안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물론 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예민했다고는 하지만 상대방의 세계관을 슬쩍슬쩍 건드리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면 기본적으로 모든 논쟁은, 아니 모든 대화들이 상대방의 세계관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흐를 때가 많은 것 같다.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보내는, '통촉하소서 마마-' 로 시작 되는 상소문이라는 조선 시대 문화-체제의 영향, 혹은 어린 시절에 접했던 전래 동화를 비롯한 조선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과 '사극'들의 영향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위 친구와 친구 사이, 선배와 후배 사이, 선생(혹은 교수)과 학생 사이에 '갈굼'이 존재할 때 매우 불편했다. (덧붙이자면, 말 그 자체로써는 상대방의 세계관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강렬한 이야기를 접하는 간접 체험 혹은 어떤 강렬한 직접 체험이 있으면 모를까.)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규칙을 지키게 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예컨데, 고등학교에서 선생들이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가지고 지랄하거나 때리는 것은 무의미하고 낭비라고 본다. 그냥 학교 전체를 금연 구역으로 설정하고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발견하게 되면 제재를 가하면 된다. 이때 그 제재는 정학이 될 수도 있다. 담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을 발견하게 되면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곳을 고발하면 된다. (이렇게 쓰다 보니 개인주의라기 보다는 어떤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저대로 되었더라면 난 고등학교 때 담배를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쓰다 보니, 미국 물을 먹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점점 통제가 되질 않는다. 대강 통제가 되는 것 같아 보이는 이 시점에서 마무리지을까 한다. 문맥과 상관 없이 삐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담기 위해 남발한 () 괄호가 읽는 이들을 성가시게 할 것 같다. 그랬다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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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생각

에세이 2009. 2. 1. 18:02
'외국'의 한국 음식점에 대한 악명이 이래저래 높은 것 같다. 손님이 먹고 남긴 잔반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 한다든지, 음식 맛이 형편 없다든지, 서비스가 이래저래 불친절하다든지. 물론 한국의 한국 음식점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는 다른 나라 음식점과 이래저래 비교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도 있고, 누가 경험한 것을 들은 것도 있고, 누가 경험한 것을 적어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나도 그 '한국 음식점'들을 경험하면서 속으로 욕하기에 바빴는데, 요즘 들어서 문득 다른 생각이 부쩍 들기 시작한다. 

'한국 음식'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반찬의 가짓 수가 많다는 점이고, '한국 음식점'의 특징은 그 반찬은 모두 으례히 상차림의 일부분으로 따로 가격을 매기지 않고 나온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는 법인데, 그 많은 반찬은 과연 공짜로 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부쩍부쩍 들기 시작한다. 특히 그간 이런저런 다른 나라 음식점들을 다니면서 먹어 본 결과 한국 음식점처럼 반찬을 그냥 제공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한국에서 으례히 친절한 '인심'을 기대하면서 내뱉었던 말들을 되새기게 된다. "아줌마, 반찬 좀 더 주세요."  "여기요, 마늘 좀 더 주세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요. 아참, 무 많이 넣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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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상

에세이 2009. 1. 30. 22:49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익히는 일이다. 비록 바이올린을 만져 본 적도 없지만, 활을 켜서 정확한 도- 소리를 내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신디사이저의 등장은 그 정확한 도- 소리를 내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을 뛰어 넘어 정확한 도- 소리를 똑같이 몇 번이라도 재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글 한 번을 쓰려면 먼저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가는 일 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먹을 충분히 간 다음에 붓을 들어 먹물을 묻힌 다음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다. 펜에 잉크를 묻히는 일은 이 보다는 덜 번거로웠을 테지만 어쨌든 손을 사용한다는 것에서는 똑 같았다. 그러던 것이 타자기가 등장하면서 한 자 한 자 쓰는 것이 아니라 쳐내려 가기 시작했다. 쓰는 것에서 쳐 넣는 것으로의 변화는 많은 시간을 절약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키보드가 있다. 타자기와 방식은 같지만, 이젠 바로 바로 수정이 가능하다.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는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사진을 잘 찍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빛의 세기에 따라 조리개와 셔텨 속도를 조절해야 하며 초점도 정확하게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필름을 현상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직접 하려고 든다면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많은 면에서 저런 작업들을 간단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담 이전과 달리 그 남는 시간에 대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혹은 대체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장비를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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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추어 본 로스엔젤레스 관광기

카테고리 없음 2009. 1. 29. 21:28

2004년 겨울, 샌프란시스코 관광기에 이은 로스엔젤레스 관광기다. 일기장을 들고 다니면서 대강대강 적고 나서, 관광을 끝낸 직후 한국에 돌아와 정리했던 글이다.


첫째 날.

헐리우드. 헐리우드. 드디어 말로만 듣던 헐리우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올라 왔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헐리우드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이제 드디어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잔다. 처음이지만 이내 적응하였다.

Sunset Blyd. 해가 지는 큰 길? 멋진 길이다. UCLA 대학을 구경하러 가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연구소 같은 곳에 잘 못 들어가서 한참을 헤맸다.

밤에 보는 Chinese Theater는 정말 멋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얽매이지 말자!라는 문구가 이 페이지에 적혀 있다. 아마도 저녁에 무얼 할 지 고민하면서 적은 것 같다. ..히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스타일이 아니다. 저쪽에서 말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걸진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유스호스텔에 있던 한 무리와 친해졌고, 흑인 한 명과 그가 집적대고 있는 스코틀랜드 여자 애 한 명, 그리고 웨일즈 여자 애 한 명, 그리고 일본애,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사실 조니 뎁이 운영한다는 Viper Room을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뭐 녀석들의 목적지가 다른 곳이라 잠자코 따라갔다. 혼자 Viper Room에 가는 것 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지 않겠는가.

그 흑인 녀석은 내가 군대에서 접했던 흑인 영어를 쓰지 않는 녀석이었고, 일본인 녀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여행을 다니는 녀석이었다. PUB 같은 곳이었는데, 사람들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뭐 그리 쓸데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서도. 뭐 예를 들면 웨일즈 애 한테 니는 왜 액센트가 그따구냐 등등. 흑인 애보곤 너 뭐하고 사냐. 너는 흑인 영어 안 쓰는 것 같다 등등. 브라질 아저씨, 오스트레일리안 녀석, 그리고 거의 발정난 것처럼 보이는 미국애 한 명. 결국 그 녀석은 여자를 한 명 꼬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말도 안 되는 코스모폴리탄 의식에 젖어 마시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밤 시간이 흘러 갔다. We are the world~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Yes.

 

둘째 날. 

시티 투어를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서. 결국 시티 투어를 포기해 버렸다. 결국 베버리힐즈를 제대로 못 보았지만.

드디어 코리아 타운에, 버스를 타고 가다. 헤매고, 또 헤매고. 교회가 많고, 병원이 많다. 중심가에는 못 가본 듯 하다. 하지만 한국만의 무엇이 있다는 느낌은 잘 안 느껴졌다. 그냥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간판의 그것이랄까? 중심가를 못 가봐서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서도.

그 유명한 로데오 거리도 소문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보다 규모도 더 작았다.

옷차림을 보니 일본인들이 이제 구별이 좀 되는 듯 하다. 역시 아직 가장 촌스러운 것은 중국인들이고 한국인 일본인 순으로 조금씩 나아 지는 듯 하다. 아무튼 일본 애들은 한국인들 옷 입는 스타일과는 또 약간 다르다.

뭐랄까. 곳곳에서 느낀 것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Japan Culture는 이미 세계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애니메이션과 게임과 만화, 그리고 음식들.

산타모니카 해변은 날씨가 안 좋아서 망쳤고, 쇼핑 센터를 구경하다가 몽골리안 소고기인가를 먹었다. 그리고 베니스 해변으로 갔다. 뭐랄까. 산타모니카와 베니스 해변의 차이는 해운대와 광안리의 차이랄까? 라고 말하면 너무 단순하게 말한 것이고, 아무튼 산타모니카가 좀 깔끔한 분위기라면 베니스 해변은 먼가 히피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물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람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힘들다. 무거운 베낭을 짊어지고 비가 오는 가운데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란. 정말 힘들다. 드넓은 L.A를 베낭 메고 버스 타고 볼 생각을 했다니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아무튼 밤 비행기를 타러 LAX...


덧. 역시 그 때는 '어렸다'. 베니스 해변은 나중에 알고 보니 짐 모리슨이 레이 만자릭을 만나서 The Doors를 결성했던 곳이었다. 베버리힐스를 멍청하게도 구경하겠다고 마음 먹은 다음 바보 같이 그 곳엘 버스를 타고 갔다. 그 곳에서 나는 나 처럼 '노란 책, 세계를 간다' 를 들고 서성대다가 버스를 기다리는 또 다른 바보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겉에는 일본어가 적혀 있었지만, 그 '노란 책'의 디자인은 똑 같았다. 

문득 유스 호스텔에서 만났던 그 일본애가 기억이 난다. 일 년은 공장에서 일하고 일 년은 여행을 다닌 다는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솔직히 그 때는 속으로 무시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것을 떠올라서 글을 옮기면서 좀 괴로웠다. 

LA엔 일정 상 이틀을 있었지만,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은 도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LA에 사는 사람들이 혹여나 이 글을 읽으면 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LA는 특별한 일 - 이를테면 돈이 생길 일 - 이 없으면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은 도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일반적인'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취향을 어느 덧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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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카테고리 없음 2009. 1. 26. 14:25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닳고 닳아서 문드러진 말이 있다. 물론 저 말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지만, 문득 의문이 생긴다. 왜 다들 
성공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까? 정말로 성공을 하고 싶다면 성공기, 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실패기, 를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성공기의 대부분이 부풀린 자기 자랑이며 거짓으로 차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 둘째 문제다. 

덧. 문득 어린 시절에 교회 '부흥회'를 가서 '간증'을 들었던 시간들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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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뭐뭐뭐

인용과 링크 2009. 1. 26. 10:02
..당시엔 단관 개봉이었어요. 영화관에 가보면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려고 길게 줄을 서 있어요. 그게 재밌어서 극장에 한번 가게 되면 밤늦게까지 있었죠.” 언론은 배창호를 ‘한국의 스필버그라고 불렀다. 최고의 찬사였다...

... 한국의 스티브 부세미라고 부르는 게 싫다고 다른 걸 직접 골라달라고 했더니(역시 영화감독이기도 한 부세미에게 아무런 인간적 감정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꽤 진지하게 ‘한국의 로베르토 베니니라고 해달라고 했다. ...

...작년 독립영화 최고의 화제작으로 불리는 영화 '낮술'의 노영석(33) 감독에게 이 영화의 배급사는 '한국의 로버트 로드리게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의 데뷔작인 '낮술'이 로드리게즈 감독의 데뷔작 '엘 마리아치'처럼 B급 정서가 넘치는 액션물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뭐뭐뭐, 라는 관용 어구가 있다.  정치적 지향점과 상관 없이 두루두루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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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출간

인용과 링크 2009. 1. 26. 09:40
...신기욱 미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저서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이진준 옮김·창비)가 번역, 출간됐다. 민족주의를 거시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2005년 [Ethnic Nationalism in Korea:Genealogy, Politics and Legacy]란 제목으로 스탠퍼드대 출판부에서 먼저 나왔다. 

출간에 즈음해 방한한 신 교수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리인 민족주의를 ‘신채호의 민족주의’ ‘안창호의 민족주의’와 같은 지성사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방법론을 동원해 구조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민족(nation)·종족(ethnicity)·인종(race)을 구분해 사용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세 가지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서구의 민족주의가 종족과 직결되지 않는 근대국가의 정치적 구성원리인 반면, 한국에서는 ‘한 핏줄이니까 한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식의 종족 민족주의로 발전한다. 

“현재와 100년 전의 구도가 비슷해요. 현재 전지구화/민족주의/동아시아주의가 공존하는 것처럼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도 문명개화론/민족주의/아시아주의가 있었지요. 이 땅에 민족주의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인권·시민의식이 강조됐는데 일본의 식민통치를 거치며 동질성과 집단의식을 강조하는 종족 민족주의가 강화됐습니다.”                     

저 분은 한국 신문에 특별 기고도 하실 정도이니 한국어를 매우 잘 사용하시는 분이 틀림이 없다. 2008년에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로 지정되었던 화제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 또한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하준 교수가 썼고, 2007년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 되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영어권 국가에서 살게 되면 영어로 학술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국어권 국가에서 살게 되면 한국어로 학술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다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영어로 쓴 글을 자기 스스로가 아닌 다른 번역자가 번역한다는 것이 나로써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강의와 연구활동으로 다들 바쁘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미국에서 나는 인종적으로 'Asian' 에 속한다. 굳이 위의 분류에 기대자면 내 인종(Race)은 민족(Nation)적, 종족(Ethnicity)적 함의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데다가, 문화적 함의도 덧 씌워져 있다. 그래서 나는 내 경우에 비추어 볼 때 '서구'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쯤은 '합리적인' 그 나라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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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취임에 대한 인종별 반응

구라 2009. 1. 23. 18:32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은 오바마 관련 산업(뱃지, 포스터, 모자, 티셔츠 등등)의 호황으로 미국 경제 회생에 첫 단추를 끼운 바 있다. 이어서 각 인종별로 오바마 취임에 대한 반응을 모아 보았다. 


1. 백인 

민주당 지지 백인 : 미국의 전 세계적인 수출품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아직 떨어지지 않아 계속 수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또한 자신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흑인들에 대한 공연한 죄책감을 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공화당 지지 백인 : 케냐 출신 유학생 아버지를 두었고 어린 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그가 과연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한다.


2. 흑인

고학력 흑인 : 매우 기뻐하고 있다!!!!!!!!!!!!!!!!! 주립대 법률 대학원에 진학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하바드나 예일과 같은 아이비리그 법률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품고 있는데, 불현듯 백인들이 찾아와서 친근감을 표시하며 친구가 되고 싶어 하여서 약간 당황해 하고 있다. 

저학력 흑인 : 매우 기뻐하고 있다!!!!!!!!!!!!!!!!! YES WE CAN! YES WE CAN! YES WE CAN ~NiGGA!


3. 황인(동양인)

고학력 황인(동양인) : Asian American 동양계 미국인 대통령의 당선을 향후 몇 십년 내에 지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내심 품는다. 

저학력 황인(동양인) : 미국에 저학력 동양계 미국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4. 히스패닉

여전히 일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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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많이 읽는 다는 소리를 듣는 방법

구라 2009. 1. 21. 06:49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가, 옷을 사는 이유가 옷을 입기 위해서 보다는 옷 사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옷을 사면서 치수를 재기 위해 입어 보는 횟수와 옷을 산 후에 입는 횟수가 똑 같은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책은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물건이 본래의 용도보다 다른 부분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듯이, 책이란 물건도 본래 전시품으로써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 


1.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 놓는다.

1)가벼운 재미 위주의 책만 꽂아 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무겁고 어렵고 심각한 종류의 책만 꽂아 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절한 비율로 가벼운 책들과 무거운 책들을 섞어 꽂아 놓아 책장을 구경하는 사람에게, 어느 쪽으로든, "너도 이런 책을 읽는 구나, 의외인데?"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똑똑하면서 재미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2)그 적절한 비율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평소에 자신이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사람이면 무거운 종류의 책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반대로 평소에 자신이 심각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종류의 책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따라서 위의 이런 책은 [자본론]에서 [드래곤 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질 수 있다.

3)어떤 경우에도 "뭐뭐뭐여, 뭐뭐뭐를 하라." 류의 자기계발, 경제경영 서적은 피하는 것이 좋다. 

4)다양함을 우선시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전공,직업에 충실할 것이냐는 항상 풀기 힘든 어려운 문제다. 어떤 경우에도 적어도 한 두 권 정도는 "난 니가 이 책 좋아할 줄 알았어." 라는, 책 주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책을 꽂아 놓는다. 

5)자신의 집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자신의 책장을 보여 주는 이득 보다는 너저분한 생활 공간을 보여줘야 하는 결점이 더 크다면 자신의 책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2. 책장의 책을 뽑아 밖에 나갈 때 마다 들고 다닌다. 

1)똑같은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똑같은 사람에게 보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2)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는 들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복장이 너무 발랄하다면 다소 지적인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자신의 복장이 너무 무겁다면 다소 가벼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3)여행 시에 어떤 책을 들고 다녀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여행 시에는 책을 많아야 여행 안내 책자를 제외하고 한 권 내지 두 권 정도 밖에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으로 여행을 갈 계획이고, 그 외국이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과 같은 '제1세계'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영문판은 괜찮은 선택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단, 사전에 한글판으로 미리 읽어 두어야 한다. 국내 여행이거나, 외국 여행이라도 영문책이 싫다면 김영하의 소설은 괜찮은 선택이다. 또한 '론리 플래닛'이나 '세계로 간다'와 같은 여행 책자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 하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여행자들이 서로를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위의 일을 반복한다. 

그리하여 책의 숫자를 더욱 늘리고, 각각의 책에 적당한 양의 손때를 묻혀 놓는다. 간혹 가다 책장에서 깨끗한 책을 발견하고 읽지 않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원래 책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깨끗하게 보는 편이라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물론, 책을 되도록 헌책방에서 구입한다면 위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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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멋진 말

짤막한 거 2009. 1. 18. 06:18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 볼테르가 했다는 멋진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저 말을 과연 18세기의 프랑스인 볼테르가 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쓴 모든 문서에서 저 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누가 했던, 멋진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저 말을 했던 그 누군가가 정말로 자신이 반대하는 사람의 편에서 싸웠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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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마지막 연설

인용과 링크 2009. 1. 17. 09:58

...그는 연설 내내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 그는 “9·11 이후 7년 넘게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가 없었다 (America has gone more than seven years without another terrorist attack on our soil)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


조시 더블유 부시의 저 말을 들으니,
"괜찮아, 먹고 안 죽으면 돼." 음식에 대한 이런 말과 
"어쨌든 부작용은 안 나잖아. 그럼 된 거지 뭘 그래?" 약에 대한 이런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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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내 화장실 앞

에세이 2009. 1. 17. 08:03

대개의 사람들은 영화관에 연인끼리 온다. 하지만 화장실은 목욕탕과 함께 공공 공간 중에서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어 이용해야 하는 흔치 않은 공간 중의 하나다. 영화가 끝난 영화관 내 화장실 앞은 조금 독특한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점이고, 또한 연인들은 잠시 갈라져 각자의 공간으로 향해야 한다. 그 화장실 앞에는 남자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으례 남자 보다는 여자가 화장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기 마련이고, 남자들은 동행한 여성을 기다린다. 다소 초조한 기다림의 순간순간 남자들은 서로를 흘낏흘낏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진다. 

저 녀석이 데리고 온 여자는 내 여자보다 예쁠까 예쁘지 않을까. 예쁠리가 없을거야. 저런 녀석이 예쁜 여자를 데리고 올리가 없어. (여자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를 바라 보면서) 와 예쁘다. 저 여자는 대체 어떠 녀석이 데리고 왔을까. 아니, 세상에. 저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이 다름 아닌 저 녀석이었어? 정말? 아니, 어떻게 뭐 저런 녀석이 저런 여자를 데리고 다닐 수 있을걸까. 이렇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드디어 자신의 여자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고 남자는 웃음을 머금고 여자에게 다가가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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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약자 기업들

짤막한 거 2009. 1. 15. 19:49

한국의 모든 것들은 대게 유행을 따른다. 따라서 기업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 

KB, KT, KT&G, SK, CJ, JYP, SM...

그리고 이게 다 경영하는 사람들이 미국산 경영책만 읽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미국산 경영책의 언어들은 알파벳 약자들로 꽉 차있다.

BPM, B2B, SWOT,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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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인용과 링크 2009. 1. 15. 13:23


연합뉴스 1월 31일자 기사다.

자학적/자극적 제목의 기사이긴 하나, 한국은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 그 어디엔가에서 헤매고 있는 나라이고, 맨날 들입다 비교하는 나라들이 죄다 일본,영국,미국, 프랑스와 같이 '제1세계' 들 이기는 하나, 어쨌든 내용 자체는 흥미를 끈다. 담하는데, 방송 영화계 사람들 또한 불법 다운로드를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법 다운로드 만큼이나, 문화 소비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야근/잔업' 문제도 심각하다.

근데 왜 저 보고서는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한국은행'에서 발표했을까? '한국은행'에서는 '한국은행'의 업무와는 관련 없지만 왠지 재미있어 보이는 '문화 콘텐츠' 와 같은 내용을 연구하더라도 어쨌든 위에서 돈은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그 놈의 '콘텐츠' , '콘텐츠'. 지금도 어떤 회사의 어느 과장은 어느 대리가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그 대리를 불러다 앉혀 놓고 "야, 콘텐츠가 없잖아, 콘텐츠가." 라면서 타박을 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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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에세이 2009. 1. 14. 18:48
그리스 비극은 따지고 보면 그리스 시대의 그리스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였다. 신과 인간, 큰 이야기, 큰 서사. 흥미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이제 좀 폐기 처분 했으면 좋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머리를 꽝꽝 때렸지만, 그건 그 당시에 내가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빠져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번역본' 들을 읽었던 시간이 아깝다. 통속적인 것이 싫다고 역으로 경전이나 계보 안에서 헤매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다.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추천 목록'을 들이 미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앞에 '청소년용' 이나 '대학생이 읽어야 할' 이라는 어구가 붙으면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뒤에 '100선' 따위의 숫자가 붙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읽은 책, 본 영화의 숫자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둘 씩 줏어 넘기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둘 씩 계속 줏어 넘기는 사람들일 수록 그 유명한 사람들이 뭔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조금 시간을 내어 찬찬히 살펴보면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죄다 '외국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름이 외국어라야만 한국에선 유명해진다.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왠지 권위가 없게 느껴진다. 일본어의 경우에는 이름에서 약간 허무한 느낌이 나면 더더욱 좋다. 프랑스어 같은 경우엔 특이하게도 지적이고 권위도 있으면서 예술적인 냄새까지 나는 경우가 다분하다. 정말이지 프랑스어는 영어처럼 돈은 안 되지만 가오잡기에 좋은 복 받은 언어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따지자면 스페인어나 이태리어도 마찬가지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이 두 개의 언어는 한국에서 홀대 받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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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짤막한 거 2009. 1. 14. 06:57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의 지위를 높여 준 것일까? 아니면 여성들이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진걸까? 
삼팔육 운동권들이 사회를 민주화 시킨 것일까? 아니면 삼팔육 운동권들이 중산층이 되면서 사회가 민주화 된 것으로 보였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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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크 Milk]

에세이 2009. 1. 13. 09:04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활동했던 '게이' 하비 밀크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밀크 Milk]를 보았다.[각주:1]영화가 끝나가면서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거의 울 뻔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박수 소리가 잠시 터져 나왔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인이라면, 저 하비 밀크라는 사람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게이이건, 아니건 간에. 

하비 밀크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가 지하철에서 꼬신 녀석과 침대 위에서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하면서 난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어, 그리고 오십 번째 생일을 난 기대하지 않아, 라고 말을 했는데, 그는 마흔 살이 넘어서부터 많은 것을 이루어 내었고, 마흔 여덟 살에 시청 안에서 암살 되었다. 

하비 밀크는 마흔 살에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거리로 이주해서 사진기를 파는 가게를 열었고, 그 가게는 곧 게이들의 동네 사랑방이 되었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출발점이 되었다. 하비 밀크는 처음에는 머리도 기르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편한 데로 대충 입었지만, '정치인'이 되고 부터는 말쑥한 정장에 머리도 짧게 깎고 수염도 다듬기 시작했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거리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하비 밀크가 자기와 같이 일하던 한 녀석에게 너는 운동가, Activist 니까 확성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곤 자신은 혼자 시청으로 뛰어가서 그 운동가 녀석이 사람들을 몰고 시청에 오기 까지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운동가가 사람들을 몰고 시청에 오자 하비 밀크는 시청 문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달랜다. 전략적인 모습이었다.

하비 밀크는 연애 지상주의자도 아니었고, 명랑 사회 이룩해보세, 라는 사람도 아니었고, '보헤미안 예술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사십 대 초반에 조그만 사진기를 파는 가게를 열고 '커밍 아웃한 게이'로 살면서 경제적인 수입에 맞추어서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가 해낸 가장 큰 업적은 학교에서 '게이'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인 주(state)민발의안 6, Proposition 6 의 통과를 저지시킨 것이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이고 시시각각 정체성이 변해가는 나라 미국에서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라는 잣대는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미국의 상황은 이러하다. 2008년 미국 대선때 캘리포니아 주, 에서는 '게이-레즈비언'들이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인 주민발의안 8, Proposition 8이 통과 되었고, 아시아인과 기독교인, 혹은 그 두 개의 범주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 법안을 통과하는데 한 몫 단단히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캐나다의 브리티쉬 컬럼비아라는 주, 에서는 '게이-레즈비언'들이 결혼하는 것은 이미 합법적이다. 

이 영화 [밀크 Milk]는 여러가지 부분에서 한국의 '좌파'들에게 영감을 줄 소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현장수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무려 해고씩이나 된 교사들을 위로해 줄 여지도 있다. 이건 그냥 느낌인데 이 영화가 2009년 4월 23일 한국에 개봉되면 어느정도 눈에 보이는 반향이 있을 것 같다. (그러하더라도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 Sicko]가 개봉했을 때 처럼 미국의 상황을 빌어다가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아, 그리고 영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에 어쩌면 내가 세부적인 부분에서 잘못 알아 듣고 헛소리 하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1. 내 오른쪽 옆에는 나와 같이 영화를 보러간 - 어쩌면 새로운 여자 친구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 미국에 산지 이제 오 년 째가 되가는 한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여전히 대사를 완전하게 못 알아 먹어 상황을 보아가면서 대화를 짐작하곤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알고 보니 동행인이 자신도 그러했다고 해서 잠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내 왼 쪽에는 한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와 같이 앉아 있었다. 그 흑인 남자는 레게 파마 머리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멋을 낸다고 레게 파마를 시도하지만, 흑인 남자들은 곱슬거리는 머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레게 파마를 시도 한다. 그리고 찰랑거리는 쭉 뻗은 머리를 부러워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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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카테고리 없음 2009. 1. 13. 06:05

예전에 서점에서 뒤적거리면서 낄낄거렸던 작가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웹에서 다시 읽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이런 유머를 참 좋아한다. 작가 이기호가 구사했던 어법의 원전을 훔쳐서 한 번 끄적거려 보았다. 


...그런즉 당구, 스타 크래프트, 골프, 이 세 가지는 한국 남자들과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골프라...



(난 고등학교 때는 당구를 쳤고, 대학 때는 스타 크래프트를 했다.)


덧. 국회에서 싸웠던 소위 '민주당 사람들'은 분명 민주당 국회의원들 보다 당직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고, 먹고 살기 위해서 그 곳에 불려 나와 '대신' 싸웠을 것이다. 국민은 '대신' 정치적 결정을 하라고 국회 의원들을 뽑았고, 일부 국회 의원들은 '대신' 몸으로 싸우라고 당직자들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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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연습

짤막한 거 2009. 1. 5. 12:28

하나. 

'정'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지극히 특수한 감정이다. 어떤 외국인이 '정' 을 이해하는 순간, 그 외국인은 온전히 한국인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정'은 한문으로는 '情' 라고 쓴다. 그리고 한문은 중국의 글자다. '정'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지극히 특수한 감정이다.


두울.

백인들은 이중적이라 인종차별적인 생각들을 꺼내 놓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솔직 담백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생각들을 바로바로 꺼내 놓는다. 그러므로 한국인 들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세엣.

한국인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모두가 오빠, 형, 누나, 언니이거나 동생들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일 수록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문구로 십 년 동안 광고를 해 왔다. 한국인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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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짤막한 거 2009. 1. 5. 11:58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와서 웃고 떠든다. 그걸 보면서 시청자들은 아, 쟤네들도 우리하고 별다를 바 없이 똑 같이 노는 구나라는 공감대를 보낸다. 허나, 연예인들은 브라운관 앞에서는 시청자들과 똑같이 놀지만, 브라운관 뒤에서는 결코 시청자들과 똑같이 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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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진

에세이 2008. 12. 29. 12:42
십 년 전에 찍은 가족 사진이 한 장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옷을 차려 입고 사진관으로 향했고, 아직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동생들은 교복을 입고, 난 어설픈 정장을 걸치고 부모님과 함께 사진관으로 나섰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 사진이다. 그냥 저냥 팔 년 동안 지갑 속에 넣고 다니다가 이 년 전에 그 사진을 좀 자세히 들여다 보다가 문득 조금 놀라면서 그 사진이 우리 가족의 관계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진의 구도가 우리 가족 그 자체를 말하고 있었다. 그 가족 사진은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 쯤에 어머니가 위치해 있고, 그 어머니의 둘레를 나와 동생들이 둘러 싸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왼 쪽에 홀로 계시다. 

그 구도는 사진관에서 일하는 사진사가 주문한 구도다. 물론 사진사는 가족 관계에 대한 어떤 직관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그날 입고 온 가족 구성원들의 옷 차림과 색깔을 고려해 가면서 전체 구도가 어떻게 하면 가장 보이기 좋게 나올까를 고민하면서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에 커트 코베인의 전기물을 읽는데 전기 작가가 코베인 가족의 사진을 통해서 그 가족 관계가 얼마나 위태롭고 파탄 일보 직전이었는지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는 사진의 왼쪽에 위치해 있고, 딸과 어머니는 사진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고, 마치 그 들 사이에는 어떤 선이 그어져 있는 것 처럼 찍혀 있다고 하는데, 그 사진의 구도는 그 가족 관계와 그대로 닮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금 십 년 전에 우리 가족 사진을 찍었던 사진사가 어쩌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 사이에 흐르고 있는 미묘한 공기를 포착하여 가족 사진 안에 담아 내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웨딩 촬영을 전문적으로 오랫 동안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부 화장 때부터 신랑신부 가족과 친지들의 단체 사진을 찍는 와중에 그 사람들은 어쩌면 신랑 신부가 혼수 때문에 싸웠는지 안 싸웠는지, 두 사람을 '독립 시키는 데' 필요한 재산은 어느 집안에서 더 많이 부담했는지, 아니, 더 나아가 두 사람은 앞으로 대략적으로 얼마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지 등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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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함

에세이 2008. 12. 26. 08:03

효도 차원에서 몇 년 만에 어머니와 교회를 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이전에 경건한 공간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조그만 교회였고, 그런데로 경건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안은 전혀 통일성이 없었고 이런 저런 선들로 어지러웠다.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설교가 있었고, 입교식과 세례식이 이어졌다. 이제 막 만 18살로 성인이 된 몇 명의 사람들이 기독교 교리를 받아 들이고, 앞으로 그 교리에 맞추어 살겠다고 선서를 하는 순간이다. 그 들을 바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순간 교차했다. 그런데, 순간 몇 명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똑딱이 디카들을 눌러 대었다. 기념촬영. 순간 저들의 손에 든 디카들을 뺏어서 벽에 던져 부수어 버리고 싶었다.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들이 훨씬 더 경건하고 종교적이다.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와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는 대단히 종교적이다. 패티 스미스는 무대 위로 신을 불러 온다. 한국 고유의 리듬이 아니라 일본의 리듬이니 어쩌니는 하지만, 사물놀이의 리듬은 대단히 종교적이다. 사방팔방 주위를 둘러 보아도 도무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으로만 이루어진 공간들이 훨씬 더 경건하고 종교적이다. 불교에 본격적으로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선불교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에 가는 것은, 왠지 좀 겉멋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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